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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58권, 숙종 42년 8월 24일 辛亥 3번째기사 1716년 청 강희(康熙) 55년

시비가 끊이지 않는 윤선거 문집의 판본을 헐어버릴 것을 청한 김창집의 차자

좌의정(左議政) 김창집(金昌集)이 상차(上箚)하기를,

"요즈음 향유(鄕儒) 신구(申球)의 소(疏) 때문에 논의가 어지러워 시비가 정하여지지 않으니, 매우 불행합니다. 전하께서 명백히 처분하지 않으시면, 혼란하고 시끄러운 것을 진정시킬 수 없을 듯합니다. 윤선거(尹宣擧)의 간행된 문집은 신이 얻어 보지 못하였으나, 그 베껴 씌어 유행되는 것을 반복하여 살펴보았더니, 대개 윤선거가 처음 소명(召命)을 사양할 때에 그 스승인 선정신(先正臣) 김집(金集)의 지도에 따라 강도(江都)에서 죽지 않은 일을 인용하여 스스로 죄로 여겼으나, 늘 부끄럽고 분한 생각을 가졌으므로 적신(賊臣) 윤휴(尹鑴)가 헤아려 알고서 감히 오늘날은 기피할 바가 있다느니 강왕(康王)이 실로 군전(軍前)에 있었다느니 하는 따위 말로 윤선거를 종용하여, 마치 성조(聖祖)께서 강도에서 하신 일도 덕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할 바가 있으므로 윤선거가 스스로 폐고(廢錮)한 까닭은 성조께서 듣기 싫어하시는 것이 된다는 듯이 하였습니다. 윤휴가 역심(逆心)을 품고 대성인(大聖人)께서 의리를 지켜 최선을 다하신 데에 흠을 지적하여 그 흉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극진히 하였으니, 윤선거의 도리로서는 오직 성조께서 지적할 만한 흠이 없으므로 오늘날 기피할 단서가 없다는 뜻으로 말을 엄하게 하여 매우 배척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오직 늘 강도의 일이 마음에 언짢기 때문에 그 말을 기꺼이 듣고 함께 수작하여 혹 환난(患難)을 같이 당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 오늘날에 당하였으므로 감히 말할 수 있다고도 하였으니, 그가 이른바 ‘내 뜻과 어그러진다.’ 한 것은 강도의 일을 말하여야 한다는 것과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 것을 가리킨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적신 윤휴가 임금을 무함한 흉악한 말은 변명하여 배척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얼른 그 말을 받아들여 ‘성상께서 우충(愚衷)을 살펴서 오늘날의 두거(杜擧)로 삼게 하신다면 반드시 세교(世敎)에 보탬이 없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대저 두거란 두궤(杜簣)가 올린 잔이고 진평공(晋平公)이 벌을 받은 그릇인데, 무슨 그때의 일과 비슷한 것이 있기에 이말을 인용합니까? 이것은 대개 마음에는 엄폐된 것이 있고 사리에는 살피지 못한 것이 있어서 외람되게 성조를 끌어대어 자신에 견주어 글에 올리고 책상자에 감추어서 오래 전하여 보이기를 바란 것이니, 그 본심은 성조를 근거없이 헐뜯는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도 그 외람하고 경망한 죄는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나, 이것은 사사로이 간행한 글이고 윤선거가 죽은 지도 이미 오래 되었으니, 사우(士友) 사이에서 혹 보았더라도 그 사람만을 노려 쳐부수어야 할 뿐입니다. 이것이 어찌 국가에서 뒤미처 논할 만한 것이겠습니까마는, 신구(申球) 같은 괴귀(怪鬼)의 무리가 갑자기 성총(聖聰)에 아뢰어 윤선거가 뜻이 있어 근거없이 욕하였다 하니, 그 말이 이처럼 심각한 것은 그 말뜻이 성심(聖心)에 닿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명준(吳命峻)신구에 대항한 소에서는 도리어 윤선거의 이러한 글을 죄다 순전히 허물이 없는 처지로 돌렸으므로 매우 사리에 어두운 것을 알 수 있는데다가, ‘두거’ 두 자에는 따로 사실이 있어서 변명할 수 없으니, 윤선거의 소 가운데에 있는 ‘좌우에 두고 경계로 삼는 의기(欹器)’라는 말을 인용하여 뜻이 같다고 하였습니다. 소 가운데에 있는 기기라는 말은 대개 옛사람이 ‘거(莒)에 있었던 일을 잊지 말라.’는 뜻에 붙인 것이니, 두거 같은 벌을 받은 일이 어찌 이 일과 비슷한 것이 있겠습니까? 간사하게 속여서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알맞습니다.

엄경수(嚴慶遂)는 또 유자광(柳子光)을 인용하여 마치 사림(士林)의 화(禍)가 곧 일어날 것처럼 말하여 천청(天聽)을 공동(恐動)하고 뭇사람의 입을 협제(脅制)하려 하였으니, 어찌 그리 남을 무함하기에 급급하여 자신이 그 말을 답습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까? 경악(經幄) 사이에도 이러한 수단이 있는 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홍제(李弘躋) 등의 소는 곧 오명준과 하나로 관통하는 것인데,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을 함께 거론하여 조금도 꺼림없이 뜻대로 근거없이 욕하고, 도리어 《춘추(春秋)》의 큰 의리가 한 집안에 모였다 하여 윤선거 부자를 허여하였으니,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전일 오명윤(吳命尹)이 귀양갈 때에 현관(賢關)을 핑계삼기 때문에 신이 사체(事體)를 생각하여 차자(箚子)를 올려 도로 거두기를 청하였으나, 그 죄상을 논하면 마침내 너무 너그러운 잘못을 저질렀으니, 신은 공론이 엄준한 데에 대하여 스스로 해명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징계됨을 두려워 함이 없어서 선정을 헐뜯는 버릇을 더욱 키우니, 성상께서 호오(好惡)를 밝히고 인심을 바루는 도리로서는 매우 미워하고 매우 징계하지 않으셔서는 안되겠으나, 김연(金演)처럼 직분을 넘어서 일을 말하여 마치 절의를 세우는 듯이 하는 것은 우스워서 꾸짖을 만하지도 못합니다. 여러 신하의 소는 문득 신구를 죄주지 않는 것을 가리켜 성조(聖朝)의 과실이라 하나, 전후의 비답(批答)을 보건대, 성의(聖意)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러러 알겠습니다.

일찍이 을축년511) 에 향유(鄕儒) 이진안(李震顔)윤증(尹拯)의 글 가운데에 율곡(栗谷)은 참으로 입산(入山)한 잘못이 있다는 따위 말이 있기 때문에 상소하여 선현(先賢) 이이(李珥)가 무함당한 것을 변명하였으나, 전하께서는 그 도리에 어긋나고 격렬한 것을 미워하여 유벌(儒罰)을 주라고 명하셨는데, 선신(先臣)이 곧 연중(筵中)에서 아뢰기를, ‘윤증의 본정(本情)이 과연 선현을 모욕하려는 데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망발은 큽니다. 이진안은 이름하여 선현을 위하여 거짓을 변명한다고 하였으므로 죄주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니, 전하께서 곧 그 벌을 도로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이 윤선거의 망발은 윤증보다 더욱 크거니와, 선현을 위하여 거짓을 변명한 자도 죄줄 수 없는데, 더구나 이름하여 성조(聖祖)를 위하여 거짓을 변명한 자를 어찌 감히 죄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방자하게 견책하기를 청한 자는 또한 무엄하거니와, 저 엄경수 등은 장차 사화(士禍)가 일어날 것이라는 따위 말로 공동하고 협제하였으므로 대각(臺閣)의 신하들이 망설이고 움츠려서 처음부터 피혐(避嫌)하는 말이 대개 다 흐릿하고 구차하여 의 의리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신은 대단히 슬픕니다. 윤선거는 망발한 것이 있더라도 이미 백골이 된 사람이므로 이제 경솔히 논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성교(聖敎)와 같습니다마는, 그 망령된 글을 어찌 그 판본(板本)에 그대로 두어 후세에 전하게 하여도 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그 판본을 헐어 없애는 것은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처분한 뒤에 피차가 다투어 변명하는 소는 조사(朝士)·유생(儒生)을 물론하고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아서 어지러운 폐단을 끊는다면, 진정하는 도리에 맞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근래 신구의 소가 나와서 논의가 어지러우므로, 경(卿)이 혹 이 때문에 편안하지 않는 단서를 다시 일으킬까 염려하여 이처럼 차자로 아뢰었는데, 그 논열(論列)한 것이 매우 명백하다. 윤선거의 본집 가운데에 있는 글이 망령된 것이 심하나, 신구를 견책하기를 청한 글에 끝내 윤허하지 않은 것은 내 뜻이 바로 경의 차자의 말과 같기 때문이었다. 소두(疏頭) 이홍제는 정배(定配)하고 엄경수는 파직(罷職)하여 서용(敍用)하지 말며, 이어서 그 판본을 헐어 없애게 하여 시비를 밝히는 뜻을 보이고, 이제부터 이러한 다투어 변명하는 소는 일체 봉입하지 않는다면, 어지러운 폐단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니, 정원(政元)을 시켜 이대로 거행하게 하라."

하였다. 드디어 이홍제태인현(泰仁縣)에 정배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58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61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사상-유학(儒學) / 윤리(倫理)

○左議政金昌集上箚曰:

近以鄕儒申球之疏, 論議紛紜, 是非靡定, 不幸甚矣。 殿下若不明白處分, 則恐無以鎭紛囂。 尹宣擧刊行文集, 臣未得見, 而就其謄行者, 反覆考覽, 則蓋宣擧之初辭召命也, 因其師先正臣金集之指導, 乃引江都不死事, 自以爲罪, 而常有慙憤之意, 故賊揣知之, 乃敢以今日有所避忌, 康王實在軍前等語, 慫慂宣擧, 有若聖祖之於江都, 亦有慙德。 宣擧之所以自廢者, 爲聖祖所惡聞者, 然之包藏逆心, 指摘瑕釁於大聖人處義盡善之地, 極其凶悖。 在宣擧之道, 惟當以聖祖無可指之疵, 今日無避忌之端之意, 嚴辭痛斥之不暇, 而惟其每以江都事, 自歉於心, 故喜聞其言, 與之酬酢, 或曰同患難中人, 或曰當於今日, 故敢能言之, 其所謂與余意剌謬者, 不過指其江都, 當言與不當言之不相合而已。 賊誣上之凶言, 則不惟不爲辨斥, 乃反駸駸然入其說, 至曰聖上若察愚衷, 俾作今日之杜擧, 則未必無補於世敎。 夫杜擧者, 杜蕢所揚之觶, 平公受罰之器也。 有何彷彿於當日之事, 而引用此語耶? 此蓋心有所蔽, 理有不察, 猥援聖祖, 擬於其身, 登諸書牘, 藏之巾衍, 要以傳示久遠, 雖其本心, 非出於誣毁聖祖, 而其僭妄之罪, 惡得免乎? 雖然, 此係私刊文字, 而宣擧之歿, 又已久矣。 士友間雖或見之, 而只可覷破其人而已。 此何足爲朝家之所追論, 而如怪鬼之輩, 卒然登聞於聖聰, 乃以宣擧, 爲有意誣辱? 其語意之深刻, 有如此者, 直乎其言之不槪於聖心也。 吳命峻之疏, 反以宣擧此等文字, 盡歸於粹然無過之地, 可見其蔽惑之深, 而杜擧二字, 別有事實, 無以分疏, 則乃引宣擧疏中宥坐欹器之語, 而曰旨意一般。 竊詳疏中欹器之語, 蓋附於古人毋忘在之意也。 如杜擧受罰之事, 寧有近似於此者耶? 適見其詖遁不成說也。 至於嚴慶遂, 又引柳子光爲言, 有若士林之禍, 朝夕將發, 欲以恐動天聽, 脅制衆口, 何其急於陷人, 而不憚於身蹈其言耶? 不料經幄之間, 乃有如此手段也。 李弘躋等之疏, 則卽與命峻, 一串貫來, 而攙擧先正臣宋時烈, 恣意誣辱, 略無顧忌, 而反以《春秋》大義, 萃于一門, 許宣擧父子, 誠可寒心。 前日吳命尹之被竄也, 以其託名賢關, 臣顧惜事體, 箚請還寢, 而論其罪狀, 則終失之太寬。 臣於公議之嚴峻, 亦無以自解矣。 以故, 此輩無所懲畏, 益長其醜正之習。 在聖上明好惡正人心之道, 不可不深惡痛懲, 而如金演之越職言事, 有若立節者然, 可哂, 不足責也。 諸臣之疏, 輒以不罪申球, 指爲聖朝之失, 而伏見前後批敎, 仰認聖意之有在矣。 曾在乙丑年, 鄕儒李震顔, 以尹拯書中, 有栗谷眞有入山之失等語, 上章辨先賢李珥之誣。 殿下惡其乖激, 命施儒罰, 先臣卽陳達於筵中曰: "尹拯本情, 雖未知果出於侵侮先賢, 而其爲妄發則大矣。 震顔名曰爲先賢辨誣, 不可罪也。" 殿下, 卽命還收其罰。 今此宣擧之妄發, 比尤大矣, 爲先賢辨誣者, 猶不可罪。 況名曰爲聖祖辨誣者, 其敢罪之乎? 今之肆然請譴者, 其亦無嚴矣。 惟彼慶遂輩, 以士禍將作等語, 恐動脅持, 故臺閣諸臣, 逡巡畏縮, 初頭避辭, 率多糢糊苟且, 殆不成義理, 臣竊慨然。 尹宣擧雖有妄發, 旣骨之人, 今不可輕論, 誠有如聖敎者, 而第其謬妄文字, 豈容仍置其板, 俾傳於後世而莫之禁乎? 臣謂毁去其板, 有不可已也。 如是處分之後, 彼此爭辨之疏, 勿論朝士、儒生, 一切勿捧, 以絶紛紜之弊, 庶合於鎭定之道。

上答曰: "近來申球疏出, 而論議紛然。 卿慮或因此復惹不靖之端, 有此箚陳, 而其所論列, 極爲明白矣。 尹宣擧本集中文字, 謬妄則甚矣, 而請譴申球之章, 終不允從者, 予意正如卿之箚語故也。 疏頭李弘躋定配, 嚴慶遂罷職不敍, 仍命毁去其板, 以示明是非之意, 而自今以後, 此等爭辨之疏, 一切勿捧, 則可以杜紛紜之弊矣。 令政院, 依此擧行焉。" 遂配弘躋泰仁縣


  • 【태백산사고본】 66책 58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61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사상-유학(儒學)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