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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31권, 五禮 吉禮儀式 親享先農儀 車駕出宮

五禮 / 吉禮儀式 / 親享先農儀 / 車駕出宮

◎ 거가 출궁(車駕出宮)

출궁(出宮)하기 3일 전에 유사(攸司)에서 내외(內外)에 선포하여, 각기 그 직무에 이바지하게 한다. 제향 전 1일에 주루 상수(晝漏上水) 1각(刻)에 북을 쳐서 1엄(嚴)을 삼으면, 통례문(通禮門)이 배제(陪祭)할 문무 군관(文武群官)의 자리를 궐문(闕門) 밖에 설치하는데, 문관은 동쪽, 무관은 서쪽에 설치하되, 상대(相對)해서 모두 겹줄로 하여 북쪽을 위[上]로 한다. 배제할 문무 군관이 각기 조복(朝服)을 갖춘다.

3각에 북을 쳐서 2엄(嚴)을 삼으면, 판통례(判通禮)가 꿇어앉아서 중엄(中嚴)을 계청(啓請)하고, 배제할 군관이 모두 궐문 밖에 모인다. 【여러 향관(享官)이 먼저 향소(享所)로 나아간다. 】 전농시(典農寺)에서 친경(親耕)할 쟁기[耒耜]를 궐문 밖의 막옥(幕屋) 안에 진설하고, 병조(兵曹)에서 대가 노부(大駕鹵簿)와 경근거(耕根車)231) 를 궐문 밖에 진설한다.

5각(刻)에 북을 쳐서 3엄(嚴)을 삼으면, 여러 위(衛)의 소속이 각기 그 대(隊)를 독려하여 들어와서 전정(殿庭)에 진열한다. 봉례랑(奉禮郞)이 배제할 군관을 인도하여 문외위(門外位)로 나아가고, 시위관(侍衛官)이 각기 그 기복(器服)을 갖추고, 총제(摠制) 이하 좌우 시신(左右侍臣)이 모두 근정전(勤政殿) 서계(西階)로 나아가서 봉영(奉迎)한다. 판사복(判司僕)이 상로(象輅)를 근정문(勤政門) 앞에 남향하여 놓으면, 천우 장군(千牛將軍) 한 사람이 장도(長刀)를 잡고서 노(輅) 앞에 북향하고 선다. 지통례(知通禮)는 판통례(判通禮)의 앞에 있고, 통찬(通贊) 사인(舍人) 두 사람은 지통례의 앞에 있다. 판통례가 꿇어앉아서 외판(外辦)을 아뢰면, 판사복이 옷을 걷고 올라가서 바로서서 고삐를 잡고, 전하가 관포(冠袍)를 갖추고 여(輿)를 타고 나와서 서계(西階)로 내려온다. 악부(樂部)는 달아만 놓고 연주하지 않는다. 천우 장군이 앞으로 나아가서 고삐를 잡고, 전하가 여에서 내려 노를 타면, 판사복이 서서 끈[綏]을 준다. 총제 이하 시신(侍臣)이 양옆에서 시위하기를 보통 때의 의식과 같이 한다. 지통례가 앞으로 나아가서 노(輅) 앞에 꿇어앉아 거가(車駕)가 진발(進發)하기를 계청하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서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무릇 지통례가 계청할 때에는 다 거가 앞으로 나아가서 꿇어앉아 아뢰고, 이를 마치면,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난다. 】 거가가 움직이면, 지통례와 통찬이 양옆에서 인도하여 나오고, 천우 장군이 양쪽에서 노를 모시고 추창(趨蹌)한다. 거가가 궐문 밖에 나와서 시신의 상마소(上馬所)에 이르면, 지통례가 꿇어앉아서

"거가를 조금 멈추시고 문무 시신(文武侍臣)의 상마(上馬)를 명하소서."

라고 계청한다. 판통례가 앞으로 나아가서 교지를 받들고 물러와서 칭(稱)하기를,

"가(可)하다고 교지를 내리셨다."

하면, 통찬 사인이 전갈(傳喝)하여, 문무 시신이 말에 오른다. 여러 시위관(侍衛官)이 각기 그 소속을 독려하여 좌우에서 거가를 시위하고, 상서관(尙瑞官)이 보(寶)를 받들고 앞에서 인도하는데, 총제 이하 좌우 시신이 노 앞에서 협시(夾侍)한다. 문무 시신이 말에 오르고 나면, 지통례가

"거우(車右)가 오르기를 명하소서."

라고 계청한다. 판통례가 앞으로 나아가서 교지를 받들고 물러와서 칭하기를,

"가(可)하다고 교지를 내리셨다."

하고, 지통례는 물러나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천우 장군이 오르고 나면, 지통례가 거가의 진발(進發)을 계청하고 물러나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거가가 움직이면, 고취(鼓吹)를 울리지 아니하고, 훤화(喧嘩)하지 못한다. 경적사(耕籍使)가 경근거(耕根車)에다 쟁기를 싣고, 말을 타고 호위하여 의장(儀仗) 내로 들어간다. 그 배제(陪祭)할 관원은 현무대(玄武隊) 뒤에 있는 것이 보통 때의 의식과 같다. 거가가 장차 재궁(齋宮)에 이르면, 문무 시신이 말에서 내려 나누어 서서 국궁(鞠躬)한다. 여러 향관이 각기 조복(朝服)을 갖추고, 알자가 인도하여 재궁 문밖에서 서향하고 남쪽을 위[上]로 하여 서서, 거가를 바라보고 모두 국궁하고 봉영(奉迎)한다. 거가가 재궁 남문(南門) 밖에 이르러 노를 돌려서 남향하면, 천우 장군이 내려서 노 오른편에 선다. 지통례가 앞으로 나아가 노 앞에서

"노에서 내리소서."

라고 계청하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서 돌아와 시립(侍立)한다. 전하가 노에서 내려 여(輿)를 타고 재궁으로 들어가는데, 산선(繖扇)·화개(華蓋)의 시위(侍衛)는 보통 때의 의식과 같다. 경적사 쟁기를 적전령(籍田令)에게 주어서, 이를 가로 들어[橫執] 경소(耕所)의 자리[席]에 놓게 하고 지키게 한다. 통찬 사인이 행사할 집사관과 종실 이하의 배제할 문무 군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재궁의 남쪽에 모이게 하는데, 문관은 동쪽, 무관은 서쪽이다. 사인이 교지를 받들어서

"군관은 각기 막차로 나아가라."

하고, 숙위(宿衛)하기를 보통 때와 같이 한다. 교서관원(校書館員)이 축판(祝版)을 받들어 올리면, 근신(近臣)이 전해 받들어 올리어, 전하께서 서명한다. 이를 마치면, 근신이 받들고 나와 전사시(典祀寺)에 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13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262면

  • [註 231]
    경근거(耕根車) : 친경할 때 사용할 여러 가지 기구를 싣는 수레.

◎ 車駕出宮

前出宮三日, 攸司宣攝內外, 各供其職。 前享一日, 晝漏上水一刻, 槌鼓爲一嚴。 通禮門設陪祭文武群官位於闕門外, 文東武西相對, 俱重行北上。 陪祭群官各具朝服。 三刻槌鼓, 爲二嚴。 判通禮跪啓請中嚴, 陪祭群官俱集闕門外。 【諸享官先詣享所。】 典農寺設親耕耒耟於闕門外幕屋之內, 兵曹陳大駕鹵簿及耕根車於闕門外。 五刻槌, 鼓爲三嚴。 諸衛之屬, 各督其隊, 入陳於殿庭。 奉禮郞引陪祭群官就門外位, 侍衛之官, 各服其器服。 摠制以下左右侍臣, 俱詣勤政殿西階奉迎。 判司僕進象輅於勤政門前南向, 千牛將軍一人執長刀立於輅前北向。 知通禮在判通禮之前, 通贊、舍人二在知通禮之前。 判通禮跪啓外辦, 判司僕攝衣而升, 正立執轡。 殿下服冠袍, 乘輿以出, 降自西階, 樂部懸而不作。 千牛將軍前執轡, 殿下降輿乘輅, 判司僕立授綏, 摠制以下侍臣夾侍如常儀。 知通禮進當輅前跪, 啓請車駕進發, 俛伏興退復位。 【凡知通禮啓請, 皆進駕前跪啓訖, 俛伏興。】 車駕動, 知通禮與通贊夾引以出, 千牛將軍夾輅而趨。 駕出闕門外, 至侍臣上馬所, 知通禮跪啓: "請車駕少駐, 敎文武侍臣上馬。" 判通禮前承旨, 退稱曰: "敎可。" 通贊舍人傳喝, 文武侍臣上馬, 諸侍衛之官, 各督其屬, 左右翊駕, 尙瑞官捧寶前導, 摠制以下左右侍臣夾侍於輅前。 文武侍臣上馬畢, 知通禮啓請敎車右升, 判通禮前承旨, 退稱曰: "敎可。" 知通禮退復位。 千牛將軍升訖, 知通禮啓請車駕進發, 退復位。 車駕動, 不鳴鼓吹, 不得喧嘩。 耕籍使以耕根車, 載耒耟騎護在仗內, 其陪祭之官在玄武隊後如常儀。 駕將至齋宮, 文武侍臣下馬, 分立鞠躬。 諸享官各具朝服, 謁者引立於齋宮門外, 西向南上, 望駕皆鞠躬奉迎。 駕至齋宮南門外, 回輅南向, 千牛將軍降立於輅右, 知通禮進當輅前, 啓請降輅, 俛伏興還侍立。 殿下降輅, 乘輿入齋宮, 繖扇華蓋侍衛如常儀。 耕籍使以耒耟受籍田令, 橫執之, 置於耕所之席而守之。 通贊舍人分引行事執事官及宗室以下陪祭文武群官, 集齋宮之南, 文東武西。 舍人承旨, 敎群官各就次, 宿衛如常。 校書館員以祝版捧進, 近臣傳捧以進, 殿下署訖, 近臣捧出, 附典祀寺。


  • 【태백산사고본】 43책 13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2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