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理志 / 忠淸道 / 公州牧 / 定山縣
◎ 정산현(定山縣)
본래 백제의 열이현(悅已縣)인데, 신라에서 열성현(悅城縣)으로 고쳐서 부여군(扶餘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현종(顯宗) 9년에 공주(公州) 임내에 붙이었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고, 본조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으로 고쳤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공주에 이르기 15리, 서쪽으로 청양(靑陽)에 이르기 10리, 남쪽으로 부여(扶餘)에 이르기 15리, 북쪽으로 신풍에 이르기 9리이다.
호수가 2백 58호요, 인구가 1천 1백 13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13명, 진군(鎭軍)이 5명, 선군이 1백 24명이다.
토성(土姓)이 1이니, 이(李)요, 촌성(村姓)이 1이니, 방(方)이요, 망성(亡姓)이 3이니, 전(田)·송(宋)·임(林)이다.
땅은 기름진 것이 적고, 메마른 것이 많다. 간전(墾田)이 2천 2백 77결이요, 【논이 3분의 1에 좀 넘는다. 】 토의(土宜)는 기장·벼·피·콩·조·팥·메밀·모과·배·닥나무·모시이다. 토공(土貢)은 칠·느타리·대추·싸리버섯·감·족제비털·잡깃·시우쇠[正鐵]·여우가죽·삵괭이가죽이요, 약재(藥材)는 북나무진[安息香]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요, 【현의 서쪽 장항리(獐項里)에 있는데, 중품(中品)이다. 】 도기소(陶器所)가 1이다. 【현의 동쪽 계봉동(溪鳳洞)에 있는데, 하품이다. 】
계봉산 석성(鷄鳳山石城) 【현의 동쪽 5리에 있는데, 둘레가 1백 60보이며, 좀 험하다. 안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하며, 또 군창(軍倉)이 있다. 】 역(驛)이 1이니, 유양(楡楊)이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31면
◎ 定山縣: 本百濟 悅己縣, 新羅改爲悅城縣, 爲扶餘郡領縣, 高麗改今名。 顯宗戊午, 屬公州任內, 後置監務。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縣監。 四境, 東距公州十五里, 西距靑陽十里, 南距扶餘十五里, 北距新豐九里。 戶二百五十八, 口一千一百十三。 軍丁, 侍衛軍十三, 鎭軍五, 船軍一百二十四。 土姓一, 李; 村姓一, 方; 亡姓三, 田、宋、林。 厥土肥少塉多, 墾田二千二百七十結。 【水田三分之一强】 土宜, 黍、稻、稷、菽、粟、小豆、蕎麥、木瓜、梨、楮、苧。 土貢, 漆、眞茸、棗、鳥足茸、柿、黃毛、雜羽、正鐵、狐皮、狸皮。 藥材, 安息香。 磁器所一, 【在縣西獐項里, 中品。】 陶器所一。 【在縣東鷄鳳洞, 下品。】 鷄鳳山石城 【在縣東五里, 周回一百六十步, 微險阻。 內有井一, 冬夏不渴, 有軍倉。】 驛一, 楡楊。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