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설행에 대해 영의정·우의정 등과 의논하다
삼공(三公)·육경(六卿)에게 입시(入侍)하기를 명하였다.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 경과(慶科)의 일을 우러러 청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우의정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우의정 서지수(徐志修)가 말하기를,
"이 지나간 역사에 드물게 있는 경사를 당하여 어찌 과거(科擧)를 베풀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전례(前例)를 상고해 보면 평복(平復)한 뒤에 증광시(增廣試)를 설행하는 법이 있는데, 신등이 전례를 알지 못하고 정시(庭試)를 베풀 것으로 우러러 청하였으니, 이는 모두 신의 죄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정시라 하더라도 설행하지 아니하려고 한다."
하였다. 서지수가 말하기를,
"성상께서 모든 일에 이미 절약해 줄이는 뜻을 보였으니, 비록 과거(科擧)의 일이라도 그 수(數)를 줄이면 이것도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오늘 여러 신하를 특별히 부르셨으니, 옛일로써 말하면 바로 송나라 인종(仁宗)이 천장각(天章閣)에서 부필(富弼)·범중엄(范仲淹) 등을 불러서 천하의 이병(利病)124) 을 조목(條目)으로 진달하게 한 것입니다. 그때 범중엄 등이 진달한 가운데 첫째 조건의 일은 요행(僥倖)을 막는 것이었는데, 요행은 곧 안에서 은택(恩澤)을 내리는 것과 조정 신하가 아들을 임명하는 폐단입니다. 근래에 요행의 폐단이 없지 아니하기 때문에 인심이 안정하지 아니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
하였다. 서지수가 말하기를,
"작년에 작(爵)을 받으실 때에 신이 아악(雅樂)에서 번음(繁音)을 금할 일을 우러러 진달하였는데, ‘여민락(與民樂)’은 이름이 매우 좋으니, 이번 진연(進宴)에는 이 곡(曲)으로 무절(舞節)을 삼으면 가히 화평한 음악이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윤허하였다. 서지수가 또 말하기를,
"신이 호조 판서로 있을 때에 ‘나인(內人)에 궐(闕)125) 이 있으면 수본(手本)을 해조(該曹)에 내리라.’는 뜻으로써 특별히 중관(中官)에게 하교하셨으니, 이는 진실로 거룩한 일입니다. 그 뒤에 두어 달 동안은 중관이 두어 사람을 수본으로 하였고 그 뒤에는 다시 수본이 없었으니, 무릇 일의 해이함이 이같은 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경이 오늘날에 주달할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궁인(宮人)을 어찌 궐(闕)을 만들 수 있는가?"
하였다. 서지수가 말하기를,
"성상의 하교가 이에 이르시니, 신은 감격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예전에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다스림이 선제(宣帝)만 못하나, 문제는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를 잘하여 혹은 연(輦)을 멈추고 간(諫)함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천하가 용동(聳動)하여 문제를 선제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임금은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도리가 더욱 중합니다. 이같은 일은 뭇 신하가 비록 진달할지라도 위에서 유시(諭示)하면 뭇 신하들이 어찌 환히 밝게 알지 아니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제(宣帝)는 좁아서 진실로 논할 것이 없고, 문제(文帝)도 논할 만한 것이 많으나 신부인(愼夫人)의 옷이 땅에 끌리지 않게 하였으니, 그 검소한 덕을 숭상할 만하다."
하였다. 이조 판서 조명정(趙明鼎)이, 사람은 많고 벼슬자리는 좁아서 비록 쓸 만한 인재가 있더라도 골라서 쓸 길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여러 대신(大臣)에게 하순(下詢)하여 처리하기를 청하였는데, 홍봉한이 말하기를,
"예전에 있어서는 바야흐로 유읍(腴邑)의 외직을 맡았거나 혹은 가까스로 외임(外任)에서 체차된 자는 감히 제택(第宅)을 짓고 전원(田園)을 경영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으로 보면 이를 범하는 자가 처음부터 죄에 저촉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또 간능(榦能)의 일컬음이 있어 그 칭양(稱揚)하고 감싸줌이 도리어 간소(簡素)하고 청렴한 자보다 앞섰으니, 풍속이 어찌 퇴폐하지 않을 수 있으며 백성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한때의 전관(銓官)이 비록 공도(公道)를 넓히려고 할지라도 또한 어찌 그 사이에 손을 쓸 수 있겠습니까?"
하였고, 좌의정 윤동도(尹東度)는 말하기를,
"지금의 중요한 방법은 수령(守令)을 고르고 벼슬길을 맑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없습니다."
하였으며, 서지수는 말하기를,
"허다한 쌓이고 막힌 사람을 마침내 사람마다 소통(疏通)하게 할 수 없으니, 오직 그 가운데에서 어진 자를 뽑아 쓰고 그 다음은 여러 사람이 가장 억울하다고 일컫는 자를 뽑아서 차례차례로 잘 골라 쓰면, 한 사람을 써서 천백 사람이 스스로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니, 엄체(淹滯)를 진발(振拔)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중한 바가 여기에 있다. 우의정이 오늘 아뢴 가운데, ‘이번 정시(庭試)는 어찌 전일에 비할 것인가’라고 이른 것은 크게 살피지 아니한 것이다. 그 마음은 순일(純一)하여 다른 뜻이 없겠으나, 그 말은 대단히 한심하다. 우의정 서지수를 파직하라."
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우의정의 마음은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그 마음을 안다."
하였다. 윤동도가 말하기를,
"나라에서 정승을 두는 일이 가볍지 아니한데, 이미 그 마음에 다른 뜻이 없음을 알았으면 다시 생각하시는 도리가 있음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중한 바가 이에 있으니, 경 등은 다시 말하지 말라. 나는 마땅히 정시(庭試)를 실행하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이제 우의정의 망발(妄發)로 인하여 과거(科擧)의 일을 만약 지체한다면, 신 등의 억울함이 마땅히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경과(慶科)를 설행하면, 일이 널리 사람을 뽑는 것이 마땅한데, 우의정이 정시의 수(數)를 감하라는 말은 지극히 괴이하다."
하였다. 형조에 명하여 가벼운 죄수를 석방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107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22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행정(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예술-음악(音樂)
○己卯/命三公六卿入侍。 領議政洪鳳漢, 以慶科事仰請, 上曰: "右相之意何如?" 右議政徐志修曰: "逢此往牒稀有之慶, 豈可不設科乎?" 鳳漢曰: "考見前例, 則有平復後設增廣之規, 臣等未諳前例, 以庭試仰請, 此莫非臣之罪也。" 上曰: "雖庭試, 不欲設行矣。" 志修曰: "聖上於凡事, 旣示節省之意, 雖科事, 減其數則此亦節省之道矣。 今日特召諸臣, 以古事言之, 卽宋 仁宗 天章閣, 召富弼ㆍ范仲淹等, 使之條陳天下利病者也。 其時仲淹等所陳中, 第一件事, 乃杜僥倖, 僥倖卽內降恩澤及朝臣任子之弊也。 近來不無僥倖之弊, 故人心不安靜矣。" 上曰: "卿言是矣。" 志修曰: "昨年受爵時, 臣以雅樂禁繁音事仰達矣, 《與民樂》名甚好, 今番進宴, 以此曲爲舞節, 則可爲和平之音矣。" 允之。 志修又曰: "臣待罪戶判時, 以‘內人有闕則手本下該曹’之意, 特爲下敎於中官, 此誠盛事。 其後數月, 中官以數人手本, 其後則更無手本, 凡事之解弛, 由此等之事也。" 上曰: "此非卿今日所可奏之事也。 生存宮人, 豈可作闕乎?" 志修曰: "聖敎至此, 臣不勝感激之至。 昔漢 文致治, 不如宣帝, 而文帝則善於聽納, 或止輦受諫, 故天下鼓動, 以文帝謂勝於宣帝。 大抵人君聽納之道尤重。 此等事, 群下雖或陳達, 自上諭示, 則群下豈不洞然曉知乎?" 上曰: "宣帝狹隘固無論, 而文帝亦多可議, 愼夫人衣不曳地, 其儉德可尙矣。" 吏曹判書趙明鼎, 以人多窠窄, 雖有可用之才, 萬無甄復之路, 請下詢諸大臣而處之, 鳳漢曰: "在前則方帶腴職, 或纔遞外任者, 不敢搆第宅營田園, 而以今觀之, 犯此者不但初不抵罪, 又有榦能之稱, 其所吹噓, 反先於迃踈廉約之人, 俗安得不頹, 民安得不困? 而一時銓官, 雖欲恢公, 亦安得措手於其間乎?" 左議政尹東度曰: "卽今要道, 莫如擇守令淸仕路矣。" 志修曰: "許多積滯之人, 終無以人人而疏通之, 惟於其中, 拔其賢者而用之, 其次取其衆所最稱屈者, 而次次甄用, 則一人用而千百人自以爲不冤, 似可爲振拔淹滯之道矣。" 上曰: "所重在焉。 右相今日所奏中, 今番庭試, 豈比前日云者, 大不審察。 其心斷斷無他, 其言萬萬寒心。 右議政徐志修罷職。" 鳳漢曰: "右相心事, 豈有他乎?" 上曰: "予亦知其心矣。" 東度曰: "國之置相不輕, 旣知其心之無他, 則合有更思之道矣。" 上曰: "所重在焉, 卿等勿復言。 予當不爲庭試矣。" 鳳漢曰: "今因右相妄發, 科事若遲滯, 則臣等抑鬱當如何?" 上曰: "若設慶科, 事當廣取, 而右相庭試減數之言, 極怪矣。" 命秋曹輕囚放釋。
- 【태백산사고본】 72책 107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22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행정(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