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5권, 성종 1년 5월 17일 甲午 1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근정전에 나아가 중국 사신에게서 고명안과 제문안을 받다

임금이 영창전(永昌殿)에 나아가서 아침 상식(上食)을 올리고, 나와서 막차(幕次)에 나아갔다. 사신이 장차 이르려 하자 임금이 최복(衰服)을 갖추고 근정문(勤政門) 바깥 서쪽 뜰의 막차(幕次)에 나아갔다. 부물(賻物)과 전물(奠物)이 홍례문(弘禮門)으로 들어오자 임금이 지영위(祇迎位)에 나아가서 동쪽을 향해 국궁(鞠躬)하였다. 부물은 근정문 바깥 장전(帳殿)에 안치하고, 전물(奠物)은 영전(靈殿) 【사정전(思政殿).】 에 들이었다. 사신이 차소(次所)로 들어오자 【상사(上使)는 흰 옷을 입고 부사는 검은 옷을 입었다.】 임금이 들어와서 근정전 서쪽 뜰 막차에 나아가고, 종친과 문무 백관은 영전(靈殿) 바깥 뜰의 자리에 나아갔다. 유사(攸司)가 들어와서 고명안(誥命案)은 영좌(靈座) 동쪽에 설치하고, 제문안(祭文案)은 고명안 앞에 설치하되, 모두 남쪽을 향하게 하였다. 전물의 진설(陳設)을 마치자 임금이 영전의 서쪽 계단 밑에 나아갔다. 부물을 정문으로 들여와서 근정전에 두고, 사신이 따라 영전에 들어가서 고명(誥命)과 제문(祭文)을 받들어 각각 안(案)에 놓았다. 그 고명(誥命)에 이르기를,

"조정에서 제후왕(諸侯王)을 대우하기를 살아서는 벼슬로 그 귀(貴)함을 누리게 하고, 죽으면 시호(諡號)로 그 행실을 표하여 내외 원근(內外遠近)이 그 제도가 한결같으니, 시종(始終)의 의리를 온전히 하고 넓고 큰 은혜를 보이는 바이다. 고(故) 조선 국왕(朝鮮國王) 성(姓) 휘(諱)는 의용(儀容)이 깊고 묵중하며 학문이 넓고 통(通)하며, 덕(德)을 펴고 인(仁)을 행하여, 선왕(先王)을 잇는 뜻을 바꾸지 아니하고 때에 맞추어 조공(朝貢)하여 대국을 섬기는 마음을 굳게 하였다. 비록 수(壽)는 길지 못하였으나 명예는 이미 드러났으므로, 이에 특별히 시호를 ‘양도(襄悼)’라 한다. 아아! 하늘이 수(壽)주지 아니하니 길고 짧음이 명이 있음을 알겠고, 절혜(節惠)389) 의 예(禮)를 행하니 무궁한 영광을 기약한다. 아아! 너 영혼은 나의 특별한 은혜를 받으라."

하였고, 그 제문(祭文)에 이르기를,

"황제가 태감(太監) 김흥(金興)과 행인(行人) 강호(姜浩)를 보내어 조선 국왕(朝鮮國王) 성(姓) 휘(諱)에게 유제(諭祭)한다. 오직 왕은 선왕의 정사를 이어 맡아, 동쪽 바다를 지켜서 바야흐로 수복(壽福)을 편히 누리고 너희 나라 사람들을 편히 하며, 공경하게 충성을 가지고 짐(朕)의 울타리와 방패가 되기를 기약하였더니, 어찌 해를 지나지 아니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가? 부음(訃音)이 멀리 이르니 진실로 애처로움이 간절하다. 이에 특별히 시호를 ‘양도(襄悼)’라 하고 관원을 보내어 유제(諭祭)하니, 영혼은 이를 알고 공경히 아름다운 명을 받으라."

하였다. 임금이 서쪽 계단으로 올라 동쪽으로 향한 자리에 나아가고, 사신(使臣)은 향안(香案) 앞에 나아가 북쪽을 향해 서서 향을 올리고 술을 드렸다. 【모두 집사자(執事者)로 하여금 연달아 세 번 올리고 세 번 전(奠)드리게 한다.】 찬독관(贊讀官)이 제문을 받들고 서쪽을 향해 서서 읽기를 마치고는, 받들고 요소(燎所)에 나아가서 태웠다. 제사를 마치자 사신이 나와서 막차(幕次)에 나아가고, 임금도 나와서 막차에 나아갔다. 백관이 근정전 뜰에 반(班)을 옮기기를 기다려서, 사신은 전(殿)에 올라 자리에 나아가고 임금은 계단 사이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서 의식과 같이 부물(賻物)을 받았다. 사신이 나가니 임금이 근정문 밖에 이르러 전송하고, 승문원(承文院) 관원이 황지(黃紙)에 고명(誥命)을 전사(傳寫)하여 고명함(誥命函) 뒤에 놓았다. 전물(奠物)이 끝나자 임금이 들어와서 영전(靈殿) 동쪽 계단 밑 절하는 자리에 나아갔다. 올라와 영좌(靈座) 앞에 나아가서 폐(幣)를 드리고, 또 올라와서 북쪽을 향해 꿇어않았다. 대축(大祝)이 고명을 가지고 동쪽을 향해 꿇어앉아서 읽기를 마치자, 임금이 또 술잔을 드리는 자리에 나아가서 부복(俯伏)하였다가 일어나서 꿇어앉았다. 대축이 꿇어앉아 제문을 읽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고애자(孤哀子) 사왕(嗣王) 신(臣) 휘(諱)는 황고(皇考) 예종 양도 흠문 성무 의인 소효 대왕(睿宗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에게 감히 밝게 고합니다. 아아! 황고께서는 용(勇)과 지(智)를 하늘에서 주어 우리 조왕(祖王)의 업(業)을 이으사 능히 전대(前代)의 일을 독실히 행하더니, 어찌하여 하늘에서 재앙을 내려 수(壽)를 길게 못하셨습니까? 작은 내가 업을 이어받으니 한스러움이 가이 없습니다. 부음(訃音)이 올라가자 천자(天子)가 애석하여 휘호(徽號)를 내리니 은총이 빛납니다. 슬픔과 영광이 갖추 지극하고 감격과 아픔이 서로 간절합니다. 예(禮)에 분황(焚黃)함이 마땅하므로 공손히 비박(菲薄)한 제물을 올리니, 작은 정성임을 헤아리시고 굽어 흡향(歆饗)하소서."

하였다. 대축이 고명의 사본(寫本)을 가지고 요소(燎所)에 나아가 태웠다. 제사를 마치고 임금이 재전(齋殿)으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1책 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8책 49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89]
    절혜(節惠) : 죽은 사람에게 마지막 은혜(恩惠)를 베풀어 그 시호(諡號)를 내려 주는 일. 곧 역명(易名)하는 것을 말함.

○甲午/上詣永昌殿, 朝上食, 出御幕次。 使臣將至, 上具衰服, 御勤政門外西庭幕次。 賻物、奠物, 入弘禮門, 上就祗迎位, 東向鞠躬。 賻物安於勤政門外帳殿, 奠物入靈殿。 【思政殿】 使臣入次, 【上使著白衣, 副使著黑衣。】 上入就勤政殿西庭幕次, 宗親及文武百官入就靈殿外庭位。 攸司入設誥命案於靈座之東, 祭文案於誥命案之前, 俱南向。 奠物陳設訖, 上就靈殿西階下, 賻物由正門入置勤政殿。 使臣隨入靈殿, 捧誥命及祭文, 各置于案。 其誥命曰:

朝廷之待諸侯, 王生則爵以馭其貴, 沒則諡以表其行, 而於內外遠邇, 其制一焉。 所以全始終之義, 示溥博之恩也。 故朝鮮國王姓諱, 儀容淵默, 學問疏通。 布德行仁, 不替承先之旨; 應時修貢, 克堅事大之心。 雖壽年之不遐, 而聞譽之已著, 玆特諡曰 ‘襄悼。’ 嗚呼! 天不假年, 諒修短之有數; 禮行節惠, 期榮燿之無窮。 咨爾冥靈, 歆予異渥。

其祭文曰:

皇帝遣太監金興、行人(姜誥)〔姜浩〕 , 諭祭于朝鮮國王姓諱。 曰惟王, 克嗣先猷, 繼守東海, 方期安享壽祿, 綏爾國人, 恪秉忠誠, 作朕藩輔。 胡不逾年, 遽玆長逝? 訃音遠至, 良切憫傷。 玆特諡曰 ‘襄悼。’ 遣官諭祭, 靈其有知, 欽承嘉命。

上陞自西階, 詣東向位; 使臣就香案前, 北向立, 上香祭酒。 【皆令執事者, 連三上三奠。】 贊讀官捧祭文西向立, 讀訖, 捧就燎所焚之。 祭畢, 使臣出就幕次, 上亦出就幕次。 竢百官移班勤政殿庭, 使臣陞殿就位, 上就階間拜位, 受賻物如儀。 使臣出, 上送至勤政門外。 承文院官, 以黃紙, 傳寫誥命, 置于誥命函之後。 奠物訖, 上入就靈殿東階下拜位, 陞詣靈座前奠幣, 又陞詣北向跪。 大祝取誥命東向跪。 讀畢, 上又陞奠爵位, 俯伏興跪, 大祝跪讀祭文, 其文曰:

孤哀子嗣王臣諱敢昭告于皇考睿宗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 伏以, 嗚呼! 皇考, 勇智天錫, 承我祖武, 克篤前烈云, 胡降割而不永年? 眇余纉緖, 抱(限)〔恨〕 終天。 訃音上聞, 天子是惜, 錫之徽號, 寵命有赫。 哀榮備至, 感惻交切。 禮當焚黃, 恭陳菲薄, 庶諒微忱, 俯垂歆格。

大祝取誥命寫本, 就燎所焚之。 祭訖, 上還齋殿。


  • 【태백산사고본】 1책 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8책 49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