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가 한일 협상 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종2품 이남규(李南珪)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아! 슬픕니다. 대대로 우리의 원수인 저 일본이 반드시 우리 강토를 점령하고 우리 신하와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고야 말리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만국이 다 같이 아는 바입니다. 나라가 작고 병력이 약하다고 해서 끝없이 얽어맸으니 피 끓는 원한과 뼈에 사무친 원수를 어찌 잠시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변으로 말하면 신은 병으로 향리에 누워 있었으므로 그 전후 사정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거리의 소문을 들어보니 처음에는 폐하께 청하더니 마지막에는 무력으로 협박하였다고 합니다.
멸시와 모욕이 끝이 없었으나 우리 성상께서는 조종(祖宗)의 기업(基業)이 중하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대소 관리들과 백성들의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엄한 말로 강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심지어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사직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殉社稷〕’는 세 글자는 폐하께서 마음에 맹세하여 말씀으로 내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의리가 해와 별처럼 밝고 우레와 천둥보다 엄한 것이었습니다.
조정의 신료들이 진실로 떳떳한 천성이 있다면 마땅히 ‘임금이 욕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主辱臣死〕’는 네 글자를 이마에 써 붙이고 폐하의 뜻에 따라 나라의 운명을 보존하기 위해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외부 대신(外部大臣) 박제순(朴齊純)은 부(部)의 인장으로 조인하여 나라를 적에게 넘겨주었으며, 그 나머지 ‘가(可)’ 자를 쓴 역적들은 그 마음의 소재를 길 가던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부(否)’ 자를 쓴 여러 신하들을 놓고 말하더라도, 대개 ‘가’ 자를 쓰거나 ‘부’ 자를 쓰는 것은 가할 수도 있고 불가할 수도 있는 경우에 쓰는 것입니다. 지금은 만에 하나도 가하다고 할 것이 없고 모조리 불가한 일인데, 흉악한 조약 문서를 찢어버리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붓을 들어 단지 ‘부’ 자만 써놓는다는 것은 겨우 책임이나 모면해 보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 폐하께서는 이런 무리들을 등용해서 공경(公卿)의 반열에 두었으니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박제순 및 ‘가’ 자를 쓴 역적들의 말은 반드시 ‘세 조약서는 외교 상의 한 가지일 뿐이지, 종묘사직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고 인민들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며 토지와도 관계가 없는 것이므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원래 그대로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아! 그 누구를 속입니까? 하늘을 속입니까, 사람들을 속입니까?
저 나라가 화친을 맺은 이후에 이해 관계가 밀접한 사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늘 삼킬 계책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하고자 한 바를 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우리를 꺼리거나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단지 각국이 둘러싸고 주시하고 있어 공론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각국의 조약 체결을 일체 저들이 전관하고 우리는 관여하지 못하게 되면 더 무엇을 꺼리고 무엇이 두려워서 하려던 것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더구나 이른바 통감(統監)과 이사(理事)는 칭호가 참람하고 흉계를 환히 드러내 보인 것인데도 이를 허락하였으니 무엇인들 허락하지 못하겠습니까?
아! 바다로 둘러싸인 조선 삼천여 리로 말하면 우리 고황제(高皇帝)께서 창업하고 왕통을 세워 만대의 자손들에게 넘겨준 것이니, 비록 한 치의 땅이라도 폐하께서는 실로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역적들이 하루아침에 남에게 두 손으로 넘겨준단 말입니까?
위로는 종묘사직의 신령이 의지할 땅이 없어지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슬픔을 호소할 하늘이 없어졌으니, 우주의 어디를 본들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또 생각건대 중국은 몹시 어지러워져서 만국과 풍속이 같아졌고 오직 우리 조선만이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옛 나라로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가르침을 받들어 의관과 문물을 보존하기를 겨우 여러 음(陰) 속에 작은 양(陽)이 남아 있듯 하였는데 바로 이렇게 말살하였으니, 아! 어찌 그 하늘의 이치이겠습니까, 어찌 그 하늘의 이치이겠습니까?
신은 갑신년(1884)의 수치를 당했을 때 죽었어야 했는데 죽지 못했고, 갑오년(1894)의 치욕을 당했을 때 죽었어야 했는데 죽지 못했으며, 을미년(1895)의 사변 때 죽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죽지 못하였더니, 오늘날의 변을 당하여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을지언정 차마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들과 함께 부들부들 떨면서 원수들의 종이나 첩이 되어 가지고 작은 조정에서 구차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나라를 보존할 만한 계책이 없고 백성들을 보전할 만한 가망이 없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입니다. 설사 박제순의 무리들이 말한 것처럼 나라가 망하지 않고 백성들이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무릎을 어찌 차마 다시 굽히며 이 머리카락을 어찌 차마 다시 자르겠습니까? 의롭지 못하게 존속하는 것은 의롭게 망하는 것만 못하며, 의롭지 못하게 사는 것은 의롭게 죽는 것만 못합니다. 더구나 의롭다고 해서 꼭 다 망하거나 죽는 것도 아니고 의롭지 못하다고 해서 꼭 다 보존하거나 사는 것도 아닌 경우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지난날의 역사를 두루 고찰해 보건대 임금이 나라를 남에게 넘겨주어 그 신하들이 따른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신하가 나라를 남에게 넘겨주었는데 그 임금이 따른 경우는 없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빨리 박제순의 무리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죄를 바로잡으소서. 그리고 저 나라가 맹약을 더럽힌 죄를 각국에 공포하고, 군신 상하가 모두가 한 번 결사전을 벌여 성패를 계산하지 않고 의로운 데로 돌아간다면, 나라는 비록 망한다 하더라도 보전한 것이 되고 사람들은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산 것이 될 것이므로 천하 후세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진달한 바에 진실로 옳은 점이 있지만 역시 여러 상소에 비답을 내린 것이 있다."
하였다.
- 【원본】 50책 46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08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외교-일본(日本)
從二品李南珪疏略:
嗚呼噫嘻! 彼日本之爲我世讎, 必欲占據我疆土、髡鉗我臣民而後已, 非惟國人, 殆萬國所共知也。 國小兵弱, 羈縻不絶, 而血冤骨讎, 曷嘗須臾數而忘哉? 至於今日之變, 則臣病伏鄕里, 不能悉其本末。 而聽諸道路, 始也陛請, 終焉兵脅。 凌藉侮辱, 蔑有紀極, 而我聖上深惟祖宗基業之重, 俯念大小臣民之情, 嚴辭峻却。 至以臣子所不忍聞不敢道‘殉社稷’三字, 矢諸聖心, 發諸玉音。 此, 其義皎如日星, 而嚴於雷霆矣。 在廷臣僚, 苟有彝性, 惟當以‘主辱臣死’四字, 貼在額上, 將順聖意, 圖存國脈。 而外部大臣朴齊純調給部印, 以國予敵, 其餘書可之諸賊, 其心所在, 路人可知。 雖以書否諸臣言之, 夫書可書否, 施於或可或不可之間者也。 今, 於萬無一可, 萬有萬不可之地, 乃不能扯裂凶書, 俯首涉筆, 只書否字, 僅同塞責。 噫嘻! 陛下用此輩, 置諸公卿之列, 而國安得不亡乎? 齊純及書可諸賊之言, 必曰: "三條約書, 惟外交一事而已, 于宗社無干, 于人民無干, 于土地無干, 而我國之爲我國, 固自如也。" 噫! 其誰欺? 欺天乎? 欺人乎? 彼國自通和以後, 罔念脣齒之勢, 常懷呑囓之計, 而猶未能逞其所欲, 非憚我也、畏我也, 特以各國環視, 無如公議何耳。 今, 各國交約, 一切專幹, 而我無與焉, 則亦何憚何畏而不逞其所欲乎? 況其所謂統監、理事, 稱謂僭踰, 顯示凶圖, 此而可許, 孰不可許? 嗚呼! 環海以東三千餘里, 我高皇帝創業垂統, 以付畀萬世子孫者也。 雖尺地寸土, 陛下固不得以與人。 乃諸賊, 一朝拱手與人耶? 上而宗社神靈, 無憑依之地, 下而遺民赤子, 無籲哀之天, 橫宇互宙, 寧有是耶? 且惟念中州陸沈, 萬國同俗, 惟我東以檀、箕舊邦, 服孔、孟遺敎, 保有衣冠文物, 僅如衆陰中微陽。 而乃抹摋之如此, 嗚呼! 豈其天也? 豈其天也? 臣宜死於甲申之恥而不死, 宜死於甲午之辱而不死, 宜死於乙未之變而猶此淟涊不死, 以至有今日之變而極矣。 寧蹈海而死, 不忍與賣國諸賊, 伈俔爲讎人僕妾, 苟且偸活於小朝廷也。 今, 國家無可存之策, 人民無可全之望, 已定矣。 設如齊純輩之言, 而國家得不亡, 人民得不死, 此膝何忍復屈? 此髮何忍復斷? 不義而存, 不如亡於義; 不義而生, 不如死於義。 況義未必亡而死, 而不義未必存而生乎? 歷觀往史, 君以國與人而其臣從之者, 或有之, 臣以國與人而其君從之者, 未之有也。 伏願陛下亟正齊純輩賣國之罪。 仍將彼國渝盟之罪, 布告各國, 君臣上下, 背城一戰, 不計成敗, 惟義之歸, 則國家雖亡, 猶存, 人民雖死, 猶生, 庶其有辭於天下後世矣。
批曰: "所陳良有是也, 而亦有諸疏之批矣。"
- 【원본】 50책 46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08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외교-일본(日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