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15권, 세종 4년 2월 29일 丙辰 4/5 기사 /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황해도 관찰사 이수와 경력 하형을 처벌하다
국역
황해도 관찰사 이수(李隨)와 경력 하형(河逈) 등이 함부로 음탕하고, 법도가 없어서, 관기(官妓)를 거느리고 도내(道內)에 돌아다니면서 혹은 말을 나란히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 하형은 기생의 어미가 죽어도 분상(奔喪)하지 못하게 하고, 이수는 체임(遞任)되는 날에도 기생을 이끌고 돌아왔다. 일이 발각되매, 헌부(憲府)에서 이를 탄핵하여 형(刑)에 처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수는 특별히 용서하고, 하형은 곤장 80대를 치고 그 직첩(職牒)을 회수하였다. 이수는 임금이 일찍이 그에게 배웠으므로, 초야(草野)에서 일어나 몇 해가 되지 않아서 벼슬이 재추(宰樞)에 이르니, 조정과 민간에서 놀랍게 보았는데, 하루 아침에 감사가 되매 함부로 음탕하고 마음대로 행동하여 나라의 법을 범하니, 식자(識者)들이 그를 비웃었다.
원문
세종 4년 (1422) 2월 29일
국역
황해도 관찰사 이수(李隨)와 경력 하형(河逈) 등이 함부로 음탕하고, 법도가 없어서, 관기(官妓)를 거느리고 도내(道內)에 돌아다니면서 혹은 말을 나란히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 하형은 기생의 어미가 죽어도 분상(奔喪)하지 못하게 하고, 이수는 체임(遞任)되는 날에도 기생을 이끌고 돌아왔다. 일이 발각되매, 헌부(憲府)에서 이를 탄핵하여 형(刑)에 처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수는 특별히 용서하고, 하형은 곤장 80대를 치고 그 직첩(職牒)을 회수하였다. 이수는 임금이 일찍이 그에게 배웠으므로, 초야(草野)에서 일어나 몇 해가 되지 않아서 벼슬이 재추(宰樞)에 이르니, 조정과 민간에서 놀랍게 보았는데, 하루 아침에 감사가 되매 함부로 음탕하고 마음대로 행동하여 나라의 법을 범하니, 식자(識者)들이 그를 비웃었다.
원문
원본
세종 4년 (1422) 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