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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49권, 地理志 忠淸道 淸州牧 鎭川縣

地理志 / 忠淸道 / 淸州牧 / 鎭川縣

진천현(鎭川縣)

본래 고구려금물노군(今勿奴郡)인데, 【또는 만노군(萬弩郡)이라 한다. 】 신라흑양군(黑壤郡)으로 고쳤고, 【흑(黑)이 또는 황(黃)으로도 되어 있다. 】 고려진주(鎭州)로 고쳐서 성종(成宗) 을미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목종(穆宗) 을사에 자사를 혁파하였다. 현종(顯宗) 무오에 청주(淸州) 임내에 붙였더니, 고종(高宗) 46년 기미에 위사 공신(衛社功臣) 임연(林衍)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영(令)을 두었다. 충경왕(忠敬王) 10년 기사에 또 지의령군사(知義寧郡事)로 승격시켰다가, 임연(林衍)이 베임을 당하게 되매, 진주 감무(鎭州監務)로 강등하였고, 본조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진천 현감(鎭川縣監)으로 고쳤다. 별호는 상산(常山)이다. 【순화(淳化) 때에 정한 것이다. 】 속향(屬鄕)이 1이니, 금천(金泉)이다. 【천(泉)을 세속에서 잘못 진(眞)으로 일컫는다. 】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청안(淸安)에 이르기 19리, 서쪽으로 직산(稷山)에 이르기 23리, 남쪽으로 청주(淸州)에 이르기 21리, 북쪽으로 죽산(竹山)에 이르기 28리이다.

호수가 5백 50호요, 인구가 1천 9백 23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58명, 진군(鎭軍)이 10명, 선군(船軍)이 2백 13명이다.

토성(土姓)이 10이니,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이다.

땅이 메마르며, 간전(墾田)이 6천 5백 99결이요, 【논이 4분의 3에 좀 넘는다. 】 토의(土宜)는 오곡(五穀)과 조·참깨·팥이다. 토공(土貢)은 지초·꿀·밀[黃蠟]·대추·칠(漆)·잡깃[雜羽]·여우가죽·삵괭이가죽·표범가죽·족제비털[黃毛]이요, 약재(藥材)는 인삼·복신(茯神)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현의 서쪽 대삼동(大三洞)에 있고, 【하품이다. 】 도기소(陶器所)가 1이니, 현의 서쪽 구사리(狗死里)에 있다. 【하품이다. 】

역(驛)이 2이니, 장양(長楊)·퇴량(堆糧)이요, 【세속에서 그릇 태량(台量), 또는 태랑(台郞)이라 한다. 】 봉화가 1곳이니, 현의 남쪽 소이산(所伊山)이다. 【남쪽으로 청주(淸州) 것대(巨叱大)에, 북쪽으로 충주(忠州) 망이성(望伊城)에 응한다. 】 태령산(胎靈山)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만노군 태수(萬弩郡太守) 김서현(金舒玄)의 아내 만명(萬明)이 아이를 밴 지 20달 만에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유신(庾信)이라 하고, 태(胎)를 현의 남쪽 15리에 묻었는데, 화하여 신(神)이 되었으므로, 태령산이라 하였다. 신라 때부터 사당을 두고 〈나라에서〉 봄·가을에 향(香)을 내리어 제사를 지냈으며,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라 행하였다. 본조 태조(太祖) 무인(戊寅)에 이르러 비로소 국제(國祭)를 정지하고 소재관(所在官)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 속칭 태산(胎山)이라 한다. 】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30면

鎭川縣: 本高句麗 今勿奴郡, 【一云萬弩郡】 新羅改名黑壤郡, 【黑一作黃】 高麗改爲鎭州成宗乙未, 置刺史, 穆宗乙巳, 罷刺史。 顯宗戊午, 屬淸州任內, 高宗四十六年己未, 以衛社功臣林衍內鄕, 陞爲彰義縣, 置令。 忠敬王十年己巳, 又陞爲知義寧郡事, 及誅死, 降爲鎭州監務。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鎭川縣監, 別號常山 【淳化所定】 屬鄕一, 金泉 【泉俗訛稱眞】 四境, 東距淸安十九里, 西距稷山二十三里, 南距淸州二十一里, 北距竹山二十八里。 戶五百五十, 口一千九百二十三。 軍丁, 侍衛軍五十八, 鎭軍十, 船軍二百十三。 土姓十, 。 厥土塉, 墾田六千五百九十九結。 【水田四分之三强】 土宜五穀, 粟、芝麻、小豆。 土貢, 芝草、蜂蜜、黃蠟、棗、漆、雜羽、狐皮、狸皮、豹皮、黃毛。 藥材, 人參、茯神。 磁器所一, 在縣西大三洞 【下品】 陶器所一, 在縣西狗死里 【下品】 驛二, 長楊推粮。 俗訛爲台量, 又訛爲台郞。 烽火一處, 縣南所伊山 【南準淸州、巨叱大, 北準忠州望伊城。】 胎靈山 【新羅眞平王時, 萬弩郡太守金舒玄之妻萬明姙身, 二十月生子, 名曰庾信, 藏胎於縣南十五里, 化爲神, 因號胎靈山。 自新羅時置祀宇, 春秋降香行祭, 高麗因而不革, 至本朝太宗戊寅, 始停國祭, 令所在官行祭, 俗稱胎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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