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80권, 세종 20년 3월 2일 병술 4번째기사 1438년 명 정통(正統) 1438년 명 정통(正統) 3년

임금이 《태종실록》을 보려 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다

국역

임금이 도승지 신인손에게 이르기를,

"옛날 제왕은 친히 조종의 실록을 본 사람이 제법 많았고, 또 공자《춘추》를 지으면서 정공(定公)·애공(哀公)까지 이르렀고, 주자《중용》에서 신종의 소목(昭穆) 제도를 논하면서, ‘역사를 상고해 보면 신하들도 또한 당대 사기를 보는 것이 당연하다. ’고 하였는데, 오직 태종이 국사를 보려고 하자, 저수량(褚遂良)주자사(朱子奢) 등이 불가하다 하였고, 문종도 국사를 보고자 하니, 위모(魏謩)정랑(鄭朗)이 또한 불가하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당시 사기를 보려고 한 까닭에 신하들이 불가하다 한 것이나, 조종의 실록을 보는 것이야 무엇이 해로우랴. 옛날 우리 태종께서 《태조실록》을 보고자 하니, 변계량(卞季良) 등이 이르기를, ‘《태조실록》은 편수(編修)하기를 매우 잘하여 사실을 모두 바르게 썼는데, 이제 전하께서 나아가 보신 뒤에 내려 주신다면, 후세 사람들은 모두 믿지 못할 사기라 하여 도리어 의심할 것입니다.’ 하므로, 태종께서 보시지 못하였다. 내가 즉위한 후에 《태종실록》을 편수하고자 하니, 대신 중 어떤 이가 말하기를, ‘사초(史草)만 갖추어서 전해 두면 후세에 자연히 사기를 편수하게 될 터이니 반드시 급급히 할 것이 아니고, 또 재상이 감수함은 옳지 못합니다.’ 하였으나, 나는 이 일을 중하게 여겼던 까닭에 마침내 재신에게 편수하도록 명하였다. 나는 또 ‘자손으로서 조종의 사업을 알지 못하면 장차 무엇으로 감계(鑑戒)할 것인가.’ 하고, 《태조실록》을 보고자 하여 여러 신하에게 상의하였더니, 유정현(柳廷顯) 등이 ‘조종이 정해 놓은 법에 의거하여 조종의 사업을 잘 계술(繼述)하는 것이 실상은 아름다운 뜻이 된다.’ 하므로, 이에 볼 수 있었다. 지금 또 생각하니, 만약 당시의 사기가 아니면 조종이 정한 법을 보는 데에 있어, 조와 종에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이미 《태조실록》을 보았으니 《태종실록》도 또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지니 여러 겸춘추(兼春秋)에게 상의하라."

하였더니, 대신 황희·신개 등이 모두 말하기를,

"역대 임금으로서 비록 조종의 실록을 본 사람이 있더라도 본받을 것은 아닌가 합니다. 태종이 사기를 보고자 하니, 저수량주자사(朱子奢) 등이 ‘폐하께서 혼자서 본다면 일에 손실이 없지마는, 만약 사기를 보는 이 법이 자손에게 전해지게 되면, 후세에 그른 일을 옳게 꾸미고 단점(短點)을 장점으로 두호(斗護)하여, 사관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면 여러 신하들은 임금의 뜻에 순응하여 제몸을 완전하게 하려 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니, 천년 후에는 무엇을 믿겠습니까.’ 하였으니, 신 등의 논의는 바로 이 말과 같습니다. 이 두 신하는 모두 명신이라고 이름난 사람이니 그의 말은 반드시 본 바가 있을 것이고, 또 태종의 일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이니, 만약 태종의 일을 본으로 삼아 경계하고자 한다면, 역대 사기가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하여 반드시 지금의 실록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하물며 조종의 사기는 비록 당대는 아니나 편수한 신하는 지금도 모두 있는데, 만약 전하께서 실록을 보신다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하지 못할 것이며, 신 등도 또한 타당하지 못하다고 여깁니다."

하니, 임금은 마침내 보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25장 A면
  • 【국편영인본】 4책 133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원문

○上謂都承旨辛引孫曰: "古昔帝王親覽祖宗實錄者頗多, 且孔子《春秋》至於朱子《中庸》, 論神宗昭穆之制曰: ‘考之史籍則人臣亦觀當代之史矣。’ 唯 太宗欲觀國史, 褚遂良朱子奢等以爲不可。 文宗欲觀史, 魏謩鄭朗亦以爲不可。 然此皆觀當時之史, 故臣下以爲不可, 若祖宗實錄, 則觀之何害? 昔我太宗欲觀《太祖實錄》, 卞季良等以爲: ‘《太祖實錄》修撰甚善, 皆直筆也。 今殿下進而賜覽, 後人皆疑, 反爲不信之史矣。’ 太宗不果見。 及予卽位, 欲修《太宗實錄》, 大臣或以爲: ‘但具史草以傳, 則後世自當修史, 今不必汲汲。 且不宜以宰相監修。’ 予以重事, 故竟命宰臣修之。 予又念子孫不知祖宗事業, 將何所(監) ? 欲以觀《太宗實錄》, 議諸臣僚, 柳廷顯等以爲: ‘(監) 于成憲, 善繼善述, 實爲美意。’ 乃得觀焉。 今又思之, 若非當世之史, 則(監) 觀成憲, 祖與宗何別? 旣觀《太祖實錄》, 則《太宗實錄》, 亦宜觀覽。" 議諸兼春秋大臣, 黃喜申槪等, 皆曰: "歷代人君, 雖有觀祖宗實錄者, 恐非可法也。 太宗欲觀史, 褚遂良朱子奢等以爲: ‘陛下獨覽起居, 於事無失。 若以此法傳示子孫, 或有飾非護短, 史官不免刑誅, 則莫不順旨全身, 千載何所信乎?’ 臣等之議, 正與此同。 此數臣, 皆號名臣, 其言必有所見。 且太宗事, 皆殿下所親覩, 若以爲法戒, 則歷代之史備矣, 何必今之實錄乎? 況祖宗之史, 雖非當代, 而撰修之臣, 今皆在焉! 若聞殿下省覽, 則心必未安, 臣等亦以爲未便。" 上不果覽。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25장 A면
  • 【국편영인본】 4책 133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