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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실록 1권, 헌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헌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시책문(諡冊文)에 이르기를,

"하늘이 상(喪)을 내리면 검석(劍舃)008) 을 더위잡고 슬픔을 머금으며, 큰 덕이 이름을 얻으매 완염(琬琰)009) 에 새겨 생전의 행적을 찬양합니다. 15년 동안의 정치와 교화를 헤아리면, 어찌 조금이라도 형용할 수 있다 하겠습니까? 생각하옵건대,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는 불세출(不世出)의 자질을 지니고, 대유위(大有爲)010) 의 운수를 받았습니다. 저위(蜋位)에 책봉되신 날부터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의탁하고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의뢰하는 규범을 이어받고, 어린 나이에 즉위하신 이래로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임금이 되지 못하고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살지 못한다는 의리를 극진히 하셨습니다. 순(舜)임금의 총명이 사방 백성에 통달한 것처럼 예지(禮知)는 천부(天賦)의 중심에서 나오고, 주공(周公)삼왕(三王)011) 의 덕을 겸하기를 바란 것처럼 성효(聖孝)는 인륜(人倫)의 지극한 것을 도타이 하셨습니다. 왕모(王母)의 복과 수모(壽母)의 기쁨은 옥첩(玉牒)에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소고(昭考)의 공렬(功烈)과 목고(穆考)의 모훈(謨訓)은 보감(寶鑑)에 아름다움을 드날리셨습니다. 신전(神殿)은 양실(兩室)의 제도를 더하여 삼조(三朝)에 대한 그지없는 정성을 붙이고, 능침(陵寢)은 만년의 길지(吉地)를 잡아 평생토록 못 미치는 슬픔을 펴셨습니다. 하늘의 명에 근본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굉심(宏深)하고 정밀(靜密)하게 경계하고, 늘 학문에 힘써 날로 달로 진취하셨습니다. 토론(討論)은 서책에서 떠나지 않아 한가히 쉴 때에도 이치를 음미하고, 제작(制作)은 으레 모훈(謨訓)012) 에 맞아 운한(雲漢)을 둘러서 빛을 내셨습니다. 재계(齋戒)를 밝혀서 하늘에 제사하고 신을 제사하여 몸을 삼가 규찬(圭瓚)013) 을 바쳤고, 구장(舊章)을 따라 어기지 않고 잊지 않아서 마음을 공경히 하여 거울로 삼으셨습니다. 성공(聖功)·신화(神化)를 크게 이루었으니, 천덕(天德)·왕도(王道)의 극치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양이(洋夷)·도왜(島倭)를 배척하는 명을 내려 신원히 물리치고, 천장(薦狀)에 초야의 인재를 올리게 하여 감화를 받아서 흥작(興作)하게 하셨습니다. 지극한 은택을 널리 베풀어 탕감하고 구제하여 서방 백성이 가뭄·홍수의 재앙을 잊고, 하늘의 경계를 근신하여 경계하고 덕을 닦아 내주(內廚)에서는 상공(常供)하는 찬선(饌膳)을 줄이셨습니다. 만물이 각각 그 있을 곳을 얻었고, 백성이 일용(日用)에 근심을 몰랐습니다. 인애(仁愛)는 더욱이 호생(好生)014) 에 흡족하여 애연(藹然)히 구름이 일고 비가 내렸으며, 양강(陽剛)015) 은 위단(威斷)에 빛나 번개가 번쩍이며 천둥이 치고 바람이 날렸습니다. 형용할 수 없이 지극히 커서 태평한 세대가 드디어 춘추가 한창이신 때에 이르렀고, 공을 이룬 것이 높아서 길상(吉祥)이 여러 번 풍년에서 나타났습니다. 지극한 정치는 능히 춘대(春臺)016) 에 오를 것을 믿고, 장수(長壽)는 길이 해옥(海屋)017) 에서 더할 것을 기다렸습니다. 어찌하여 우리 국가를 돌보지 않고, 갑자기 큰 재앙을 입힙니까? 주단(周壇)의 식벽(植璧)이 이미 감추어졌으니018) 뭇 백성에게 복록(福祿)이 없어졌고, 형호(荊湖)의 유궁(遺弓)을 문득 안게 되었으니019) 저 하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큰 사업이 중도에서 반도 못 이루어졌는데 종사(宗社)를 생각하면 의지할 데가 없었고, 지극한 슬픔이 평생에 매우 절실한데 천지에 사무쳐도 따라갈 길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소자(小子)는 상중의 슬픔에 싸였는데, 태모(太母)께서는 통서(統緖)를 이으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지극한 중임을 맡기시매 열성조(列聖朝)의 큰 기업(基業)을 힘써 이어받았고, 막엄(莫嚴)한 일을 계승하여 사왕(嗣王)의 옛 제도를 잘 따르겠습니다. 의형(儀形)을 영구히 감추신 것을 애통하는데 염세(厭世)020)진유(眞遊)021) 는 이미 멀어졌고, 순삭(旬朔)의 기한이 머무르지 않는 것을 개탄하였는데 멀리 가실 영기(靈期)는 곧 가까워졌습니다. 창룡(蒼龍)022) 이 길에 달리니 애모(哀慕)는 교장(橋藏)023) 에 미치지 못하나, 청오(靑烏)024) 가 영묘(靈妙)를 나타내니 신리(神理)는 노부(魯祔)025) 에서 매우 편안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성신(誠信)을 다하는 생각으로서, 대행 대명(大行大名)의 규모를 상고하였습니다. 무헌(戊憲)·무장(武章)은 천지의 경위(經緯)에 맞고, 명덕(明德)·철명(哲明)이 국가에서 인효(仁孝)를 일으키셨습니다. 백세(百世) 뒤에도 할 말이 있는데 오히려 한 가지 절혜(節惠)의 전례(典禮)를 징험할 수 있었고, 여덟자를 들어서 숭보(崇報)하여 칠묘(七廟)026) 의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삼가 신(臣) 영의정(領議政) 정원용(鄭元容)을 보내어 옥책(玉冊)을 받들고 가서 경문 위무 명인 철효(經文緯武明仁哲孝)라는 존시(尊諡)와 헌종(憲宗)이라는 묘호(廟號)를 올리게 합니다. 바라건대, 밝은 허락을 내려, 작은 정성을 굽어 받아들이소서. 큰 명호(名號)를 바쳐 완전한 덕을 크게 나타내니, 하늘의 대명(大命)이 길이 드리워져 천만년을 도우실 것입니다. 아아! 슬픕니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학성(金學性)이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537면
  • 【분류】
    왕실(王室)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8]
    검석(劍舃) : 황제(皇帝)가 스스로 죽을 날을 택하고 여러 신하들과 헤어지자,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는데, 산이 무너지면서 텅빈 관(棺)이 나타났고 그 속에는 오로지 황제의 칼과 신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 곧 사람의 죽음을 뜻함.
  • [註 009]
    완염(琬琰) : 아름다운 옥(玉).
  • [註 010]
    대유위(大有爲) : 나라를 크게 잘 다스림.
  • [註 011]
    삼왕(三王) : 우(禹)와 탕(湯)과 문왕(文王)·무왕(武王).
  • [註 012]
    모훈(謨訓) : 후왕(後王)에게 모범이 되는 가르침.
  • [註 013]
    규찬(圭瓚) : 종묘(宗廟)에서 쓰는 주기(酒器).
  • [註 014]
    호생(好生) : 살리기를 좋아함.
  • [註 015]
    양강(陽剛) : 임금의 강단(剛斷).
  • [註 016]
    춘대(春臺) : 성세(盛世)를 비유하는 말.
  • [註 017]
    해옥(海屋) : 바다에 있는 신선의 집.
  • [註 018]
    주단(周壇)의 식벽(植璧)이 이미 감추어졌으니 : 임금이 이미 승하하였음을 뜻하는 말. 《서경(書經)》 금등편(金縢篇)에 보이는 이야기. 주 무왕(周武王)의 병이 위독할 때에 주공(周公)이 스스로 무왕의 죽음을 대신하기를 바라며 세 단(壇)을 만들고 벽(璧)을 두[植]고 규(珪)를 잡고서 태사(太史)를 시켜 읽은 축문(祝文)에 "네가 내 말을 들어 주면 내가 벽과 규를 가지고 돌아가 네 명을 기다리려니와, 네가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면 내가 벽과 규를 감추리라." 하였다.
  • [註 019]
    형호(荊湖)의 유궁(遺弓)을 문득 안게 되었으니 : 승하를 슬퍼함을 뜻하는 말. 《사기(事記)》 봉선서(封禪書)에 보이는 이야기. 황제(皇帝)가 수산(首山)의 구리를 캐어 형산(荊山) 아래에서 정(鼎)을 주조하여 정이 만들어지고 용(龍)이 턱수염을 드리워 황제를 맞이하매 황제가 올라 타자 따라 오른 뭇 신하와 후궁이 70여 인이었고, 용이 올라가니 나머지 소신(小臣)들은 오르지 못하고 다들 용의 수염을 잡았으나 용의 수염이 뽑혀 떨어지고 황제의 활[弓]도 떨어졌는데, 황제가 이미 하늘에 오른 것을 바라보고는 그 활과 용의 수염을 안[抱]고 울부짖었다.
  • [註 020]
    염세(厭世) : 임금의 승하.
  • [註 021]
    진유(眞遊) : 선유(仙遊) 죽음.
  • [註 022]
    창룡(蒼龍) : 임금의 수레를 메는 청색의 큰 말.
  • [註 023]
    교장(橋藏) : 능침.
  • [註 024]
    청오(靑烏) : 풍수.
  • [註 025]
    노부(魯祔) : 조상의 묘역에 합장한 곳.
  • [註 026]
    칠묘(七廟) : 임금의 사당.

○諡冊文:

伏以上帝降喪, 攀劍舃, 而銜哀, 大德得名, 勒琬琰而揚諡。 若稽十五年政化, 曷云一二分形容? 恭惟大行大王, 挺不世出之姿, 膺大有爲之運。 自儲位升冊之日, 誕承祖依孫孫依祖之規, 逮沖年臨御以來, 克盡后非民民非后之義。 聰達四, 睿知縱天賦之衷, 思兼三, 聖孝篤人倫之至。 王母之福壽母之喜, 玉牒闡徽, 昭考之烈, 穆考之謨, 寶鑑颺美。 神殿增兩室之制, 寓三朝靡極之誠, 灤寢占萬年之祥, 展終天莫逮之慟。 基命則夙夜宥密, 典學則日月就將。 討論不離於篇翰, 處涓燕而玩理, 制作動合於謨訓, 回雲漢而發輝。 蠲齋令而克祀克禋, 肅躬薦於圭瓚, 由舊章而不愆不忘, 祗心法於鑑柯。 所以聖功神化之大成, 罔非天德王道之極致。 渙綸斥洋島之敎, 闢之廓如。 剡牘登草野之材, 待而興者。 沛至澤而蠲恤, 西民忘極備之災, 謹天戒而警修, 內廚減常供之饍。 萬物各得其所, 百姓日用不知, 仁愛尤洽於好生, 藹然雲行而雨施。 陽剛斯赫於威斷, 燁如雷厲而風飛。 蕩蕩無能名焉, 昌辰聿屆於鼎盛, 巍巍有成功也, 休祥屢驗於豐登。 肆至治克躋於春臺, 佇遐祝永添於海屋。 何我家之不弔, 奄鞠凶之玆罹? 周壇之植璧已屛, 群黎無祿, 荊湖之遺弓遽抱, 彼蒼難諶。 大業未半於中途, 眷宗社而靡寄, 至慟普切於沒世, 徹昊壤而莫攀。 方小子纏奉諱之悲, 而太母降纉緖之旨。 付畀至重, 勉受列聖朝洪基, 繼承莫嚴, 克遵嗣王臣古制。 衋儀形之永悶, 厭代之眞遊已遐, 慨旬朔之不留, 卽遠之靈期載邇。 蒼龍緪路, 哀慕靡及於橋藏, 靑烏效靈, 神理孔安於魯袝。 廼以必誠必信之念, 爰稽大行大名之規。 文憲武章, 叶經緯於天地, 明德哲命, 興仁孝於家邦。 俟百世而有辭, 尙徵節壹惠之典, 揭八字而崇報, 允爲觀七廟之休。 謹遣臣領議政鄭元容, 奉玉冊上尊諡曰: 經文緯武明仁哲孝, 廟號曰: 憲宗, 冀賜明歆, 俯格微悃, 鴻號載薦不顯乎之德之純。 駿命永垂, 庶佑以於千於萬。 嗚呼! 哀哉。" 【藝文館提學金學性製。】


  • 【태백산사고본】 9책 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537면
  • 【분류】
    왕실(王室)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