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1권, 인조 1년 3월 14일 甲辰 8/14 기사 /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백관의 하례를 받고 교서를 반포하다
국역
상이 백관의 하례를 받고 팔도에 교서를 반포하였는데, 거기에,
"우리 국가는 열성(列聖)이 계승하여 그 가법이 가장 올바르다. 인으로 정사를 펴고 효로 다스려 그 빛나고 흡족한 교화가 소경 대왕에 이르러 극진하였다. 그러나 하늘이 돌보지 않아 드디어 비운을 만났다. 지난 10여 년 이래로 적신 이이첨(李爾瞻)이 임금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국권을 천단하며 모자간에 이간을 붙여 끝내 윤리의 사변을 자아내 모후를 별궁으로 폐출하는 등 갖은 수욕을 가하였다. 진 소양왕(秦昭襄王)과 진 혜공(晋惠公)의 화도 이에 더 지나칠 수 없다. 더구나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 동방 예의의 풍속을 무너뜨려 삼강(三綱)이 땅을 쓸은 듯 없어졌으니, 이를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사치가 도에 넘치고 형벌이 문란하여 백성들이 곤궁하고 재정이 고갈되며 내외의 질서가 무너짐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망치고 종사를 전복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와 같은 소소한 일들은 자전의 하교에 모두 거론되었으므로 더이상 재론하지 않는다.
나는 박덕한 사람으로 선왕의 훈계를 받들어 삼가 번저(藩邸)를 지키면서 일생을 마치려 하였는데, 다행하게도 두세 사람의 충의를 지닌 신하가 종사의 위망을 걱정하고 인륜의 무너짐을 두려워하여 대의를 분발하여 내란을 안정시켜 자전의 위호를 바룬 후 이어 과덕한 이 몸을 추대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나는 아래로는 군정(群情)에 추대되고 위로는 자전의 뜻을 받드니 깊은 못과 골짜기에 임한 듯 두려운데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즉위한 처음에 이르러 반드시 경시(更始)의 교화를 펼 것을 생각하니, 무신년 이래 날조된 옥사이거나 연좌된 죄수 및 바른 말을 하다가 득죄한 자는 모두 사면하며, 모든 건축의 토목 공사의 부역과 조도사(調度使) 등의 가혹한 수탈도 일체 제거하며, 기타 백성을 침해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던 귀척과 권세가가 가진 모든 전장(田庄)에 대한 세금 감면과 부역 면제도 함께 조사하여 제거하며, 내수사(內需司)와 대군방(大君房)에게 빼앗겼던 민전도 일일이 환급한다. 금월 13일 새벽 이전까지의 사죄(死罪) 이하는 모두 사면하여 유신(維新)의 뜻을 보인다.
아, 비상한 거사가 있으므로 드디어 비상한 은혜를 미루고 무한한 복을 누리므로 다시 무한한 애휼을 생각한다."
하였다. 전 검열 장유(張維)의 글이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0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농업-전제(田制) / 재정-전세(田稅)
원문
○上受百官賀, 頒敎八方。 若曰:
惟我國家, 列聖相承, 家法最正, 以仁爲政, 以孝爲理, 重熙累洽之化, 至先昭敬大王而極矣。 昊天不弔, 遂値否運, 越自十數年來, 賊臣爾瞻熒惑君心, 圖竊國柄, 仍搆母子之隙, 竟成彝倫之變, 出廢別宮, 僇辱備至, 秦 昭、晋 惠之禍, 不啻過之。 況乃背天朝父母之恩, 滅吾東禮義之風, 三綱掃地, 胡可忍言! 至如侈欲之無度, 刑政之紊亂, 民窮財盡, 外潰內訌, 足以亡國殄祀, 猶是薄物細故, 悉具慈敎, 無容贅擧。 予以薄德, 承先王餘訓, 恪守藩邸, 若將終身, 幸賴二三忠義之臣, 愍宗社之危亡, 懼彝倫之斁滅, 奮發大義, 克定內亂, 旣正位號於慈殿, 仍願推戴乎寡躬。 予下迫群情, 上承慈旨, 若隕淵谷, 其何以堪! 爰思履端之初, 必擧更始之化。 自戊申以來, 凡干羅織之獄, 株連之坐, 及以言獲罪者, 悉皆蕩滌。 諸營建土木興作之役, 調度等官, 掊克聚斂之類, 一切革除。 其他侵民病國, 如戚畹權貴家諸處田庄, 減稅復戶等事, 竝令査檢刮去。 內需司、大君房被奪民田, 一一還給。 自今月十三日昧爽以前, 死罪以下, 竝皆赦宥, 以示維新之意。 於戲! 有非常之擧, 遂推非常之恩, 享無疆之休, 更思無疆之恤。 前檢閱張維之文也。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0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농업-전제(田制) / 재정-전세(田稅)
인조 1년 (1623) 3월 14일
- 상이 경운궁에 있다
- 자전에 진하할 것을 누차 청하여 자전이 허락하다
- 광해군 즉위 이후 죄를 받아 갇힌 사람을 석방하도록 명하다
- 광해를 폐하여 군으로 봉하다
- 양주 목사와 수원 부사가 군사를 일으켰다가 반정의 소식을 듣고 흩어지다
- 연흥부원군의 부인을 제주에서 맞아올 것을 명하다
- 인조의 즉위와 광해군의 폐위에 대한 왕대비의 교서
- 백관의 하례를 받고 교서를 반포하다
- 이광정·이귀·김류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류 등이 박승종 등을 살릴 것을 청하고 김신국 등의 등용을 청하다
- 한찬남·백대형 등이 처형되다
- 본궁노로서 군중에 작폐한 자를 주살하도록 명하다
- 홍문관 교리 이명한이 도승지 이덕형의 체직을 청하다
- 박승종·박자흥이 달아나 자결하다
인조실록1권, 인조 1년 3월 14일 甲辰 8/14 기사 /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백관의 하례를 받고 교서를 반포하다
국역
상이 백관의 하례를 받고 팔도에 교서를 반포하였는데, 거기에,
"우리 국가는 열성(列聖)이 계승하여 그 가법이 가장 올바르다. 인으로 정사를 펴고 효로 다스려 그 빛나고 흡족한 교화가 소경 대왕에 이르러 극진하였다. 그러나 하늘이 돌보지 않아 드디어 비운을 만났다. 지난 10여 년 이래로 적신 이이첨(李爾瞻)이 임금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국권을 천단하며 모자간에 이간을 붙여 끝내 윤리의 사변을 자아내 모후를 별궁으로 폐출하는 등 갖은 수욕을 가하였다. 진 소양왕(秦昭襄王)과 진 혜공(晋惠公)의 화도 이에 더 지나칠 수 없다. 더구나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 동방 예의의 풍속을 무너뜨려 삼강(三綱)이 땅을 쓸은 듯 없어졌으니, 이를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사치가 도에 넘치고 형벌이 문란하여 백성들이 곤궁하고 재정이 고갈되며 내외의 질서가 무너짐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망치고 종사를 전복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와 같은 소소한 일들은 자전의 하교에 모두 거론되었으므로 더이상 재론하지 않는다.
나는 박덕한 사람으로 선왕의 훈계를 받들어 삼가 번저(藩邸)를 지키면서 일생을 마치려 하였는데, 다행하게도 두세 사람의 충의를 지닌 신하가 종사의 위망을 걱정하고 인륜의 무너짐을 두려워하여 대의를 분발하여 내란을 안정시켜 자전의 위호를 바룬 후 이어 과덕한 이 몸을 추대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나는 아래로는 군정(群情)에 추대되고 위로는 자전의 뜻을 받드니 깊은 못과 골짜기에 임한 듯 두려운데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즉위한 처음에 이르러 반드시 경시(更始)의 교화를 펼 것을 생각하니, 무신년 이래 날조된 옥사이거나 연좌된 죄수 및 바른 말을 하다가 득죄한 자는 모두 사면하며, 모든 건축의 토목 공사의 부역과 조도사(調度使) 등의 가혹한 수탈도 일체 제거하며, 기타 백성을 침해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던 귀척과 권세가가 가진 모든 전장(田庄)에 대한 세금 감면과 부역 면제도 함께 조사하여 제거하며, 내수사(內需司)와 대군방(大君房)에게 빼앗겼던 민전도 일일이 환급한다. 금월 13일 새벽 이전까지의 사죄(死罪) 이하는 모두 사면하여 유신(維新)의 뜻을 보인다.
아, 비상한 거사가 있으므로 드디어 비상한 은혜를 미루고 무한한 복을 누리므로 다시 무한한 애휼을 생각한다."
하였다. 전 검열 장유(張維)의 글이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0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농업-전제(田制) / 재정-전세(田稅)
원문
○上受百官賀, 頒敎八方。 若曰:
惟我國家, 列聖相承, 家法最正, 以仁爲政, 以孝爲理, 重熙累洽之化, 至先昭敬大王而極矣。 昊天不弔, 遂値否運, 越自十數年來, 賊臣爾瞻熒惑君心, 圖竊國柄, 仍搆母子之隙, 竟成彝倫之變, 出廢別宮, 僇辱備至, 秦 昭、晋 惠之禍, 不啻過之。 況乃背天朝父母之恩, 滅吾東禮義之風, 三綱掃地, 胡可忍言! 至如侈欲之無度, 刑政之紊亂, 民窮財盡, 外潰內訌, 足以亡國殄祀, 猶是薄物細故, 悉具慈敎, 無容贅擧。 予以薄德, 承先王餘訓, 恪守藩邸, 若將終身, 幸賴二三忠義之臣, 愍宗社之危亡, 懼彝倫之斁滅, 奮發大義, 克定內亂, 旣正位號於慈殿, 仍願推戴乎寡躬。 予下迫群情, 上承慈旨, 若隕淵谷, 其何以堪! 爰思履端之初, 必擧更始之化。 自戊申以來, 凡干羅織之獄, 株連之坐, 及以言獲罪者, 悉皆蕩滌。 諸營建土木興作之役, 調度等官, 掊克聚斂之類, 一切革除。 其他侵民病國, 如戚畹權貴家諸處田庄, 減稅復戶等事, 竝令査檢刮去。 內需司、大君房被奪民田, 一一還給。 自今月十三日昧爽以前, 死罪以下, 竝皆赦宥, 以示維新之意。 於戲! 有非常之擧, 遂推非常之恩, 享無疆之休, 更思無疆之恤。 前檢閱張維之文也。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0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농업-전제(田制) / 재정-전세(田稅)
원본
인조 1년 (1623) 3월 14일
- 상이 경운궁에 있다
- 자전에 진하할 것을 누차 청하여 자전이 허락하다
- 광해군 즉위 이후 죄를 받아 갇힌 사람을 석방하도록 명하다
- 광해를 폐하여 군으로 봉하다
- 양주 목사와 수원 부사가 군사를 일으켰다가 반정의 소식을 듣고 흩어지다
- 연흥부원군의 부인을 제주에서 맞아올 것을 명하다
- 인조의 즉위와 광해군의 폐위에 대한 왕대비의 교서
- 백관의 하례를 받고 교서를 반포하다
- 이광정·이귀·김류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김류 등이 박승종 등을 살릴 것을 청하고 김신국 등의 등용을 청하다
- 한찬남·백대형 등이 처형되다
- 본궁노로서 군중에 작폐한 자를 주살하도록 명하다
- 홍문관 교리 이명한이 도승지 이덕형의 체직을 청하다
- 박승종·박자흥이 달아나 자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