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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1권, 효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효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시책문(諡冊文)

삼가 생각건대 무덤 내부를 손질하는 일이 이미 완성되고 복토(復土)의 때가 곧 있게 되었으므로, 한 가지 대표적인 선(善)으로 요약하여 시호(諡號)를 지으니 이름을 높이는 책문(冊文)을 이에 진달하게 되었다. 일월같은 은휘(恩暉)를 그대로 그려내기 어려우니 그저 숭봉(崇奉)하는 정성만 펼 뿐이다.

삼가 생각건대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는 깊은 근심을 지니고 성덕(聖德)을 열어 아름다운 기운이 상서로움을 드러내었다. 우리의 세상이 중흥되었으므로 계력(季歷)태왕(太王)의 명을 받게 되었고064) 지극한 성품은 간격을 두지 않았으므로 동쪽 바닷가에 일월이 밝게 열리게 되었으며, 구가(謳歌)와 역수(曆數)가 귀의하니065) 사직(社稷)과 백성들의 주인이 되었다. 조심스럽고 정성스런 마음은 종묘의 제사를 공경스럽게 올렸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긴 세월 동안 문후(問候)를 정성스럽게 하였다.

정일(精一)의 훈계를 가슴에 새겨 행하면서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의 국그릇과 담장에 나타나 보이듯 늘 선왕을 사모하였으며, 수시로 백숙(伯叔)의 친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보옥을 두루 나누어 주었다. 긴 베개, 큰 이불을 형제와 함께 사용하였고, 예쁜 여자와 간사한 음악을 싫어하여 면류(冕旒) 아래에서 부정한 것은 멀리 내쫓았다. 수신(修身)·제가(齊家)의 도(道)를 닦은 것이 이미 흡족하니 다스림에 필요한 도구가 다 갖추어졌다. 날이 밝기도 전에 옷을 찾아서 잠자리에서 홑적삼을 주워들었고, 어진이를 생각하는 것은 목마른 이가 물을 찾듯 시골로 예폐(禮幣)를 달려가게 하였다. 마음은 삼대(三代) 이상의 나라를 이루려는 데 두었고 학문은 오경(五經)의 심오한 뜻을 강론하였다. 자신을 바루어 상대에 모범을 보였고 실상을 힘써 겉치레를 싫어하였다.

띠풀을 두르고 자신을 책망하니 시우(時雨)가 내려 벌레의 재해를 말끔히 씻어주었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니 해읍(海邑)에서 조개의 공상(供上)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곧은 말과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게 하는 북과 깃발을 설치하니 가언(嘉言)이 숨겨진 것이 없게 되었으며, 토양(土壤)을 헤아려 부세(賦稅)를 정하니 이는 인정(仁政)의 급선무였다.

사야(四野)에는 슬피 울부짖으며 떠도는 백성이 없게 되었고 삼면(三面)으로 짐승을 놓아주듯 가혹하게 다그치는 법망(法網)이 풀렸다. 따라서 살리기 좋아하는 덕이 애연히 넘쳐 흘러 집집마다 어진이가 많다는 태평 성대를 기대할 수 있었다. 글을 읽어 성덕(聖德)이 밝게 빛났어도 오히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였고, 무예를 드날려 큰 공을 이루니 신묘하여 견줄 데가 없었다. 우림군(羽林軍)을 잘 보살피고 사랑하여 건원(建元)066) 의 제도를 수명(修明)했으며, 신책군(神策軍)의 장수에는 산서(山西)의 양장(良將)들이 출입하였다.

백성들의 마음이 그대로 성벽(城壁)을 이루었으니 용맹한 군사를 동원하여 지킬 필요가 뭐 있겠는가. 태평스런 조짐이 보이니 만복(萬福)이 몰려 올 것을 알 수 있다. 광무제(光武帝)같이 근로(勤勞)하였는데 끝내 열고(烈考)께서 병마에 시들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갈 길은 백리나 되는데 90리의 반에서 그쳤으니, 원대한 장래의 도모를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겠는가. 대덕(大德)을 지니고서도 중년(中年)도 못 살았으니, 천도(天道)는 따지기가 어렵구나.

와신 상담하며 간수(干隧)067) 의 공훈을 세우리라 다짐했고 뜻밖의 일에 대비한 계연(計然)068) 의 계책을 손바닥에 써 보였었다. 이루어진 성산(聖算)이 매우 훌륭했는데 세상을 떠나기를 어찌 그리도 바쁘게 했는가. 부질없이 정호(鼎湖)의 활069) 만 남았고 헛되이 화옥(華玉)으로 꾸민 영궤(靈几)만 설치하였구나. 궁벽한 산골의 백성들도 아버지를 잃은 듯이 슬피 울부짖었고 금려(禁旅)와 유관(儒冠)이 날마다 대궐을 둘러싸고 부여잡고 통곡하였다.

돌아보건대 나 소자가 감히 큰 기업(基業)을 이어받았는데, 눈 속에 가물가물 모습이 어려 있으나 바라만 보일 뿐 따라갈 수가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슬픔이 마음을 아프게 하여 간절히 찾아도 형체가 없다. 이제 장사(葬事)를 지낼 날짜가 정해져 도궁(塗宮)을 바야흐로 철거하였으므로 이에 옛 법전을 따라 시호를 바친다. 이는 일국의 공론에 합치된 것으로 자식이 아버지를 위해 의논한 것이 아니며, 백행(百行)의 근원인 효(孝)는 시종 달리함이 없기 때문이다.

삼가 신모(臣某) 관모(官某)를 보내어 옥책(玉冊)을 봉헌(捧獻)하게 했는데 존시(尊諡)는 선문장무 신성현인(宣文章武神聖顯仁)이라고 올리고 묘호(廟號)는 효종(孝宗)이라고 올렸다. 우러러 바라건대 성령(聖靈)은 굽어 살피시어 밝게 이르러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예(禮)를 받음으로써 제정(帝庭)에 영광을 드날리게 하고, 하토(下土)의 백성들을 오르내리며 보살펴주어 그 복이 후예(后裔)에까지 유전(流傳)되어 가게 해 주소서. 아, 슬프다. 삼가 말씀올린다. 【정헌 대부 행 용양위 부호군 신 조경(趙絅)이 지어 올렸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1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9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64]
    계력(季歷)이 태왕(太王)의 명을 받게 되었고 : 효종(孝宗)이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아우로서 임금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주(周)나라의 태왕(太王)이 첫째 아들 태백(太伯)과 둘째 아들 우중(虞仲)을 젖혀두고 막내 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준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한 말임.
  • [註 065]
    구가(謳歌)와 역수(曆數)가 귀의하니 : 백성들이 임금으로 받들어 귀의한 것을 가리킴. 이는 《맹자(孟子)》 만장(萬章) 상(上)에서 나온 말로, 구가(謳歌)하는 사람이 요(堯)임금의 아들에게로 가지 않고 순(舜)임금에게로 갔다고 한 내용으로 민심(民心)이 귀속됨을 가리킴.
  • [註 066]
    건원(建元) : 한 무제(漢武帝)의 연호.
  • [註 067]
    간수(干隧) : 옛날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생포한 곳으로, 지명(地名)임.
  • [註 068]
    계연(計然) : 춘추 시대의 모사(謀士)로 계책을 잘 세웠으며 틀림없이 성공하였다고 함.
  • [註 069]
    정호(鼎湖)의 활 : 정호는 옛날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호수를 말함. 황제가 하늘로 올라갈 때 후궁(後宮)과 군신(群臣) 70여 명이 용의 등에 탔는데 기타 소신(小臣)들은 등에 타지 못하고 용의 수염에 매달렸다 함. 그러나 그만 용의 수염이 뽑히는 바람에 모두 떨어져 버렸고 그 때 황제의 활도 떨어졌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유품(遺品)의 뜻으로 쓰였음.

○諡冊文:

竊以治方中旣完, 復土之期在卽; 節壹惠爲諡, 尊名之冊肆陳。 難摹日月之暈, 祗申崇奉之悃。 恭惟大行大王, 殷憂啓聖, 佳氣發祥。 吾世當興, 季歷太王之命; 至性無間, 東海闡重輪之明。 謳歌曆數之歸, 社稷人群之主。 齊齊勿勿, 克敬宗廟之烝嘗; 怡怡愉愉, 單誠長秋之溫凊, 服膺精一之訓, 見羹墻; 時展伯叔之親, 分周寶玉。 長枕大被, 交映花萼之中; 盛色姦聲, 遠屛凝旒之下。 修齊之道已洽, 治理之具畢張。 不明求衣, 撫單赤於袵席; 思賢如渴, 馳束帛於丘園。 游心三代之前, 講學五經之奧。 正己而率物, 務實而惡華。 嬰茆責躬, 時雨洗螟螣之害。 菲食忘口, 海邑絶蛤蜊之供。 置鼓設旌, 嘉言罔伏。 則壤成賦, 仁政是先。 四野息鴻鷹之歌, 三面解蛛蝥之網。 譪然好生之德, 庶幾比屋之封。 觀文耿光, 猶不自足。 揚武大烈, 玅而無方。 羽林字孤, 修明建元之制。 神策儲將, 出入山西之良。 衆心成城, 奚暇猛士之守。 太平有象, 可見諸福之來。 何意光武之勤勞, 終致烈考之厲虐。 行百里而半九十, 遠圖焉憑。 以大德不得中身, 天道難問。 冬氷夏火, 干隧之勣宅心。 旱舟水車, 計然之策示掌。 成算孔韙, 厭世何忙。 空留鼎湖之弓, 虛設華玉之几。 深山窮谷, 若喪考而哀號; 禁旅儒冠, 日環闕而攀哭。 顧惟小子, 敢承丕基。 目窅窅而其凝, 望如不及; 哀煢煢而在疚, 求切無形。 今則祖載有涓, 塗宮方撤。 式遵古典, 爰薦大名。 合一國之公, 非子議父; 原百行之孝, 念始靡他。 謹遣臣某官某, 捧玉冊上尊諡曰: "宣文章武神聖顯仁, 廟號曰孝宗。" 仰惟聖靈, 俯賜昭格。 茂膺顯徽之禮, 揚光帝庭; 陰隱下土之民, 流祉后裔。 嗚呼! 哀哉。 謹言。 【正憲大夫行龍驤衛副護軍臣趙絅製進。】


  • 【태백산사고본】 22책 1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9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