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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32권, 영조 8년 10월 9일 癸亥 1번째기사 1732년 청 옹정(雍正) 10년

풍릉부원군 조문명의 졸기

풍릉 부원군(豐陵府院君) 조문명(趙文命)이 졸(卒)하였다. 조문명은 인품이 총명 영오하고 간결 민첩하였으며,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신축년246) ·임인년247)김일경(金一鏡)의 무리가 충량(忠良)한 신하들을 도륙(屠戮)하던 때를 당하여 능히 그들을 배척하는 말을 창도하였고, 신임을 받아 등용되기에 이르러서는 힘써 보합론(保合論)을 견지하여 탕평(蕩平)의 정치를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본색(本色)을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취여(取與)한 것이 실제로 공의(公議)에 합치되지 않았고 세도(世道)에 해를 끼친 것이 있었다. 번갈아 5영(營)의 대장을 지내 교대로 양전(兩銓)을 장악하였으며, 끝내는 상부(相府)에까지 들어갔으니, 국은(國恩)이 매우 두터웠다. 하지만 보답한 공효는 별로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3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癸亥/豐陵府院君 趙文命卒。 文命爲人聰悟簡敏, 容貌甚美。 當辛壬黨屠戮忠良之日, 能倡言排斥, 及被嚮用, 力持保合之論, 欲爲蕩平之治, 而終未能擺脫其本色, 故其所取與, 實有不合於公議, 而貽害於世道者。 迭將五營, 遞握兩銓, 終入相府, 國恩深厚, 而報效則蔑蔑矣。


  • 【태백산사고본】 24책 3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