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6일 辛卯 6/7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도체찰사 유홍이 벽제 전투의 전말을 치계하다
국역
도체찰사(都體察使) 우의정 유홍(兪泓)이 치계하였다.
"이날 27일 이 제독이 군사를 거느리고 발행했는데 ‘사 부총(査副摠)023) 과 고언백(高彦伯)이 같이 적을 정탐하러 나갔다가 마침 적병 6∼7백을 만나 적 4백여 급을 참획(斬獲)했으나 많은 적이 무수히 나오므로 부총병이 벽제(碧蹄)로 물러갔는데 적도(賊徒)가 추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제독이 즉시 벽제로 가서 이미 도착한 정병(精兵)을 뽑아 거느리고 포진하여 접전했으나 포수와 모든 군사가 뒤에 처져 있었으므로 병력이 약하여 적을 격멸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휘하의 두 파총(把摠)만 잃고 해 저물녘에 파주로 퇴진했습니다. 이달 28일 동파(東坡)로 돌아가려고 하므로, 체찰사 유성룡(柳成龍)과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대면하여 퇴군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말하였으나, 마초가 부족하고 지세가 불리하니 돌아가서 며칠간 쉰 뒤에 크게 거병하려고 한다고 하고는, 사시(巳時)에 출발하여 돌아가고 사 부총(査副摠)도 벽제에서 떠나 파주를 지났다고 합니다."
- [註 023] 사 부총(査副摠) : 사대수(査大受)임.
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6일 辛卯 6/7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도체찰사 유홍이 벽제 전투의 전말을 치계하다
국역
도체찰사(都體察使) 우의정 유홍(兪泓)이 치계하였다.
"이날 27일 이 제독이 군사를 거느리고 발행했는데 ‘사 부총(査副摠)023) 과 고언백(高彦伯)이 같이 적을 정탐하러 나갔다가 마침 적병 6∼7백을 만나 적 4백여 급을 참획(斬獲)했으나 많은 적이 무수히 나오므로 부총병이 벽제(碧蹄)로 물러갔는데 적도(賊徒)가 추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제독이 즉시 벽제로 가서 이미 도착한 정병(精兵)을 뽑아 거느리고 포진하여 접전했으나 포수와 모든 군사가 뒤에 처져 있었으므로 병력이 약하여 적을 격멸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휘하의 두 파총(把摠)만 잃고 해 저물녘에 파주로 퇴진했습니다. 이달 28일 동파(東坡)로 돌아가려고 하므로, 체찰사 유성룡(柳成龍)과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대면하여 퇴군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말하였으나, 마초가 부족하고 지세가 불리하니 돌아가서 며칠간 쉰 뒤에 크게 거병하려고 한다고 하고는, 사시(巳時)에 출발하여 돌아가고 사 부총(査副摠)도 벽제에서 떠나 파주를 지났다고 합니다."
- [註 023] 사 부총(査副摠) : 사대수(査大受)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