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수 등이 심 유격을 만나고 군사를 더 보내 줄 것을 청하다
윤근수와 한응인이 아뢰기를,
"신들이 중로에 심 유격을 가서 만났더니, 그가 ‘내가 하루만 머물렀다 요동에 가서 순안(巡按)들과 의논하여 대군을 발정케 하겠다.’고 하기에, 신이 5천 명의 군사를 발정하여 주길 청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심 유격이 평양의 왜적만 보고서 공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함경도의 왜적은 평양보다 배나 많다."
하고서, 다시 윤근수를 보내 군사를 더 보내줄 것을 청하게 하였다. 윤근수가 유격을 만나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유격이 ‘왜(倭)와 만났을 때 세 곳의 왜적이 우리를 열 겹으로 에워쌌는데 그 수가 1천은 됨직하였다. 다른 곳에 있는 왜적도 매우 많다고들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정탐한 사람들의 말로는 성 안에 있는 왜적은 겨우 9백 명 정도라고 하였다.’라고 하니, 유격이 ‘이 말은 지나친 거짓이다. 그 사람은 목을 베어야 한다. 군사 7만이 있어야 공격할 수 있다.’ 하고, 또 ‘왜적과 만났을 때 세준(世俊)은 행장(行長)의 등뒤에 있었고 두목(頭目) 같은 자들이 패려한 말들을 많이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행장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고 묻자 ‘풍채가 늠름하여 함부로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지(義智)가 이미 평양에 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석 상서(石尙書)도 탄핵을 당하고 있어 출병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사를 더 보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단지 명조(明朝)에 급히 알리고자 해서이다."
하였다. 윤근수가 회계하기를,
"신이 가서 전교하신 뜻을 전달하니, 답하기를 ‘내가 이미 적세를 살폈으니 어찌 늑장을 부릴 리가 있겠는가. 먼저 요동의 군사 5∼6천을 발정시키고 또다시 제본을 올려 수만의 군사를 발정시킬 것이다. 송응창(宋應昌)은 요동까지만 오게 될 것이다.’ 하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40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尹根壽、韓應寅啓曰: "臣等, 中路往見沈遊擊, 則云: ‘俺當留一日, 往遼東, 議諸巡按, 使發大軍。’ 臣請發五千。" 上曰: "沈遊擊只見平壤賊, 言可擊, 當今咸鏡之賊, 倍於平壤。" 更遣尹根壽, 請加兵。 尹根壽見遊擊, 回來啓曰: "遊擊云: ‘與倭相見之時, 三處賊圍之十匝, 其數可一千。 他處之倭甚多。’ 云。 臣曰: ‘偵探人言, 城中之賊, 僅九百。’ 遊擊曰: ‘此言甚詐。 其人可斬。 須兵七萬, 可擊。’ 且云: ‘與賊相見時, 世俊在行長背後, 如頭目者, 多發悖慢之言。’ 臣問: ‘行長何如人?’ 曰: ‘風神澟澟, 不可侮也。’ 或云: ‘義智已在平壤, 而實爲留住矣。’ 臣等之意, 石尙書亦被論, 恐未易出兵也。" 上曰: "非欲加兵也。 只欲急告於天朝也。" 尹根壽回啓曰: "臣往致傳敎之意, 則答云: ‘我旣見賊勢, 寧可遲緩乎? 先發遼兵五六千, 又爲題本, 發數萬兵矣。 宋應昌, 但到遼東。’ 云。"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40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