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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52권, 선조 35년 7월 22일 辛巳 1번째기사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주역》을 강하면서 이덕형·성영이 그 뜻과 대체를 자세히 설명하다

묘시 정각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주역(周易)》의 이괘(離卦)를 강(講)하였다. 이덕형(李德馨)이 아뢰기를,

"역전(易傳)은 괘상(卦象)으로 천하 사물의 이치를 추리하여 밝히고 있는데, 그상을 깨닫기는 어려운 듯하나 그 뜻은 진실한 이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천지가 감응함으로써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성인이 인심을 감응시키자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라는 구절은 천지의 조화와 성인의 성스러움을 남김없이 말한 것으로서 이것은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천지가 제 자리를 잡고 만물이 화육(化育)된다.’라는 등의 말과 서로 표리(表裏)가 된다 하겠습니다. 천지와 성인의 공효(功効)가 지극히 넓고 크지만 그 도(道)는 지성(至誠) 이외에 다시 다른 도가 없고, 그 공부는 본심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며 자신을 반성하고 살피는 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하기 전에는 한쪽으로 편중됨이 없다가 급기야 발하여 서로 감응함이 있게 되면 여기에서 남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가며 선(善)을 행하고 악행을 하는 갈림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란 이를 단속하여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사물을 접할 때에 아무쪼록 보편타당하게 해서 하나도 바른 데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게 한다면 서로 감응하는 도가 자연히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 조정의 백관을 바르게 하려면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을 먼저 바르게 해야 하고, 서로 감응할 때에 바른 데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순(堯舜) 시대에 군신(群臣)이 화목하고 사람들이 서로 사양한 것도 성인의 지성으로 서로 바르게 감응했던 데에서 연유했던 것이니, 임금은 마땅히 체념해야 합니다. 만약 이 성(誠)에 조금이라도 간단이 있게 되면 이것은 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상(領相)의 말이 매우 극진하니, 학문의 깊이를 볼 수 있겠다."

하였다. 성영(成泳)이 아뢰기를,

"덕형의 말이 훌륭하니, 신이 어찌 감히 다시 진달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실로 지성으로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쇠나 돌도 뚫을 수 있고, 귀신도 감동시켜 통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이 이 성(誠)의 공효입니다. 전하께서 30년 동안 재위하신 이래 성의를 미루어 아랫사람을 다스리시면서 사냥·음악·여색을 즐기는 잘못이 없으셨는데도 난리가 일어나 평안하지를 못하고 백성들은 은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니, 상께서는 자신을 반성해 보시고 옛날 훈계를 참고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한가지 호령이라도 미진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시면서 더욱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력을 닦아 정성을 다해 다스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면서 ‘모든 죄는 나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하시어 삼가고 두려워하며 감히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어느때나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셔야 할 것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근래에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중첩해서 일어나는데, 예사롭게 형식만 갖추어서는 구제할 수 없으니, 은미한 경지를 삼가하시고 한적하게 홀로 있을 때를 살피는 것만 못합니다. 그리하여 항상 이 점을 생각하시어 오직 독실하게 성신(誠信)한 마음으로 단지 형식의 말절(末節)인 공효(功效)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조정이 의 화평하게 될 것이고 만백성이 은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검소함을 숭상하여 비용을 절약하는 일이야말로 현재의 급선무입니다. 큰 난리를 겪은 뒤로 민심이 흩어지고 물화가 탕진되었으므로 상께서 여러 차례 전교하셨으나 아래에서는 받들어 시행하는 신하가 없습니다. 말절인 번거로운 형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고, 덕형은 아뢰기를,

"시사(時事)가 이미 올 데까지 왔는데 인심은 그럭저럭 세월이나 보내며 말절에만 주력하고 사치스러운 풍조가 날로 심해지니, 상하가 두려워하며 거(莒)에 있던 때148) 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이덕형성영이 아뢴 경우는 일에 따라 간언을 드린 것으로 임금에게 고하는 대체(大體)를 깊이 얻었다고 이를 만하다. 따라서 임금이 진실로 기꺼워하며 근본을 돌이켜 보고 그 말을 따라 고칠 수만 있었다면 중흥하는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미진한 점이 있었으니 애석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90책 152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0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註 148]
    거(莒)에 있던 때 : 국왕이 난리를 만나 국도(國都)를 버리고 파천(播遷)해 있는 것을 말함. 춘추 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경우와 전국 시대 제나라 민왕(湣王)의 두 경우가 이 고사에 관련된다. 《사기(史記)》 권32·46.

○辛巳/卯正, 上御別殿, 講《周易》 《离卦》李德馨曰: "《易傳》, 以卦象, 推明天下之物理。 其象雖似難曉, 其義則無非眞實之理。 至於天地感而萬物化生, 聖人感人心, 而天下和平之句, 乃極言天地之化、聖人之聖。 此與《中庸》首章天地位焉、萬物育焉等語, 相爲表裏。 天地聖人之功用, 雖極廣大, 而其道, 則至誠之外, 更無他道, 其工夫, 則存養省察。 喜怒哀樂未發之前, 無所偏倚, 及其發也, 有所相感, 則於是有之南之北, 爲善爲惡之岐。 善者約之, 歸之於正。 接物之際, 要使泛應曲當, 無一不出於正, 則相感之道, 自然亨通。 人君欲正朝廷百官, 須先正其心, 相感之際, 不離於正。 之時, 群臣和睦, 濟濟相讓, 亦由於聖人至誠相感之正。人君所當體念也。 若此誠, 斯須間斷, 則不可謂之誠也。" 上曰: "領相之言, 極其至矣。 學問之深, 可以見矣。" 成泳曰: "德馨之言, 善矣。 臣何敢更有所陳, 而苟能至誠以動之, 金石可通, 鬼神可格。 聖人感人心, 而天下和平, 此誠之效也。 殿下三十年臨御以來, 推誠御下, 無游畋聲色之過, 而亂生不夷, 民未蒙澤。 自上宜反躬自省, 參以古訓, 自念以爲, 無乃一號一令, 有所未盡而然耶, 益修格致誠正之功, 勵精圖治, 常加兢惕於心曰: ‘萬方有罪, 在予一人。’ 戒謹恐懼, 不敢小忽, 動靜之間, 恒存於心上可也。 伏見近來, 天災時變, 疊見層出, 非尋常文具, 所可救也。 莫若愼於隱微, 察於幽獨, 念玆在玆, 惟篤誠信, 不獨責效於文爲之末節, 則朝廷庶可和平, 萬民庶可蒙澤矣。 崇儉節用, 在當今急務。 大亂之後, 民心渙散, 物力蕩竭, 自上雖屢勤傳敎, 而下無奉行之臣。 煩文末節, 無所用也。" 德馨曰: "時事已到十分地頭, 而人心翫愒, 致力於末節, 侈靡之漸, 日益。 上下惕慮, 無忘在之日, 可也。"

【史臣曰: "若李德馨成泳之啓, 可謂隨事進規, 深得告君之體矣。 人君苟能悅而能繹, 從而能改, 中興之美, 不難致也, 而猶有所未盡焉者, 惜哉!"】


  • 【태백산사고본】 90책 152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0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