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理志 / 京畿 / 水原都護府 / 龍仁縣
◎ 용인현(龍仁縣)
용구현(龍駒縣)은 본래 고구려의 구성현(駒城縣)인데, 신라가 거서(巨黍)로 고쳐서 한주(漢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가 용구현(龍駒縣)으로 고쳐, 현종(顯宗)무오095) 에 다시 광주(廣州) 임내(任內)에 붙이었다가, 명종(明宗) 임진096) 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뒤에 현령(縣令)으로 승격시켰다. 처인현(處仁縣)은 본래 수원(水原)에 소속시켜 부곡(部曲)을 삼았었는데, 현종 무오097) 에 이미 이 이름이 있었다. 본조(本朝) 태조(太祖) 정축098) 에 비로소 현령을 두었고, 태종(太宗) 계사099) 에 2현(縣)을 합하여 용인(龍仁)이라 하였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양지(陽智)에 이르기 25리, 서쪽으로 수원에 이르기 13리, 남쪽으로 양성(陽城)에 이르기 50리, 북쪽으로 광주에 이르기 15리이다.
호수(戶數)가 4백 57호, 인구가 1천 1백 68명이요,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66명, 선군(船軍)이 76명이다.
용구의 토성(土姓)이 5이니, 진(秦)·이(李)·송(宋)·용(龍)·엄(嚴)이요, 처인의 토성이 6이니, 이(李)·서(徐)·지(池)·섭(葉)·김(金)·강(康)이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 되며, 간전(墾田)이 5천 9백 88결(結)이다. 【논이 8분의 3이 좀 넘는다. 】 토의(土宜)는 오곡(五穀)과 조·팥이요, 토공(土貢)은 싸리버섯[鳥足茸]·지초(芝草)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요, 【옛 처인(處仁) 가마골[窰山洞里]에 있는데, 하품(下品)이다. 】 도기소(陶器所)가 1이다. 【옛 처인 달바위[甘岩里]에 있으니, 하품이다. 】
보개산 석성(寶蓋山石城) 【현(縣) 동쪽에 있다. 높고 험하며, 둘레가 9백 42보(步)이다. 안에 작은 우물이 있는데, 가뭄을 만나면 말라 버린다. 】 역(驛)이 2이니, 구흥(駒興)과 【본 이름은 용흥(龍興)인데, 정승(政丞) 하윤(河崙)이 지나다가 이르기를, "용흥은 참역(站驛)의 이름으로는 맞지 아니하다." 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 금령(金嶺)이요, 봉화가 1곳이니, 석성(石城)이다. 【현 동쪽에 있다. 동쪽으로 죽산(竹山) 건지산(巾之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광주(廣州) 천천산(穿川山)에 응한다. 】
- 【태백산사고본】 52책 148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20면
- [註 095]무오 : 9년.
- [註 096]
임진 : 2년.- [註 097]
◎ 龍仁縣: 龍駒縣, 本高句麗 駒城縣, 新羅改名巨黍, 爲漢州領縣, 高麗改爲龍駒縣, 顯宗戊午, 仍屬廣州任內。 明宗壬辰, 始置監務, 後陞爲令。 處仁縣, 本屬水原爲部曲, 顯宗戊午, 已有此名。 本朝太祖丁丑, 始置令。 太宗癸巳, 倂二縣號龍仁。 四境, 東距陽智二十五里, 西距水原十三里, 南距陽城五十里, 北距廣州十五里。 戶四百五十七, 口一千一百六十八。 軍丁, 侍衛軍六十六, 船軍七十六。 龍駒土姓五, 秦、李、宋、龍、嚴。 處仁土姓六, 李、徐、池、葉、金、康。 厥土肥塉相半, 墾田五千九百八十八結。 【水田居八分之三强】 土宜五穀, 粟、小豆。 土貢, 鳥足茸、芝草。 磁器所一, 【在古處仁窰山洞里, 下品。】 陶器所一。 【在古處仁甘岩里, 下品。】 寶盖山石城。 【在縣東, 高險, 周回九百四十二步, 內有小井, 遇旱則渴。】 驛二, 駒興、 【本名龍興, 政丞河崙過之曰: "龍興, 非所以名站驛也。" 乃改今名。】 金嶺。 烽火一處, 石城。 【在縣東, 東準竹山之山, 北準廣州穿川山。】
- 【태백산사고본】 52책 148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20면
- [註 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