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실록3권, 순종 2년 10월 28일 양력 1번째기사 1909년 대한 융희(隆熙) 3년
태자 태사 이토 히로부미에게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주다
태자 태사(太子太師)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죽은 것과 관련하여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태자 태사 이토오 히로부미는 뛰어난 기질에 세상을 구제할 지략을 지녔고, 시대의 운수를 만회시키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한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맡아 나섬으로서 단연 동양의 지주(砥柱)가 되었다. 일찍이 평화로운 큰 국면을 이룩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으며 더욱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대하여 주의를 돌렸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왕래하면서 위태롭고 어려운 국면을 부지하고 수습하여 나갔으니,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큰 계책에 기인한 것이었다.
지난번에 통감(統監)으로서 대궐에 상주하여 있으면서 수시로 만나 정성을 다하여 인도하였으며 태사의 임무를 맡아 우리 태자를 보좌하고 인도하여 예학(睿學)을 진취시키는 데 모든 것을 다 하였다. 노령(老齡)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동반(同伴)하여 순행하였으며 휴식할 사이도 없이 계속하여 만주로 행차하였다. 속히 무사히 돌아오면 길이 의지하려고 하였는데 뜻밖의 변고가 생겨 놀라운 기별이 문득 올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놀랍고 아픈 마음 끝이 없다.
고(故) 이토오 태사의 상(喪)에 특별히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장사 지내는 자리에 참가하게 하며, 장사에 소용되는 물품을 궁내부(宮內府)로 하여금 실어 보내주게 하라. 특별히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추증(追贈)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