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손이 상중이라 관직을 사양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정창손(鄭昌孫)이 상서(上書)하기를,
"엎드려 듣건대, 성상께서 전지(傳旨)를 내리셔서 신을 특별히 기복(起復)하게 하시고, 곧 신에게 영의정(領議政)을 제수하셨다 하니, 신은 명령을 듣고 매우 놀라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용렬(庸劣)한 자질(資質)로써 성은(聖恩)을 곡진(曲盡)하게 입어 재상의 지위[臺班]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 복(福)이 극(極)에 달하여 재앙(災殃)이 생기고, 하늘이 민흉(愍凶)748) 을 내리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으므로, 상제(喪制)를 힘써 좇아서 조금이라도 망극(罔極)한 은혜에 보답코자 하였는데, 어찌 지금 또 최질(衰絰)749) 중에 있는 신을 기복시키시어 구첨(具瞻)750) 의 지위에 두실 것을 뜻하였겠습니까? 신이 점괴(苫塊)751) 에 있는 지 아직 기년(期年)도 넘기지 못하였는데, 최복(衰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는 것은 마음에 실로 차마 못하겠습니다. 하물며 영의정은 임무가 크고 책임이 중한데, 신은 일찍이 외람되게 〈의정(議政)의 자리에〉 있어 성덕(聖德)에 보답하는 데 조그마한 공효(功效)도 없었으니, 지금 또 다시 슬픔을 잊고 벼슬에 나아가는 것은 의리(義理)를 행하는 데 먼저 어긋난 일이며, 삼가 명절(名節)에 손상될 뿐이니, 장차 어떻게 백료(百僚)의 사장(師長)이 되겠습니까? 또한 탈정 기복(奪情起復)752) 이란 진실로 상전(常典)이 아니니, 이는 금혁(金革)753) 의 위난(危難)이 있을 때에 그 몸이 있고 없음에 따라 국가의 안위(安危)가 달려 있어야만 부득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치평 무사(治平無事)한 때에 어찌 무상(無狀)한 이 몸에게 부득이한 변례(變禮)를 좇아 고금(古今)의 대전(大典)을 무너뜨리십니까? 신이 감히 명절(名節)을 아끼어 망령되게 스스로 사피(辭避)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지정(至情)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신의 간절한 충정(衷情)을 불쌍히 여기시고 성명(成命)을 도로 거두시어, 〈신으로 하여금〉 효도(孝道)의 도리를 빛내게 하여 주소서."
하니, 도승지 조석문(曹錫文)에게 명하여 주육(酒肉)을 가지고 그 집에 가서 내려 주게 하고, 전지하기를,
"나도 진실로 경이 차마 길복(吉服)을 입지 못하는 지정(至情)을 잘 안다. 그러나 명년(明年)의 순행(巡幸)도 또한 군국(軍國)의 대사(大事)이므로, 부득이 특별히 명하여 기복(起復)하게 하는 것이니, 굳이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4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30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 풍속-예속(禮俗)
- [註 748]민흉(愍凶) : 부모를 여의는 불행.
- [註 749]
최질(衰絰) : 상복(喪服)을 이름.- [註 750]
구첨(具瞻) : 여러 사람이 모두 우러러봄.- [註 751]
점괴(苫塊) : 짚을 엮어 자리로 하고, 흙덩이를 베개로 한다는 뜻으로, 상례(喪禮)를 가리키는 말.- [註 752]
탈정 기복(奪情起復) : 부모의 상중에 벼슬에 복임(復任)시키는 것.- [註 753]
금혁(金革) : 전쟁.○鄭昌孫上書曰:
伏聞傳旨特令起復, 卽除臣爲領議政, 臣聞命驚駭, 措身無地。 伏念臣以庸劣, 曲蒙聖恩, 久玷台班, 福極災生, 天降愍凶, 慈母見背。 勉循喪制, 小報罔極之恩, 豈意今又起臣衰絰之中, 置諸具瞻之地乎? 臣在苫塊, 未踰期年, 釋衰從吉, 心實不忍。 況議政任大責重, 臣嘗冒居, 未有寸効以報聖德。 今復忘哀就職, 行義先虧, 祗是傷於名節而已, 將何師長百僚乎? 且奪起復, 固非常典, 其在金革危難之時, 身佩安危而能爲有無, 則不得已而爲之。 今當治平無事之時, 豈宜於無狀之身, 乃依不得已之變禮, 以虧古今之大典哉? 臣非敢矜己名節妄自辭避, 實出於至情也。 伏望矜臣懇迫, 收還成命, 以光孝理。
命都承旨曺錫文, 齎酒肉就賜其第。 傳曰: "予固知卿不忍就吉之至情。 明年巡幸, 是亦軍國大事, 不得已特命起復, 毋固辭。"
- 【태백산사고본】 5책 14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30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 풍속-예속(禮俗)
- [註 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