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정 정광필이 취승을 사양하다
우의정 정광필이 취승(驟陞)243) 으로 굳이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앞서 의정(議政)에 결원이 생겨 상이 성희안(成希顔)·송일(宋軼)에게 누가 합당한가를 묻자 희안이 김응기(金應箕)·정광필(鄭光弼)·신용개(申用漑) 세 사람의 이름을 써서 아뢰었는데, 상이 다시 누가 제일 좋으냐고 묻자, 희안이 아뢰기를 ‘응기는 사람됨이 단아하고 후중하여 몸가짐이 성인과 다름이 없으나, 국가의 큰 일은 광필이 아니면 해낼 수 없습니다. 응기는 이미 영중추(領中樞)가 되었으니 지위가 부족하지 않으며 신용개는 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찌 열 사람의 용개로 광필 한 사람을 바꾸겠습니까! 오늘날 상께서 지성으로 복상(卜相)하시니 실지로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일은 아뢰기를 ‘응기는 성종조(成宗朝)에 이미 현임(顯任)에 제수되어 물망이 그에게로 돌아간 지 하루 이틀이 아니니, 응기로 정승을 삼아야 됩니다.’라고 하여, 두 사람의 의논이 서로 엇갈려 각각 자신의 의견으로 아뢰었는데, 응기는 사람됨이 온순하고 단아하며 신중하고 과묵하여 일거일동에 부정한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벼슬하기 전부터 남들이 안자(顔子)로 지목하였다. 그러므로 복상할 때 인망이 많이 돌아갔고 이 때문에 전조(銓曹)의 주의(注擬)에 역시 수위로 삼았었는데, 상께서 희안을 신임하였으므로, 마침내 광필을 정승으로 삼았다. 광필의 사람됨은 도량이 넓고 생각하는 바가 심원하여, 모든 일에 규각을 드러내지 않았고, 정승이 된 뒤에도 국정을 의논할 때에는 중의를 모은 다음에 자신이 결단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모두 흡족히 여기어 참다운 재상이라 하였으며, 사람들은 희안의 그 명철한 감식에 감복하였다. 응기는 겨우 순종할 뿐이므로 조정에서 실망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61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 [註 243]취승(驟陞) : 갑자기 높은 벼슬에 승진되는 것.
○甲午/右議政鄭光弼, 以驟陞固辭, 不允。
【史臣曰: "先是議政有闕, 上問成希顔、宋軼誰可者, 希顔書金應箕、鄭光弼、申用漑三人之名以啓。 上更問誰當先, 希顔曰: "應箕爲人雅重, 持身雖無異於聖人, 若國家大事, 則非光弼不能爲也。 應箕已爲領中樞, 位非不足。 申用漑有才人也。 然豈以十用漑, 而易一光弼乎? 今日上至誠卜相, 不可不以實啓。" 軼曰: "應箕自成宗朝, 已授顯任, 物望歸之, 非一日。 應箕當作相矣。" 二議相奪, 各以其意啓之。 應箕爲人, 溫恭端雅, 愼默莊重, 一動一靜, 未見不正, 故自未仕之前, 人以顔子目之。 故卜相之時, 人望多歸, 以是銓曹注擬, 亦以爲首。 上雅重希顔, 故竟以光弼爲相。 光弼爲人, 度量寬洪, 思慮深遠, 凡所作爲, 不露圭角。 入相之後, 謀議國政, 集衆議而斷之於己, 衆心洽然, 眞宰相也。 人服希顔之藻鑑。 應箕僅備唯諾, 朝廷缺望。"】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61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