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제4대 세종실록 오례 표지

《세종실록》 부록의 일부로 조선초기 국가의례(國家儀禮)를 집대성한 책이다. 모두 8책 분량으로 《세종실록》의 권128~135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악보(樂譜, 권136~147), 지리지(地理志, 권148~155), 칠정산(七政算, 권156~163)과 함께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의 일부인 지(志)의 형태로 되어있다. 실록과 같은 편년체 연대기에는 일반적으로 지를 붙이지 않지만, 《세종실록》(36책)과 《세조실록》(2책)에만 독특하게 붙어 있다. 지(志)를 붙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정인지· 허후 등의 건의로 인한 것이었다. “세종대에 강기(綱紀)를 제정하고 예(禮)?악(樂)을 만든 것이 매우 많아서 편년체의 서술방식으로 모두 포괄하여 정리하려면 실록이 번거롭고 너무나 길어지기 때문에 지(志)를 따로 설정해 참고하는 데 편리하게 하자.??는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세종실록》은 권1부터 권127까지는 편년체로 되어 있고, 권128~163까지 36책은 지(志)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실록》에만 유독 이렇게 많은 분량의 지를 붙이게 된 것은 이 시기에 창제하고 정리한 제도 문물과 문화적 업적이 워낙 다대하고 폭 넓어 편년체 서술에 모두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악보나 도판(圖版) 처럼 일반 서적의 형태로 편집하여 간행하기 어려운 요소도 있었다.
실제로 지 8책은 《세종실록》의 본문과 달리 모두 활자가 아닌 필사본으로 되어 있다. 《오례(五禮》는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역대 왕조에서 핵심이 되는 국가의례로,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賓禮)·군례(軍禮)·흉례(凶禮)로 구성된다. ‘오례’란 용어는 서경(書經)이나 주례(周禮)와 같은 고전에도 나오지만, 국가의례로서 체계화된 것은 한 대(漢代) 이후이며, 당(唐) 현종(玄宗) 20년(732)에 편찬된 《개원례(開元禮)》로 집대성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후반에 중국식의 제사(祭祀) 의례가 도입되었으나, 오례 체제가 확립된 것은 고려 예종(재위 1105-1122) 때로 생각된다. 그것은 1234년에 최윤의(崔允儀) 등이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으로 재정리하였고, 그 일부가 《고려사》 오례지(五禮志)에 전한다. 조선 왕조는 태종 때(1410)부터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를 설치하고 국가 의례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는데, 오례의 길례(吉禮) 부분은 이 때 허조(許稠) 등에 의하여 만들어 진 것이다. 세종 때는 여기에 박차를 가하여 정척(鄭陟)·변효문(卞孝文) 등으로 하여금 흉례·군례·빈례·가례 부분을 편찬하여 오례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는 1451(문종 1)에 책으로 편찬되었고,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이 완성되었을 때 부록으로 붙이게 되었다. 태종~세종 대의 의례 정비와 오례의 편찬에는 고려시대 이래로 시행하던 전례(典禮)와 고사(故事)를 기초로 하고, 당(唐)·송(宋)·명(明)의 제도를 참작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상정고금예문》과 주자(朱子)의 《가례(家禮)》, 명(明)의 《홍무예제(洪武禮制)》《대명집례(大明集禮)》 《통전(通典)》 등을 주로 참고하였고, 기타 유교 고전들과 국초 이래 시행되었던 여러 의궤(儀軌)들을 참조하였다. 《세종실록》오례는 훗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편찬하는데 기초가 되었다. 1451년에 편찬된 본 오례는 미흡한 점이 많았으므로,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 등에게 명하여 오례 중에서 중요한 것을 뽑고, 도식(圖式)을 따로 붙여 편찬하게 하여 《경국대전》에 부록으로 붙이게 했으나 탈고하지 못하였다. 이는 결국 1474년(성종 5)에 신숙주와 정척 등에 의해 완성되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세종실록》 오례는 각 예식의 진행 절차를 규정한 의식(儀式)과 그 예식에 필요한 인원·물품·장비 및 시행 일시·장소 등을 규정한 서례(序例)로 구성되는데, 각 예(禮) 마다 서례를 앞에, 의식을 뒤에 배치하여 합편하였다. 그러나 《국조오례의》에는 의식(儀式)을 의주(儀註)라 하여 이들만을 수록하였고(총 8권), 서례(序例)는 따로 모아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라는 별책(총 5권)으로 편찬하였다. 두 책에 수록된 의식/의주와 서례의 조항 수(아래 표)를 보면 대략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구분 서례/의식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의
길례(吉禮) 서례 14 20
의식 35 56
가례(嘉禮) 서례 11 9
의식 44 50
빈례(賓禮) 서례 3 3
의식 6 6
군례(軍禮) 서례 3(缺 1) 4
의식 8 7
흉례(凶禮) 서례 7 13
의식 46 91
합계   177 259

비록 체제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 표를 보면 세종 이후 성종 초까지 25년 사이에 오례에서 증보된 내용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길례와 흉례 부분에서 증보가 많고, 가례·빈례·군례는 변화가 많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세종실록》 오례는 조선초기 국가의례를 정비하기 위한 노력의 결산이며 세종 조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훗날 《국조오례의》의 편찬에 초석이 되었으며, 조선왕조 500년의 국가 전례에 모범이 되었다. 오례의 각 권별 수록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제1권(권 128) 서문, 길례 서례
  • 제2권(권 129) 길례 의식(儀式, 親祭社稷~享宗廟攝事儀)
  • 제3권(권 130) 길례 의식(四時及臘親享宗廟儀~久雨榮祭國門儀)
  • 제4권(권 131) 길례 의식(親享先農儀~享司寒儀)
  • 제5권(권 132) 가례 서례와 의식(正至及聖節望闕行禮儀~使臣及外官迎敎書儀)
  • 제6권(권 133) 가례 의식(納妃儀~鄕飮酒儀)
  • 빈례 서례와 의식(宴朝廷使儀~禮曹宴隣國儀)
  • 군례 서례와 의식(射于射壇儀~鄕射儀)
  • 제7권(권 134) 흉례 서례와 의식
  • 제8권(권 135) 흉례 의식(遣奠儀~文昭殿儀)

제4대 세종실록 오례

제4대 세종실록 오례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