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사 이빈 등이 종계 정정 등에 관한 예부의 자문을 가지고 돌아오다
사은사(謝恩使) 이빈(李彬)·민무휼(閔無恤)과 하정사(賀正使) 김정경(金定卿) 등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왔는데,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싸가지고 왔다. 그 글을 이러하였다.
"1. 종사(宗嗣)에 대한 일. 조선 국왕(朝鮮國王) 이(李) 【휘(諱).】 가 아뢰기를, ‘홍무(洪武) 35년 정월 초 8일에 배신(陪臣) 조온(趙溫)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조훈조장(祖訓條章)내에 신(臣)의 종계(宗系)가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이라 하였다.」하니, 생각건대 신(臣)의 아비 【구휘(舊諱).】 선세(先世)는 본래 조선(朝鮮)의 유종(遺種)으로 고려(高麗)를 섬겼고, 뒤에 국인(國人)들이 추대하여 권지 국사(權知國事)를 삼았으므로 이에 갖추 아뢰어서,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명하여 국왕(國王)을 삼고 개호(改號)를 주셨으며, 신의 아비의 이름 【구휘(舊諱).】 을 비로소 개명(改名) 【금휘(今諱).】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또 이인임(李仁任)의 조상이 신의 종계(宗系)와는 아주 다르오니, 아뢰어 비옵건대, 고쳐 기록하여 주시면 일국(一國)이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본부 상서(本部尙書) 이지강(李至剛) 등이 성지(聖旨)를 흠봉(欽奉)하였는데, ‘조선 국왕이 아뢰기를, 「이인임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생각건대 그 전의 전설(傳說)이 틀린 것이다. 그의 말에 준하여 개정(改正)하라.’하였으므로, 그대로 흠록(欽錄)하였다.
1. 역일(曆日)과 서적(書籍)을 흠사(欽賜)하는 일. 영락(永樂) 2년의 대통력(大統曆) 1백 본(本), 《고금열녀전(古今烈女傳)》 1백 10부(部)이다.
1. 조공(朝貢) 등에 대한 일. 지난날에 일로 인하여 구류(拘留)되었던 사람을 모두 데려와서 돌려 보낸다. 흠준(欽遵)하여 운남 도사(雲南都司)에 이문(移文)해서 먼저 조서(曺庶) 등 5명을 취(取)하여 경사(京師)로 데려왔다. 명령에 의하여 상사(賞賜)한 것 외에는 자문(咨文)하여 알리는 바이다. 놓아보내는 남자(男子)는 모두 5명인데, 조서(曺庶)·곽해룡(郭海龍)·송희정(宋希靖)·오진(吳眞)·권일송(權一松)이다."
처음에 고황제(高皇帝)가 표사(表辭)가 잘못 되었다고 하여 제술(製述)한 사람과 글씨 쓴 사람들을 경사(京師)로 오게 하라는 명령이 있어, 정총(鄭摠)·정탁(鄭擢)·권근(權近)·김약항(金若恒)·노인도(盧仁度)와 통사(通事) 오진(吳眞)·곽해룡(郭海龍)·송희정(宋希靖) 등이 경사로 갔었는데, 황제가 권근을 순유(醇儒)라 하여 시(詩) 짓기를 명하고, 칭찬하고 아름답게 여기어 방환(放還)하였고, 정탁은 형제(兄弟)가 함께 갔으므로 명하여 돌려 보내서 어미를 봉양하게 하였다. 그 나머지는 중형(重刑)을 당하고, 혹은 먼 지방으로 장류(長流)되었는데, 연전(年前)에 성석린(成石璘)이 주청(奏請)하여 조서 등 다섯 사람이 돌아오게 되었다. 조서는 얼굴에 또한 묵형(墨刑)을 당하였고, 권일송은 종인(從人)이었다. 임금이 청화정(淸和亭)에 좌기하여 이빈(李彬)·민무휼(閔無恤)·김정경(金定卿)과 조서 등 5인을 인견(引見)하고 말로써 위로하고 음식을 먹이었다. 조서 등 4인에게 각각 쌀·콩 아울러 30석을 주고, 권일송에게 15석을 주었다. 조서의 아비는 나이 80이고, 아내와 아들이 잘 있으며, 해룡은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죽었고, 희정은 입조(入朝)할 때에 아내가 임신중이었는데, 아들을 낳아서 이미 열 살이 되었다. 삼부(三府)에서 종계(宗系)가 개정(改正)되고 구류되었던 사람들이 석방되어 돌아왔으므로 대궐에 나와서 하례(賀禮)를 드리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92면
- 【분류】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戊辰/謝恩使李彬ㆍ閔無恤、賀正使金定卿等, 回自京師, 齎禮部咨文來。 其文曰:
一, 宗嗣事。 朝鮮國王 李諱奏: "洪武三十五年正月初八日, 陪臣趙溫回自京師說稱: ‘《祖訓條章》內云: 「臣宗系是(李仁仁)〔李仁任〕 之後。」’ 竊念臣父 【舊諱。】 先世, 本朝鮮遺種, 事高麗, 後國人推戴, 權知國事, 具奏, 欽蒙太祖高皇帝命爲國王, 賜改號, 臣父 【舊諱。】 , 始改名 【今諱。】 。 且李仁任祖, 於臣宗系各別, 奏乞改錄, 一國幸甚。" 本部尙書李至剛等, 欽奉聖旨: "朝鮮國王奏: ‘旣不係李仁任之後。’ 想是比先傳說差了, 準他改正。" 欽錄。 一, 欽賜曆日書籍事。 永樂二年《大統曆》一百本、《古今烈女傳》一百一十部。 一, 朝貢等事。 比先爲事拘留之人, 都取來放他回去。 欽遵行移雲南都司, 先行取到曺庶等五名到京, 除欽依賞賜外, 合行知會。 計放回男子五名, 曹庶、郭海龍、宋希靖、吳眞、權一松。
初, 高皇帝以表辭違誤有旨, 製述及書寫人等來京, 鄭摠、鄭擢、權近、金若恒、盧仁度及通事吳眞ㆍ海龍ㆍ希靖等赴京。 帝見近, 以爲醇儒, 命作詩, 褒嘉放還; 鄭擢以兄弟俱至, 命歸養其母; 其餘或被重刑, 或長流遐裔。 因年前成石璘奏請, 庶等五人得還。 庶於面上, 亦被墨刑。 權一松, 從人也。
上御淸和亭, 引見李彬、無恤、定卿及曹庶等五人, 賜言慰之饋之。 賜庶等四人各米豆幷三十石, 權一松十五石。 庶父年八十, 而妻與兒無恙; 海龍妻適他死; 希靖之入朝, 妻有孕, 生子已十歲。 三府以宗系改正, 拘留人放還, 詣闕稱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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