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청에서 정사를 보며 하윤을 수직한 헌부의 잘못을 힐문하다
경연청(經筵廳)에 좌기(坐起)하여 정사(政事)를 들으니,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이 비로소 들어와 일을 아뢰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재상(宰相)의 지위가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같은 이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씨(李氏) 사직(社稷)에 특별히 공덕(功德)이 있는 것은 진산 부원군 같은 이가 없다. 지금 헌부(憲府)에서 다만 승교(承敎)의 설(說)을 가지고 수직(守直)까지 하는 것이 가한가? 병술년 사위(辭位)할 때에 진산(晉山)이 그 불가함을 지적해 말하여 말이 심히 간절하고 지극하였다. 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에게 다시 청하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은 부원군이 다시 청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작은 말을 가지고 대신(大臣)을 흔드는 것이 가한가? 지금 이유희(李有喜)의 공사(供辭)를 보면 말하기를, ‘하윤(河崙)은 불충한 신하이니 먼저 탄핵하고 뒤에 아뢰는 것이 가하나, 신 등이 못난 탓으로 감히 못하였다.’ 하였으니, 만일 유희의 말과 같다면 이것은 국가에 형정(刑政)이 없는 것이다. 신자(臣子)가 임의로 주륙(誅戮)을 행하면 춘추 전국(春秋戰國)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 해도(海島)의 왜적(倭賊)이 저희들끼리 서로 해하고 죽이니, 유희의 말은 진실로 섬의 왜적이다."
하며, 좌사간(左司諫) 유백순(柳伯淳)을 쳐다보고 말하기를,
"경은 고금을 통달하였으니 족히 헌부(憲府)의 그른 것을 알 것이다. 지금 도리어 옳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간관(諫官)을 순금사(巡禁司)에 가두고 그 까닭을 질문하고자 하는데, 경은 장차 어찌할 것인가? 내가 재위(在位)한 지 8년인데, 대간(臺諫)이 진실로 의리로써 내게 말하는 자가 별로 없다. 궁실(宮室)·토목(土木)·거마(車馬)·복완(服玩) 등류(等類)를 말한다면 내가 그대로 따르겠지만, 전렵(田獵)·주색(酒色)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남의 사주(使嗾)를 받은 것이니, 내가 곧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무가(武家)에서 생장(生長)하여 응견(鷹犬)으로 사냥하는 맛을 깊이 아는데, 지금은 절약(節約)하여 대단히 심하지 않다. 진산 같은 이는 이씨의 사직의 신하이다. 내게 충성을 다하니 어찌 죄 아닌 것으로 동요(動搖)할 수 있느냐? 내가 진산에게 사(私)를 두는 것이 아니다. 실지로 대역의 음모가 있다면 내가 어찌 아끼겠느냐? 이제부터 간신(諫臣)은 조심하여 이런 상소는 올리지 말라."
하였다. 백순이 땅에 엎드려 땀을 흘리며 곧 대답하지 못하였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남재(南在)가 나와 말하기를,
"간원(諫院)의 상소(上疏)가 하윤(河崙)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헌부(憲府)를 비호(庇護)하는 말입니다. 만일 실언(失言)한 죄를 가한다면, 후일에 충성된 말을 드리려 하여도 두려워하고 꺼려서 감히 못할 것이니, 언로(言路)는 장차 막힐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아무 말이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6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辛亥/御經筵廳聽政。 議政府六曹臺諫始入啓事。 上曰: "宰相之位如晋山府院君者, 古有之, 至如李氏社稷, 特有功德者, 無如晋山府院君者。 今憲府但以承敎之說, 至於守直可乎? 丙戌辭位之時, 晋山指陳不可, 言甚切至。 若其謂驪興府院君曰不得復請者, 欲府院君之復請也。 以此微言, 動搖大臣可乎? 今觀李有喜供辭, 乃曰: ‘崙, 不忠之臣也, 先發後聞可矣, 以臣等迂疎未敢耳。’ 若如有喜之言, 則是國家無政刑矣。 臣子擅行誅戮, 則與春秋戰國之世何異哉? 今海島倭賊, 私相賊殺。 有喜之言, 誠島倭矣。" 乃目左司諫柳伯淳曰: "卿通今達古, 足以知憲府之非矣, 今反以爲是, 何也? 予欲下諫官於巡禁司, 質問其故, 卿將何以? 予在位八年, 臺諫之眞能以義陳於予者, 幾希。 有以宮室土木車馬服玩之類爲言, 則予固從之, 有以田獵酒色爲言, 此承人指嗾, 予不以爲直也。 予生長武家, 深知鷹犬遊田之味, 今乃節約, 不至太甚。 若晋山, 乃李氏社稷之臣也。 盡忠於我, 豈可以非罪動搖乎? 予非私晋山也。 實有大逆之謀, 則予何惜之! 自今諫臣愼勿上如此疏。" 伯淳伏地流汗, 未卽對。 兵曹判書南在進曰: "諫院之疏, 誠非以崙爲有罪也, 特庇憲府之言也。 若加以失言之罪, 則後日欲進忠言者, 畏憚而不敢, 言路將廢塞耳。" 上默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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