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무영전에 좌기하여 세자에게 준 어제시
황제가 무영전(武英殿)에 좌기하여 세자에게 어제시 한 편(篇)을 주었다.
"패수(浿水) 동변(東邊)의 옛 봉역(封域),
팔조(八條)062) 로 가르치기를 누가 능히 옛날 법식대로 따를꼬?
간편(簡篇)이 스스로 편안하고 위태한 것을 거울삼을 수 있으니,
연수(淵藪)가 되어 어찌 다시 감추고 숨기랴?
건곤(乾坤)은 뒤덮고 받아 실어 용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재배(裁培)하고 축발(蹙拔)하는 것이 모두 천공(天工)이다.
때가 오는 것은 얻기 어렵고 심히 잃기는 쉬우니,
삼한(三韓)에 휘곽(揮霍)한 것이 부질없게 자취만 남겼도다.
우거(右渠)063) 가 방자하게 꾀어서 간사한 휼궤(譎詭)를 다하였으니,
지나는 눈으로 잠깐 한 번 보았도다.
구루(溝婁)064) 의 나무는 푸르고 풀은 청청(靑靑)하니,
구름이 현토(玄菟)의 한(漢)나라 봉역(封域)을 싸고 있도다.
너의 집이 정성을 펴서 조정(朝廷)을 섬기어,
남자는 밭갈고 여자는 베짜서 강역(疆域)이 편안하도다.
갈대 피리를 불고 북을 쳐서 날마다 즐거움을 삼으니,
넓은 들에는 응당 송아지065) 를 차고 다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압록강 물은 잔술[巵酒]과 같고,
마읍(馬邑)의 여러 산은 조그만 구릉(丘陵)에 연하였도다.
시험삼아 지나간 자취를 보라 이미 황량(荒涼)하구나!
명예(名譽)는 빛나서 장구(長久)할 수 있도다.
마음 가지기를 어찌하면 금석(金石)과 같이 하랴?
굳고 단단하여 마땅히 조석(朝夕)을 삼가야 한다.
교만하고 차[驕盈]면 영종(永終)함이 적은 것이 걱정이도다.
누가 침잠(沈潛)하여 그윽한 지경에 이르는 것을 알리?
옛날에 왕자(王子)가 와서 조회(朝會)하여,
거기(車騎)가 소소(蕭蕭)하게 평양(平壤)을 나왔도다.
맑은 서리[淸霜]는 버들을 죽이고 물은 얼음이 엉기었는데,
머리를 찬 들[寒郊]에 돌이키니 아득한 들빛이 연(連)하였으리.
너 제(禔)가 수공(修貢)하여 만리(萬里)에 왔고,
나이 15세가 지났으니 재주를 이룰 만하다.
글을 읽고 도(道)를 배워 스스로 버리지 말고,
힘써서 가성(家聲)을 무너뜨리지 말라.
전부터 화(禍)와 복(福)은 문(門)과 자물쇠가 없고,
의복(倚伏)066) 의 기틀은 선(善)과 악(惡)에 따른다.
높은 산은 숫돌 같이 될 수 있고 바다는 옮길 수 있어도,
만고(萬古)의 충성(忠誠)은 성곽(城廓)이니라."
황제가 세자를 명하여 읽게 하고, 세자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 아비와 같다."
하고, 이천우(李天祐) 등에게 이르기를,
"짐(朕)이 시(詩)를 지어서 너의 세자에게 주었다. 이것이 수재(秀才)의 시부(詩賦)는 아니지만, 이 시(詩)가 너희 나라에 유익하니, 여기에 있는 수재(秀才)들은 각각 한 수(首)씩 화답(和答)하라."
하고, 세자에게 《통감강목(通鑑綱目)》·《대학연의(大學衍義)》 각 한 부(部), 법첩(法帖) 3부(部), 붓[筆] 1백 50자루, 먹[墨] 25정(丁)을 주니, 세자가 고두(叩頭)하고 나왔다. 이튿날 대궐에 나아가 사은(謝恩)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35면
- 【분류】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62]팔조(八條) : 기자(箕子)의 범금팔조(犯禁八條)를 말하는데, 이중 3개 조(條)만 전하고 나머지는 전하지 않는다. ①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②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穀物)로써 보상(報償)하며, ③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면 그 주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원칙이나, 속죄(贖罪)하고자 하면 매인(每人) 당 50만전(萬錢)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 [註 063]
우거(右渠) : 위만 조선(衛滿朝鮮)의 마지막 왕.- [註 064]
구루(溝婁) : 고구려(高句麗)의 성(城) 이름.- [註 065]
송아지 : 병기(兵器)를 말한 것임.- [註 066]
의복(倚伏) : 화(禍)와 복(福)은 서로 인연(因緣)이 되어 일어나고 갈아앉음을 말함.○帝御武英殿, 賜世子御製時一篇。 詩曰:
浿水東邊舊封域, 八敎疇能遵古式? 簡篇自足鑑安危, 淵藪何須更藏匿! 乾坤覆載靡不容, 裁培蹙拔皆天工。 時來難得苦易失, 三韓揮霍空遺蹤。 右渠肆誘逞憸譎, 過眼相看曾一瞥。 溝婁樹綠草靑靑, 雲擁玄菟 漢封埒。 爾家攄悃事朝廷, 男耕女織疆域寧。 吹蘆撾鼓日爲樂, 曠野應無佩犢行。 鴨綠江流似巵酒, 馬邑諸山連培塿。 試看往迹已荒涼, 名譽光華可長久。 秉心安得如金石! 堅確惟當愼朝夕。 驕盈只患鮮永終, 孰解沈潛到幽賾! 昔年王子來朝享, 車騎蕭蕭出平壤。 淸霜殺柳水凝氷, 回首寒郊連莽蒼。 爾禔修貢萬里來, 年過十五堪成才。 讀書學道勿自棄, 勉旃毋使家聲隤。 從來禍福無扃鑰, 倚伏之幾乘善惡。 高山可礪海可移, 萬古忠誠是郛郭。
帝命世子讀過, 謂世子曰: "朕猶爾父也。" 謂李天祐等曰: "朕作詩與爾世子, 不是秀才詩賦, 此詩有益於汝國。 在此秀才, 宜各和一首。" 仍賜世子《通鑑綱目》、《大學衍義》各一部、法帖三部、筆一百五十枝、墨二十五丁, 世子叩頭而出, 翼日詣闕謝恩。
-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35면
- 【분류】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