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세종실록
조선왕조 창건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세종7년(1425)에 《경상도지리지》가 편찬되기 시작하여 세종 14년(1432)에는 《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으며 이 《지리지》는 단종 2년(1454)에 약간의 손질을 거쳐 《세종실록》 《지리지》에 수록된다. 그 후 성종 12년(1481)에는 조선 초기 《지리지》 편찬의 완결편인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다. 이와 같은 《지리지》의 편찬사업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통치체제를 정비해가는 과정에서 상호 긴밀한 연관 속에서 추진되었다. 세종은 집권 후 여러 제도를 정비하면서 《지리지》 편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변계량에게 《지리지》 편찬을 지시하게 된다. 조정에서는 일정한 《지리지》 편찬의 규정을 정하여 8도에 지시하고 8도에서는 그 규정에 의거하여 《지리지》를 편찬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렇게 보고된 8도의 《지리지》를 참고하여 세종 14년(1432)에 《전국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이 전국《지리지》는 수결본 상태로 춘추관에 보관되다가 단종 2년(1454)에 《세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약간의 보완을 거쳐 그 부록으로 수록된다. 이 《지리지》가 흔히 말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세종실록》이 편찬된 단종 2년(1454)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세종실록》 《지리지》 내용을 검토해보면 이 《지리지》가 세종 때 작성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태조부터 태종 때까지의 사실들은 모두 묘호를 써서 적고 있지만 세종 때의 사항들은 세종이라는 묘호를 쓰지 않고 모두 “금상(今上)”이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리지》가 단종 때 편찬되었다면 세종 치세기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도 당연히 “세종”이라는 묘호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세종 치세 기간의 사실이라도 세종 14년 이후의 달라진 내용들은 “금상(今上)”이라는 연대를 쓰지 않고 “세종”이라는 묘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세종실록》 《지리지》가 세종14년에 일단 편찬이 되어 춘추관에 보관하다가 단종때 보완 편찬하면서 세종14년 이후의 사실들은 보완하였기 때문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서문에 의하면 세종 14년에 이 지리서를 편찬하였지만 주군의 연혁은 변화가 많고 또 특별히 양계인 함경도와 평안도의 연혁은 신설된 주군이 많기 때문에 세종 14년에 편찬된 《신찬팔도지리지》의 뒷부분에 이들 주군을 덧붙여서 편찬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세종실록》 《지리지》의 함경도 기사 중 경원 등의 6진과 삼수군 그리고 평안도의 자성·무창 등의 새로 신설된 군현들은 그 도(道)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군현들의 연혁을 설명할 때 “금상” 대신 “세종”이라는 묘호를 쓰고 있다. 이는 이들 군현에 관한 사항은 《세종실록》을 편찬하던 단종 2년에 추가로 편찬되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편년체인 《세종실록》에는 《지리지》를 비롯하여 몇 편의 “지(志)”가 부록으로 수록된 것은 당시 실록의 편찬자였던 정인지 등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는 허후와 함께 김요·박중림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에 제정된 《악보》·《오례의》·《칠정산내외편》·《지리지》 등을 실록의 부록으로 실을 것을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정인지 등에 의하면 세종대에는 제례작악(制禮作樂)한 것이 많으므로 이를 실록에 별도로 “지”로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세종실록》은 편년체이므로 부록으로 “지”를 수록하게 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도한성부를 비롯하여 경기·충청·경상·전라·황해·강원·평안·함길도 등 8도에 소속되어 있는 328개 군현에 관한 각종 인문지리적인 내용을 파악하여 국가에서 편찬한 최초의 전국 규모의 지리서이다. 특히 호구·군정·공부·전결·토산·조운 등 조세 수취에 필요한 경제 사항과 명산·대천·군영·역관·성곽·목장·봉수·관방 등 관방에 관한 사항과 성씨·인물 등 주민들의 신분구성에 관한 사항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독특한 기후 조건을 가진 지역은 별도로 적었고, 각 지방의 민속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강원도 이천군조에 “귀신을 숭상한다.”, 황해도 봉산군조에서는 “백성들이 양잠을 업으로 한다.”, 전라도 강진현조에서는 “어렵을 좋아한다”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세종실록》 《지리지》는 세종대에 있어서 국가의 통치 자료를 수집하고 파악하기 위하여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왕조의 새로운 정치·사회·경제적 기반을 확립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고,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고 조선왕조의 통치가 만세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편찬된 것이다.
제4대 세종실록 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