고종실록 40권, 고종 37년 2월 19일 양력 2번째기사 1900년 대한 광무(光武) 4년

존호를 받는 기쁨을 밝히는 조서를 내리다

국역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의 조서(詔書)에,

"예로부터 제왕가(帝王家)에서 공렬(功烈)이 있고 장수를 누리면 반드시 존호를 올려 영원히 후대에 전하는 것은 단지 옛 전적(典籍)에서만 상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열성조의 성헌(成憲)에도 있었다.

삼가 생각건대 인조 헌문 열무 명숙 순효 대왕(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은 영무(英武)한 자질로 큰 운수를 타고 나서 나라를 넓히고 윤리를 다시 바로잡았다. 나쁜 운수를 물리치고 곤경을 수습한 결과 성덕(盛德)과 지선(至善)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다.

명덕 정순 인열 왕후(明德貞順仁烈王后)는 숨은 공로로 궁중을 다스리고 남모르게 대책(大策)를 도왔으므로 교화는 궁중에 퍼졌고 경사는 자손들에게 미치었다. 자의 공신 휘헌 강인 정숙 은덕 장열 왕후(慈懿恭愼徽獻康仁貞肅溫德莊烈王后)는 지극히 어질고 공경스러우며 매우 부지런하고 검박하였으며 웃어른에 대한 봉양이 융숭하였고 온 나라에 덕화가 널리 퍼지었다.

또한 효종 선문 장무 신성 현인 명의 정덕 대왕(孝宗宣文章武神聖顯仁明義正德大王)은 용맹과 지혜를 타고 났으며 예법을 회복하는 데에 뜻을 두었고 한 질의 《춘추(春秋)》를 빛나는 해와 별처럼 여기었다. 조정에서 현준(賢俊)한 이들과 은밀히 꾀하여 화살대와 쇠막대처럼 하였으나 대의(大義)를 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더없이 열렬한 뜻은 영원한 후세에 자랑 할만 하다.

효숙 경열 명헌 인선 왕후(孝肅敬烈明獻仁宣王后)는 중궁전(中宮殿)으로 계실 때는 나라 원수를 갚는 일을 도왔고 왕대비로 계실 때는 자손들을 거느리는 즐거움을 누리었으며 곧고 조용한 자태는 부드러우면서도 법도가 있었다.

아, 짐은 선조들의 덕을 이어받아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면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까봐 걱정하였으며 간고함을 다 겪으면서 나라를 일으키기에 다난(多難)하였는데 천명(天命)을 새롭게 받아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두 성조(聖朝)의 남긴 뜻과 일을 추억하자니 감격과 사모가 더욱 더해진다. 그리하여 모든 관리들에게 물어보고 성대한 예식을 거행하여 위로는 하늘에 있는 조상 신령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신하와 백성들의 바람에 부응하려 하였다.

지난번 태자가 상소하여 짐의 올해 나이가 쉰 고개에 오르게 되었다 하여 존호(尊號)를 올리고 경축하기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왕업을 일으켜 자손에게 전한 그 공적과 덕행은 3대(三代)에서 찾아보아도 이처럼 큰 적이 없습니다. 4대의 선조를 추존하여 하늘에 배향하였으며 모든 예절이 구비되어 선조를 빛내고 후손을 잘 살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과장하여 칭송한 것이 역시 지나쳤다. 설령 말할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늘과 조종(祖宗)이 보살펴주고 도와주었기 때문이지 짐이 무슨 공로가 있었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백성들의 근심과 나라의 계책으로 보아 형식만 일삼고 있을 때가 아니므로 두 번 세 번 사절하고 다만 포고할 것만 허락하였더니 태자가 또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서 호소하였고 여론이 다같이 더욱더 간절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마지못해 따르기는 하였으나 명분과 의리를 생각해볼 때 짐은 실로 부끄럽다.

아, 명헌 숙경 예인 정목 홍성 장순 정휘 장소 단희 수현 의헌 태후(明憲淑敬睿仁正穆弘聖章純貞徽莊昭端禧粹顯懿獻太后)는 보령이 칠순(七旬)이 되었으므로 우리 왕가에서 이미 시행한 전례를 따라 잔치를 차려 자그마한 정성이나마 표시하였다. 그러나 그 깨끗한 풍도와 아름다운 덕화는 금자로 찍고 옥돌에 새겨 전한다 해도 만 분의 일도 찬양할 수 없다.

또한 생각건대 효자 원성 정화 합천 명성 황후(孝慈元聖正化合天明成皇后)국모 지위에 30년 동안 있으면서 만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였다. 꽃다운 생각과 예의 범절은 옛날의 어진 왕비처럼 아름다워서 좋은 운수와 경사가 집중되었으나 그 모습이 점점 멀어지자 짐의 마음은 더욱더 슬프고 태자의 사모하는 마음이 갈수록 간절하므로 이번에 성대한 의식을 거행할 때 아울러 추숭하려 하니 이 역시 옛법을 따르는 것으로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음력으로 올해 정월 초6일에 삼가 책보(冊寶)를 받들어 인조 대왕(仁祖大王)에게는 ‘개천 조운 정기 선덕(開天肇運正紀宣德)’이라는 존호를, 인렬 왕후(仁烈王后)에게는 ‘정유(正裕)’라는 존호를, 장렬 왕후(莊烈王后)에게는 ‘숙목(淑穆)’이라는 존호를, 효종 대왕(孝宗大王)에게는 ‘흠천 달도 광의 홍열(欽天達道光毅弘烈)’이라는 존호를, 인선 왕후(仁宣王后)에게는 ‘정범(貞範)’이라는 존호를 추상(追上)하였다.

같은 달 초10일에는 삼가 사신(使臣)을 보내어 책보를 받들어 명헌 태후(明憲太后)에게는 ‘강수(康綏)’라는 존호를 가상(加上)하였다.

같은 달 18일에는 태자가 책보를 받들어 짐에게 ‘외훈 홍업 계기 선력(巍勳洪業啓基宣曆)’이라는 존호를 가상하였고, 이어 19일에는 명성 황후(明成皇后)에게 ‘홍공(洪功)’이라는 존호를 추상하였다.

대체로 짐 한 사람에게 경사가 있으면 만백성이 힘입게 되는 법이니, 모든 백성들은 골고루 혜택을 입을 것이다. 이에 혜택을 특별히 은혜를 널리 베풀어 반포하는 사항을 아래에 조목별로 알린다. 【이하는 생략함】

아, 종묘에서 제례악을 연주하니 마치 덕음(德音)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고, 넓은 궁중에서는 무궁한 복록을 누리며 오래 살게 되리라. 이에 온 세상에 조령을 고하여 모두 다 듣고 알게 하는 바이다."

하였다.


  • 【원본】 44책 40권 9장 B면
  • 【국편영인본】 3책 14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원문

奉天承運皇帝詔曰:

自古帝王家, 有功烈焉, 享壽考焉, 必有顯稱, 昭垂永世, 不但往牒可稽, 自有列朝成憲。 恭惟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 以英武之姿, 撫鴻鬯之運, 丕基克恢, 倫綱復正。 傾否濟屯, 宗祊鞏固, 盛德至善, 式至于今。 於戲! 不忘。 明德貞順仁烈王后, 陰功內治, 密贊大策, 化著樛木, 慶衍瓜瓞。 慈懿恭愼徽獻康仁貞肅溫惠莊烈王后, 至仁至敬, 克勤克儉, 三朝之隆養備至, 八域之柔化普洽。 亦粤我孝宗宣文章武神聖顯仁明義正德大王, 勇智天縱, 志存克復, 一部《麟經》, 炳如日星。 賢俊在廷, 密勿訏謀, 弧矢鐵柱, 大義未伸, 而無競維烈, 有辭千秋。 孝肅敬烈明獻仁宣王后, 中壼贊嘗膽之義, 長樂亨含飴之歡, 貞靜之姿, 柔嘉有則。 嗚呼! 朕纘承積累之餘, 夙夜祗懼, 惟恐不克, 負荷備經艱棘, 多難興邦。 天命維新, 誕膺大寶。 追念兩聖朝志事, 感慕冞增。 遂乃詢及于百辟卿士, 爰擧縟禮, 庶幾上以慰在天之靈, 下以副臣民之望。 迺者, 東宮陳疏, 以朕今年將躋五旬, 請進號飾慶, 若曰: ‘創業垂統之功之德, 求諸三代而未有盛。 追尊四世之廟, 配祖于天, 百禮旣洽, 光前、裕後。’ 鋪張稱述, 亦旣過當。 藉有可言者, 寔由皇天祖宗, 眷佑垂騭, 顧朕何與焉? 況今民憂、國計, 不宜徒事虛文, 辭拒再三, 只許告布, 嗣又率百僚庭籲, 輿議大同, 愈復懇摰, 不獲已勉從, 顧名思義, 朕實愧焉。 猗! 我明憲淑敬睿仁正穆弘聖章純貞徽莊昭端禧粹顯懿獻太后, 寶齡光躋七旬, 式遵我家已行之例, 載擧丕彝, 以伸菲忱珩璜之度。 紘紞之化有非範金鏤玉, 所可揄揚萬一也。 亦惟孝慈元聖正化合天明成皇后, 母臨三紀子惠萬姓, 芳猷懿範。 媲美乎 , 而昌運慶會, 翟儀寢邈, 朕懷益愴。 睿慕冞切, 今當晠典之克擧, 竝行追隆, 亦率由而不可已者也。 肆於陰曆本年正月初六日, 謹奉冊寶, 追上仁祖大王尊號曰‘開天肇運正紀宣德’; 仁烈王后尊號曰"正裕", 莊烈王后尊號曰"淑穆", 孝宗大王尊號曰‘欽天達道光毅弘烈’; 仁宣王后尊號曰‘貞範’。 同月初十日, 謹遣使臣, 奉冊寶加上明憲太后尊號曰‘康綏’。 同月十八日, 皇太子進冊寶, 加上朕尊號曰‘巍勳洪業啓基宣曆’。 仍於十九日, 追上尊號于明成皇后曰‘洪功’。 夫一人有慶, 萬民賴之, 凡厥黎庶, 宜均霑被。 玆用特覃恩施, 應頒事宜, 條示于後。 【以下略】 於戲! 淸廟朱瑟, 如聞洋洋之德音, 海屋瑤籌, 益膺溱溱之福祿。 詔告天下, 咸使聞知。


  • 【원본】 44책 40권 9장 B면
  • 【국편영인본】 3책 14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