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가 중국군 장수와 주고 받은 왜적의 정세 및 조선의 형세에 대한 문답
중국에서 군사를 내어 구원하려고 왜의 정세와 우리 나라의 형세를 조목으로 물었다. 비변사가 조목에 따라 진술하였는데, 그 문답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1. 문:왜노의 분명한 수효는 얼마이며, 어떤 정세이고, 어디에 잠복하고 있는가?
답:왜선(倭船)이 처음 부산(釜山)에 도착한 것은 4백여 척이었으며, 또 뒤따라 도착한 것이 7∼8백 척이다. 그들의 개미처럼 흩어지고 멧돼지처럼 내달아 7도(道)를 나누어 점거하고 있다.
1. 문:왜선은 얼마나 되며, 현재 어느 하구(河口)에 정박하고 있는가? 평양에는 현재 얼마나 있으며 얼마나 파괴되었는가?
답:왜선은 길을 나누어 전라도를 침범했는데 본도의 수사(水使) 이순신(李舜臣) 등이 전후 일곱 차례 싸워서 4백여 척을 불태워 격파하였고, 목을 벤 자 이외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부지기수이다. 현재 해항(海港)에 정박하고 있는 것은 4∼5백 척이며, 우리 나라의 어선을 약탈한 평양에 남아 있는 적선은 겨우 수십 척이다. 왜인들의 수비가 매우 엄하여 우리 군사가 밤을 타 몰래 가서 몇 척을 파괴했다.
1. 문:팔도의 인심은 어떠하며, 구주(舊主)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의사(義士)들이 호응하여 나라를 회복하기를 도모하는가?
답:본국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임금과 백성들이 오랫동안 황제의 은혜를 입어 사람들이 전쟁을 모르고 지낸 지 2백여 년이 되었다. 갑자기 적의 화란을 만나 군정(軍情)이 놀라 흩어져 풍문만 듣고서 붕궤되었다. 근일에는 각도의 의사들이 서로 모여 군대를 이루어 민가에는 남아 있는 장정(壯丁)이 없다. 선비들이 분발하여 적을 죽이기로 뜻을 품어 모두 적과 싸우다 죽을 것을 생각하고 있다.
1. 문:왕경(王京)의 왜노는 얼마나 되며, 평양의 왜노는 처음 얼마였으며 지금 얼마나 더 늘었는가?
답:경성에 남아 있는 왜적은 혹 1만여 명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수천 명이라 하기도 한다. 아침에 동문(東門)으로 나왔다가 저녁 때는 서문(西門)으로 들어가고 이쪽 군사를 저쪽에 옮겨 보태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평양의 적도 그 방법을 쓰고 있는데, 처음 강변(江邊)에 도착한 행장(行長)·의지(義智)·조신(調信) 등이 각기 1천여 명을 거느렸다. 우리 군사가 강을 건너 습격하자 조신의 1군은 거의 사살되었고 나머지 3백 명만 경성으로 돌아갔는데, 평양을 함락시킨 뒤로 또다시 군사를 증가시켰다.
1. 문:왜장(倭將)은 몇 명으로 성명(姓名)은 무엇이며, 현재는 몇 명이며 죽은 자는 몇 명인가? 관백(關伯) 평수길(平秀吉)은 현재 어디 있으며, 요승(妖僧) 현소(玄蘇)는 어떤 환술(幻術)을 지녔는가? 우리 중국인으로서 그들에게 부림을 받고 있는 자의 성명은 무엇인가?
답:관백 평수길은 대마도(對馬島)에 와 머물러 있고, 기집 재상(岐集宰相) 평수충(平秀忠)이란 자는 처음 경상도에 있었는데 전사하였으며, 가등 주계두(加藤主計頭)169) 란 자는 함경도에 있으며, 흑전 갑비수(黑田甲斐守)170) 란 자는 황해도에 있으며, 봉두하 하파수(峰頭賀河波守)171) 란 자는 충청도에 있으며, 소조천융경(小早川隆景)이란 자는 개성부에 있으며, 삼일기(森壹岐)와 도진(島津)172) 이란 자는 강원도에 있으며, 모리요원(毛利耀元)이란 자는 전라도에 있으며, 우시비전 재상(羽柴備前宰相) 평수가(平秀家)란 자는 대장(大將)으로 경성에 있는데,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그 안에다 겹으로 담장을 치고 그 가운데는 누(樓)를 지어놓았다. 우리 백성들을 모두 목책 밖으로 내보내고서 자기 무리들만 살고 있다.
또 소서 섭진수(少西攝津守)173) ·평행장(平行長)·평의지(平義智)·평조신(平調信)·평호 도주(平戶島主)란 자는 모두 평안도를 주관하면서 평양에 있는데 거느린 적병의 수가 많고 가장 정예하여 여러 왜적들이 따르지 못하므로 선봉을 꺾거나 진을 함락할 때는 모두 이 진(陣)을 힘입고 있다. 지금 만약 아군이 먼저 평양을 꺾는다면 파죽(破竹)의 형세일 것이다. 왜승(倭僧) 현소(玄蘇)란 자는 평양에서 종군하고 있는데 별다른 기술은 없고 중국의 문자(文字)를 약간 해득하기 때문에 항상 군중에 있게 한다. 중국인으로 그들에게 부림을 당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고, 다만 강 통사(姜通事)란 자가 왕래하면서 통역하고 있다.
1. 문:본궁에 기모(奇謀)·이능(異能)을 지닌 검객(劍客)·모사(謀士)로서 군사 일을 의논할 자와 내응(內應)할 자가 있는가?
답:본국은 검술을 익히지 않고 또 이능을 가진 술사도 없으나 집집마다 겹벽을 만들어 몰래 병기를 숨겨 놓고 외병(外兵)이 오기를 기다려 일시에 일제히 일어나기로 약속하고는 주야로 천병(天兵)이 나와 구원하면 향응(響應)할 것을 바라고 있다.
1. 문:본국에 현재 있는 양초(糧草)는 얼마나 되며 어디에 있는가?
답:평양에서부터 의주(義州)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전쟁을 겪지 않아서 연도의 각 고을에 각기 양초를 비축하여 놓았는데 합계가 쌀 5만 석, 황두(黃豆) 4만여 석이고 시초(柴草)도 거기에 준한다.
1. 문:본국에는 현재 병마(兵馬)가 얼마나 되며 어디에 주둔하고 있는가?
답:적이 국내에 두루 흩어져서 각자 둔처(屯處)하고 있기 때문에 각도(各道)의 장관(將官)이 각기 수천 명씩 거느리고 본도(本道)를 지키고 있다. 오직 전라도만은 아직까지 온전하기 때문에 병사(兵使) 최원(崔遠)이 군사 4천 명을 거느리고 가을부터 근왕(勤王)하고 있는데 의병 3천 명과 함께 모두 경기의 강화부(江華府)에 있으면서 경성의 탈환을 도모하고 있다. 평양에는 본도의 군사를 초발(抄發)하여 3진(陣)으로 나누어 감사와 병사가 함께 4천 명을 거느리고 순안(順安)에 주둔하고 있고, 우방어사(右防禦使)가 1만 명을 거느리고 그 남쪽에 주둔하고 있으며, 좌방어사(左防禦使)가 2천 명을 거느리고 그 동쪽에 주둔하고 있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66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
- [註 169]가등 주계두(加藤主計頭) : 주계두는 직명.
- [註 170]
흑전 갑비수(黑田甲斐守) : 갑비수는 직명.- [註 171]
○天朝, 將發兵救楥, 條問倭情及我國形勢。 備邊司條列以陳。 略曰:
一。 倭奴的有若干, 作何情形, 潛伏何地。 前件照得倭船, 初到釜山者四百餘隻, 又有趕到者七八百隻。 蟻散豕突, 分據七道。 一。 倭船的有若干, 見今停泊河口? 平壤見在若干, 毁壞若干。 前件照得倭船, 分犯全羅道, 本道水使李舜臣等, 前後七戰, 燒破四百餘隻, 斬級之外, 溺水而死者, 不記其數。 見今停泊海港, 四五百隻, 平壤所留賊船, 搶奪我國漁船, 僅至數十。 倭人守備甚嚴, 我軍或乘夜潛帥, 斫破數隻。 一。 八道之中, 人心果否, 思念舊主有無, 義士響應, 思圖恢復? 前件照得, 本國境接上國, 君民久荷皇恩, 人不知兵, 二百餘年。 猝遇賊禍, 群情駭散, 望風崩潰。 近日各道義士, 相聚爲軍, 民無在家之丁。 士奮臠肉之志, 咸思死敵。 一。 王京倭奴若干, 平壤 倭奴先有若干, 今添若干? 前件照得, 京城留賊, 或云萬餘, 或云數千。 朝出東門, 暮入西門, 移此添彼, 使人莫測。 平壤之賊, 亦效此法, 初到江邊, 行長、義智、調信, 各將千餘。 我軍渡江掩擊, 調信一軍, 幾盡殺死, 只餘三百還入京城, 旣陷平壤, 又復添兵。 一。 倭將若干, 是何名姓, 見在若干, 亡故若干? 關伯平秀吉, 見在何處, 妖僧玄蘇有何幻術? 我係中國之人, 爲彼所用, 要見是何姓名? 前件照得。 關伯平秀吉, 來駐對馬島, 岐集宰相平秀忠者, 始在慶尙道戰死, 加藤主計頭者, 在咸鏡道, 黑田 甲裴守者, 在黃海道, (蜂頭賀)〔蜂須賀〕 (河波)〔阿波〕 守者, 在忠淸道, 小早川隆景者, 在開城府, 森臺岐∙島津者, 在江原道, 毛利耀元者, 在全羅道, 羽柴 備前宰相平秀家者, 以大將在京城, 設木柵重墻于內, 起樓其中。 驅出我民, 皆出柵外, 獨與其徒居。 又有少西攝津守平行長、平義智、平調信、平戶島主者, 皆主平安道, 在平壤, 所領賊衆, 最爲精銳, 諸賊莫及, 摧鋒陷陣, 皆賴此陣。 今若先摧平壤, 勢甚破竹。 倭僧玄蘇者, 從軍在平壤, 無他技術, 粗解中國文字, 故常置軍中。 中國之人, 爲彼所用者, 未知何人, 只有姜通事者, 往來傳譯云。 一。 本國有無奇謀異能, 劍客謀士, 可與談兵, 可爲內應? 前件照得。 本國不閑釰術, 且無異能之士, 而家家複壁, 潛置戎器, 約待外兵, 一時齊起, 日夜唯望天兵來救, 以爲響應。 一。 本國見有糧草若干, 在於何處? 前件照得。 自平壤至義州, 時未被兵, 沿途列郡, 各儲糧草, 通計米五萬碩, 黃豆四萬餘碩, 柴草稱是。 一。 本國見有兵馬若干, 何處屯箚? 前件照得。 賊遍國內, 各自屯據, 故各道將官, 各將數千, 各守本道。 唯全羅道尙得完全, 故兵使崔遠, 將兵四千, 自秋勤王, 與義兵三千, 俱在京畿 江華府, 以圖京城。平壤, 則抄發本道兵, 分爲三陣, 監司兵使, 同將四千屯順安, 右防禦使將萬兵屯其南, 左防禦使將二千屯其東。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66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
- [註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