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지리산의 험한 지세에서 왜적을 섬멸하다
5월, 경상도 원수(慶尙道元帥) 우인열(禹仁烈)이 비보(飛報)하기를,
"나졸(邏卒)들이 말하기를, ‘왜적이 대마도(對馬島)로부터 바다를 뒤덮고 오는데 돛대가 서로 바라다보인다.’하니, 도와서 싸울 원수(元帥)를 보내 주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이때 왜적이 있는 곳은 가득히 찼으므로, 태조에게 명하여 가서 이를 치게 하였다. 태조가 행군하여 아직 이르지 않으니 인심(人心)이 흉흉하여 두려워하였다. 인열(仁烈)의 비보(飛報)가 계속해 이르므로, 태조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서 적군과 지리산(智異山) 밑에서 싸우는데, 서로의 거리가 2백여 보(步)나 되었다. 적 한 명이 등[背]을 세워 몸을 숙이고 손으로 그 궁둥이를 두드리며 두려움이 없음을 보이면서 욕설을 하므로, 태조가 편전(片箭)을 사용하여 이를 쏘아서 화살 한 개에 넘어뜨렸다. 이에 적군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기운이 쑥 빠졌으므로, 곧 크게 이를 부수었다. 적의 무리가 낭패를 당하여 산에 올라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임(臨)하여 칼과 창을 고슴도치털처럼 드리우고 있으니, 관군(官軍)이 올라갈 수가 없었다. 태조가 비장(裨將)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치게 했더니, 비장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바위가 높고 가팔라서 말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태조가 이를 꾸짖고, 또 상왕(上王)031) 으로 하여금 휘하의 용감한 군사를 나누어 그와 함께 가게 했더니, 상왕도 돌아와서 아뢰기를 또한 비장(裨將)의 말과 같았다. 태조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가 마땅히 친히 가서 보겠다."
하면서, 이에 휘하의 군사들에게 이르기를,
"내 말이 먼저 올라가면 너희들은 마땅히 뒤따라 올라올 것이다."
하였다. 드디어 말을 채찍질하여 함께 달려가서 그 지세(地勢)를 보고는 즉시 칼을 빼어 칼등으로 말을 때리니, 이때 해가 한낮이므로 칼빛이 번개처럼 번득였다. 말이 한 번에 뛰어서 오르니, 군사들이 혹은 밀고 혹은 더위잡아서 따랐다. 이에 분발하여 적군을 냅다 치니, 적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반수 이상이나 되었다. 마침내 남은 적군까지 쳐서 이들을 다 죽였다. 태조는 평소에 인심을 얻었고, 또 사졸들이 뛰어나게 날래었으므로, 싸우면 이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주군(州郡)에서 그를 구름과 무지개처럼 우러러보았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7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
- [註 031]상왕(上王) : 정종(定宗).
○五月, 慶尙道元帥禹仁烈飛報曰: "邏卒言: ‘倭賊自對馬島蔽海而來, 帆檣相望。’ 請遣助戰元帥。" 時倭賊所在充斥, 命太祖往擊之。 太祖行未至, 人心洶懼, 仁烈飛報繼至, 太祖幷日而行, 與賊戰于智異山下。 相去二百許步, 有一賊背立俯身, 手扣其臀, 示無畏以辱之。 太祖用片箭射之, 一矢而倒。 於是賊驚懼氣奪, 卽大破之。 賊衆狼狽, 登山臨絶崖, 露刃垂槊如蝟毛, 官軍不得上。 太祖遣裨將率衆攻之, 裨將還白, 巖高峻馬不得上。 太祖叱之, 又使上王, 分麾下勇士, 與之偕行。 上王還白, 亦如裨將之言。 太祖曰: "然則我當親往見之。" 乃謂麾下士曰: "我馬先登, 則汝等要當隨之。" 遂鞭馬互馳, 觀其地勢, 卽拔劍用刃背打馬。 時日方中, 劍光如電, 馬一躍而登, 軍士或推或攀而隨。 於是奮擊之, 賊墜崖而死者太半, 遂擊餘賊盡殲焉。 太祖素得人心, 又士卒精銳, 戰無不克, 州郡望若雲霓。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7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