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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84번째기사

태조가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다

5월, 대군(大軍)이 압록강을 건너서 위화도(威化島)에 머무르니 도망하는 군사가 길에 끊이지 아니하므로, 우왕이 소재(所在)에서 목 베도록 명하였으나 능히 금지시키지 못하였다. 좌우군 도통사(左右軍都統使)가 상언(上言)하기를,

"신(臣) 등이 뗏목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으나, 앞에는 큰 냇물이 있는데 비로 인해 물이 넘쳐, 제1여울에 빠진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고, 제2여울은 더욱 깊어서 주중(洲中)에 머물어 둔치고 있으니 한갓 군량만 허비할 뿐입니다. 이곳으로부터 요동성(遼東城)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는 큰 내가 많이 있으니 잘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근일에 불편한 일의 실상[事狀]을 조목별로 기록하여 아뢰었으나 윤허(允許)를 받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황공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큰일을 당하여 말할 만한 것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은 불충(不忠)이니, 어찌 감히 죽음[鈇鉞]을 피하여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나라를 보전하는 도리입니다. 우리 국가가 삼국(三國)을 통일한 이후로 큰 나라 섬기기를 근실히 하여, 현릉(玄陵)047) 께서 홍무(洪武) 2년에 명(明)나라에 복종하여 섬겨 그 올린 표문(表文)에, ‘자손만세(子孫萬世)에 이르기까지 영구히 신하가 되겠습니다.’ 하였으니, 그 정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 뜻을 계승하여 세공(歲貢)의 물품을 한결같이 조지(詔旨)에 의거했으므로, 이에 황제가 특별히 고명(誥命)048) 을 내려 현릉(玄陵)의 시호(諡號)를 내려 주고 전하의 작(爵)을 책봉하였으니, 이것은 종사(宗社)의 복(福)이요 전하의 성덕(盛德)입니다. 지금 유 지휘(劉指揮)가 군사를 거느리고 철령위(鐵嶺衛)를 세운다는 말을 듣고, 밀직 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시켜서 표문(表文)을 받들어 품처를 계획했으니, 대책이 매우 좋았습니다. 지금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서 갑자기 큰 나라를 범하게 되니,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의 복이 아닙니다. 하물며 지금은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갑옷은 무거우며, 군사와 말이 모두 피곤한데, 이를 몰아 견고한 성(城) 아래로 간다면 싸워도 승리함을 기필할 수 없으며 공격하여도 빼앗음을 기필할 수 없습니다. 이 때를 당하여 군량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으니, 장차 어떻게 이를 처리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군사를 돌이키도록 명하시어 나라 사람의 기대에 보답하소서."

하였으나, 우왕최영은 듣지 아니하고, 환자(宦者) 김완(金完)을 보내어 군사를 전진하도록 독촉하였다. 좌우군 도통사는 김완을 붙잡아 두고 보내지 아니하며, 또 사람을 보내어 최영에게 가서 빨리 군사를 돌이킬 것을 허가하도록 청하였으나, 최영은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다. 군중(軍中)에서 거짓말이 나기를,

"태조가 휘하의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동북면을 향하는데 벌써 말에 올랐다."

하니, 군중이 떠들썩 하였다. 민수(敏修)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단기(單騎)로 달려 태조에게 와서 울면서 말하기를,

"공은 가시는데 우리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니, 태조는 말하기를,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공은 이러지 마십시오."

하였다. 태조는 이에 여러 장수들에게 타이르기를,

"만약 상국(上國)의 국경을 범하여 천자(天子)에게 죄를 얻는다면 종사(宗社)·생민(生民)의 재화(災禍)가 즉시 이르게 될 것이다. 내가 순리(順理)와 역리(逆理)로써 글을 올려 군사를 돌이킬 것을 청했으나, 왕도 또한 살피지 아니하고, 최영도 또한 늙어 정신이 혼몽하여 듣지 아니하니, 어찌 경(卿) 등과 함께 왕을 보고서 친히 화(禍)되고 복(福)되는 일을 진술하여 임금 측근의 악인(惡人)을 제거하여 생령(生靈)을 편안하게 하지 않겠는가?"

하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 동방 사직(社稷)의 안위(安危)가 공의 한 몸에 매여 있으니, 감히 명령대로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군사를 돌이켜 압록강에 이르러 흰 말을 타고 동궁(彤弓)과 백우전(白羽箭)을 가지고 언덕 위에 서서 군사가 다 건너기를 기다리니, 군중(軍中)에서 바라보고 서로 이르기를,

"옛부터 지금까지 이 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이후로도 어찌 다시 이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때 장마가 수일 동안 계속했는데도 물이 넘치지 않다가, 군사가 다 건너가고 난 후에 큰물이 갑자기 이르러 온 섬이 물에 잠기니, 사람들이 모두 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이때 동요(童謠)에,

"목자(木子)049) 가 나라를 얻는다."

는 말이 있었는데, 군인과 민간인, 늙은이와 젊은이를 논할 것 없이 모두 이를 노래하였다. 조전사(漕轉使) 최유경(崔有慶)이 대군(大軍)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우왕에게 알렸다. 이날 밤에 상왕(上王)050) 이 그 형 방우(芳雨)이두란(李豆蘭)의 아들 화상(和尙) 등과 함께 성주(成州)우왕의 처소로부터 태조의 군대 앞으로 도망해 갔으나, 우왕은 해가 정오(正午)가 되어도 오히려 알지 못하였다. 길에서 대접하는 수령(守令)들을 만나 그들의 말[馬]을 다 빼앗아 타고 갔다. 우왕은 대군(大軍)이 돌아와 안주(安州)에 이르렀음을 알고 말을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군사를 돌이킨 여러 장수들이 급히 추격하기를 청하니, 태조는 말하기를,

"속히 행진하면 반드시 싸우게 되므로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될 것이다."

하였다. 매양 군사들을 경계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승여(乘輿)051) 를 범한다면 나는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오이[瓜] 한 개만 빼앗아도 또한 마땅히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겠다."

하였다. 연로(沿路)에서 사냥하면서 짐짓 느리게 행군하니, 서경(西京)에서 서울에 이르는 수백 리 사이에 우왕을 좇던 신료(臣僚)와 서울 사람과 이웃 고을 백성들이 술과 음료(飮料)로써 영접하여 뵙는 사람이 끊이지 아니하였다. 동북면의 인민과 여진(女眞)으로서 본디 종군(從軍)하지 않던 사람까지도, 태조가 군사를 돌이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투어 서로 모여 밤낮으로 달려서 이르게 된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되었다. 우왕은 도망해 돌아와 화원(花園)으로 돌아갔다. 최영이 막아 싸우고자 하여 백관(百官)에게 명하여 무기를 가지고 시위(侍衛)하게 하고 수레를 모아 골목 입구를 막았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1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군사-군정(軍政) / 역사(歷史) / 변란(變亂) / 인사(人事)

  • [註 047]
    현릉(玄陵) : 공민왕(恭愍王).
  • [註 048]
    고명(誥命) : 임금이 신하에게 고시(告示)하는 말이나 글.
  • [註 049]
    목자(木子) : 이(李).
  • [註 050]
    상왕(上王) : 정종(定宗).
  • [註 051]
    승여(乘輿) : 임금.

〔○〕五月, 大軍渡鴨綠江, 次威化島, 亡卒絡繹於道。 命所在斬之, 不能止。 左、右軍都統使上言: "臣等乘桴過鴨江, 前有大川, 因雨水漲, 第一灘漂溺者數百, 第二灘益深, 留屯洲中, 徒費糧餉。 自此至遼東城, 其間多有巨川, 似難利涉。 近日條錄不便事狀以聞, 未蒙兪允, 誠惶誠懼。 然當大事, 有可言者而不言, 是不忠也。 安敢避鈇鉞而默默乎? 以小事大, 保國之道。 我國家統三以來, 事大以勤。 玄陵洪武二年, 服事大明, 其表云: ‘子孫萬世, 永爲臣妾。’ 其誠至矣。 殿下繼志, 歲貢之物, 一依詔旨, 於是特降誥命, 賜玄陵之諡, 冊殿下之爵。 此宗社之福, 而殿下之盛德也。 今聞劉指揮領兵立衛之言, 使密直提學朴宜中奉表計稟, 策甚善也。 今不俟命, 遽犯大邦, 非宗社生民之福也。 況今暑雨, 弓解甲重, 士馬俱憊, 驅而赴之堅城之下, 戰不可必勝, 攻不可必取? 當此之時, 糧餉不給, 進退維谷, 將何以處之? 伏惟殿下特命班師, 以答三韓之望。" 不聽, 遣宦者金完, 督令進兵。 左右軍都統使留不遣, 又遣人詣, 請速許班師, 不以爲意。 軍中訛言: "太祖率麾下親兵, 向東北面, 已上馬矣," 軍中洶洶。 敏修罔知所措, 單騎馳詣太祖, 涕泣曰: "公去矣, 吾儕安往?" 太祖曰: "予何去矣? 公勿如是。" 太祖乃諭諸將曰: "若犯上國之境, 獲罪天子, 宗社生民之禍, 立至矣。 予以順逆上書, 請還師, 王亦不省, 又老耄不聽。 盍與卿等見王, 親陳禍福, 除君側之惡, 以安生靈乎?" 諸將皆曰: "吾東方社稷安危, 在公一身, 敢不唯命是從!" 於是回軍到鴨綠江, 乘白馬御彤弓白羽箭, 立岸上遲軍畢渡。 軍中望見相謂曰: "自古以來, 未有如此人, 自今以後, 豈復有如此人?" 時霖潦數日, 水不漲, 師旣渡, 大水驟至, 全島墊溺, 人皆神之。 時童謠有木子得國之語, 軍民無老少皆歌之。 漕轉使崔有慶聞大軍回, 奔告于。 是夜, 上王與其兄芳雨李豆蘭和尙等, 自成州 所, 奔于軍前, 日午猶未知。 道遇支應守令, 盡奪其馬匹以行, 知大軍回至安州, 馳還京城。 回軍諸將請急追, 太祖曰: "速行必戰, 多殺人矣。" 每戒軍士: "汝輩若犯乘輿, 予不爾赦, 奪民一(爪)〔瓜〕, 亦當抵罪。" 沿路射獵, 故緩行師。 自西京至京城數百里之間, 從臣僚及京城之人、傍邑之民, 以酒漿迎謁者, 絡繹不絶。 東北面人民及女眞之素不從軍者, 聞太祖回軍, 爭奮相聚, 晝夜星奔, 而至者千餘人。 奔還入于花園。 欲拒戰, 命百官兵仗侍衛, 聚車塞巷口。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1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군사-군정(軍政) / 역사(歷史) / 변란(變亂)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