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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51권, 地理志 全羅道 羅州牧 靈巖郡

地理志 / 全羅道 / 羅州牧 / 靈巖郡

영암군(靈巖郡)

본래 백제월내군(月柰郡)이었는데, 신라에서 영암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成宗) 15년 병신에 낭주 안남 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로 고쳤다가, 현종(顯宗) 9년 무오에 다시 지영암군사(知靈岩郡事)로 강등하였고,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별호(別號)는 낭주(朗州)이다. 옛 속현(屬縣)이 4이니, 곤미(昆湄)는 본래 백제고미현(古彌縣)이었는데, 신라에서 곤미로 고쳐서 영암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으며, 황원(黃原)은 본래 백제황술현(黃述縣)이었는데, 신라에서 황원으로 고쳐서 도강(道康)258) 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고쳐서 영암의 임내(任內)로 하였다. 〈그 나머지 옛 속현(屬縣)은〉 옥산(玉山)·옥천(玉泉) 【지금 옛 냉정 부곡(冷井部曲)이라고 보고(報告)하고 있다. 】 이다. 향(鄕)이 2이니, 진남(鎭南)·북평(北平)이요, 소(所)가 4이니, 동백(冬栢)·마봉(馬峯)·신갈(神葛)·귀인(貴仁)이요, 부곡(部曲)이 4이니, 팔마(八馬)·회의(懷義)·송지(松旨)·심정(深井)이다.

진산(鎭山)은 월출(月出)이다. 【군의 남쪽에 있는데, 신라에서 월내악(月柰岳)이라 하여 소사(小祀)에 올렸으며, 고려 초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하였다. 】 사방 경계[四境]는 동·북쪽으로 나주(羅州)에 이르는데, 동쪽이 10리, 북쪽이 18리요, 서쪽으로 바다어귀에 이르기 35리, 남쪽으로 해진(海珍)259) 에 이르기 30리이다.

호수가 3백 33호요, 인구가 1천 2백 29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25명이요, 영군(營軍)이 26명이요, 선군이 2백 59명이다.

토성(土姓)이 6이니, 최(崔)·박(朴)·주(周)·백(白)·혜(嵇)·육(陸)이요, 곤미(昆湄)의 성이 5이니, 허(許)·유(庾)·배(裵)·전(田)·종(鍾)이요, 황원(黃原)의 성이 4이니, 황(黃)·윤(尹)·송(宋)·갈(葛)이요, 【어떤 본(本)에는 송(宋)이 종(宗)으로 되어 있다. 】 옥천(玉泉)의 성이 5이니, 전(全)·윤(尹)·신(愼)·안(安)·박(朴)이요, 【어떤 본에는 전(全)이 김(金)으로 되어 있다. 】 북평(北平)의 성이 1이니, 조(曺)요, 송지(松旨)의 성이 2이니, 김(金)·전(全)이요, 회의(懷義)의 성이 1이니, 전(全)이요, 【어떤 데에는 김(金)으로 되어 있다. 】 심정(深井)의 성이 1이니, 전(全)이다. 【어떤 데에는 김(金)으로 되어 있다. 】 진남(鎭南)의 성이 1이니, 혜(嵇)요, 망성(亡姓)이 1이니, 오(吳)이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다. 간전(墾田)이 6천 5백 4결이요, 【논이 9분의 5이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삼·닥나무·감·밤·석류·왕골이다. 토공(土貢)은 여우가죽·삵괭이가죽·잘·수달가죽·사슴뿔·족제비털·꿀·밀[黃蠟]·칠·숭어·전복·표고·분곽(粉藿)·석이·죽순·작설차·지초·비자·자리이요, 약재(藥材)는 도아조기름·인삼·속돌[水泡石]이요, 토산(土産)은 귤·가는 대·감태[甘苔]이었다. 염소(鹽所)가 3이요, 【염창(鹽倉)이 군의 성 안에 있다. 고려 공양왕(恭讓王) 원년 기사에 해진(海珍) 백야포(白也浦)의 염간(鹽干)을 옮겨 붙여서 군에게 창고를 설치하고 인하여 해남창(海南倉)이라 하고, 군사(郡事)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였다. 염간(鹽干)이 38명인데, 봄·가을에 바치는 소금은 3백 70석이다. 】 자기소가 2이니, 모두 군의 서쪽 곤미(昆湄)다점리(多岾里)에 있고, 【중품이다. 】 도기소가 2이니, 모두 군의 서쪽 곤미율점(栗岾)에 있다. 【하품이다. 】 역(驛)이 1이니, 영보(永保)요, 【옛날에는 남리역(南里驛)이 있었는데, 왜구(倭寇)로 인하여 없어졌다. 】 목장(牧場)이 2이니, 노량(露梁) 【암·수 말 아울러 1백 39필을 방목(放牧)한다. 】임치도(臨緇島) 【암·수 소 2백 21마리를 방목(放牧)한다. 】 요, 관방(關防)은 달량(達梁)이다. 【병선이 머무른다. 】 요해(要害)가 1이니, 통음 소현(通音所峴) 【강진(康津) 북쪽으로부터 영암(靈巖)으로 통한다. 】 이요, 봉화가 2곳이니, 갈두(葛頭)가 군의 남쪽에 있고, 【동쪽으로 강진 좌곡(佐谷)에 응하고, 서쪽으로 해진 화산(花山)에 응한다. 】 황원(黃原)이 군의 서쪽에 있다. 【동남쪽으로 화산(花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무안(務安)의 유달(鍮達)에 응한다. 】

이상한 일[靈異]. 본군 사람의 속설에 전하기를, "고려 때 사람 최씨의 경원 가운데에 오이 하나가 열렸는데, 길이가 한 자나 넘었으므로, 온 집안 사람들이 자못 이상하게 여겼었다. 최씨의 딸이 몰래 이것을 따 먹었더니, 저절로 태기가 있어,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꾸짖고 대숲[竹林]에다 버려 두었는데, 예니레 만에 그 딸이 가서 보니, 비둘기가 와서 날개로 이를 덮고 있었다. 부모에게 여쭈어 가서 보이니, 이상하게 여겨서 데려다가 길렀다. 장성하게 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도선(道詵)이라 하였다." 한다. 《주관육익(周官六翼)》에 이르기를, "도선당(唐)나라에 들어가서 일행 선사(一行禪師)에게 지리법(地理法)을 배워 가지고 돌아왔다. 산(山)을 답사(踏査)하는데,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혹령(鵠嶺)에 이르러 세조(世祖)의 집을 지나다가, 그 새로 집짓는 곳을 보고 이에 말하기를, ‘피[穄]를 심을 땅에 【우리 말에 피[穄]와 임금[王]은 음(音)이 다르나, 뜻이 같은 까닭이다. 】 어찌 삼[麻]을 심는고.’ 하고, 말을 마치자 가니, 부인이 이 말을 듣고서 들어가 세조(世祖)에게 고하였다. 세조가 황급하여 신을 거꾸로 신고 뒤쫓아 가서 만나보니, 옛부터 서로 아는 듯하여 같이 유람하기를 청하였다. 함께 구령(鳩嶺)에 올라가서 산수(山水)의 맥(脈)을 살펴보았는데, 도선이 위로 천문(天文)을 바라보고 아래로 시기의 운수[時數]를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 땅의 맥(脈)이 임방(壬方)인 백두산(白頭山)으로부터 수(水)와 목(木)이 근간(根幹)이 되어 내려와서 마두명당(馬頭明堂)260) 이 되었으니, 마땅히 수(水)의 큰 수[大數]를 쫓아서 집을 육육(六六)으로 지어 36간으로 하면, 하늘과 땅이 큰 수[大數]에 부응할 것입니다. 만일 이 비결(秘訣)대로 하면 반드시 거룩한 아들[聖子]을 낳게 될 것이니, 마땅히 그 이름을 왕건(王建)이라 할 것입니다.’ 하고, 인하여 비봉(秘封) 한 통을 만들어 겉봉에 쓰기를, ‘삼가 글월을 받들어 백배(百拜)하고 미래(未來)에 삼한(三韓)을 통합할 임금 대원 군자(大原君子) 족하(足下)께 드립니다.’ 하였다. 세조가 즉시 이 비결을 좇아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이듬해에 과연 태조(太祖)261) 를 낳았다." 한다.

월경(越境)은 강진(康津)무위동(無爲洞)·월남동(月南洞)·구은촌(仇隱村)·좌곡리(佐谷里)·상곡리(上谷里)의 땅이 군의 남쪽 해진(海珍) 비곡(比谷)·별진(別珍)·북구말(北仇末)·묵산(墨山)·구산(狗山)·안복(安福)·가차량(加次良)·물야지(勿也只)의 땅과 합하여 군의 남쪽에 들어와 있고, 나주(羅州)가좌촌(加佐村)해진(海珍)명산촌(命山村)의 땅이 군의 북쪽에 들어와 있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59면

靈岩郡: 本百濟 月奈郡, 新羅靈巖, 高麗 成宗十五年丙申, 改朗州安南都護府。 顯宗九年戊午, 復降爲知靈巖郡事, 本朝因之, 別號朗州。 古屬縣四。 昆湄, 本百濟 古彌縣, 新羅昆湄, 爲靈巖領縣, 高麗因之。 黃原, 本百濟 黃述縣, 新羅黃原, 爲道康領縣, 高麗改爲靈巖任內。 玉山玉泉 【今報古之冷井部曲。】 鄕二, 鎭南北平。 所四, 冬栢馬峯神葛䰎仁。 部曲四, 八馬懷義松旨深井。 鎭山, 月出 【在郡南, 新羅稱月柰岳, 躋小祀, 高麗初, 稱月生山。】 四境, 東北距羅州東十里, 北十八里, 西距海口三十五里, 南距海珍三十里。 戶三百三十三, 口一千二百二十九。 軍丁, 侍衛軍二十五, 營軍二十六, 船軍二百五十九。 土姓六, 昆湄姓五, 黃原姓四, 【宋, 一本作宗。】 玉泉姓五, 【全, 一本作金。】 北平姓一, 松旨姓二, 懷義姓一, 【一作金】 深井姓一, 【一作金。】 鎭南姓一, ; 亡姓一, 。 厥土肥塉相半, 墾田六千五百四結。 【水田九分之五。】 土宜五穀, 麻、楮、柿、栗、石榴、莞。 土貢, 狐狸山水獺皮、鹿角、黃毛、蜂蜜、黃蠟、漆、水魚、全鮑、蔈膏、粉藿、石茸、笋、雀舌茶、芝草、榧子、席。 藥材, 島阿鳥油、人蔘、水泡石。 土産, 橘、篠、甘笞。 鹽所三, 【鹽倉在郡城內。 高麗 恭讓王元年己巳, 以海珍 白也浦鹽干移屬郡置倉, 因名海南倉, 令郡事掌之。 鹽干三十八名, 春秋貢鹽三百七十名。】 磁器所二, 皆在郡西昆湄 多岾里。 【品中。】 陶器所二, 皆在郡西昆湄 栗岾 【品下】 驛一, 永保 【古有南里驛, 因倭寇敗亡。】 牧場二, 露梁 【放雌雄馬幷一百三十九匹】 臨緇島 【放雌雄牛二百二十一首】 關防, 達梁 【兵船泊立。】 要害一, 通音所峴 【自康津北指靈巖。】 烽火二處, 葛頭在郡南, 【東準康津 佐谷, 西準海珍 花山。】 黃原在郡西。 【東南準花山, 北準務安 鍮達。】 靈異, 郡人諺傳高麗時人崔氏園中, 有一瓜, 長尺餘, 一家頗異之。 崔氏女潛摘食之, 歆然有娠, 彌月生子。 父母責以無人道而生兒, 置之于竹林, 居數七日, 女往視之, 有鳩來覆翼之, 告于父母, 往見異之, 撫養。 及長, 祝髮爲僧, 名道詵《周官》 《六翼》云: "道詵, 傳得一行禪師地理之法而還, 踏山自白頭山鵠嶺, 因過世祖宅, 見其新搆處, 乃曰: ‘種穄之地 【鄕言穄, 與王音異意同故云。】 何種麻耶?' 言訖而去。 夫人聞而入告世祖, 倒屣追之, 及見, 如舊相識, 請與同遊, 共登鳩嶺, 究觀山水之脈。 上觀天文, 下察時數曰: ‘此地脈, 自壬方白頭山水母木幹來, 落馬頭明堂, 宜從水之大數, 作宇六六爲三十六區, 則符應天地之大數。 若依此訣, 必生聖子, 宜名曰王建。' 因作實封一道, 外封云: ‘謹奉書百拜, 獻于未來統合三之主大原君子足下。' 世祖卽從密訣, 造屋居之, 明年, 果誕太祖。" 越境, 康津 無爲洞月南洞仇隱村佐谷里上谷里之地, 合于郡南; 海珍 比谷別珍北仇末墨山狗山安福加次良勿也只之地, 入于郡南; 羅州 加佐村海珍 命山村之地, 入于郡北。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