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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0권, 선조 25년 9월 7일 甲子 2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윤근수 등이 심 유격을 만나고 군사를 더 보내 줄 것을 청하다

윤근수한응인이 아뢰기를,

"신들이 중로에 심 유격을 가서 만났더니, 그가 ‘내가 하루만 머물렀다 요동에 가서 순안(巡按)들과 의논하여 대군을 발정케 하겠다.’고 하기에, 신이 5천 명의 군사를 발정하여 주길 청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심 유격평양의 왜적만 보고서 공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함경도의 왜적은 평양보다 배나 많다."

하고서, 다시 윤근수를 보내 군사를 더 보내줄 것을 청하게 하였다. 윤근수유격을 만나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유격이 ‘왜(倭)와 만났을 때 세 곳의 왜적이 우리를 열 겹으로 에워쌌는데 그 수가 1천은 됨직하였다. 다른 곳에 있는 왜적도 매우 많다고들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정탐한 사람들의 말로는 성 안에 있는 왜적은 겨우 9백 명 정도라고 하였다.’라고 하니, 유격이 ‘이 말은 지나친 거짓이다. 그 사람은 목을 베어야 한다. 군사 7만이 있어야 공격할 수 있다.’ 하고, 또 ‘왜적과 만났을 때 세준(世俊)행장(行長)의 등뒤에 있었고 두목(頭目) 같은 자들이 패려한 말들을 많이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행장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고 묻자 ‘풍채가 늠름하여 함부로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지(義智)가 이미 평양에 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석 상서(石尙書)도 탄핵을 당하고 있어 출병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사를 더 보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단지 명조(明朝)에 급히 알리고자 해서이다."

하였다. 윤근수가 회계하기를,

"신이 가서 전교하신 뜻을 전달하니, 답하기를 ‘내가 이미 적세를 살폈으니 어찌 늑장을 부릴 리가 있겠는가. 먼저 요동의 군사 5∼6천을 발정시키고 또다시 제본을 올려 수만의 군사를 발정시킬 것이다. 송응창(宋應昌)은 요동까지만 오게 될 것이다.’ 하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4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尹根壽韓應寅啓曰: "臣等, 中路往見沈遊擊, 則云: ‘俺當留一日, 往遼東, 議諸巡按, 使發大軍。’ 臣請發五千。" 上曰: "沈遊擊只見平壤賊, 言可擊, 當今咸鏡之賊, 倍於平壤。" 更遣尹根壽, 請加兵。 尹根壽遊擊, 回來啓曰: "遊擊云: ‘與相見之時, 三處賊圍之十匝, 其數可一千。 他處之甚多。’ 云。 臣曰: ‘偵探人言, 城中之賊, 僅九百。’ 遊擊曰: ‘此言甚詐。 其人可斬。 須兵七萬, 可擊。’ 且云: ‘與賊相見時, 世俊行長背後, 如頭目者, 多發悖慢之言。’ 臣問: ‘行長何如人?’ 曰: ‘風神澟澟, 不可侮也。’ 或云: ‘義智已在平壤, 而實爲留住矣。’ 臣等之意, 石尙書亦被論, 恐未易出兵也。" 上曰: "非欲加兵也。 只欲急告於天朝也。" 尹根壽回啓曰: "臣往致傳敎之意, 則答云: ‘我旣見賊勢, 寧可遲緩乎? 先發遼兵五六千, 又爲題本, 發數萬兵矣。 宋應昌, 但到遼東。’ 云。"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4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