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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18권, 고종 18년 6월 8일 戊戌 2번째기사 1881년 조선 개국(開國) 490년

곽기락이 상소문의 소두를 엄히 다스릴 것을 청하다

전 장령(前掌令) 곽기락(郭基洛)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삼가 생각건대 요즈음 유자(儒者)들이 상소문 올리는 것이 어느덧 풍습이 되어 교남(嶠南)·양호(兩湖)·경기(京畿)·관동(關東)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 반 년 동안이나 대궐 앞에서 떠들며 호소하였습니다. 엄격한 명령이 여러 차례 내렸으나 잠시 물러갔다가 또 다시 와서 마치 큰 변고나 위급한 화가 생긴 듯이 아침저녁으로 이르러서 상명(上命)에 극력 대항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간하였습니다.

그 상소의 내용은 반드시 위정척사(衛正斥邪)로 제목을 삼고 이웃 나라와 사귀고 친선하는 것을 문제거리로 만들어서는, ‘온 나라가 다 유교를 등지고 서양을 배우며 오랑캐의 옷을 입고 오랑캐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니 그 우려하는 것은 깊지만 그 말은 지나칩니다.

대체로 우리나라가 일본과 관계를 가지는 것은 곧 견제하기 위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지, 저 일본이 서양과 좋은 관계를 맺어서 서양 옷을 입고 서양 학문을 배우는 것은 우리나라로서 금지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오직 일본뿐이지 언제 서양 사람들과 통한 적이 있었습니까?

전에는 양이(洋夷)로서 몰래 우리나라 국경에 숨어들어 우리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자는 곧 사로잡았고 잡으면 반드시 죽였습니다. 지금 설사 일본 사람 속에 섞여서 출몰하는 것이 무상하기는 하나 우리나라가 사교(邪敎)를 배척하는 법은 여전합니다.

참으로 우리 성조(聖朝)에서는 정학(正學)을 숭상하고 이단을 물리침으로써 만백성을 바르게 이끌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삼가 근래에 내린 윤음(綸音)을 읽어보건대 그 엄격함이 부월(鈇鉞)의 처형보다 더 엄함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 예의(禮義)의 풍속에 만약 사교에 중독되어 물든 자가 있다면 반드시 남김없이 없애버렸습니다. 비록 황준헌(黃遵憲)의 책자로 말하더라도 그 글이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 그 말이 좋은가 나쁜가에 대해 신은 진실로 모르지만, 대책이라고 써 놓은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긴요한 문제와 관련 있는 적정(敵情) 등의 일들을 적어놓았습니다. 그 대책을 채용하는가 않는가는 오직 조정에서 토의 결정하여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신으로서는 자기 나라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어찌 머나먼 다른 나라의 일처럼 보면서 그 책을 받지 않겠습니까? 신은 받지 않은 죄가 받은 죄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그 책 속에 ‘천주(天主)’니 ‘예수〔耶蘇〕’니 하는 말들은 다른 나라 사람의 글에서 설사 어긋나고 패려한 이야기가 있었다 한들 어찌 규탄할 만하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어찌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그들의 논의를 따르고 그들의 교리(敎理)를 행하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책을 받은 사신의 죄가 죽을 죄라고 한다면 책을 쓴 황준헌은 장차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조정에서 정도(正道)를 호위하고 사학을 배척하는 것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하였고 사림(士林)들 중에는 특별히 옹호하고 배척해야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신이 알 수 없는 바입니다.

일본이 우리와 서로 내왕한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지만, 최근에 들으니 부강해져서 옛날과는 같지 않고 각국에 제멋대로 돌아다녀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가령 우리나라와 처음부터 내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제 좋은 관계를 맺자고 와서 청한다면 의리상 그만두자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이전에 300년 간이나 좋은 관계를 가졌던 나라가 세계의 통상 규례를 시행하자고 요청하는 것을 무슨 말로 거절할 것이며 거절한다고 해서 오지 않겠습니까?

불화를 조성하고 말썽을 일으켜 강한 적을 건드린다면 오늘 우리나라의 형세와 군사의 힘으로 능히 관문을 닫아걸고 조약을 폐기하여 우리 강토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탱하지 못하여 마지못해 따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순히 나가서 관계를 견고히 맺고 신의를 보임으로써 옛날의 좋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 다음 적당한 대책을 세워 스스로 강해지기를 생각할 뿐입니다.

지금은 이해 관계도 따지지 않고 길고 짧은 것도 대보지 않고 다만 고결하고 정당한 논의에만 의거하여 맨주먹을 부질없이 휘두르면서 ‘우리도 천승(千乘)의 나라인데 어찌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 있는가?’라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좁은 소견이고 고집 불통한 주장이므로 저 사람들의 비웃음과 모욕을 받기에 알맞을 것입니다.

아아! 돌아보건대 지금 창고가 거덜나서 군사가 굶주리고 사치를 숭상하여 나라도 개인도 재산이 고갈되었으며, 뇌물이 성행하여 탐관오리(貪官汚吏)가 판을 치고, 기강(紀綱)이 해이해져서 도적이 횡행하며, 벼슬자리를 다투어 염치가 없어지고 바른말하는 길이 막혀서 아첨쟁이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어려워지고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것은 단지 여기에 기인한 것이니 지금보다 더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선비 되는 자들이 우리 임금에게 아뢰고자 한다면 이상의 여러 조목들을 급하고 절실한 임무로 삼아 안으로는 정사와 교화를 다스리고 밖으로는 침략하는 적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계에 관한 기술과 농림에 대한 책과 같은 것이 만약 이익이 될 수 있다면 또한 반드시 선택하여 행하고 그들의 것이라 해서 좋은 법까지 함께 배척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유생들의 상소문을 보면 큰소리치고 잘난 체 떠드는 것이 실용에는 도움되는 것이 없고 집집마다 돈을 거두어 절반은 자기들의 개인 주머니를 채우고 사람을 모집하여 연명(聯名)의 인원수만 채우면서 그 중에는 콩인지 보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자가 많으면서 날로 지껄이는 것만 일삼으니, 이것은 또 무엇 때문입니까? 임금의 비답을 받고도 재차 들고 나설 때는 소두(疏頭)를 엄하게 징벌하면 나라의 체면도 서고 나라 안의 소란도 멎을 것입니다.

신은 지난번 이만손(李晩孫)강진규(姜晉奎)에게 내린 처분에 대하여 놀라움과 당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만손이 미처 올리지 못한 상소문 가운데 흉측하고 패악스런 문구는 마음속에 싹트고 입으로 말하지 않은 것이니 엄하게 신문하여 진상을 알아내고 전형(典刑)을 밝게 바루는 것을 그만둘 수 없는 일인데, 처분이 문득 내렸으니 진실로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전하의 덕을 알 수 있습니다.

강진규에게 죄가 있고 없는 것은 흉악한 상소문을 지었는가 짓지 않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지었다면 죄는 이만손보다 더 중할 것이고 그것을 짓지 않았다면 이는 곧 죄가 없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다시 엄하게 국문하여 반드시 사실인가 아닌가를 분별하여 형벌을 신중히 하는 정사에 손상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여러 사람들의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굽어살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현재의 폐단을 잘 말하였고 자못 조리가 있으니 매우 가상하다.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 【원본】 22책 1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사상-서학(西學) / 외교-일본(日本) / 풍속-풍속(風俗)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前掌令郭基洛疏略:

    竊伏覩, 近日儒章, 便成風習, 嶠南兩湖畿甸關東, 接踵而起, 半年叩閽。 嚴旨屢下, 乍退復進, 如若大變急禍, 朝夕且至, 而力抗上命, 以死爭之。 其疏辭, 必以衛正斥邪爲題目, 而以交隣修和, 作話柄, 以爲: "一國擧將背洙泗而學泰西, 被卉服而語侏離。" 其慮也深, 而其說則過矣。 蓋我國之容接日本, 卽出羈縻之計, 而彼日本之與洋交好, 服洋之服、學洋之學, 非我國之所可禁止。 而我之所交好者, 卽惟日本而已, 何嘗與洋夷通哉? 在前洋夷之潛匿我境, 煽惑我民者, 有卽獲之, 獲必殪之。 今設謂混跡日本, 出沒無常, 我國斥邪之典, 則顧自如也。 猗我聖朝, 崇正學闢異端, 以正萬民, 式至今日。 伏讀近下綸音, 可知其嚴於鈇鉞, 而以我禮義之俗, 苟有中毒而染邪者, 必殄滅而無遺矣。 雖以黃遵憲冊子言之, 其書之邪正, 其言之美惡, 臣固未知, 而其所措策, 卽繫我國緊要敵情等事也。 其用捨施黜, 惟在朝廷商確處之。 而爲當日使臣者, 至於本國重事, 豈若人之視讓而不受乎? 臣則以爲不受之罪更大於受之也。 且書中天主耶蘇云云等說, 其於他國人文字設有乖悖之談, 顧何足彈擊? 而是豈使我必欲從其論而行其敎耶? 受冊之使臣, 罪固可誅, 則其立言之黃遵憲, 將欲何以處之耶? 朝家之衛正斥邪, 已無餘蘊, 而無乃士林中, 別有一般可衛而可斥者耶? 此臣所未知也。 且日本之與我相通, 其來久矣。 而近聞富强非如昔時, 肆行各國, 莫之能禦。 借使我國初無相通, 而今以交隣來款, 則義無可辭。 況向三百年修好之邦, 請行一天下通商之規, 以何辭拒之? 謂拒之而不之來耶? 失和構釁, 橫挑勁敵, 以今國勢兵力, 其能閉關絶約, 使不能窺函谷一步耶? 與其不支而勉從, 毋寧順就而固結, 布以信義, 以篤舊好。 然後措劃得宜, 以思自强而已。 今乃不問利害, 不較長短, 徒憑淸議, 虛張空拳, 曰"吾亦千乘之國也, 顧何足畏彼"云爾, 則是爲管窺之見, 膠固之論, 而適取彼人之笑侮也。 噫! 顧今倉庫枵而軍卒饑, 奢侈崇而公私竭, 包苴盛而貪墨行, 紀綱弛而竊盜橫, 仕途競而廉恥喪, 言路閉而阿諛進。 國步之艱難, 民生之困瘁, 職由於此, 而莫甚於今。 爲諸儒者, 欲告吾君, 則以上諸條, 爲急切之務。 內修政化, 外攘寇敵, 而若其器械之藝、農樹之書, 苟可以利益, 亦必擇而行之, 不必以其人而竝斥其良法也審矣。 今見儒章, 宏談闊辯, 無補實用, 而逐戶斂錢, 半是私歸囊橐, 募人充數, 多有不辨菽麥, 日事叫嚷者, 抑何故也? 承批而再擧者, 嚴懲疏首, 則國體可尊, 邦鬧可息矣。 臣於向日李晩孫姜晉奎處分, 不勝驚惑。 晩孫未徹疏中凶悖句語, 所不萌心發口, 則嚴覈得情, 明正典刑, 不可已之事。 而處分遽下, 固知大聖人好生之德也。 姜晉奎有罪無罪, 在於凶疏之製與不製。 其製之罪, 浮於晩孫, 其不製是卽無罪。 伏願更爲嚴鞫, 必辨虛實, 勿使有損於欽恤之政。 然後可破衆人之滋疑也。 伏乞聖明俯垂鑑諒焉。

    批曰: "能說時弊, 頗有條理, 甚庸嘉尙。 當留念矣。"


    • 【원본】 22책 1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사상-서학(西學) / 외교-일본(日本) / 풍속-풍속(風俗)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