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부원군 윤개 등이 국본에 관하여 중전과 논의하다
영평 부원군 윤개, 영의정 이준경, 좌의정 심통원, 우의정 이명, 좌찬성 홍섬(洪暹), 좌참찬 송기수(宋麒壽), 우참찬 조언수(趙彦秀), 병조 판서 권철(權轍), 이조 판서 오겸(吳謙), 공조 판서 채세영(蔡世英), 예조 판서 박영준(朴英俊), 형조 판서 박충원(朴忠元), 대사헌 이탁(李鐸), 부제학 김귀영(金貴榮), 대사간 박순(朴淳)이 언서로 중전에게 아뢰기를,
"국본(國本)에 대한 일은 지난번 신들이 입대하였을 적에 계청하였는데 상께서 아직 확답이 없으시니 신들이 답답할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몹시 불안해 하고 있으니, 지금 인심을 안정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내전께서 마음을 두신 데가 있습니까? 참으로 답답할 뿐입니다." 【이준경 등이, 후사를 정하는 일은 누설시킬 수 없다 하여 박계현(朴啓賢)을 시켜 이 계사를 쓰게 하고 봉하여 들여갔으므로 사관(史官)이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가 계청한 뒤에 비로소 그 초안을 보았다.】
하니, 중전이 뒤에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조금 있다가 중전이 전교하기를,
"일이 몹시 망극하니 후일에 결정하겠다."
하였다. 이준경 등이 아뢰기를,
"이 일은 속히 단안을 내리셔야 하고 의심을 갖고 망설여서는 안되니 오늘 중으로 결정하소서."
하니, 중전이 친필(親筆)로 써서 내리기를,
"국가의 일이 망극하니 덕흥군(德興君) 【중종 대왕의 서자이다. 이름은 이초(李岹)인데 죽었다.】 의 세째 아들 이균(李鈞)을 입시시켜 시약(侍藥)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준경 등이 함께 의논하여 중전에게 아뢰기를,
"하서(下書)에 ‘이균을 입시시켜 시약하게 하라.’ 하시니, 인심이 약간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사인데 주상께 품하고 결정하신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아직 품하지 않으셨다면 비록 한 자라도 반드시 어필(御筆)로 써서 내리신 후에 대사를 결정하소서. 상의 환후가 조금 나아지시면 신들이 입대를 청하여 직접 전교를 받들겠습니다."
하니, 중전이 언서로 답하기를,
"상께서는 본래 심열이 있으신 데다 상사를 만나 거상하시느라 오랫동안 심열이 낫지 않고 더하여 이처럼 미령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이 일을 계품한다면 틀림없이 마음이 동하여 증후가 더욱 중하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감히 아뢸 수가 없으니 우선 이렇게 결정하였다가 회복되시면 다시 계품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지금 대신이 입대를 청한다면 심열이 더하여질 것이니 입대를 청하지 말라. 간절히 바란다."
하였다. 이준경 등이 회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의지를 보니 심열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하므로 몹시 걱정이 됩니다. 이 일은 중대한 것이라 주상에게 품달하지 아니하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니 내전께서 잠시도 잊지 말고 유념하시었다가 조금 덜하신 틈을 타서 힘을 다하여 도와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든 신하들은 반드시 상의 명을 얻고서야 물러갈 것입니다."
하니, 중전이 언서로 답하기를,
"아뢴 뜻을 알았다. 마땅히 마음에 새겨 두고 형세를 보아 품하고 결정하겠다. 지금 당장은 결코 계품할 수 없다."
하고, 조금 있다가 중전이 다시 언서로 전교하기를,
"방금 국본에 대한 일을 잠시 계품하였더니 성심이 몹시 동요하셨다. 결코 이런 시기에 계품할 수 없다."
하였다. 이준경 등이 그제야 물러갔다. 【이날 부정(副正) 윤건(尹健)이 차비문과 수상의 처소를 7∼8차례나 왔다갔다 하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이준경이 윤건을 통하여 중전에게 은밀하게 아뢰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으니, 윤건은 바로 심강(沈鋼)의 매부이기 때문이다.】 백관이 궐정에 모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80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역사-편사(編史)
○鈴平府院君 尹漑、領議政李浚慶、左議政沈通源、右議政李蓂、左贊成洪暹、左參贊宋麒壽、右參贊趙彦秀、兵曹判書權轍、吏曹判書吳謙、工曹判書蔡世英、禮曹判書朴英俊、刑曹判書朴忠元、大司憲李鐸、副提學金貴榮、大司諫朴淳, 以諺書啓于中殿曰:
國本之事, 臣等前日, 入對啓請, 自上未有決語。 非徒臣等悶鬱, 群情亦甚危疑。 當此之時, 不得已以定人心。 未知自內計慮, 有何所向, 尤爲悶鬱。
【李浚慶等, 以定嗣事, 不可漏洩, 使朴啓賢書此啓辭, 而封入, 故史官初不與知, 而請之然後, 始見其草。】 中殿答曰: "隨後發落。" 俄而中殿傳曰: "事甚罔極, 當於後日爲之。" 浚慶等啓曰: "此事所當速斷, 不可持疑。 望於今日內定之。" 中殿以親筆書下曰:
國家之事罔極, 以德興君 【中宗大王庶也。 名岹。 卒。】 第三子鈞, 入侍醫藥可也。
浚慶等同議, 啓于中殿曰: "伏覩下書, 以鈞入侍醫藥, 人心稍定。 但此大事, 未知稟于主上, 而定之乎? 若未稟焉, 則雖一字, 必以御筆書下, 然後大事以定。 上候若稍淸涼, 則臣等請入對, 親受傳敎。" 中殿以諺書答曰:
上本有心熱, 加以遭喪居憂, 心熱彌留, 如是未寧。 此事若啓稟, 則必動心, 證候加重, 故不敢仰達。 姑此定之, 以待平復之後, 更稟可也。 今若大臣請對, 則心熱加發矣。 不爲請對, 望之切矣。
慶浚等回啓曰: "臣等伏覩懿旨, 伏審心熱尙存, 不勝悶憂。 玆事重大, 不稟于主上, 則不可爲也。 自內留神, 頃刻不忘, 以竢間隙, 盡力贊助何如? 群臣必得上命, 然後乃退去矣。" 中殿以諺書答曰:
啓意知悉。 當觀勢銘心, 取稟發落矣。 卽今決不可啓稟矣。
俄而中殿, 又以諺書傳曰:
卽者國本之事, 暫爲啓稟, 則聖心甚動, 決不可於此時啓稟矣。
浚慶等乃退。 【是日, 副正尹健往復于差備門及首相者, 至於七八度。 人皆疑浚慶因健密啓于中殿。 蓋健乃沈鋼妹夫也。】 百官會于闕庭。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80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