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항이 안성에서 적군과 싸워 크게 이기다
이보다 앞서 도순무사 오명항이 진위 땅에 있으면서 종사관 등과 더불어 진병(進兵)할 것을 의논하여 각기 그 이해를 개진하였다. 오명항은 단지 말하기를,
"시험삼아 직산(稷山)으로 진군하고, 다시 의논해도 늦지 않다."
하고, 드디어 진군해서 소사에 이르러 점심밥을 먹고 나니 전군(前軍)은 이미 직산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오명항이 갑자기 말에 기대어 두 종사관을 불러 귀에다 대고 명령하기를,
"안성 군수(安城郡守) 민제장(閔濟章)으로 하여금 본군(本郡)으로 돌아가 양초(糧草)를 정돈해 기다리게 하라."
하고, 큰소리로 말하기를,
"직산으로 운반하라."
하였다. 당보 초관(塘報哨官)185) 을 불러들여 귀를 잡고 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여서 몰래 깃발을 흔들도록 명하여 지레 안성으로 가게 하였다. 이는 대개 오명항이 처음 행군하여 과천(果川)에 이르러 기졸(旗卒) 방득규(方得規)가 정한(精悍)하여 부릴만한 것을 보고는 별무사(別武士)로 올리어 그의 환심을 사고 수원에 이르러 밀령(密令)으로 간첩을 만들어 청주의 적진에 투입시켜 적이 가는 방향을 탐지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방득규가 과연 적의 정세를 탐지하고, 또 소금 장수 차림을 한 적의 간첩을 잡아 바쳐 비로소 적이 진천(鎭川)에서부터 군사를 나누어 한 부대는 죽산(竹山)으로 향하고, 한 부대는 안성으로 향하여 민제장을 습격하여 죽이고자 함을 알게 되었다. 오명항이 이미 안성으로 향하기를 결심하고 남보다 앞서 빼앗는 계책을 쓰고서 그 모책의 비밀이 누설될까 염려해 발표하지 아니한 채 직산의 대로(大路)로 향한다고 소리쳐 말했던 것이었다. 소사(素沙)에 이르니, 정탐하는 자 4, 5명의 말 역시 서로 부합하는지라 중도에서 길을 바꾸었고, 이로 인해 승리를 얻었으니, 이는 하늘이 실로 도운 것이다. 안성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웠는데, 적의 간첩 최섭(崔涉)이란 자를 붙잡아 힐문해 적의 정세 및 적장(賊將)의 성명을 알아내고 주머니 안을 조사해 이봉상(李鳳祥)의 패영186) 을 찾아냈다. 잠시 후 앞산에 몇 개의 횃불이 먼 곳으로부터 가까이 오면서 포성(砲聲)과 함성이 계속해서 일어나더니 적병이 진을 침범했다고 후졸(候卒)이 급히 보고해 왔다. 이때 풍우가 크게 몰아치고 밤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장작불을 미처 피우지 못해 진 밖은 지척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먹지 못한 군마(軍馬)가 반이 넘어 뭇사람들의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으나 오명항이 굳게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단지 진오(陣伍)를 정돈한 채 경솔하게 포를 쏘지 말고 적이 가까이 오면 비로소 쏘도록 신칙하였다. 그리고 죽을 준비해 사졸들을 먹이고 평소처럼 코를 고니 진중이 거기에 힘입어 안정되었다. 이튿날 새벽 진 밖의 1백여 보 되는 곳에 적병의 인마(人馬)가 탄환에 맞아 죽고 버린 무기들이 보였다. 대개 적은 각처의 토적(土賊) 및 청주진(淸州鎭)·목천(木川) 등 고을의 마병(馬兵)과 금어군(禁禦軍)으로서 정예한 자를 뽑아 장사치와 거지 차림을 하여 피난민 가운데 섞여 은밀히 안성(安城) 청룡산(靑龍山) 속에 모여 있었는데도 산 아래 촌락이 거의 적의 소굴이 되어 있어 누구 하나 와서 고하는 자가 없어 안성군에서는 아직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적의 첩자가 번번이 관군에서 붙잡혔기 때문에 적도들도 단지 대군(大軍)이 직산(稷山)으로 향한 줄만 알았지 진을 안성으로 옮긴 줄은 모르고 어두운 가운데 안성군의 진(陣)인 줄 잘못 알았기 때문에 원근을 구별하지 못해 포(袍)와 화살을 어지러이 쏘았으나 다 미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군이 쏜 신기전(神機箭)을 보고서야 비로소 경영(京營)의 군사가 온 것을 알고 놀라고 겁에 질려 물러나 도망하니, 위협에 못이겨 따른 무리는 이때 대부분 도망해 흩어지고, 적의 괴수 이인좌(李麟佐)·박종원(朴宗元) 등은 4, 5초(哨)의 병력을 거느리고 청룡산 속으로 물러가 둔을 치고 죽산(竹山)의 군사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대군도 적이 둔을 친 곳을 알지 못하였다. 이날 아침에 교련관(敎鍊官) 권희학(權喜學)이 민제장(閔濟章)이 적의 첩자를 사로잡은 것을 보고는 곧 달래고 힐문해 비로소 적병이 산속 가지곡(加之谷) 대촌(大村) 속에 있는 것을 알았으니, 관군과 겨우 5리 남짓 떨어진 지점이었다. 오명항이 멀리서 그 지형을 바라보니, 청룡산 한 줄기가 수백 보(步) 정도로 길게 구부러져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상으로 3면을 둘러 안았는데, 5, 60호의 마을이 그 안에 자리해 있었으며 전면은 평야였다. 즉시 중군(中軍) 박찬신(朴纘新)으로 하여금 보군(步軍) 3초(哨)와 마군(馬軍) 1초를 나누어 거느리게 하고, 경계하기를,
"기(旗)를 눕히고 북소리를 내지 말며, 갑옷과 투구를 벗고 빨리 달려나가되 보군 1초는 산 뒤쪽을 거쳐 먼저 높고 험한 곳을 점거하고, 2초는 두 날개로 나누어 포를 쏘고 화전(火箭)을 쏘아 그 촌락을 불태우라. 그렇게 하면 그 형세로 보아 반드시 앞들로 도망해 나올 것이니, 이에 마군(馬軍)으로 짓밟으라."
하고, 또 민제만(閔濟萬)에게 명하기를,
"안성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 길로 향해 의병(疑兵)187) 을 만들어서 적의 도주로를 막으라."
하였는데, 전군(前軍)이 절제(節制)를 어기고 기를 세우고 북을 울리며 행군했으므로 적이 눈치채고 군기와 집물(什物)을 버리고 급히 산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붉은 일산(日傘)을 세워 백기(白旗)로 지휘하니, 관군이 지리(地利)를 잃어 올려다만 볼뿐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권희학이 한 촌 할미를 붙잡아 위협해 적장 한 사람이 마을 가운데 있음을 알고는 이만빈(李萬彬)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장사(將士)가 아닌가? 하찮은 적을 보고 겁을 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이만빈이 분연히 말하기를,
"내 마땅히 죽으리라."
하고는 말에 오르면서 용사를 구하기를,
"누가 나를 따르겠는가?"
하니, 중초군(中哨軍) 조태선(趙泰先) 등 50여 명이 따르기를 원했다. 마침내 앞장서 마을로 들어가는데 적장 박종원의 말이 사나와서 재갈을 물지 않으므로, 지체하고 도는 사이에 관군이 이미 핍박하였다. 박종원이 소리치기를,
"시간을 끌다가 목숨이 이에 이르게 되었구나."
하고는 칼을 뽑아들고 벗어나려 하였다. 조태선이 먼저 한 발을 쏘아 그 목을 맞히니, 박종원이 몇 걸음을 달려가다가 쓰러졌다. 이만빈이 말에서 내려 목을 베고 또 그의 군관 몇 사람을 베었다. 그리고 그 목을 깃대에 매달고 산 위로 달려가니 적이 바라보고 기운이 빠지고, 또 궁포(弓砲)가 모두 밤비에 젖어 쓸 수가 없으므로, 드디어 산꼭대기로 도망하여 올라갔는데, 그때 동북풍(東北風)이 세게 불고 적은 서남쪽에 있어 관군이 바람을 타고 힘을 분발해 올라가니, 적은 산등성이를 따라 남쪽으로 도망하려다가 민제만의 의병(疑兵)을 보고는 다시 돌아 서쪽으로 가니 형세가 더욱 위축되어 기와 북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관군이 추격해 1백여 명을 베었으며, 마병 임필위(林必偉)란 자는 적 1명을 사로잡아 겨드랑이에 끼고 달리니, 보는 자들이 장하게 여겼다. 그들의 짐바리와 홍산(紅傘)·기치(旗幟) 등을 노획했다. 처음에 관군이 올려다보며 적을 공격하여, 적은 산 위에서 진퇴(進退)하며 유인하는 형상을 짓기도 했는데, 적과 관군이 모두 군사를 거두어 산을 내려온 후에는 막연하여 그 승부를 알 수가 없었다. 종사관(從事官) 등이 해상(垓上)에 올라가 바라보고는 관군이 적에게 함몰되는가 싶어 매우 초조해 하니, 오명항이 웃으며 말하기를,
"적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였는데, 정오가 채 못되어 말을 달려 승첩을 알려 왔고, 포시(晡時)188) 에 박찬신(朴纘新)이 고각(鼓角)을 울리며 깃대에다 적의 머리 여러 개를 매달고 오니, 군중에서 승전곡(勝戰曲)을 울리고 군사와 말이 기뻐 날뛰었다. 첩서(捷書)를 써서 박종원 등의 머리를 함에 담아 군관 신만(申漫)에게 주어 서울로 치보(馳報)하였다. 이때 조정에서 상하가 밤낮으로 초조하게 걱정하며 첩보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날 동북풍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모두 말하기를,
"왕의 군대에 이롭다."
했는데, 과연 크게 이겼던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4면
- 【분류】군사(軍事) / 변란(變亂)
- [註 185]당보 초관(塘報哨官) : 척후(斥候)하는 초관(哨官). 초관은 군사 1초(哨)를 거느리는 종9품 무관(武官). 적을 척후하는 군사가 기를 가지고 높은 곳에 올라가 적의 동향을 살펴 진(陣)에 신호하는 것을 당보라 함.
- [註 186]
패영 : 산호·호박·밀화(密花)·대모·수정 따위로 만든 무늬와 광택이 나는 갓끈.- [註 187]
의병(疑兵) : 군사가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서 적을 의혹시키는 것. 또는 그런 역할을 하는 군사.- [註 188]
포시(晡時) : 오후 3시부터 4시 사이.○先是, 都巡撫使吳命恒在振威, 與從事等, 議進兵各陳利害。 命恒但言: "試進稷山, 更議未晩。" 遂進軍到素沙, 午飯訖, 前軍已就稷山路。 命恒忽倚馬, 呼兩從事, 附耳語令安城郡守閔濟章, 還本郡, 整待糧草, 而揚言運致稷山。 招入塘報哨官, 執耳近前發暗令麾旗, 徑趨安城。 蓋命恒, 始行軍到果川, 見旗卒方得規精悍, 可使陞別武士, 結其歡心, 至水原, 密令作問諜, 投淸州賊陣, 探賊路所向。 得規果探賊情, 又捉納賊諜作鹽商樣者, 始知賊自鎭川, 分兵, 一枝向竹山, 一枝向安城, 欲襲殺閔濟章。 命恒已決意向安城, 爲先人奪人之計, 而慮謀洩秘, 不發聲言向稷山大路。 及到素沙, 偵者四五輩, 言亦相符, 中道改路, 因此得雋, 天實相之也。 抵安城, 日已昏, 獲賊諜崔涉者, 詰問賊情及賊將姓名, 探囊中得李鳳祥貝纓。 俄而, 前山數三炬火, 自遠而近, 砲喊繼起, 候卒急報賊兵犯陣。 時, 風雨大作, 夜黑如漆, 柴燃未設, 陣外一步地, 不可辨。 軍馬不食者過半, 衆心頗遑遑, 命恒堅臥不動, 只令整勅陣伍, 勿輕放砲丸, 賊近始發。 設粥饋士卒, 鼾睡如常, 陣中賴安。 翌曉見陣外百餘步, 有賊兵人馬中丸死者、器械棄委者。 蓋賊抄出各處土賊及淸鎭、木川等邑馬兵、禁御軍精銳, 作商賈乞兒行客樣, 雜於避亂人中, 潛聚於安城 靑龍山中, 而山下村落, 多是賊藪, 無一人來告者, 安城郡未之覺, 賊之細作, 輒爲官軍所獲, 故賊亦只知大軍之向稷山, 不知移陣安城, 昏霧中錯認爲安城郡陣, 不辨遠近, 亂放炮射矢丸, 皆不能及。 忽見大軍放神機箭, 始知京營兵來, 驚怯退走, 脅從之類, 太半逃散, 賊魁麟佐、宗元等, 以四五哨兵, 退屯靑龍山中, 以待竹山兵至, 而大軍不知賊所屯處。 是日朝, 敎鍊官權喜學, 見閔濟章獲賊諜, 乃誘引詰問, 始知賊兵在山中加之谷 大村中, 距官軍僅五里許。 命恒遙見其地形, 靑龍山一枝, 逶迤數百步, 如臥牛形, 三面回抱, 五六十村戶在其中, 前面平野。 卽令中軍朴纉新分領步軍三哨, 馬軍一哨, 戒曰: "偃旗息皷, 捲甲疾趨, 步軍一哨, 則由山後先據高險, 二哨則分作兩翼, 放砲射以火箭, 燒其村閭, 則其勢必走出前野, 乃以馬軍蹴之。" 且令閔濟萬, 率安城軍向南路, 爲疑兵以遏賊走路。 前軍違節制, 建旗鳴皷而行, 賊覺之, 棄軍器什物, 急上山結陣, 建紅傘以白旗指揮, 官軍失地利, 仰見不敢逼。 權喜學得一村嫗, 威脅知賊將一人, 在村中, 謂李萬彬曰: "君非壯士耶? 見小賊怯, 何也?" 萬彬慨然曰: "吾當死之。" 躍馬賈勇曰: "誰能從我者?" 中哨軍趙泰先等, 五十餘人, 願從。 遂先登入村中, 賊將宗元馬悍不受銜, 方遲回, 官軍已迫。 宗元呼曰: "欲延晷刻, 命至此耳。" 拔劍欲出。 泰先先發一丸, 中其頸, 宗元趨數步而仆。 萬彬下馬斬之, 又斬其軍官數人。 懸首旗竿, 皷譟而馳山上, 賊望見奪氣, 且弓砲皆沾夜雨, 不可用, 遂走上山頂, 時, 東北風急, 賊在西南, 官軍乘風奮力而上, 賊從山脊, 欲南走, 望見濟萬疑兵, 復捲而西, 勢益縮, 棄旗皷四潰。 官軍追斬百餘人, 馬兵林必偉者, 生擒一賊, 腋挾而馳, 見者壯之。 獲其輜重紅傘、旗幟初, 官軍仰攻賊, 而賊在山上, 進退有誘引狀, 及賊與官軍, 俱捲下山後, 則邈然不知勝否。 從事等從垓上望見, 慮官軍陷賊, 計甚焦憂, 命恒笑曰: "賊無能爲矣。" 日未午, 飛馬報捷, 晡時, 纉新鳴皷角, 旗上纍纍懸賊首而來, 軍中奏勝戰曲, 士馬欣躍。 修捷書, 亟宗元等首級, 授軍官申漫, 馳報京師。 時, 朝廷上下, 日夜焦憂, 以待捷音, 是日, 見東北風起, 皆言利在王師, 果大捷。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4면
- 【분류】군사(軍事) / 변란(變亂)
- [註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