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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33권, 五禮 軍禮儀式 大閱儀

五禮 / 軍禮儀式 / 大閱儀

대열의(大閱儀)363)

기일(期日) 전 11일에 병조에서 계문(啓聞)하여 대열(大閱)을 청하고, 교지(敎旨)를 받들어 마침내 장수(將帥)에게 명하여 군사를 검열(檢閱)하게 한다. 유사(有司)가 먼저 풀을 베고 땅을 손질하여 장소를 만드는데, 사방이 1천 2백 보(步)나 되며, 사방으로 나가 화문(和門)을 만든다. 【군문(軍門)을 화문(和門)이라 이른다. 】 또 그 안에 보군(步軍)과 기군(騎軍)의 군영(軍營)을 만들어 처소(處所)를 설정(設定)하고, 두 진(陣)으로 나누어 동쪽·서쪽에서 서로 보게 하되, 중간에서 서로 떨어지기가 3백 보나 되게 하고, 매 50보마다 표(表)를 세워 1행(行)으로 삼는데, 무릇 5행으로써 군사들의 진퇴(進退)하는 절차로 삼는다. 또 선지(墠地)를 장소 북쪽에 별도로 설치하여, 거가(車駕)가 머물러 관람하는 장소로 삼는다.

기일 전 1일에 충호위(忠扈衛)에서 장전(帳殿)을 선소(墠所)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또 소차(小次)를 장전의 북쪽에 설치하되, 땅의 적당한 데 따르게 하고, 왕세자(王世子)의 막차(幕次)를 소차(小次)의 남쪽에 동쪽 가까이 서향하여 설치한다. 액정서(掖庭署)에서 어좌를 장전 안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전의(典儀)가 왕세자와 종친·문무 백관들의 배위(拜位)를 장전의 남쪽에 설치하고, 집사관의 자리를 설치하되 모두 평상시와 같이 한다. 장수와 사졸(士卒)들이 선소에 집합하여서 떠드는 것을 금지시키고, 사방의 빛깔[方色]에 따라 기(旗)를 세워 화문을 만들고, 기고(旗鼓)와 갑장(甲仗)으로 위의(威儀)가 모두 갖추게 된다. 대장(大將) 이하의 군관(軍官)들은 각각 통솔이 있음이 평상시의 규정과 같다. 장수가 먼저 사졸(士卒)들에게 정기(旌旗)의 지휘(指揮)하는 자취와 【기(旗)를 눕히면 곧 꿇어앉고, 기를 들면 곧 일어난다. 】 금고(金鼓)의 행동·정지하는 절차를 【북[鼓]을 치면 곧 앞으로 나가고, 쇠[金]를 울리면 곧 그친다. 】 바라보고 듣게 한다.

그날 미명(未明)의 10각(刻)에 군사들이 모두 엄중히 경비(警備)하고, 기병(騎兵)과 보병(步兵)이 모두 갑주(甲胄)를 갖추고 각각 직진(直陣)을 만들어 대기(待機)한다. 장군(將軍)과 대장(大將)이 각각 위의(威儀)를 갖추어 기고(旗鼓)의 아래에 선다.

미명(未明) 7각(刻)에 고(鼓)가 1엄(嚴)을 알리면, 병조에서 아뢰어 궁전문(宮殿門)과 성문(城門)을 열고, 여러 위(衛)의 군사를 거느리고 대가 노부(大駕鹵簿)와 군사를 진열하고, 판사복(判司僕)이 여(輿)·연(輦)·어마(御馬)·입장마(立仗馬)를 진열하되, 모두 홍례문(弘禮門) 밖에서 나누어 서기를 의식과 같이 한다. 전후(前後)의 기병대(騎兵隊)와 보병대(步兵隊)가 각각 무기와 제복을 갖추고 【무릇 군사들은 모두 같이 하는데, 창대(槍隊)는 창을 쥐고, 검대(劍隊)는 장검(長劍)을 쥐고, 사대(射隊)는 궁시(弓矢)를 가진다. 】 차례대로 둔쳐 늘어서서, 부오(部伍)를 정숙(整肅)하게 하여 떠들지 못하게 한다. 종친과 백관들이 모두 조방(朝房)에 집합한다.

미명(未明) 5각(刻)에 고(鼓)가 2엄(嚴)을 알리면, 종친과 백관들이 평상복(平常服) 차림으로써 시립(侍立)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왕세자가 평상복 차림으로써 나오면 【그 내엄(內嚴)을 알리고, 외비(外備)를 아뢰고, 시위(侍衛)하기를 모두 평상시와 같이 한다. 】 좌중호(左中護)가 인도하여 광화문(光化門) 밖의 막차(幕次)에 나아가서 앉게 하는데 【기일(期日) 전 1일에 충호위(忠扈衛)에서 위차(位次)를 설치한다. 】 시위(侍衛)하기를 평상시와 같이 한다. 여러 위에서 각각 그 소속 군사를 감독하여 근정전(勤政殿)의 전정(殿庭)에 들어와서 진열하고, 시신(侍臣)이 섬돌 아래에 나아가서 왼쪽·오른쪽으로 나누어 서고, 여러 호위하는 관원과 【도진무(都鎭撫) 1인, 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2인, 충의위(忠義衛)·충순위(忠順衛)·별시위(別侍衛)의 절제사(節制使) 각각 1인, 운검(雲劍)을 찬 중추(中樞) 4인, 갑(甲)을 받든 상호군(上護軍)·주(胄)를 받든 상호군 각각 1인, 궁시(弓矢)를 받든 상호군·운검을 받든 대호군(大護軍)·책(策)을 가진 대호군 각각 2인, 궁시를 가진 호군(護軍)·몸을 방비하는 호군 각각 8인, 사복관(司僕官) 6인이다. 】 사금(司禁)이 각각 무기와 제복을 갖추고, 상서관(尙瑞官)이 어보(御寶)를 받들고 모두 사정전(思政殿)의 합문(閤門) 밖에 나아가서 사후(伺候)한다. 판통례가 합문 밖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앉아 중엄(中嚴)을 계청(啓請)하면, 판사복이 어마(御馬)를 근정문 밖에 올린다.

미명(未明) 2각에 고가 3엄을 알리면, 좌중호(左中護)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막차를 나와서 시립하는 자리로 나아가는데, 종소리가 그친다. 판통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외판을 아뢰면, 전하가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여(輿)를 타고 나오는데, 산(繖)과 선(扇)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상서관(尙瑞官)이 어보(御寶)를 받들고 앞에서 인도하여 【어보(御寶)를 싣고 가기를 평상시와 같이 한다. 】 근정문 밖에 이른다. 판통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여에서 내려 말을 타기를 계청(啓請)하면 전하가 여에서 내려 말을 타는데, 좌우(左右)의 시신(侍臣)이 옆에서 모시기를 평상시와 같이 한다. 어가(御駕)가 광화문(光化門) 밖에 이르면, 왕세자가 국궁하였다가 어가가 지나가면 몸을 그전대로 편다. 시신(侍臣)의 상마소(上馬所)에 이르러 어가가 조금 머물면, 시신이 말을 탄다. 이를 마치면, 어가가 움직이는데, 고취(鼓吹)가 시작된다. 종친과 백관들이 국궁하였다가 어가가 지나가면 몸을 그전대로 펴고, 왕세자와 종친·백관들이 차례대로 시위(侍衛)하기를 평상시와 같이 한다.

어가가 선소(墠所)에 이르면, 병조 판서가 말을 타고 받들어 인도하여 도선소(都墠所) 북쪽의 화문(和門)으로부터 들어와서, 소차(小次)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악차(幄次)에 들어간다. 좌중호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악차(握次)에 나아가는데, 전의(典儀) 이하의 관원이 먼저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간다. 봉례랑(奉禮郞)이 종친과 백관들을 나누어 인도하여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가고, 부지통례(副知通禮)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간다. 【인순부(仁順府)에서 욕석(褥席)을 설치한다. 】 전하가 악차에서 나와 자리에 나아가는데, 산(繖)과 선(扇)으로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승지(承旨)가 들어와서 장전(帳殿)의 서남 모퉁이에 나아가서 북향하고, 동쪽을 상(上)으로 하여 부복하고, 사관(史官)은 그 뒤에 있고, 다음에 사금(司禁)이 장전(帳殿)의 동쪽·서쪽에 나누어 서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전의(典儀)가

"사배(四拜)하라."

고 말하고, 통찬(通贊)이

"국궁(鞠躬), 사배(四拜), 흥(興), 평신(平身)하라."

고 창하면, 왕세자와 종친·백관들이 국궁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그전대로 펴고, 중군(中軍)의 장수가 기(旗)를 눕히면, 군사들은 각각 그 진(陣)에서 북향하여 네 번 절하고 기를 드는데, 기병(騎兵)은 말을 타고 보병(步兵)은 일어난다. 이를 마치면,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동상(東廂)에 멈추어 서서 서향하는데, 장위(仗衛)가 조금 뒤로 물러가서 관람하는 길을 틔운다. 부지통례(副知通禮)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어좌의 동쪽에 남쪽 가까이 나아가서 서향하여 앉게 하고, 봉례랑(奉禮郞)이 시신(侍臣)을 나누어 인도하여 좌상(左廂)·우상(右廂)에 기대어 대차(大次) 앞의 동쪽·서쪽에 서게 하고, 북쪽을 상(上)으로 하고, 종친과 백관들을 인도하여, 시신(侍臣)의 밖 10보(步)에 서게 하되, 문관(文官)은 동쪽에 있고 무관(武官)은 서쪽에 있으며, 겹줄로 북쪽을 상으로 한다.

대각(大角)을 세 번 불면, 중군(中軍)의 장수가 각각 비고(鞞鼓)364) 로써 북치기를 호령하는데, 2군(軍)이 모두 북을 친다. 유사(有司)가 기(旗)를 눕히면, 기병(騎兵)은 말에서 내려와 서고, 보병(步兵)은 꿇어앉으며, 2군(軍)의 여러 장수와 상호군 이상의 군관(軍官)이 중군 대장(中軍大將)의 기고(旗鼓) 아래에 집합하고, 좌상(左廂)의 중군 대장(中軍大將)은 기고의 동쪽에 서서 서향하고, 제군(諸軍)의 장수는 기고의 남쪽에 서서 북향하고 동쪽을 상으로 하며, 우상(右廂)의 중군 대장은 기고의 서쪽에 서서 동향하고, 제군의 장수는 기고의 남쪽에 서서 북향하고, 서쪽을 상으로 하여 서약(誓約)을 듣는다. 대장이 서약하기를,

"지금 대열(大閱)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전쟁하는 일을 가르치니,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감과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한결같이 군법(軍法)대로 할 것이다. 명령대로 하면, 일정한 상이 있고,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일정한 형벌이 있으니, 이를 힘쓰지 않겠는가."

한다. 서약하기를 마치면, 좌군(左軍)·우군(右軍)의 사후(伺候) 각각 2인이 탁(鐸)을 흔들고 나누어 돌아다니면서 군사들에게 서약하고, 여러 상호군(上護軍)이 각각 서사(誓辭)로써 그 관할 부서(部署)에 널리 알린다.

마침내 북을 올려서 유사(有司)가 기(旗)를 들면, 기병(騎兵)은 말에 오르고 보병(步兵)은 일어나서 모두 행진하는데, 표(表)에 이르러 징[鉦]을 치면 기병과 보병이 이에 그친다. 또 북을 세 번 치고 유사가 기를 눕히면, 기병은 말에서 내리고 보병은 꿇어앉는다. 또 북을 치고 유사가 기를 들면, 기병은 말에 오르고 보병은 일어나는데, 기병은 말을 달리고 보병은 빨리 가다가 표에 이르면 이에 그친다. 정열(整列)하는 위차(位次)가 정해지면, 동군(東軍)과 서군(西軍)이 5행(行)의 서로 이기는 법에 의거하여 서로 진(陣)을 만들어 이에 응하고, 매양 진을 변경할 적에는 각각 칼과 방패를 가진 군사 50인을 뽑아서 두 군대 앞에 도전(挑戰)하게 하는데, 제1, 제2의 도전은 번갈아 용감하고 비겁한[勇怯] 형상이 되고, 제3의 도전은 균적(均適)한 형세가 되고, 제4와 제5의 도전은 승패(勝敗)의 형상이 된다. 5진을 마치면, 양군(兩軍)이 모두 직진(直陣)이 된다. 또 북을 세 번 치고 유사가 기를 눕히면, 기병은 말에서 내리고 보병은 꿇어앉으며, 또 북을 올리고 기를 들면, 기병은 말에 오르고 보병은 일어나는데, 기병은 따라가고 보병은 달려가서 좌군(左軍)과 우군(右軍)이 모두 중표(中表)에 이르러 서로 견주어 공격하고는 돌아온다. 매양 물러올 적에는 한 줄의 표에 이르기를 앞과 같이 하고, 마침내 그 처음대로 돌아간다. 【무릇 서로 견주어 공격할 적에는 모두 칼날을 서로 미치지 못하게 한다. 무릇 보병(步兵)은 물러올 적에 중표(中表)에서 20보(步)를 지나면 그치고, 기병(騎兵)은 이 한계에 있지 아니한다. 】

판통례(判通禮)가 어좌(御座) 앞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앉아 대열(大閱)의 예(禮)를 마쳤음을 아뢰고는,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내려와서 그전 자리로 돌아가면, 전하가 자리에서 소차(小次)에 들어가고, 왕세자가 막차에 돌아간다. 전하가 장전(帳殿)으로 돌아가서 자리에 나아가면, 다안(荼案)을 올리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이를 마치고 판통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궁(宮)에 돌아오기를 계청(啓請)하고, 아뢰기를 마치면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물러가고, 어가(御駕)가 환궁(還宮)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133권 57장 A면【국편영인본】 5책 363면

  • [註 363]
    대열의(大閱儀) : 해마다 9월·10월 중에 도성(都城) 밖에서 대열(大閱)을 하는데 강일(剛日)을 사용한다.
  • [註 364]
    비고(鞞鼓) : 마상고(馬上鼓).

◎ 大閱儀 【每年九月十月中大閱於都外用剛日。】

前期十一日, 兵曹啓聞請大閱, 承敎遂命將帥, 簡軍士。 有司先芟萊除地爲場, 方一千二百步, 四出爲和門。 【軍門, 謂之和門。】 又於其內, 爲步騎軍營域處所, 分兩陣東西相向, 中間相去三百步, 每五十步立表爲一行, 凡五行, 爲軍士進退之節。 又別墠地於場北, 爲車駕停觀之所。 前一日, 忠扈衛設帳殿於墠所, 南向; 又設小次於帳殿之北, 隨地之宜; 王世子次於小次之南近東, 西向。 掖庭署設御座於帳殿內, 南向。 典儀設王世子及宗親文武百官拜位於帳殿之南; 設執事官位, 竝如常。 將帥及士卒集於墠所, 禁止喧譁, 依方色立旗爲和門, 旗鼓甲仗威儀悉備。 大將以下, 各有統帥, 如常式。 將帥先敎士衆, 望聽旌旗指揮之蹤、 【旗臥卽跪, 旗擧卽起。】 金鼓動止之節。 【聲鼓卽進, 鳴金卽止。】 其日未明十刻, 軍士皆嚴備, 騎徒皆具甲冑, 各爲直陣以相候, 將軍及大將, 各依儀立於旗鼓之下。 未明七刻鼓一嚴, 兵曹啓開宮殿門及城門, 勒諸衛陳大駕鹵簿及軍士。 判司僕陳輿輦御馬仗馬竝於弘禮門外, 分立如式。 前後騎步隊, 各具器服, 【凡軍士皆同。 槍隊執槍, 劍隊執長劍, 射隊帶弓矢。】 以次屯列, 整肅部伍, 不得喧譁。 宗親及百官俱集朝房, 未明五刻鼓二嚴, 宗親及百官以常服就侍立位, 王世子以常服出。 【其贊內嚴白外備侍衛, 竝如常。】 左中護引就光化門外次坐, 【前一日, 忠扈衛設次。】 侍衛如常。 諸衛各督其屬入, 陳於勤政殿庭。 侍臣就階下分左右立, 諸護衛之官, 【都鎭撫一、內禁衛節制使二、忠義衛忠順衛別侍衛節制使各一、佩雲劍中樞四、捧甲上護軍捧冑上護軍各一、捧弓矢上護軍捧雲劍大護軍扶策大護軍各二、帶弓矢護軍備身護軍各八、司僕官六。】 及司禁, 各具器服, 尙瑞官捧寶, 俱詣思政殿閤外伺候。 判通禮詣閤外俯伏跪, 啓請中嚴, 判司僕進御馬於勤政門外。 未明二刻鼓三嚴, 左中護引王世子出次, 就侍立位, 鍾聲止。 判通禮俯伏跪啓外辦, 殿下具翼善冠袞龍袍, 乘輿以出, 繖扇侍衛如常儀。 尙瑞官捧寶前導, 【載寶如常。】勤政門外, 判通禮俯伏跪, 啓請降輿乘馬, 殿下降輿乘馬, 左右侍臣夾侍如常。 駕至光化門外, 王世子鞠躬, 過則平身。 至侍臣上馬所, 駕小駐, 侍臣上馬畢, 駕動, 鼓吹振作, 宗親及百官鞠躬, 過則平身。 王世子及宗親百官以次侍衛如常。 駕至墠所, 兵曹判書乘馬奉引, 入自都墠北和門, 至小次前下馬入次。 左中護引王世子就次, 典儀以下先入就位, 奉禮郞分引宗親及百官入就位, 副知通禮引王世子入就位。 【仁順府設褥席。】 殿下出次卽座, 繖扇侍衛如常儀。 承旨入就帳殿西南隅, 北向東上俯伏, 史官在其後, 次司禁分立於帳殿東西如常。 典儀曰: "四拜。" 通贊唱鞠躬四拜興平身, 王世子及宗親百官鞠躬四拜興平身。 中軍將偃旗, 軍士各於其陣北向四拜; 擧旗, 騎乘馬徒起訖, 兵曹判書停立於東廂西向, 仗衛小退, 以通觀路。 副知通禮引王世子就御座之東近南, 西向坐。 奉禮郞分引侍臣, 依左右廂立於大次之前, 東西北上。 引宗親及百官立於侍臣之外十步, 文東武西, 重行北上。 吹大角三通, 中軍將各以鞞令鼓, 二軍俱擊鼓, 有司偃旗, 騎下馬立徒跪。 二軍諸帥上護軍以上集於中軍大將旗鼓之下; 左廂中軍大將立於旗鼓之東, 西向; 諸軍將立於旗鼓之南, 北向東上; 右廂中軍大將立於旗鼓之西, 東向; 諸軍將立於旗鼓之南, 北向西上, 以聽誓。 大將誓曰: "今行大閱, 以敎人戰, 進退左右, 一如軍法。 用命有常賞, 不用命有常刑, 可不勉之!" 誓訖, 左右軍司候〔伺候〕各二人, 振鐸分巡以誓衆。 諸上護軍各以誓辭, 遍告其所部, 遂聲鼓。 有司擧旗, 騎上馬徒起皆行, 及表擊鉦, 騎徒乃止。 又擊三鼓, 有司偃旗, 騎下馬徒跪。 又擊, 有司擧旗, 騎上馬徒起, 騎驟徒趨, 及表乃止, 整列位定。 東西軍依五行相勝之法, 互爲陣以應之, 每變陣, 各選刀楯之士五十人, 挑戰於兩軍之前, 第一第二挑戰, 迭爲勇怯之狀。 第三挑戰, 爲適均之勢; 第四第五挑戰, 爲勝敗之形。 五陣畢, 兩軍俱爲直陣。 又擊三鼓, 有司偃旗, 騎下馬徒跪。 又聲鼓擧旗, 騎上馬徒起, 騎從徒走。 左右軍俱至中表, 相擬擊而還, 每退至一行表如前, 遂復其初。 【凡相擬擊, 皆不得以刃相及。 凡步士逐退, 過中表二十步而止, 騎士不在此例。】 判通禮進當座前俯伏跪啓大閱禮畢, 俯伏興降復位, 殿下降座入小次, 王世子還次。 殿下還帳殿卽座, 進茶案如常儀畢, 判通禮俯伏跪啓請還宮, 啓訖俯伏興退, 車駕還宮如常儀。


  • 【태백산사고본】 45책 133권 57장 A면【국편영인본】 5책 3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