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39권, 고종 36년 12월 25일 양력 2번째기사 1899년 대한 광무(光武) 3년

의정과 장례원의 당상을 인견하다

국역

의정(議政)과 장례원 당상(掌禮院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윤용선(尹容善), 장례원 경(掌禮院卿) 민영준(閔泳駿), 겸장례(兼掌禮) 윤교영(尹喬榮)이다.】

윤용선(尹容善)이 아뢰기를,

"우리 동궁 전하가 부모가 장수하는 것을 기뻐하고 세월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하는 정성으로 상소로 호소하고 정청(庭請)을 하기까지 하자 겸양하는 마음을 애써 돌려 이 명을 내리시니, 우리 폐하의 큰 덕과 큰 업적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으며 금과 옥에 새김으로써 떳떳한 규례를 그대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명성 황후(明成皇后)국모다운 덕과 깊이 도운 공로는 후세에 길이 말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때를 겪다가 세상을 떠나 오늘의 훌륭한 의식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동궁 전하의 더없는 슬픔과 원통함은 풀래야 풀 길이 없습니다. 이제 아름다운 칭호를 추상(追上)하여 끝없이 전하게 되었으니, 동궁 전하의 효성이 더욱 빛이 납니다. 간절히 바라던 끝에 더없이 경사스럽고 다행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동궁이 간절히 청한 것은 실로 정성과 효성에서 나온 것인데, 여러 날 서로 버티어 도리어 지루한 감이 있었다. 비록 부득이 해서 마지못해 따르기는 하였지만 짐은 실로 스스로 부끄럽다. 경효전(景孝殿)에 아름다운 칭호를 올리자는 청은 남들과 다른 동궁의 정리(情理)로 보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폐하의 명이 내리기 바쁘게 온 나라가 춤을 춥니다. 도감(都監)을 설치하되 이름은 상호도감(上號都監)으로 하고 당상과 낭청은 궁내부(宮內府)에서 차출(差出)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43책 39권 98장 B면
  • 【국편영인본】 3책 13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원문

引見議政禮堂。 【議政府議政尹容善、掌禮院卿閔泳駿、兼掌禮尹喬榮。】 容善奏曰: "以我東宮殿下知年愛日之誠, 至於疏籲庭請, 勉回謙衷, 降此兪音, 我陛下大德大業, 可以揄揚。 範金鏤玉, 式遵彝章。 亦粤我明成聖母坤厚之德, 助深之功, 永有辭於後世, 而經歷艱會, 徽音邈然, 不及見今日晠擧, 東宮殿下至慟至冤, 攀慕無地。 惟此追闡稱, 永垂無窮, 睿孝彌光, 顒望之餘, 萬萬慶幸矣。" 上曰: "東宮之懇懇陳請, 亶由誠孝, 而屢日相持, 反涉支離。 雖不得已勉從, 朕實自愧。 至於景孝殿闡徽之請, 以東宮異於人之情理, 宜或其然矣。" 容善曰: "成命纔下, 擧國舞蹈矣。 設都監稱號, 以上號都監爲之。 堂郞令宮內府差出何如?" 允之。


  • 【원본】 43책 39권 98장 B면
  • 【국편영인본】 3책 13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