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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실록 1권, 철종 대왕 애책문(哀冊文)

철종 대왕 애책문(哀冊文)

애책문(哀冊文)

유세차(維歲次) 계해년043) 12월 계유(癸酉) 삭(朔) 초8일 경진(庚辰)에 황숙고(皇叔考) 철종 희륜 정극 수덕 순성 문현 무성 헌인 영효 대왕(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께서 창덕궁(昌德宮)의 정침(正寢)에서 승하(昇遐)하셨는데, 다음해인 갑자년044) 4월 신미(辛未) 삭(朔) 초7일 정축(丁丑)에 영원히 예릉(睿陵)에 천장(遷葬)하였으니, 예(禮)입니다. 규루(虯漏)045) 가 오열하니 용황(龍㡛)046) 이 나부낍니다. 위의(衛儀)는 길장(吉仗)을 성대히 진열하였으니, 우러러봄에 경광(耿光)을 가까이한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영영(靈影)은 머물지 않는단 말입니까? 아! 선향(仙鄕)에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날 구름도 수심에 잠겼고 바람도 처연한 슬픔을 머금었으며, 만백성이 우레처럼 울부짖으면서 흘리는 눈물이 비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 보위(寶位)에 올라 예(禮)를 행하셨으며, 불전(紼纏)047) 을 잡고 통곡하면서 하직하였고 등하(登遐)048) 가 점점 아득해지는 것을 슬퍼하여 하신(下臣)에게 위촉하여 송찬(頌贊)을 짓게 하셨으니, 그 송사(頌詞)는 이러합니다.

영종(英宗)의 지손(支孫)이므로 헌원씨(軒轅氏)049) 에게 제곡(帝嚳)050) 이 된 셈입니다. 하늘에서 타고난 뛰어난 자질로 우리 순원 왕후(純元王后)를 뵙게 되었습니다. 용(龍)의 덕이 전지(田地)에 있었으니051) 이에 외방에서 노고를 겪으셨지마는, 망탕산(芒碭山)의 채운(彩雲)052)용릉(舂陵)의 가기(佳氣)053) 가 항상 성대하게 어려 있었습니다. 애통하게도 기유년054) 에 국세(國勢)가 위급하였는데, 염명(簾命)055) 은 오직 새로운 것이어서 급급히 영렵거(軨獵車)056) 로 봉영(奉迎)하여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조(四條)의 의방(義方)은 들어와 자훈(慈訓)을 봉행하였으므로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었어도 잘 다스려졌습니다. 배우는 데 근면하고 묻기를 좋아하였으므로, 한없이 넓은 성품이 혼연(渾然)히 완성되어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오직 전일(專一)하고 오직 정수(精粹)하였습니다. 효성은 하늘에서 타고났으므로 어린 나이 때부터 천승(千乘)의 지존(至尊)에 있으면서도 민자건(閔子騫)증자(曾子)의 효성을 독실히 행하였습니다. 장락궁(長樂宮)057) 은 만세(萬歲)까지 장수하도록 옥(玉)으로 새긴 술잔을 올렸으며, 총애의 직질(職秩)과 은혜로운 급제(及第)는 기구신(耆舊臣)에까지 미치셨습니다. 그런데 춘휘(春暉)058) 가 오래 머물지 않아 끝까지 잘 보살펴 기르는 자정(慈情)이 어긋났습니다. 그리하여 과일을 보면 순(舜)이 국에서 요(堯)를 보는 것 같이 사모하는 마음이 일고 음식을 먹을 때도 등문공(滕文公)이 음식을 철폐하고 죽만 먹으면서 거상(居喪)하듯 슬퍼하였습니다. 성신(誠信)은 후회함이 없이 몸소 가성(佳城)059) 에 나아갔으니, 이는 옛날의 훌륭한 임금도 일찍이 행한 적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순고(純考)060) 의 공을 높여 문왕(文王)의 모유(謨猷)와 무왕(武王)의 공렬(功烈)을 이루었으며, 헌종(憲宗)을 세헌(世獻)하여 은(殷)나라의 종묘(宗廟)와 한(漢)나라의 묘실(廟室)처럼 하였습니다. 중국의 패사(稗史)에 기재된 오류를 공소(控訴)하며 밝혀 곧 선계(璿系)061) 를 천명시켰으며, 선조(先朝)의 준례를 따르는 것을 겸양하였으니 만세(萬世)에 할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침원(寢園)의 천봉(遷奉)하는 일은 예성(睿聖)에게서 결단 실행하였고, 묘궁(廟宮)의 사철 제향에 예법과 공경심을 극진하게 하였습니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일념(一念)은 마음으로 계획한 데에서 나타내었고, 계전(階前)의 만리(萬里)에는 미각(楣刻)이 환히 빛났습니다. 조세(租稅)를 견감시키고 내탕전(內帑錢)을 하사하였으므로 흉세(凶歲)에도 오히려 편안하였으며, 도탄에 빠진 이에게 이를 보호해 주었고 재이(災異)를 만나면 반드시 이를 물리쳤습니다. 조정에서 삼정(三政)에 대한 대책(對策)은 현량(賢良)들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낙우(酪牛)에 대해서는 송 인종(宋仁宗)이 구운 양고기를 먹으려다 그만둔 마음을 미루었으며, 공삼(貢蔘)에 대해서는 다세(茶稅)를 감면한 고사(故事)를 따르려고 힘쓰셨습니다. 검소한 덕을 힘써 행하고 사치스러운 것은 힘써 제거하였으므로, 진 무제(晋武帝)치구(雉裘)062) 를 바친 뒤에 불태워 버렸으며, 한 문제(漢文帝)는 노대(露臺)063) 를 영조(營造)하려다가 그만 그쳤으니, 누가 우리 임금 같은 분이 있었겠습니까? 도저히 이름하여 칭송할 길이 없습니다. 영재(英材)를 맞이하여 일강(日講)을 거행하였고, 빙례(聘禮)에는 궁정(弓旌)064) 을 도탑게 하였습니다. 간언(諫言)을 받아들여 치적(治績)을 높였으며, 백성의 고통을 탐문하여 형벌을 신중히 하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조정에서 군신(君臣)이 정무를 토론할 때에는 겸허하기가 하늘에 구름 걷힌 듯이 하였습니다. 옛날 당우(唐虞) 때를 상고하여 보면, 해마다 금양(金穰)065) 이 들었던 것과 같아서 지금까지도 최상의 상서로 여기고 있습니다. 태평을 구가(謳歌)하는 것은 덕을 밝혀 행한 소치인 것으로, 대유(大猷)가 바야흐로 성대하여져 불록(茀祿)이 강물처럼 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춘추(春秋)도 한창 젊으시고 영위(榮衛)066) 도 탈이 없으셨으므로 강릉(岡陵)처럼 장수(長壽)하시기를 축원하였는데, 황천(皇天)이 차마 가슴을 에이는 아픔을 내릴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궁검(弓劍)을 이젠 어루만질 수 없게 되었으니, 보철(黼綴)만 부질없이 진설되어 있습니다. 슬퍼하고 원통해 하며 울부짖는 것이 팔역(八域)이 똑같았습니다.

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지선(至善)과 성덕(盛德)을, 아! 슬프다. 아름다운 주류(珠旒)067) 를 어디에서 우러러볼 수 있겠으며, 어렴풋이 들리는 옥음(玉音)이 더욱 멀어만 갑니다. 깊은밤이 계속됨이며 다시 아침이 오지 않을 것이요, 영혼이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남이여! 어느 때나 돌아오겠습니까? 천리(天理)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인인(仁人)이 어찌하여 장수를 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푸른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어도 대답이 없고 황천의 귀신에게 질문(質問)해 보아도 구명(究明)할 길이 없습니다.

아! 슬픕니다. 잠깐 사이에 옛일이 되어 버렸으니, 빠른 것은 세월(歲月)입니다. 여창(臚唱)068) 이 생전과 방불하니 호위를 경계시키고, 경필(警蹕)069) 이 더디니 상여(喪輿)를 인도해 갑니다. 예제(禮制)가 문득 5개 월에 이르렀고 천서(天序)도 갑자기 2년이 되었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니 다시 보일 것만 같은데, 경황없는 마음에 오직 줄기 눈물만 흘러내립니다. 이번에 대여(大輿)를 인도하며 조도(祖道)070) 를 보니, 옛날 난가(鑾駕)를 봉영(奉迎)하던 도성문(都城門)이었습니다. 아득한 저 멀리에 오운(梧雲)이 서려 있는데 어두컴컴 하게 매우(梅雨)가 휘날립니다. 아! 슬픕니다. 천연적으로 된 높은 산은 용(龍)이 서리고 봉이 날으는 듯합니다. 신경(神京)071) 에서 여러 사람이 바라보게 되어 있으니, 푸른 잣나무가 두 능침(陵寢)을 뒤덮고 있습니다. 일찍이 우모(羽旄)072) 가 여기에 임어(臨御)한 적이 있었는데, 진실로 좋은 성토(星土)073) 임을 말하였습니다. 이곳은 만년을 안주할 택조(宅兆)인데 성인(聖人)이 안장(安藏)되기를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아! 슬픕니다. 바야흐로 대여의 행렬이 떠나니, 궁궐을 우러르며 배회하고 있습니다. 비록 음휘(音徽)는 길이 막혀 버렸지만 의관(衣冠)은 출유(出遊)하는 듯합니다. 옥수(玉隧)에 보좌(寶座)를 상상하니, 동사(銅戺)가 운천(雲阡)에 엄연합니다. 명철하고 슬기로우며 아름다운 덕을 찬술하여 금석(金石)에 의탁시켜 오랠수록 더욱 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아! 슬픕니다.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 이돈영(李敦榮)이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66면
  • 【분류】
    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註 043]
    계해년 : 1863 고종 즉위년.
  • [註 044]
    갑자년 : 1864 고종 원년.
  • [註 045]
    규루(虯漏) : 물시계를 가리킴.
  • [註 046]
    용황(龍㡛) : 상여의 포장을 가리킴.
  • [註 047]
    불전(紼纏) : 관을 묶는 밧줄.
  • [註 048]
    등하(登遐) : 임금이 승하함.
  • [註 049]
    헌원씨(軒轅氏) : 황제(黃帝).
  • [註 050]
    제곡(帝嚳) : 황제(黃帝)의 증손자.
  • [註 051]
    용(龍)의 덕이 전지(田地)에 있었으니 : 《역경(易經)》 건괘(乾卦) 구이(九二)에 "드러난 용이 전지(田地)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한 데에서 나온 말임. 곧 철종(哲宗)이 민간에 있음을 말한 것임.
  • [註 052]
    망탕산(芒碭山)의 채운(彩雲) :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망산(芒山)과 탕산(碭山)에 숨어 있을 때에 그가 있는 위에는 채운이 서려 있으므로 그의 처 여씨(呂氏)가 찾아갔다는 고사임.
  • [註 053]
    용릉(舂陵)의 가기(佳氣) :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용릉(舂陵)에 살았는데, 그곳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기운이 싸고 있었다는 고사임.
  • [註 054]
    기유년 : 1849 철종 즉위년.
  • [註 055]
    염명(簾命) : 순원 왕후의 명을 말함.
  • [註 056]
    영렵거(軨獵車) : 가볍고 편리한 작은 수레임. 한 무제(漢武帝)의 증손(曾孫)인 한 선제(漢宣帝)를 봉영(奉迎)하여 올 때 썼던 수레임.
  • [註 057]
    장락궁(長樂宮) : 전한(前漢) 시대의 궁전인데, 모후(母后)가 거처하였음. 여기서는 대왕 대비(大王大妃)를 지칭(指稱)한 것임.
  • [註 058]
    춘휘(春暉) : 봄볕은 만물을 기른다는 말로, 곧 부모 또는 자모(慈母)를 가리키는 말로 쓰임. 여기서는 순원 왕후(純元王后)를 가리킴.
  • [註 059]
    가성(佳城) : 능묘(陵墓).
  • [註 060]
    순고(純考) : 순조(純祖).
  • [註 061]
    선계(璿系) : 왕실의 계통.
  • [註 062]
    치구(雉裘) : 꿩의 머리털로 만든 갑옷으로 진 무제(晋武帝) 때 사마정거(司馬程據)가 이를 바쳤으나, 기이한 의복은 곡례(曲禮)에서 금하는 것이라고 하고 전전(殿前)에서 불태웠음.
  • [註 063]
    노대(露臺) : 임금이 천문(天文)을 살펴보는 곳으로 한 문제(漢文帝)가 이를 축조하려 하다가 여기에 드는 비용이 1백 금(金)이라는 것을 이유로 중지한 고사가 있음.
  • [註 064]
    궁정(弓旌) : 옛날 어진이를 초빙할 때 쓰던 예물(禮物)로, 선비를 부를 때는 활을 쓰고 대부(大夫)를 부를 때는 정(旌)을 썼음.
  • [註 065]
    금양(金穰) : 풍년을 가리키는 말로, 태세(太歲)가 금(金)에 처해 있으면 풍년이 든다는 데에서 온 말임.
  • [註 066]
    영위(榮衛) : 혈기(血氣).
  • [註 067]
    주류(珠旒) : 면류관(冕旒冠).
  • [註 068]
    여창(臚唱) : 의식(儀式)의 절차를 소리높여 창도(唱導)하는 일.
  • [註 069]
    경필(警蹕) : 지위 높은 사람이 지나갈 때 잡인의 통행을 통제함.
  • [註 070]
    조도(祖道) : 먼 길을 떠날 때 도중에 무사하기를 빌기 위하여 노신(路神)에게 제사지내는 일.
  • [註 071]
    신경(神京) : 서울.
  • [註 072]
    우모(羽旄) : 임금의 행사에 꽂는 깃발.
  • [註 073]
    성토(星土) : 별이 맡았다고 하는 땅.

○哀冊文:

維歲次癸亥十二月癸酉朔初八日庚辰, 皇叔考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昇遐于昌德宮之正寢, 越明年甲子四月辛未朔初七日丁丑, 永遷于睿陵, 禮也。 虬漏沈咽, 龍㡛悠揚。 衛儀兮森列吉仗, 瞻依兮若近耿光。 何靈景之莫駐。’ 緊仙鄕之靡及。 是日雲憺而風凄, 萬姓雷號而雨泣。 惟我主上殿下, 踐阼行禮, 辭紼纏慟, 愴登假之寢邈, 屬下臣而載頌, 其詞曰。 ‘支于英廟, 維嚳於軒。 天縱岐嶷, 眎我純元。 龍德在田, 爰勞于外 碭彩舂氣, 常有蔥靄。 痛矣屠維, 國勢岌嶪, 簾命維新, 有奕軨獵。 四條義方, 入泰慈訓, 垂拱而治。 勤學好問, 浩浩其性, 渾然乃成, 不偏不倚, 惟一惟精。 孝爲天植, 粤自沖齡居千乘尊, 篤行閔曾。 長樂萬歲, 觥稱玉鏤, 寵秩恩第, 以及耆舊。 春暉不淹, 恃舛卒鞠。 菓慕堯羹, 饍慼滕粥。 誠信勿悔, 躬詣佳城, 在古懿辟, 所未嘗行。 祖功純考文謨武烈世獻憲宗殷廟漢室。 控晣燕稗, 載闡璿系, 遵先回謙, 有辭萬世。 寢園遷灤, 斷自睿聖, 廟宮烝嘗。 以禮以敬。 安民一念, 發爲心畫, 揩前萬里, 有煥楣刻。 蠲租發帑, 歲荒猶康, 墊斯懷保, 沴必弭禳。 庭策三政, 咨爾賢良。 酪推燒羊, 葠邁弛茶。 儉以禔德, 務祛芬華, 雉裘晉武露臺漢文將營而罷, 旣獻而焚, 孰如我后? 蕩無能名。 延英日講, 禮敦弓旌。 徠諫崇績, 採隱恤刑。 旰宵憂勤, 廈氈都, 兪虛雲若歛。 稽古, 比歲金禳, 迄用上瑞。 康莊謳謠, 昭德之致, 大猷方升, 茀祿如川。 春秋鼎盛, 榮衛無愆, 貯岡陵之遐祝, 忍皇天之降割? 弓劍兮莫攀, 黼綴兮徒設。 哀冤號咷, 一日八域。 於戲! 不忘。 至善盛德, 嗚呼! 哀哉。 穆珠旒兮安仰, 僾玉音之彌遠。 厚夜漫兮無復, 朝眞遊漠兮幾時返, 理難諶斯。 仁何無壽? 號蒼旻而莫應, 質黃神而靡究。 嗚呼! 哀哉。 儵焉邃古, 逝者居諸。 臚唱依俙兮, 戒衛警蹕逶遲兮導輿。 禮制奄屆於五月, 天序遽屬於二載。 愴愴焉望之如復見, 皇皇然惟有萬行淚。 視此引輓之祖道, 伊昔迎鑾之都門。 緜邈兮梧雲逗, 窈冥兮梅雨飜。 嗚呼! 哀哉。 天作高山, 龍蟠鳳騰。 接群望於神京, 蔭翠柏於二陵。 曾羽旄之有臨, 諗星土之允臧。 是爲萬年之宅, 若待聖人之藏。 嗚呼! 哀哉。 方素廞之于邁, 瞻紫闥而夷猶。 雖音徽之永隔, 庶衣冠之出遊。 像寶座於玉隊, 假銅戺於雲阡。 述德媺之克哲克睿, 託金石而愈久愈傳。 嗚呼! 哀哉。 【議政府左參贊李敦榮製。】


  • 【태백산사고본】 9책 1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666면
  • 【분류】
    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