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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실록5권, 예종 1년 4월 25일 戊寅 2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한명회·최항·권감·이숭원 등이 원숙강을 국문하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도승지(都承旨) 권감(權瑊)·동부승지(同副承旨) 이숭원(李崇元) 등이 원숙강(元叔康)을 국문(鞫問)하니, 원숙강이 말하기를,

"전일 춘추관에 근무할 때 사초(史草)를 보니 모두 그 이름이 써 있어, 신(臣)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사관(史官) 중 직필(直筆)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신은 곧바로 아뢰지를 아니하고 마침내 본원(本院)의 여러 동료들과 의논하여 아뢰었습니다."

하므로, 전교하기를,

"원숙강이 이 말을 반드시 듣고 본 바가 있고, 뜻이 있어 나온 말이다."

하고, 곧 결박하여 장(杖)을 때리려 하니, 원숙강이 말하기를,

"신(臣)은 듣고 본 바가 없고, 다만 언관(言官)으로서 불편한 일을 보고 감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아뢴 것입니다."

하므로, 곧 장(杖) 30대를 때렸으나 끝내 실정을 다 말하기 않고, 다만 말하기를,

"사초에는 이름을 쓰는 것이 옳지 못했기 때문에 사간(司諫) 조간(曹幹)과 더불어 의논하여 아뢰고, 또 성숙(成俶)에게 말했을 따름이며, 나머지는 듣고 본 바가 없고, 또 사사로이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니, 곧 조알(曹斡) 및 헌납(獻納) 장계이(張繼弛)를 잡아오게 하였다. 또 민수(閔粹)에게 물으니, 민수가 말하기를,

"사초에는 처음에는 직필(直筆)이었으나, 고치고 지운 것은 진실로 재상(宰相)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므로, 전교하기를,

"어찌 유독 이들 재상뿐이겠느냐? 그 외에도 두려워한 재상을 모두 물어서 기록하여 아뢰어라."

하니, 민수가 말하기를,

"무릇 재상이면 어느 누군들 가벼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시 두려운 사람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어찌 두려운 자가 없겠느냐? 민수가 오히려 숨기는 것 같으니, 그에게 장(杖)을 때려서 심문하게 하라."

하여, 마침내 장(杖) 10여 대를 때리니, 민수가 말하기를,

"신이 두려워한 재상은 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김질(金礩)·윤자운(尹子雲)·노사신(盧思愼)·한계미(韓繼美)·임원준(任元濬)·홍응(洪應)·이극증(李克增)·서거정(徐居正)·강희맹(姜希孟)·한계희(韓繼禧)·구치관(具致寬)·성봉조(成奉祖)·성임(成任)·이석형(李石亨)·유자광(柳子光)·어유소(魚有沼)·권맹희(權孟禧)·정효상(鄭孝常)·한계순(韓繼純)·윤계겸(尹繼謙)·김겸광(金謙光)·이세겸(魚世謙)·어세공(魚世恭)·정난종(鄭蘭宗)·오백창(吳伯昌)입니다."

하였다. 최연(崔堧)·이인석(李仁錫)·박양(朴良)·이경동(李瓊仝)·경준(慶俊) 등이 민수(閔粹)에게 사초를 빌려 주었다고 해서 잡아 와서 아울러 국문하니, 모두 대답하기를,

"민수가 사초를 빌려 달라기에 생각하기를, 다 같은 사관(史官)이었으므로 주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충순당(忠順堂)에 나아가 조간(曹幹)·장계이(張繼弛)·최연(崔堧) 등 5인에게 항쇄(項鎖)을 풀고 묻기를 기다리게 하였다. 임금이 민수에게 묻기를,

"네가 대신(大臣)의 일을 썼다가 도리어 삭제하였으니, 반드시 네가 대신에게 아부(阿附)하려는 것이다."

하니, 대답하기를,

"신(臣)은 대신에게 원망을 살까 두려웠을 뿐이며, 실제로 아부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므로, 곧 명하여 결박하고 장(杖)을 때리게 하였으나, 민수의 대답이 여전하였다. 명하여 장(杖)을 때리지 말고 결박을 풀게 한 뒤, 또 묻기를,

"처음 사초를 납부할 때에 어떻게 납부하였느냐?"

하니, 민수가 대답하기를,

"이인석(李仁錫)에게 부탁하여 납부하였습니다."

하므로, 즉시 이인석을 국문하니, 말하기를,

"민수가 지난번에 춘추관에 와서 ‘사초에 이름을 쓰는가, 안쓰는가?’라고 묻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이름을 쓴다.’ 하니, 민수가 사초를 봉(封)하여 관(館)425) 에 납부한 뒤에 민수가 신(臣)의 집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가 사초에 양성지(梁誠之)가 구용(苟容)해서 관여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임원준(任元濬)의 의술(醫術)이 정교(精巧)하다는 것을 써 넣어 이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하물며 양성지는 춘추관의 당상(堂上)이라 마음이 매우 편안치 않으니, 도로 내어다가 고쳐 쓰고 싶다.’고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그대의 사초는 나의 소관이 아니고, 또 국사(國史)를 다시 고칠 수 없다.’고 하자. 민수가 묻기를, ‘그 사초를 맡은 당상(堂上)과 낭청(郞廳)은 누구냐?’고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조안정(趙安貞)성숙(成俶)·강치성(康致誠)·최철관(崔哲寬)이다.’ 하니, 민수가 말하기를, ‘조안정·강치성은 내가 친히 사귀는 바이니, 내일 마땅히 강치성에게 청하여 고쳐 쓰겠다.’ 하고, 또 묻기를, ‘그대는 내일 사진(仕進)426) 하는가?’ 하기에, 신은 사진(仕進)한다고 대답하였으나, 그때 몸이 아파 사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수가 사초를 차출(借出)한 것을 신이 사실상 알지 못하였는데, 뒤에 민수를 궐내(闕內)에서 만나 그것을 고쳐 썼는가를 물으니, 대답하지 않고 말하기를, ‘구용(苟容)’ 2자(字)를 고쳐 썼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민수가 사초를 고쳐 쓴 시말(始末)을 이인석이 모두 알고 있으니, 반드시 이도 함께 모의하고 지우고 고쳤을 것이다."

하고, 곧 명(命)하여 장(杖)을 때리고 민수와 대변(對辨)케 하니, 민수가 말하기를,

"이인석은 단지 그 일만 알 뿐이고, 더불어 함께 모의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므로, 단지 장(杖) 4도(度)만을 때리게 하였으나, 그러나 이인석의 대답이 모두 다 바르지 않았고, 단지 일컫기를,

"미혹(迷惑)한 소신(小臣)이 군부(君父)의 앞에 감히 숨김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참으로 미혹한 사람이라면 군부(君父)가 있음을 알 따름인데, 너는 민수가 사초를 고쳐 쓴 것을 알고서도 바로 고(告)하지 아니하였으니, 진실로 미혹한 자가 아니라 계교(計較)가 없는 사람이다."

하고, 민수(閔粹)·원숙강(元叔康)·이인석(李仁錫)을 의금부에 가두게 하고, 조간(曹幹)·장계이(張繼弛)·최연(崔堧)·경준(慶浚)·이경동(李瓊仝)·박양(朴良) 등은 방면하여 직(職)에 나아가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63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領議政韓明澮寧城君 崔恒、都承旨權瑊、同副承旨李崇元等, 鞫元叔康, 叔康曰: "前日仕春秋館, 見史草皆書其名, 臣意謂如是, 則史官無直筆者, 然臣不卽直啓, 乃與本院諸僚議啓。" 傳曰: "叔康此言, 必有所聞見, 有意而發。" 卽縛之, 將下杖, 叔康曰: "臣無所聞見, 但以言官, 見不便事, 不敢緘默, 故與同僚議啓。" 卽杖三十下, 竟不輸情, 但曰: "史草不可書名, 故與司諫曺幹議啓, 又言于成俶而已。 餘無所聞見, 亦不私議於他人。" 卽命拿及獻納張繼弛以來。 又問閔粹, 曰: "史草初則直筆, 而改削者, 誠畏宰相也。" 傳曰: "豈獨此等宰相而已? 其他所畏宰相, 悉問錄啓。" 曰: "凡宰相, 孰爲可輕? 然更無所畏者。" 傳曰: "豈無所畏者? 猶諱之, 其杖問之。" 乃杖十餘下, 曰: "臣之所畏宰相, 鄭麟趾鄭昌孫金礩尹子雲盧思愼韓繼美任元濬洪應李克增徐居正姜希孟韓繼禧具致寬成奉祖成任李石亨柳子光魚有沼權孟禧鄭孝常韓繼純尹繼謙金謙光魚世謙魚世恭鄭蘭宗吳伯昌也。" 以崔堧李仁錫朴良李瓊仝慶俊等, 借史草於, 拿來幷鞫之。 皆對曰: "借史草, 意謂同爲史官, 故與之。" 御忠順堂, 命曺斡張繼弛崔堧等五人, 解鎖待問。 上問曰: "汝書大臣之事, 而反削之, 必汝阿附大臣也。" 對曰: "臣畏取怨於大臣耳, 實無阿附之心。" 卽命縛而杖之, 對如前。 命勿杖解縛, 又問: "初納史草時, 何以納之乎?" 對曰: "囑于李仁錫納之。" 卽鞫仁錫, 曰: "曩到春秋館, 問史草書名不, 臣答曰: ‘書名。’ 封史草納館後, 到臣家曰: ‘吾於史草, 書梁誠之苟容不與, 任元濬醫術精巧, 是未安於心, 況誠之春秋館堂上, 心甚未安, 欲還出改書。’ 臣答曰: ‘汝史草非吾所掌, 且國史不可更改。’ 粹問: ‘其史所掌堂上郞廳爲誰?’ 臣答曰: ‘趙安貞成俶康致誠崔哲寬。’ 曰: ‘安貞致誠, 吾所交親, 明當請於致誠而改書。’ 又問: ‘汝明日仕進乎?’ 臣答以仕進, 而會得病不仕, 故之借出史草, 臣實不知, 後見於闕內, 問其改書, 不答曰: ‘苟容二字改書。’" 上曰: "之史草改書始末, 仁錫悉知之, 必是同謀削改者也。" 卽命杖之, 與對辨, 曰: "仁錫但知其事, 不與同謀。" 只杖四度, 然仁錫之對率皆不直, 只稱: "迷惑小臣, 敢隱於君父之前乎?" 上曰: "汝眞迷惑人也, 則知有君父而已, 汝知改書史草, 而不直告, 非眞迷惑, 無計較人也。" 命囚叔康仁錫于義禁府, 放繼弛瓊仝等, 令就職。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8책 363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