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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20일 己巳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서자 이방석을 왕세자로 정하다

어린 서자(庶子) 이방석(李芳碩)을 세워서 왕세자로 삼았다. 처음에 공신(功臣) 배극렴(裵克廉)·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이 세자를 세울 것을 청하면서, 나이와 공로로써 청하고자 하니, 임금이 강씨(康氏)를 존중하여 뜻이 이방번(李芳蕃)에 있었으나, 이방번은 광망(狂妄)하고 경솔하여 볼품이 없으므로, 공신들이 이를 어렵게 여겨, 사적으로 서로 이르기를,

"만약에 반드시 강씨(康氏)가 낳은 아들을 세우려 한다면, 막내 아들이 조금 낫겠다."

고 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누가 세자가 될 만한 사람인가?"

라고 물으니, 장자(長子)로써 세워야만 되고,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써 세워야만 된다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극렴이 말하기를,

"막내 아들이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뜻을 결정하여 세자로 세웠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己巳/立幼孼芳碩爲王世子。 初功臣裵克廉趙浚鄭道傳請建世子, 欲以年以功爲請, 上重康氏意在芳蕃芳蕃狂率無狀, 功臣等難之, 私相謂曰: "若必欲立康氏出, 季子差可。" 及是, 上問誰可爲世子者, 未有以立長立功切言者。 克廉曰: "季子爲可。" 上遂決意立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