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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1권, 총서 23번째기사

문종이 세조와 부국 강병에 대해 논하고 향화 야인에 대한 대책을 의논하다

문종세조와 더불어 국사(國事)를 의논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하는 술책은 제가 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국가에서 아직 백에 하나도 거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문종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말할 수 없는가?"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이를 듣는 것이 잡되고, 이를 묻는 것이 경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땅한 사람을 얻어서 오랫동안 맡기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래되면 〈익숙하게〉 알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 재능을 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대저 한번 잘 다스려지면 한번 어지럽게 되는 것[一治一亂]은 이치의 상도(常道)이니, 이제 태평(太平)스러운 것이 이미 오래되었고 천도(天道)로 미루어 보더라도 한번쯤 어지러운 시기에 당할 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나라에 인재가 없고, 오직 소절(小節)만을 살피니 또한 벼루에 먼지가 앉은 것이 아닙니다. 【문종이 일찍이 내연(內宴)에서 시(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삼공(三公)의 책상 위에는 먼지 앉은 벼루가 있고,[三公案上硯留塵] 어사(御史)의 술통 앞에는 꽃이 비친 잔이 놓였네.[御史尊前花映杯]’ 하였으니, 태평 무사(太平無事)한 것을 말한 것이다.】 법에 이르기를, ‘그 오지 않는 것을 믿지 말고,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사세는 마치 제비와 참새가 〈화재가 박두한 것도 모르고〉 당우(堂宇) 안에서 처해 있는 형세입니다. 하루아침에 위급(危急)한 일이 생기면 누가 능히 어모(禦侮)039)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가 오랫동안 강무(講武)를 하지 않으니 무사(武事)가 해이해진 것이 지금같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이에 문종이 말하기를,

"대열(大閱)040) 을 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세조가 아뢰기를,

"대열은 이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모으기는 어렵고 훈련하는 법제가 매우 초초(草草)하니,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하였다. 문종이 말하기를,

"진정 옳은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마치 실상없는 작란을 하는 것 같다. 중년(中年) 이후에는 재산을 영위하고 몸을 보전하여 자손을 위한 계책을 하지 않는 자가 없다. 이는 유독 지금 사람만이 아니라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가령 수양대군(首陽大君) 같은 사람을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삼는다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이 때에 그 정령(政令)과 형벌을 밝게 시행하면 내 장차 개도(開導)하여 천거하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였다. 이때 국가의 여론이 향화 야인(向化野人)041) 들이 많이 서울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는 일없이 봉록(俸祿)을 먹기 때문에, 이들을 추려서 그의 고향으로 돌려 보낼 것을 청한 바 있다. 이에 세조문종에게 말하기를,

"이는 향화(向化)하려는 마음을 막는 것이니, 원대한 계책이 아닙니다. 오랑캐를 제어(制禦)하는 방법은 그들을 부지런히 부리고 편히 거처하게 하면 일없이 봉록을 먹는 것을 어찌 걱정하겠습니까? 부지런히 부리는 것은 그 기운을 제어함이요, 편히 거처하게 하는 것은 그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하니, 문종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 / 군사-병법(兵法) / 외교-야(野) / 어문학(語文學) / 역사-편사(編史)

  • [註 039]
    어모(禦侮) : 외부로부터 당하는 모역을 막아냄.
  • [註 040]
    대열(大閱) : 대규모의 사열.
  • [註 041]
    향화 야인(向化野人) : 우리 나라에 귀화(歸化)해 온 여진족(女眞族)을 말함.

文宗世祖議國事。 世祖曰: "富國强兵之術, 非吾所可言也。 然其道則國未擧百一也。" 文宗曰: "何不可言也?" 世祖曰: "未可以聽之雜, 而問之忽也。 非得人任之久而勿疑, 莫可致也。 久則知, 勿疑則展其才焉。 夫一治一亂, 理之常也, 今太平旣久, 以天道推之, 當一亂之期也。 以吾觀之, 國無人矣, 唯小節是察, 亦非硯留塵也。 【文宗嘗內宴詠詩曰, "三公案上硯留塵, 御史尊前花映杯。" 言太平無事也。】 法曰, ‘毋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之。’ 今日之勢, 燕雀處堂之勢也。 一朝緩急, 誰能禦侮? 國家久不講武, 武事之弛, 此時爲甚。" 文宗曰: "大閱何如?" 世祖曰: "大閱未見益也。 聚之難而習之之制甚草草, 惡乎用?" 文宗曰: "正是。 今之人, 正猶幻戲。 中年以後, 莫不營財保身爲子孫計。 非獨今之人, 自古而然。 假如首陽者爲兵曹判書, 則何憂哉? 孟子曰, ‘及是時明其政刑, 吾將啓而擧之矣," 時國論以向化野人多在京師, 無事而食俸祿, 請抄還其鄕。 世祖言於文宗曰: "此沮向化之心, 非遠謀也。 御夷之道, 使之勞、處之安, 何患乎無事而食俸祿? 使之勞, 御其氣也, 處之安, 御其心也。" 文宗曰: "然。"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 / 군사-병법(兵法) / 외교-야(野) / 어문학(語文學)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