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명의 상언에 관련하여 공조 참판 윤옥에게 행동을 삼가도록 전교하다
공조 참판 윤옥(尹玉)을 명초하여 전교하기를,
"이 상언 【*.】 을 보니 지극히 불미스럽다. 재상(宰相)의 위치에 있는 자는 청렴하고 근신하여 자신을 단속하는 것이 마땅하겠거늘 지금 이처럼 정소를 당하였으니, 내가 비록 망령된 정소를 믿는 것이 아니나 경은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진정을 당한 내용 중에 그러한 사실이 있으면 고칠 것이요, 없으면 더욱 면려해야 될 일이다. 오늘부터 십분 근신하여 모리배들을 출입시키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윤옥이 아뢰기를,
"정희(鄭熙)와 정헌(鄭獻)은 모두 소신의 어미와 동성(同姓)으로 얼6촌(孼六寸) 관계에 있습니다. 대례(大禮)를 치를 때에 상자(相資)한 일이 있긴 하지만 조금도 혐의를 살 만한 점은 없었습니다. 유모의 남편 문제에 대해서는 과연 그들이 서로 싸운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말하기를, ‘전 남편이 다른 아내에게 장가든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하고 현재 같이 사는 남편을 따르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홍겸(洪謙)이 하루는 옷감을 보내어 부조하면서 자기 아들을 압해관(押解官)으로 삼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즉시로 그것을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이 옷감이 누추하기 짝이 없으니 대경례(大慶禮)의 예물로는 합당하지 않다.’ 하였습니다. 최복윤(崔福潤)도 옷감을 주면서 말하기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원한다.’ 하였는데 그 옷감이 상당히 정교해서 신이 받아서 쓰고 그 뒤에 싯가에 따라 일일이 옷감 값을 지불하였습니다. 김세형(金世亨)은 신과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입니다. 신은 갖춰야 될 예물의 품목을 잘 모르는데 김세형은 연로한 사람으로 일처리를 잘 알기에 예물에 대한 문제는 모두 그에게 맡겨 간품(看品)하게 했습니다.
구청(求請)한 일은, 경상도에 두 사람, 다른 도에 한 사람을 보냈고 경기에는 처음부터 한 사람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16명이라고 하니 이것은 신이 모르는 일입니다. 단천(端川)에서 은(銀)을 무역했던 것은, 당초에 기명(器皿)의 용도가 있을까 하여 값나가는 물건을 보내 무역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직 6진(鎭)의 피물(皮物)을 받지 못했고 평안·황해도의 무명과 명주, 그리고 청홍·전라도의 백저포(白苧布) 등에 대해서는 신이 전적으로 모르는 사실입니다. 다만, 소신의 간찰을 위조하여 열읍(列邑)에 폐해를 끼친 자가 있어서 신이 이미 그를 붙잡아 형조에서 현재 추고하여 심문 중에 있습니다. 위 조항의 일도 이런 간인(奸人)이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제용감(濟用監)의 납포(納布) 및 사저곡(私儲穀)의 수가(受價)에 대한 일은 사람들이 지시해주는 대로 그저 그러려니 하고 했던 것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소신의 집이 빈한해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위로는 국가를 저버리고 아래로는 신하된 몸에 누가 되었으니 신의 죄가 커서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이몽남(李夢男)은 신이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로 가례 때에 최복윤과 함께 모두 사환 노릇을 했었습니다. 일을 치른 뒤에 신이 인정에 못이겨 부경통사(赴京通事)로 임명할 것을 청했으니 이 역시 신의 죄가 큽니다. 신이 10년 동안을 서울에서 떠나 있다가 하루아침에 성상 폐하의 돌보심을 특별히 입어 재상의 반열에 발탁되었거늘 신이 스스로 천은이 망극한 것을 고념(顧念)치 못하고 일 처리를 신중히 하지 못해 사람들의 말을 듣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소신이 저지른 무상한 죄를 속히 다스려 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오늘날 인심(人心)이 간악한 때를 당하여 이언명(李彦明)이 혐의 때문에 이런 고발을 했음이 틀림없다. 재상의 허물을 들추어 내어 임금에게 고해 바쳤으니 그 사람의 죄가 경이 일시적으로 저지른 과오보다 훨씬 크다.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경이 재상의 신분으로서 불미스러운 말을 듣게 되었으니,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이후로 경계하고 삼가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점을 충분히 알도록 한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유학(幼學) 이언명(李彦明)이 상언하기를,"세자빈(世子嬪)은 한 나라의 어머니요, 유모(乳母)는 빈의 어머니입니다. 그렇다면 유모의 남편은 자연히 빈의 유부(乳父)가 되는 셈이니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없는 법이거늘, 빈을 택정할 때에 윤옥이 부상(富商) 정희의 뇌물을 받고 그를 유부로 삼으려 하다가 빈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지난해에는 길례(吉禮)에 쓰일 물품을 무역해오는 일로 역관 홍순언(洪純彦)을 요동 압해관(押解官)으로 삼았었는데 최복윤이 필단(匹緞)을 바치고 청탁하여 가서 무역해 왔습니다. 8도의 각 관(官) 각 포(浦) 및 경상도 산은처(産銀處)·황해도 산피처(産皮處)·평안도 산주처(産紬處)에서는 윤옥이 보낸 시정인들이 그 개인 재화를 싣고 다니면서 길례에 쓰일 물건이라 칭탁하고 멋대로 무역하였는데, 첨사나 수령들은 마음을 다하여 무급(貿給)해 주었습니다. 영남과 호남 지방에 기근이 들었을 때 개인 곡식을 관에 바치고 값을 받지 못한 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옥의 신임을 받는 김세형과 정희 등이 시장 사람들과 동모하고 호조(戶曹)의 색리(色吏)들과 부화뇌동해서 같이 나눠쓰기로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그리하여 조(曹)에 비치된 장부를 몰래 꺼내어 곡식 바친 사람들의 명단을 가려 뽑아, 곡식 값을 받은 것으로 속여 정장(呈狀)을 바치고는, 사저곡 1곡(斛)당 사섬시의 목면(木棉) 2필씩 계산하여 무려 1백여 동(同)을 받아 가로챘으니, 그 무상함을 알 만합니다.……" 하였다. 이언명이란 자를 5부(部)로 하여금 찾아보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이름을 바꿔 정소한 것일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2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19면
- 【분류】사법(司法) / 외교(外交) / 무역(貿易)
○癸丑/命招工曹參判尹玉, 傳曰: "觀此上言, 【幼學李彦明上言曰: "世子嬪, 一國之母, 而乳母, 嬪之母也。 乳母夫, 嬪之乳父也, 不可更改, 而定嬪之時, 玉受富商鄭熙之賂, 欲以爲乳父, 以嬪所不欲而止之。 前年間, 以貿易吉禮物貨, 故以譯官洪純彦, 爲遼東押解官, 而崔福潤納以匹段, 請托往貿。 八道各官各浦及慶尙道産銀處、咸鏡道産皮處、平安道産紬處, 玉之所信市井人, 載其私貨, 托稱吉禮之物, 任意貿易, 僉使守令等盡心貿給。 兩南飢饉之時, 私穀納官之後, 不得受價者, 頗多。 玉之所信金世亨、鄭熙等, 與市人同謀, 而符同于戶曹色吏, 分用設計, 偸出曹置簿, 抄出納穀人名, 以受價欺罔呈狀, 以司贍寺木綿二匹, 准私穀一斛, 幾受百同, 可見無狀云云。" 此彦明者, 令五部推覓不得, 恐他人變名呈訴。】 至爲不美。 凡爲宰相者, 當守淸謹, 而今者被訴如此。 自上雖不取信狂妄之訴, 在卿不可不愼。 被訴之事, 有則改之, 無則加勉。 自今以後, 十分謹愼, 勿許出入牟利之輩可也。" 尹玉啓曰: "鄭熙、鄭獻, 俱是小臣母同姓孽六寸。 大禮時, 雖有相資之事, 少無所嫌。 乳母之夫, 果相爭, 臣曰: ‘前夫娶他妻已久, 使從時率之夫而已。’ 洪謙一日, 送叚扶助, 且請其子爲押解官。 臣卽還之曰: ‘此叚最陋, 不合大慶禮幣。’ 崔福潤亦授叚子曰: ‘願補一處。’ 其叚頗精, 臣受而用之, 其後叚價一一準給。 金世亨, 臣之同里居。 臣不知禮幣品色, 而以世亨年老事知, 凡干幣物, 使之看品。 求請, 則慶尙二人, 他道一人, 京畿初不送之。 今乃云十六, 此臣未知事也。 端川貿銀, 當初慮有器皿之用, 送價物貿之, 而時未受六鎭皮物, 平安、黃海綿紬, 淸洪、全羅白苧布等, 臣專未之知也。 但有僞造小臣之簡, 作弊列邑者, 臣已捉付刑曹, 時方推訊。 上項等事, 慮又有此等奸人也。 濟用監納布及私儲穀受價, 則因人之所指揮, 循例而爲之。 此則專由於少臣家貧之所致也。 上負國家, 下累臣身, 臣之罪大, 萬死無惜。 李夢男, 臣自少相知, 與崔福潤, 皆使喚於嘉禮時。 成事之後, 臣不勝人情, 請差赴京通事, 此亦臣之罪大矣。 臣十年離於輦轂之下, 一朝特蒙聖眷, 擢置宰相之列, 臣不自顧念天恩罔極, 不謹處事, 致有人言。 請速治小臣無狀之罪。" 傳曰: "當今人心奸惡之時, 彦明必因嫌所爲之事也。 告訐宰相之過于君上, 其人之罪, 乃重於卿一時之過誤也。 眞僞之間, 卿以宰相, 而聽不美之言。 旣往之事則已矣, 今後戒愼, 則更無如此之事, 故使之知悉也。" 勿辭。
- 【태백산사고본】 17책 2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19면
- 【분류】사법(司法) / 외교(外交)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