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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7권, 경종 2년 4월 13일 丁卯 3번째기사 1722년 청 강희(康熙) 61년

김용택의 공초

역적(逆賊) 김용택(金龍澤)이 물고(物故)되었다. 잡혀온 초기에 목호룡(睦虎龍)의 초사(招辭)를 점출(拈出)하여 국문(鞫問)하니, 공초(供招)하기를,

"제가 백망(白望)을 알게 된 것은 목호룡백망과 친한 때문이었고, 백망목호룡과 서로 친하게 된 이유는 그가 여항(閭巷)에서 시문(詩文)을 잘하고 감여술(堪輿術)을 이해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인중(鄭麟重)·이희지(李喜之)·이천기(李天紀) 등은 모두 백망·목호룡과 서로 친하게 지냈는데, 신수(身手)가 좋고 용력(勇力)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술잔을 돌리며 술을 마셨다 하나 이것은 보통 일이요, 사생(死生)을 맹약(盟約)했다는 것은 허망(虛罔)한 말입니다. ‘세상에 유비(劉備)가 없다.’고 한 것은 더욱 망령되고 패리(悖理)하며 무상(無狀)한 말이고, ‘충(忠)’자를 손바닥에 쓴 것은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른바 ‘급수(急手)’ 및 ‘5백 냥으로 약(藥)을 산다.’는 말은 목호룡의 참독(慘毒)하고 음험(陰險)한 말로서, 이천기가 스스로 마땅히 앙대(仰對)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목호룡의 말에 제가 몰래 백가(白哥)와 결탁하여 많은 은화(銀貨)를 뇌물로 주어 역적질을 도모했다고 하였는데, 아! 통탄스럽습니다. 또 ‘이 일은 우리 무리들이 만 번 죽더라도 한 번 살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데서 나왔다.’고 한 것 또한 목호룡의 망령된 말입니다. 홍의인(洪義人)이천기와 이웃에 살았던 것은 곧 사실이나, ‘여러 가지로 아첨하였다.’는 것은 그 정분이 친밀하였기 때문이지 아첨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매화점(梅花點)’이란 말은 친구들 사이에서 홍의인이 정분이 다소 소원했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보검을 백망에게 주었다는 것은 말안장에 걸어두는 피초(皮鞘)163) 의 보통 칼이었습니다."

하고, 그 나머지 여러 말도 모두 허망하게 얽어 무고(誣告)한 것으로 돌렸다. 국청(鞫廳)에서 김용택의 초사(招辭)가 서로 어긋난다 하여 다시 목호룡을 추문(推問)하니, 목호룡이 대답하기를,

"김용택은 곧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자제(子弟)이고, 백망은 곧 여항(閭巷)의 하천(下賤)이니, 지분(地分)이 저절로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김용택정인중으로 하여금 나귀를 보내어 맞이하게 하고는 손을 잡으며 서로 기뻐하였으며, 말은 너나들이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몰래 은밀한 방으로 들어가 흉언(凶言)·패담(悖談)이 이르지 아니한 바 없었으며, 언제나 ‘우리들의 일이 만약 노출(露出)된다면 남아(男兒)가 한 번 죽는 것은 진실로 보통 일이니, 비록 백 번 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입을 다물고 혀를 깨물어 승복(承服)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맹약(盟約)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이른바, ‘백망이 힘을 다하겠다.’고 한 것은, 만약 힘을 다하는 것으로 서로 허여(許與)하지 않는다면 한 번 만나본 날에 어찌 멸족(滅族)이 될 수 있는 밀담(密談)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유비(劉備)’란 말에 이르러서는, 백가(白哥)는 지극히 간교하고 흉악하여 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의심하는 사람이므로, 혹 김용택의 무리가 하는 일이 뜻이 오왕(吾王)의 자손에게 있지 아니하고 이이명(李頤命)을 추대(推戴)할까 의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비(劉備)를 물었던 것은 곧 그의 의심이었고, ‘양(養)’자를 썼던 것은 이이명(李頤命)의 자(字)가 양숙(養叔)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용택의 무리는 애초에 저에게 장사(壯士)를 구하기는 하였지만 저의 성(姓)이 목(睦)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그 성은 생각을 되풀이해 보아도 깊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에 글자를 썼다는 것을 들은 뒤로는 감히 은휘(隱諱)하지 못하고, 대략 그 하는 일들을 저에게 알렸으니, ‘유비’ 및 ‘손바닥의 글자’에 관한 말은 아주 명백하고, 이른바 ‘소급수(小急手)·대급수(大急手)·평지수(平地手)·봉객(縫客)’ 등의 말은 적배(賊輩)들이 날마다 서로 입으로 전하여 외던 말입니다.

김용택은 흉악하고 강퍅하며 좁고 준혹(峻酷)한 성질로 한평생 동안 원하는 것은 나라를 도모하고 종사(宗社)를 뒤엎어 그 아내를 위해 사사로운 원수를 갚는 것이었는데, 그 아내는 곧 이사명(李師命)의 딸이었습니다. 여러 적들이 둘러앉아 모의할 즈음에는 그 아내가 반드시 창구멍으로 이를 보고는 그 말을 참견해 들었는데, 김용택은 언제나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처(妻)는 여자 중에서 영웅(英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가(白哥)를 몹시 신임하여 반드시 그 힘을 얻기를 기약하였으나, 이기지·이천기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였습니다. 그래서 김용택이 언제나 소매를 떨치며 꾸짖기를, ‘사력(死力)을 다할 자를 얻었으면 단지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마땅할 뿐이다. 계원(啓元)의 무리는 사람을 너무 깊이 의심하니, 대사(大事)를 이루기가 어렵다." 하였는데, 계원(啓元)은 곧 이천기의 자(字)입니다. 김용택은 언제나 지위가 정승(政丞)에 이를 것이라고 자부(自負)하고, 백망에게는 양계(兩界)의 병사(兵使) 및 총융사(摠戎使)를 허락하였는데, 홍의인이 곁에서 마음속으로는 그 말을 비웃었지만 입으로는 거짓말로 칭찬하기를, ‘구야(久也)의 영웅(英雄)스런 자질은 비록 양국(兩局)의 대장(大將)이라도 좋을 것이니, 양계(兩界)의 병사를 어찌 족히 말하겠는가?’ 하였으니, 구야(久也)란 곧 백망의 자가 자구(子久)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른바, ‘만 번 죽더라도 한 번 살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데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은 매화점(梅花點)이란 말과 일관된 일입니다. 홍의인이란 자는 스스로 공명(功名)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여 이천기(李天紀)를 통해 그 가운데 들어가 은밀한 일을 모의하는 데 참여하였는데, 김용택은 성질이 본래 성급하고 편협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크게 화를 내며, ‘우리들이 만 번 죽더라도 한 번 살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이런 좋은 일을 만들어 내었는데, 저 홍(洪)은 어떠한 사람이길래 이미 아무 공로(功勞)도 없으면서 감히 들어와 매화점(梅花點)이 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매화점이란 매화 다섯 점 가운데 또 중앙의 점이 있으므로, 홍의인은 중앙에 더 찍은 점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 무리 다섯 사람 가운데에 홍의인을 들이는 것을 꺼림칙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른바 보검(寶劒)이란 은(銀)으로 장식한 단검(短劒)이었는데, 그 길이가 두 자로서 그 날카로움은 보물이 될 만하였습니다. 그래서 몰래 백망에게 주어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삼게 했던 것인데, 제가 그것이 백망의 방 안에 걸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백망이 또 보도(寶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길이는 바느질 자[尺] 한 자의 길이였고, 그 너비는 검(劒)과 같았으며, 가시나무[加時木]로 자루를 만들었고 은으로 목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절의정충(節義精忠)’이란 네 글자를 새겼는데, 또한 한 자루의 보도(寶刀)였습니다. 언제나 이 두 가지 물건을 그 장수(長手)로 삼았는데, 적배(賊輩)들이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독약(毒藥)을 쓰는 일을 비록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야(久也)가 대급수(大急手)에 있으니, 아주 손쉽게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할 때마다 반드시 ‘구야(久也)’라고 일컬으며 높였으니, 마치 연단(燕丹)164)형가(荊軻)를 기르듯 하였습니다. 그 사이의 정절(情節)이 이처럼 밝은데, 그가 어찌 감히 은휘(隱諱)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이것을 가지고 다시 김용택을 추문(推問)하였는데, 그 공초(供招)는 또 전적으로 목호룡이 구무(構誣)한 데로 돌리고, 그 말단에 이르기를,

"매화점(梅花點)이란 말은 친구들끼리 시(詩)를 짓고 술을 마실 즈음에 우연히 농담한 말입니다. 책과 칼을 서로 주는 것 또한 시인(詩人)의 일입니다……."

하였다. 국청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

"김용택이 반은 털어놓고 반은 숨겨 말이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청컨대 목호룡과 면질(面質)시키도록 하소서."

하였다. 목호룡김용택에게 말하기를,

"숙휴(叔睢)165) 가 그대의 나귀를 보내 백망을 데려가지 않았는가?"

하니, 김용택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손 바닥에 ‘양(養)’자를 쓰지 않았는가?"

하니, 김용택이 말하기를,

"서로 모일 때에는 사대부(士大夫)나 중서(中庶)·하천(下賤)을 물론하고 오로지 충절(忠節)을 귀하게 여긴다. 평소의 뜻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그날도 손바닥에 과연 ‘충(忠)’자를 썼다. 그때 백망이 자리에 있기는 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쓴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나와 그대가 사복(士復)166) 그리고 백망과 더불어 같이 앉아 있었을 때 그대가 창 아래에서 촛불을 켜자, 사복(士復)이 조서(詔書)의 초본(草本)을 꺼내 읽었는데 그대는 나와 더불어 같이 보았고 사안(士安)167) 또한 왔으니 미처 보지 못하였다."

하니, 말하기를,

"무상(無狀)하고 맹랑한 말이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그대가 안국동(安國洞)에 갔을 때 언문(諺文)으로 된 가사(歌詞)를 사복으로 하여금 짓게 하고, 나를 시켜 백망에게 전해 주어 베껴서 대내(大內)로 들여보내게 하였는데, 초본은 다시 너에게 도로 전해 주었다. 어찌 감히 은휘(隱諱)하는가?"

하니, 말하기를,

"이 가사는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그대가 벽장에서 은(銀)을 꺼내며 ‘안주감이다.’고 한 것을 또한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때 ‘이것은 조흡(趙洽)의 은이다.’ 하였는데, 백망이 치부(置簿)한 것이 아직도 있다."

하니, 말하기를,

"원래 그런 일이 없었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그대가 나와 조흡의 집에 가자, 조흡이 자리에서 벗어나 다락 안에 있던 은 4백 냥을 가져다 주었다."

하니, 말하기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는 어머니를 모시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어찌하여 고변(告變)할 필요가 있는가?"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나는 부득이하였다. 이른바 ‘대급수(大急手)·소급수(小急手)’란 말은 단지 6, 7명이나, 지금 외영(外影)으로서 폐립(廢立)의 모의를 미리 알고 있는 자가 매우 많다."

하니, 말하기를,

"급수(急手) 등의 말은 지금 처음 듣는 것이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외영(外影)도 또한 너의 말이다. 김진상(金鎭商)·홍용조(洪龍祚) 등은 항상 외영(外影)이라 일컬었는데, 대개 다만 그 모의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니, 말하기를,

"창졸간에 지어낸 허언(虛言)이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너는 항상 ‘나에게 남보다 뛰어난 일이 있고 처(妻)도 또한 남보다 뛰어난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도 허연(虛言)인가?"

하니, 말하기를,

"이 말은 옳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데리고 안사랑으로 들어가 도배를 했을 때 ‘여자 가운데 영웅이다.’고 자랑하지 않았느냐?"

하니, 말하기를,

"내가 흡호(恰好)168) 라고 말하였으나, 그 나머지는 세월이 오래 되어 기억하지 못하겠다. 처(妻)를 자랑하는 일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 하는 이야기이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계원(啓元)·숙휴(叔睢)와 그대가 나와 같이 앉아 있었을 때 그대가 말하기를, ‘저 홍(洪)은 은(銀)을 낸 일도 없는데, 어찌하여 매화점(梅花點)이 되는가?’라고 하였다."

하니, 말하기를,

"우리 무리들이 시(詩)를 짓고 술을 마시며 서로 모였을 때 홍의인(洪義人)이 자못 차지(差池)169) 하였으므로 매화점이라 이른 것이니, 자못 시인의 운치가 있어 《세설신어(世說新語)》170) 에 들어갈 만한 것이다. 그 사랑방 벽에 걸어두었던 초도(鞘刀)는 너와 백망이 모두 달라고 하였는데, 네가 광양(光陽)으로 갔을 때 백망해서(海西)에 갔다가 돌아와 청하므로 과연 백망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가 항상 노여운 뜻을 품고 있었다."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그 칼은 일찍이 너의 집에서는 보지 못하였고 백망의 집에서 한 번 보았다. 내가 ‘이것이 네가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할 칼인가?’ 하자, 백망이 ‘덕우(德雨)171) 가 준 것인데, 내 칼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하니, 김용택(金龍澤)이 말하기를,

"약(藥)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좋은가? 누가 사왔는가?"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은 5백 냥을 가지고 산 일을 어찌 잊겠는가?"

하니, 말하기를,

"그 약은 어떤 행창(行次)에 어떤 역관(譯官)이 사왔는가?"

하였다. 목호룡이 말하기를,

"그 약은 행차란 말은 많은 말로 변명(辨明)할 것도 못된다. 다만 약을 사는 일로 은을 준 것이 사실이 아니냐?"

하고, 또 말하기를,

"너는 아주 긴급한 일이라며 나를 오라고 청하였는데, 너는 기억하느냐?"

하니, 말하기를,

"이는 인가(人家)의 서척(書尺) 사이에 으레 하는 말인데, 세월이 오래 되어 기억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국청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

"김용택목호룡과 면질하였을 때 손바닥에 ‘충(忠)’자를 쓴 것과 단검(短劒)을 내어준 일을 지만(遲晩)하며 ‘피초(皮鞘)의 보통칼’이라 하였습니다. 이른바 단검이란 포도청(捕盜廳)에서 수색하여 바친 것으로서 목호룡에게 물어보았더니, 과연 전날에 보았던 것이라 하였으며, 곧 장물(贓物)이었습니다."

하고, 드디어 엄하게 형신(刑訊)할 것을 청하였다. 다시 추문(推問)하는 문목(問目)에 이르기를,

"만 번 죽더라도 한 번 살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힘을 내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흉참(凶慘)한 것인가? 그런데도 목호룡의 망령된 말이라고 핑계대었다. ‘대급수(大急手)·소급수(小急手)·평지수(平地手)’란 세 건(件)의 은어(隱語)를 범연(泛然)하게 목호룡 무리의 구기(口氣)에 돌렸으니, 비록 스스로 만들어낸 바는 아니라 하더라도 평상시에 익히 들어 이야기한 정상을 또한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이른바 ‘지 상궁(池尙宮)과 교통(交通)하여 뇌물을 준 일은 과연 귀로 들은 것이 있으며, 소급수(小急手)라는 일뿐만 아니라 또한 내간(內間)에서 주선한 일이 많았는데, 목호룡 무리가 주장하였으므로, 저 또한 들어 알게 된 바가 있었습니다.’ 하였는데, 이미 직고(直告)한 뒤에도 오히려 죄다 털어 놓지 아니하니, 더욱 지극히 절통(絶痛)하다……."

하였다. 형문(刑問)이 제3차에 이르러 위차(威次)를 베푸니, 공초(供招)하기를,

"지 상궁을 통하여 독약(毒藥)을 쓰는 것이 곧 소급수(小急手)이며, 이른바 내간(內間)에서 주선하는 일은 지 상궁 및 그 밖의 홍수(紅袖)172) 와 체결(締結)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국청에서 정인중(鄭麟重)의 초사(招辭)에 반문(盤問)할 단서가 있다 하여 형신을 정지했다가, 다시 추문할 때 정인중의 초사 가운데, ‘이천기(李天紀)·김용택(金龍澤)이 은을 내어 내폐(內嬖)173) 에 두루 썼다.’는 말과 심상길(沈尙吉)목호룡과 면질하였을 때의 초사 가운데, ‘은 50냥과 은 1백 냥을 이천기 등에게 보냈다.’는 말로 문목(問目)을 내었는데, 그 공초(供招)에 이르기를,

"저와 이천기가 대궐 안의 동정(動靜)을 알고자 하여 과연 물어서 안 일이 있습니다. 그 탐지(探知)하는 길은 목호룡·백망의 두 길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궁녀(宮女)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이를 인연으로 하여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은 지 상궁이 가장 착실하였습니다. 백망의 집에서 수색해 낸 은전(銀錢)은 비록 아무아무가 몇 냥을 냈는지 알지 못하나, 요컨대 각 사람 등에게서 거두어 모은 것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하였다. 형문(刑問)이 제7차에 이르러 위차(威次)를 베풀자, 바른 대로 공초(供招)하였는데, 다만 말하기를,

"전후 문목(問目) 안의 사연(辭緣)을 일일이 지만(遲晩)하였습니다."

하였고, 미처 결안(結案)하기 전에 경폐(徑斃)174)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20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註 163]
    피초(皮鞘) : 가죽으로된 칼집.
  • [註 164]
    연단(燕丹) : 연(燕)나라 태자(太子) 단(丹).
  • [註 165]
    숙휴(叔睢) : 정인중(鄭麟重)의 자(字).
  • [註 166]
    사복(士復) : 이희지(李喜之)의 자(字).
  • [註 167]
    사안(士安) : 이기지(李器之)의 자(字).
  • [註 168]
    흡호(恰好) : 꼭 알맞음.
  • [註 169]
    차지(差池) : 고르지 아니하여 차이가 남.
  • [註 170]
    《세설신어(世說新語)》 : 책 이름.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이 찬솔하고 양(梁)나라 유효표(劉孝標)가 주석하였음.
  • [註 171]
    덕우(德雨) : 김용택(金龍澤)의 자(字).
  • [註 172]
    홍수(紅袖) : 궁녀.
  • [註 173]
    내폐(內嬖) : 임금의 총애를 받는 여인.
  • [註 174]
    경폐(徑斃) :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죽음.

○逆龍澤物故。 被拿初, 拈虎龍招以鞫之, 供曰: "身之知白望, 因虎龍所親故也, 與虎龍相親之由, 以其閭巷間善詩文, 解堪輿也。 麟重喜之天紀等, 皆與虎龍相親, 好身手有勇力。 身未嘗見與此兩人, 酌酒以飮, 此是常事, 盟結死生云者, 虛罔言也。 世無劉備云者, 尤是妄悖無狀之言也。 忠字之書掌, 偶然事也。 所謂急手及五百兩貿藥之說, 虎龍慘毒陰險之言, 天紀自當仰對。 虎龍之言曰: ‘身暗結白哥, 多賂銀貨, 仍以賊事爲謀’ 云者, 噫嘻痛矣! 且此事, 吾輩出萬死不顧一生云者, 亦虎龍之妄語。 義人天紀接隣, 乃是實事, 多般諂媚云者, 以其情親故也, 非欲媚也。 梅花點之說, 儕友間, 義人情分少疎故也。 給寶劍於白望者, 馬鞍所掛皮鞘常刀也。" 其餘諸說, 皆歸之虛妄, 構誣。 鞫廳以龍澤招辭相左, 更推虎龍, 虎龍對曰: "龍澤, 乃是士夫家子弟, 白望乃是閭巷下賤也。 地分自別, 而龍澤麟重送驢要之, 握手相歡, 語及爾汝。 飮酒之際, 必暗入隱密之房中, 凶言、悖談, 無所不至, 而每曰: ‘吾輩事, 若露出, 則男兒一死, 固其常也。 雖至百死, 必含口咋舌, 勿爲承服’ 云。 此非盟約耶? 所謂白望之竭力云者, 若不以竭力相許, 則一見之日, 豈以滅族深言相吐耶? 至於劉備之說, 白哥以巧惡窮凶之人, 疑人太深, 或疑龍澤輩所爲之事, 意不在於吾王之子孫, 以李頤命爲推戴, 故問劉備者, 卽其疑心也, 書養字者, 卽頤命之字爲養叔故也。 龍澤輩, 初雖求壯士於身, 以身姓之故, 每曰: ‘顧其姓顧其姓, 不許深入矣。’ 一自聞掌中字之後, 不敢隱諱, 略以其所爲之事, 聞之於身, 則劉備及掌中字之說, 班班明白。 所謂小急手、大急手、平地手、縫客等說, 賊輩日日傳誦之言。 龍澤以凶愎隘峻之性, 一生所願, 謀國覆宗, 爲其婦報私讎也。 其婦, 卽李師命之女也。 諸賊圍坐謀議之際, 其妻必穴窓見之, 參聞其說。 龍澤每自誇曰: ‘吾妻, 女中英雄’ 云, 而酷信白哥, 必以得力爲期, 器之天紀, 則將信將疑。 龍澤每奮袂叱之曰: ‘得人之死力者, 但當專責而已。 啓元輩, 疑人太深, 大事難成。’ 啓元, 卽天紀之字也。 龍澤每以位至政丞自居, 許白望以兩界兵使及摠戎使, 而洪義人在傍, 心笑其言, 口佯贊之曰: ‘以也之英雄, 雖兩局大將可也, 兩界兵使, 何足道也?’ 也, 卽白望之字子久故也。 所謂出萬死不顧一生云者, 與梅花點語, 一串事也。 洪義人者, 自謂功名機會, 因李天紀入於其中, 參謀隱密之事, 龍澤性本狷狹, 每大怒曰: ‘吾輩出萬死不顧一生, 做得此好事, 而彼何人, 旣無功勞, 敢入爲梅花點耶?’ 蓋梅花點者, 畫梅五點中, 又有中點, 故以義人爲中央加點也。 以其渠輩五人中, 入一義人爲嫌之事也。 所謂寶劍者, 銀粧飾短劍也。 其長爲二尺, 其利則爲寶, 故暗給白望, 以爲行凶之具, 而身目見其掛在於白望房中。 又有寶刀, 其長爲針尺一長, 其廣如劍, 以加時木爲柄, 以銀爲項, 刻節義精忠四字, 亦一寶刀也。 每以此兩物, 爲其長手, 賊輩信之不疑曰: ‘行藥之事, 雖不成, 也在大急手, 則唾手可成。’ 言必稱也, 尊之若燕丹之養荊軻也。 其間情節, 如是昭昭, 渠何敢隱諱也?" 鞫廳, 以此更推龍澤, 其供, 又專歸虎龍於構誣, 而末端有曰: "梅花點之說, 親朋詩酒之際, 偶然弄着語。 書劍相贈, 亦是詩人之事。" 云云。 鞫廳議啓曰: "龍澤半吐半呑, 語不成說。 請與虎龍面質。" 虎龍龍澤曰: "叔睢送君之驢, 率去白望非乎?" 龍澤曰: "是矣。" 虎龍曰: "掌中書養字非乎?" 龍澤曰: "相會時, 勿論士夫、中庶、下賤, 唯以忠節爲貴。 常時之意如此, 故其日掌中, 果書忠字。 其時白望在座, 而不記他人之所書矣。" 虎龍曰: "吾及君與士復白望同坐時, 君坐窓下明燭, 士復出詔草讀之, 君與我同見之, 士安亦來, 而未及見之矣。" 曰: "無狀孟浪。" 虎龍曰: "君往安國洞時, 諺文歌詞, 令士復作之, 使我傳於白望, 謄入大內, 而本草則還推傳于汝。 何敢隱諱乎?" 曰: "此歌詞《關東別曲》乎? 我則不記矣。" 虎龍曰: "君自壁藏出銀曰: ‘安酒次’ 云者, 亦不記乎? 其時云: ‘此乃趙洽之銀也。’ 之置簿尙存矣。" 曰: "元無。" 虎龍曰: "君與我往趙洽家, 則脫身取樓中銀四百兩以給矣。" 曰: "不記。 汝率母安居, 何必告變乎?" 虎龍曰: "余不得已也。 所謂大、小急手之說, 只六七人, 卽今外影預知廢立之謀者甚多。" 曰: "急手等語, 今始聞之。" 虎龍曰: "外影, 亦汝言也。 金鎭商洪龍祚等, 常稱外影, 蓋但知其謀者也。" 曰: "倉卒所作之虛言也。" 虎龍曰: "汝常言: ‘吾有過人之事, 妻亦有過人之事’ 云。 是虛言耶?" 曰: "此則是矣。" 虎龍曰: "汝率我入內舍廊塗褙時, 誇女中英雄之說, 非乎?" 曰: "吾以恰好爲言矣。 其餘年久不記。 誇妻事, 相親間說話也。" 虎龍曰: "啓元叔睢、君與我同坐時, 君曰: ‘彼無出銀之事, 而何爲梅花點耶?’" 曰: "吾輩詩酒相會時, 義人頗差池, 故謂之梅花點, 頗有騷致, 可入《世說》矣。 其鞘刀掛在舍廊之壁, 汝與皆求之, 而汝去光陽時, 也往海西來請, 故果給也。 汝恒懷慍意矣。" 虎龍曰: "其刀曾不見於汝家, 而一見於家。 吾曰: ‘此汝行凶之刀乎?’ 曰: ‘德雨之贈, 而不及吾刀。’ 云矣。" 龍澤曰: "藥談爲之可乎? 誰買而來?" 虎龍曰: "以銀五百兩買得之事, 豈忘之耶?" 曰: "其藥何行次何驛官買來?" 虎龍曰: "某行次之說, 不足多辨。 只以買藥事給銀者非乎?" 又曰: "汝以緊緊事, 請我以來, 汝記之乎?" 曰: "此則人家書尺間例談, 而年久不記也。" 鞫廳議啓曰: "龍澤虎龍面質時, 掌書忠字, 出給短劍事, 遲晩以爲, 皮鞘常刀云。 所謂短劍, 捕廳搜納, 問於虎龍, 果是前日所見云, 乃是贓物云云。" 遂請嚴刑。 其更推問目, 有曰: "出萬死不顧一生之力云者, 何等凶慘, 而諉之於虎龍之妄言。 大急手、小急手、平地手三件隱語, 泛然歸之於虎龍輩口氣。 雖非所自創出, 常時習聞說道之狀, 亦可推知。 所謂池尙宮處交通行貨之事, 果有耳聞, 而不但小急手事而已, 亦多內間周旋之事, 虎龍輩主張, 故身亦有所聞知。 旣已直告之後, 猶不盡吐, 尤極絶痛。" 云云。 刑問第三次, 施威次, 供曰: "因池尙宮行藥者, 乃是小急手, 而所謂內間周旋之事, 締結池尙宮及其他紅袖之云也。" 鞫廳以鄭麟重之招, 有盤問之端, 停刑更推時, 以麟重招辭中, 天紀龍澤聚銀內嬖行用之說, 及尙吉虎龍面質招中, 銀五十兩銀一百兩, 送于天紀等處之說, 發問目, 其供有曰: "身及天紀, 欲知闕內動靜, 果有問知之事。 若其探知之路, 則有兩路, 而此兩人結連宮女, 因緣作路, 其路則池尙宮最爲着實。 家所搜得銀錢, 雖未知某某人出幾許兩, 而要不過各人等處聚會之物。" 云云。 刑問第七次, 施威次直招, 但曰: "前後問目內辭緣, 一一遲晩。" 未及結案而徑斃。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207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