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 6월 8일 무진 2번째기사 1783년 청 건륭(乾隆) 48년

영남 어사 심기태에게 암행 어사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다

영남 어사 심기태(沈基泰)가 복명(復命)하였다. 이에 앞서 심기태에게 영남을 염탐하라고 명하면서 봉서(封書)를 주었는데, 이르기를,

"경기와 홍충도에서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연로의 지나가는 각 고을에 한결같이 추생(抽栍)111) 의 고을을 염탐하는 조건처럼 염탐하되, 추생의 고을과 연로변 고을 수령의 치적 이외에도 여러 도의 감사·병사·수사·첨사·만호·찰방·감목관·중군·영장·우후 등의 유능 여부도 자세히 염탐하여 보고하라. 불법을 저지른 수령의 죄가 명백히 드러났을 경우에는 그 즉시 봉고(封庫)하고 그 죄상은 조정에 돌아온 뒤에 논하도록 하라. 근래에 어사로 명을 받들고 나간 자들이 입을 조심하지 않아 종적이 쉽게 탄로나고 있는데, 감영·읍진의 상황을 염탐할 때 가는 곳마다 모두 그러하였다. 암행 어사라는 명칭을 가졌는데 사람마다 지목을 한다면 실로 임금의 명을 가장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다. 지난번 한두 어사의 일은 가장 뚜렷이 드러난 것이었으니, 조정에 끼친 수치 거리가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는가? 그대도 만일 앞사람이 하는 일을 밟을 경우 전혀 파견하는 본의가 아니니, 그대는 각별히 깊이 생각하여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 암행의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한다.

1. 감사는 한 방면의 책임을 위임받았으므로 백 리만 맡은 수령과 같지 않다. 그런데 근래 어사의 보고에 모두 ‘도백은 체모가 중하다.’는 이유로 몇 마디 말만 언급하여 마치 감히 논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능력 여부를 거론할 만한 것이 있다면 자세히 논하여 혹시라도 회피하지 말라. 또 병사·수사의 직책은 군무를 다스리고 외적을 대비하는 일 외에도 백성들에게 끼치는 이해(利害)가 많으니, 모두 자세히 탐지하라. 우관(郵官)·목관(牧官)·변장(邊將)은 비록 고을 원과는 다르나 그 역시 백성이 있고 정사가 있으니, 선악을 염탐하되 모두 소홀히 보아넘겨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리고 영장·중군·우후에 있어서는 비록 백성과 사직의 책임은 없으나 반드시 선악의 자취가 있을 것이니, 그 역시 고찰하도록 하라.

1. 본도의 민정은 거듭 흉년이 든 끝에다 또 춘궁기까지 당하였으니, 배불리 먹지 못하고 몹시 굶주린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구제하는 방법은 오로지 진휼을 하는 것과 곡물을 나누어 주는 두 가지 일에 의지하고 있는데, 수령들이 진휼할 때 곡물을 줄여서 몰래 자기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곡물의 대여를 오로지 하리들에게 위임하여 농간을 부리게 놔두고 있으니, 아! 저 백성의 목숨을 어떻게 구제한단 말인가? 이번 염탐은 대체로 이 두 가지 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각 고을의 진휼과 곡물 대여에 대한 잘잘못과 허위 여부를 낱낱이 탐지하되, 고을이나 창고에 대해서만 알아보지 말고 반드시 몸소 관청의 뜰에 들어가서 실적을 확인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 가운데 가장 부실한 자는 그 자리에서 봉고하거나 하리를 엄중히 다스려 징계하라.

1. 창고의 곡물이 부실한 수령들은 더러 저지난해와 지난해에 거듭 흉년이 들어 쭉정이 곡식을 많이 받아들인 소치라고 핑계를 댄다고 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말할 것이 없지만 받아들였다면 쭉정이만 받아들였다는 것은 유명 무실(有名無實)한 것이니, 그 또한 수령의 죄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받아들인 것이 꼭 죄다 쭉정이만은 아닌데 백성들이 받는 것은 쭉정이이기 때문에 거듭 흉년이 들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이다. 비록 한두 고을의 소문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아전과 향임(鄕任)이 농간을 부려도 수령들이 살피지 못하여 토실토실한 쌀은 모두 관속에게로 돌아가고 껍질만 남은 곡물은 억지로 백성들에게 지급하였다고 하였다. 기타 각 고을도 어떻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 한 가지 일은 더욱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1. 추생(抽栍)의 고을과 연로 각 고을의 곡물 장부를 뽑아서 비리를 적발하도록 하라. 비리를 적발할 때에 만약 특별히 살필 만한 것이 없어서 웃음거리를 끼치거나 창고마다 조사하다가 사실과 다름을 면치 못할 바에야 차라리 한두 개의 창고를 뽑아서 조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각 창고의 허실(虛實)을 조사한 다음 그 가운데서 가장 심한 곳을 조사하되, 만약 각 창고마다 모두 검열할 지경에 이를 경우 다른 곳에서 옮겨다 채워 놓는 농간의 폐단을 반드시 십분 엄중히 예방해야 할 것이다.

1. 부세가 번다하고 무거운 것은 실로 백성들이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다. 응당 받아야 할 것도 그러한데, 더구나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비리로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은 불법 중에서도 큰 불법이므로 빨리 법으로 다스려야 하나, 여러 고을에서 더러 잘못 유래된 규식을 답습해서 고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는 비록 대뜸 시임의 수령에게 죄를 돌릴 수 없으나, 부정한 명목 중 작은 것은 별도로 본읍에 주의시켜 그 즉시 바로잡고 큰 것은 논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1. 송사와 옥사는 깨끗하고 공평한 것으로 으뜸을 삼아야 한다. 생각을 명확히 하지 못하여 옳고 그른 것이 전도되었을 경우에는 과오에 속하는 일이므로 용서할 수도 있지만, 뇌물을 받고 법을 잘못 적용하였거나 촉탁을 받고 강제로 결정을 내린 것은 가장 가증스러운 것이니, 이것도 십분 자세히 살피도록 하라. 억울한 옥사에 있어서는 화기(和氣)를 손상하기에 충분하니, 문안과 사적을 살펴볼 때 매우 밝히기 어렵더라도 촌락에서 물어보면 꼬투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類)는 반드시 마음을 쏟아 살펴서 기어코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1. 옥사를 지나치게 다스리거나 혹독한 형벌을 쓰는 데 대한 금지의 법이 있다. 그런데 법을 반포한 뒤에 태장(笞杖)의 크고 작은 것과 가곤(枷棍)의 〈장단과 경중을〉 새기어 넣는 등의 일을 여러 고을에서 준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근래에 받들어 시행할 때부터 소홀히 할 경우 오래되면 더욱 해이질 것이니, 가는 곳마다 살펴서 나타나는 대로 징계하고 다스리되, 그 중에서 더욱 신중히 하지 않은 자는 보고하도록 하라. 그리고 혹시라도 완악한 백성들이 조정의 명령을 빙자하여 수령이 결정을 내린 것을 지나치게 형벌을 사용하였다고 핑계대면서 수령을 위협하고 없는 일을 조작하여 비방하는 자가 있을 경우 그 습관을 키울 수 없으니, 이런 등류는 엄중히 징계해야 할 것이다.

1. 술을 많이 먹는다는 비방과 여색(女色)을 좋아한다는 비난은 대부분 체통을 손상하고 정사를 해치는데, 그 중 심한 자는 적발하여 한 사람을 징계해서 백 사람을 권면하는 본보기로 삼지 않을 수 없다.

1. 장정을 뽑는 것은 큰 정사이다. 여러 고을의 군인 수효를 늘 채우지 못하여 걱정하고 있으나, 각 고을의 호수로 군인의 인원 수와 비교해 본다면 어찌 채우기 어려울 리가 있겠는가? 이는 호족들이 자기 밑에 호수를 많이 데리고 있고 상놈이 불법으로 선비라는 명목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령들이 이들을 색출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쇠잔한 백성들이 대부분 여러 가지 요역을 겸하고 있으므로 군적(軍籍)은 결원이 생기고 만다. 만일 한가로이 노는 장정을 뽑아 군정(軍政)을 잘 하는 자는 비록 원망과 비방이 있더라도 실로 포상해야 한다. 그리고 한결같이 놔두고 처음부터 인원을 보충하지 않은 자는 비록 뚜렷한 잘못은 없더라도 벌을 면하기 어렵다. 그중 심한 자는 장정을 색출해내어 군정을 정돈하는 것 같지만 오로지 사람의 강약(强弱)을 보아 버리거나 취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간사한 하리들이 조종하여 뇌물이 숱하게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등류는 엄중히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와 죽은 자에게 장정을 뽑는 것에 대해 누차 조정에서 주의시켰는데, 여러 고을에서 과연 이 폐단이 없는가?

1. 간사한 향리(鄕吏)와 교활한 하리는 백성들의 좀이다. 법을 농락하여 피폐한 백성을 수탈한다. 예를 들면 재해지를 허위로 보고하여 이익을 훔치고 복호(復戶)를 해주겠다고 팔며 사람을 사주하여 송사를 일으키고 자리를 다투어 소요를 일으키는 등 각종 폐단이 하나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사사로이 백성을 부리고 관부(官府)를 능멸하는데, 수령이 나약하면 불법의 일을 하도록 조종하고, 굳세면 터무니없는 비방을 만들어내니, 명분이 없어지고 풍속이 무너진 것은 모두 이 무리들이 한 짓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어사의 염탐뿐인데, 왕명을 받들고 나간 자들이 엄중히 징계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더러 처음에는 엄격하게 하는 것 같다가 결국에는 누그러진 바람에 도리어 능멸당하는 꼬투리가 되고 만다. 이번에는 각별히 염탐하여 일일이 중하게 다스려서 징계하고 권면하라.

1. 시노(寺奴)의 폐단은 본도가 가장 심한데, 전에 어사가 올린 장계에도 보고된 바가 있다. 조정의 사목은 원래의 액수를 채우는 것뿐이고 처음부터 생산의 수량을 더 늘리라고 한 것이 아닌데, 그 폐단이 여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찌 부귀한 자는 빠지고 피폐한 자만 유독 수탈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병신년112) 에 내의원의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한 뒤로 전부 그 본읍들에다 위임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백성에게 가까운 관청이라야 사정을 자세히 살펴서 간사한 짓을 막고 점차로 폐단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조정의 지극한 뜻을 본받지 아니하고 하리가 농간을 부리는 것을 단속하지 않는다면 그 폐단이 내의원에서 추쇄(推刷)한 것이나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식년(式年)에 추쇄할 때 더욱더 특별히 살펴야 하는데 말할 것이 있겠는가?

1. 연해안 고을의 어촌 호구는 선물로 내는 것이 점차로 늘어나 폐단을 매우 심하게 받고 있다. 그 원인은 비록 경사(京司)에서 잘 살펴 단속하지 못한 데에 있으나, 또한 하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지나치게 징수하는 것에 말미암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리가 ‘어떤 물건은 진상할 것인데 영문(營門)에는 얼마를 들여놓아야 하고 경사에는 얼마를 들여놓아야 한다.’고 하면 백성들이 모르고 수령도 모르므로 위아래가 서로 모르고 수량에 따라 징수하는 것은 사세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품마다 선물로 들어가는 수량의 다과를 자세히 안다면 영문과 비변사에서 조사하여 바로잡을 도리가 있을 것이니, 이 일도 자세히 살피도록 하라.

1. 동래(東萊)의 변방 금지는 그에 따른 법 조항이 있는데, 근래에 극도로 해이해진 바람에 왜인(倭人)이 온갖 간사한 짓을 하고 있다. 비록 어찌할 수 없다고는 하나, 역관(譯官)들이 먼저 법을 범하고 있으니, 마땅히 단속해야 한다. 군수(軍需)와 병기의 허실(虛實)과 이둔(利鈍)을 모두 자세히 살펴서 금지하는 등의 일도 십분 염탐한 다음 비리를 적발하여 법으로 처리함으로써 위엄을 세우고 외침을 막는 일조(一助)가 되게끔 하라.

1. 본도는 본디 인재가 많은 고장으로 일컬어져 왔다. 조정에 나와서는 국가의 대들보가 되고 시골에 있으면 선비들의 표준이 된 자들을 백 년 이전을 계산해 보면 뚜렷이 셀 수 있었는데, 근래에는 왜 그리도 전혀 없단 말인가? 대체로 조그만 고을에도 반드시 인재가 있는 법인데, 한 방면에서 전혀 없단 말인가? 대개 있을 것인데 모르고 못 들은 것일 것이다. 내가 비록 덕이 없으나 일찍이 어진 이를 법도에 구애하지 말고 초빙해야 한다는 훈계를 들었다. 참으로 어질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멀리 있다고 하여 쓸 줄을 모르겠는가? 어사를 보낼 때마다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할 때에는 다시 추천한 바가 없었다. 이는 또한 내 성의가 믿음을 받지 못한 소치이므로 정말 개탄하고 있다. 이번 걸음에는 별도로 찾아보되, 행실이 순수하거나 경학(經學)에 해박하거나 문장이 뛰어나거나 무력이 출중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낱낱이 보고하여 차례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되게 하라. 아! 유현(儒賢)의 시대가 비록 까마득하지만 거문고 소리와 글읽는 소리가 쇠하지 않으니, 보배를 가지고 제값을 받고자 기다리는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뜻을 고상히 가져 숨어 사는 사람은 더욱더 가상하므로 내가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니, 그대는 마음을 써서 시행하여 이 말이 다시 실없이 되게 하지 말라.

1. 고상한 행실과 지조가 있는 사람에게 조정에서 정문을 세워서 포상한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풍성(風聲)을 수립하여 교화를 돈독히 하기 위한 것이다. 본도의 인물은 성품이 순수하고 질박하여 옛적부터 효열(孝烈)과 충절(忠節)로 뛰어난 행적을 남긴 사람이 많이 있는가 하면 의로운 소와 의로운 개 무덤까지도 행인이 칭송하고 있으니, 그 역시 풍기(風氣)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근래에 어사의 보고와 도백의 보고로 인하여 상당히 포상하는 은전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 보고해야 할 사람을 보고하지 않았거나 포상해야 할 사람을 포상하지 않은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혹은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나 감영에서 막았거나 신분이 매우 미천하여 장계에 오르지 아니한 자를 모두 채집한 다음 논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복명(復命)하면서 서계(書啓)를 올렸다. 임금이 불러 보고 이르기를,

"그대가 고위 관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논핵하였으니, 근래 어사 중에서 최고라고 할 만하다."

하고, 이어서 의정부에 명하여 내일 빈대 때에 품처하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61장 B면
  • 【국편영인본】 45책 371면
  • 【분류】 행정(行政) / 구휼(救恤) / 재정(財政)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신분(身分)

  • [註 111]
    추생(抽栍) : 제비를 뽑는 것.
  • [註 112]
    병신년 : 1776 정조 즉위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