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43권, 고종 40년 9월 25일 양력 2번째기사 1903년 대한 광무(光武) 7년
수원과 용인의 토지 측량을 다시 하도록 하다
지계아문 총재(地契衙門總裁) 이용익(李容益)이 아뢰기를,
"수원(水原)과 용인(龍仁) 두 군(郡)을 전에 양지아문(量地衙門)에서 이미 측량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측량한 토지의 결수를 함부로 늘렸다는 취지로 두 군(郡)의 군보(郡報)와 민소(民訴)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나라의 부세(賦稅)와 민폐를 걱정하여 장차 다시 측량하려고 토지 측량 비용을 탁지부(度支部)에 청구하였습니다. 현재 해부(該部)의 대신(大臣) 김성근(金聲根)의 회답에 의하면, ‘토지를 측량하여 문건을 만드는 일은 공평(公平)함에 힘써야 하는데, 해당 두 군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하는 군보와 민소는 확실히 근거가 있습니다. 형편상 다시 측량하여 바로잡아야 할 것이므로 해당 비용 1만 냥을 기준대로 획급(劃給)하도록 하겠지만 지난번에 측량한 감리(監理)와 파견원들에게 응당 견책이 없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토지를 측량하는 항목은 위로는 누락된 조세를 바로잡고 아래로는 숨겨진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것으로서 관계되는 바가 얼마나 긴급하고 중요한 것인데 측량을 제대로 행하지 않아 이토록 그르쳐 놓았으니 다시 측량하여 바로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양무 감리(前量務監理) 이종대(李鍾大)를 가지고 논하면 이를 감독 통제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공평하지 못해 민원(民寃)이 있게 하였으니, 사체(事體)로 헤아려볼 때 너무나 놀랍습니다. 법부(法部)로 하여금 법에 따라 징계하고 당시 소모된 측량비를 해당 감리에게서 징수하여 관청 비용에 채워 넣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地契衙門總裁李容翊奏: "水原、龍仁兩郡, 在前量地衙門, 已經行量。 而以其時量地結數濫增之意, 兩郡郡報、民訴遝至。 爲念國課、民瘼, 行將更量, 量地費額, 請求於度支部矣。 現接該部大臣金聲根照覆內開: ‘打量成案, 務圖公平, 而該兩郡謂有做錯, 民訴、郡報確有可據, 則勢將更量歸正。 故該費額一萬兩, 認準劃撥, 而曾前打量之監理與派員, 不應無警責等因。’ 竊伏念量地一款, 上以正漏稅, 下以捄隱瘼, 其所關係, 何等緊重? 而不善行量, 致此濫誤, 則不容不更量歸正。 以前量務監理李鍾大論之, 職在董率, 不能公平, 致有民冤, 揆以事體, 萬萬駭然。 令法部照律懲辦。 其時所耗量費, 徵捧於當該監理, 俾充公貨何如?" 允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