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직이 갑신정변 때 일본에 도망간 역적들을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하도록 청하다
정2품(正二品) 이용직(李容稙)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오늘 관보(官報)에 기재된 바를 보니, 고영근(高永根)과 노원명(盧遠明)이〖을미년〗 역도(逆徒) 중 한 사람인 우범선(禹範善)을 찔러 죽이고 일본에 잡혔습니다. 대개 우범선이 살해되었다니 시원하기는 시원합니다만, 다시금 가슴 속의 피가 한층 끓어오름을 깨닫습니다. 저 흉악한 원수 놈들을 일일이 궁궐 문 앞에 잡아다 놓고 끝까지 추궁하고 엄하게 국문을 하여 법대로 죄를 다스림으로써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풀어주지 못하고 도리어 망명한 자의 손을 빌렸단 말입니까?
그리고 고영근으로 말하면, 그의 본래 저지른 죄가 우범선과 비록 차이가 있지만 이미 교수형 판결을 받은 자입니다. 국법의 처형을 받지 않고 외국에 몸을 의탁하여 완악한 목숨을 보전하였으니, 바로 이 한 가지 일로도 만 번 죽여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그러나 만약 모후(母后)를 위하여 원수를 살해한 일 때문에 일본에서 비록 가벼운 견책(譴責)이나 한 대의 태형(笞刑)이라도 맞는다면 이는 우리 대한(大韓)의 수치이며 통분할 일이니, 우리 대한 사람들이 어찌 입을 다물고 먼 산 바라보듯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로서 죄를 짓고 망명한 자는 머물러 두어 보호하고 모후를 위해 원수를 살해한 자는 징계하여 다스리니, 이는 천하와 후세의 신하된 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난역(亂逆)이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이 어찌하여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대한(大韓)은 본래 예의의 나라로 불려 왔고 《춘추(春秋)》의 의리를 익숙히 강구해 왔습니다. 《춘추》의 의리에서 난신적자(亂臣賊子)는 사람마다 잡아서 죽일 수 있는데, 저 고영근은 죽여야 할 자를 죽였으니, 속죄하는 조처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외국인에게 일임하여 지나친 처벌을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노원명은 무슨 연고로 저 나라에 갔는지 모르고 현재 죄적(罪籍)에 실려 있지 않은 자이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외부(外部)로 하여금 일본 공관(公館)에 조회를 청하고 또 사신(使臣)의 직책을 감당할 재능이 있는 사람을 뽑아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에 가서 타결짓게 한 다음, 고영근과 노원명으로 하여금 우범선의 시체를 압송해 오도록 하여 빨리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형률을 시행하게 하는 일을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법회통(公法會通)》중 교환도범조(交還逃犯條)에 ‘흉악한 살인 등의 일을 징계하면 각 국에 보탬이 되고 놓아주면 각 국에 해를 끼친다. 프랑스 장관 로애〔魯愛〕가 말하기를, 「본 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한 자를 본 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두 나라의 휴척(休戚)과 관계되고 안위를 함께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죄악이 제멋대로 자행되어 그칠 줄을 모를 것이다.」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서력(西曆) 1872년 프랑스에서는 일본(日本)에서 도망쳐 온 역민(逆民)을 추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적 박영효(朴泳孝), 유길준(兪吉濬), 조희연(趙羲淵), 이두황(李斗璜) 등 수십 명은 시해를 모의한 죄를 범하였는데 이 죄인들을 환국시킬 수 있는 증안(譄案)이 여기에 있습니다. 〖《공법회통》〗 간예 내정조(干預內政條)에 이르기를, ‘〖본 국의〗관리와 백성이 다른 나라를 모해하여 사단을 일으킨 경우에는 본 국에서 핑계를 대어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데, 더구나 비호할 수는 없다. 죄인을 피해를 입은 국가에 넘겨주어 자의로 다스리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본 국이 타국의 죄인을 자기 나라의 법률에 근거해서 징계하여 다스려도 타국에서 오히려 가볍다고 여긴다면 타국이 처리하게 맡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일본인 역적 고로 류노스케 〔梧樓柳之助〕, 하라무모도 모리지로 〔原務本守次郞〕 등 40여 명은 바로 남의 나라의 국정에 관여하여 사단을 일으킨 자들인데, 교출(交出)하는 규례가 이와 같으니 우리나라에서 지금 이치에 근거하여서 성토하여 밝힌다 해도 일본에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바싱〔沙婆眞 : A. S. Sabatine〕의 보고서와 히로시마 〔廣島〕의 재판 기록에서 진상이 드러났으니 명백하여 숨길 수가 없습니다. 설사 양국의 역적이 모두 우리나라의 저잣거리 거적 위에서 복주되더라도 오히려 치욕의 만 분의 일도 씻기에 부족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단호한 결단을 내리시고 정신을 가다듬어 훌륭한 정사를 도모하시며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임용하고 비용을 절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면 나라의 부강을 조만간에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엄과 용맹을 혁혁하게 드날리어 포악한 자들을 토벌하고 그 소굴을 쳐부수어 놈들을 처형하여서 준엄한 판결을 시행한 뒤에야 폐하의 공업(功業)이 성대해질 것이며 신 등의 소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공론(公論)은 스스로 채택할 만한 것이 있다. 의정부(議政府)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특진관(特進官) 민영우(閔泳雨), 시종원 경(侍從院卿) 이유인(李裕寅), 정3품 윤이병(尹履炳) 등이 잇따라 상소하니, 【상소 내용은 이용직(李容稙)의 상소와 대략 같다.】 모두 너그러운 비답을 내렸다.
- 【원본】 47책 43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0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외교-일본(日本)
正二品李容稙疏略:
今見報館所記載, 則高永根、盧遠明刺殺逆徒中一範善, 日本執之。 蓋範善被殺, 快則快矣, 更覺腔血一層激烈也。 凶彼讐賊, 不能一一拿致於象魏之下, 窮推嚴鞫, 依法正罪, 以洩神人之憤, 反藉亡命者之手耶? 且以永根言之, 其所素犯, 雖與範善有間, 旣擬處絞者也。 不受三尺之章, 託身於異國, 得保頑喘, 卽此一事, 萬戮猶輕。 然若以爲母后殺讐賊之故而在日本, 雖薄譴責一笞杖, 卽我韓之羞辱也, 痛憤也。 爲我韓人者, 豈可含默而岸視哉? 在人臣子之亡命則留護之, 爲其母后而殺讐則懲治之, 此使天下後世爲人臣子者, 猶恐亂逆之不接踵起, 未知日本何所取焉。 然惟我大韓, 素稱禮義之邦, 熟講《春秋》之義。 《春秋》之義, 亂臣賊子, 人人得以誅之。 彼永根誅所當誅, 合有將贖之擧, 則不可一任外人, 陷於濫償。 況且盧遠明, 未知緣何住彼, 而現非罪籍之所載者乎? 令外部照請日公館, 且選專對之才, 齎國書往日本妥決, 使高永根、盧遠明, 押來範善屍身, 亟施剖斬之律, 斷不可已也。 且公法中交還逃犯條曰: "凶殺等事, 懲之, 與各國有益, 縱之, 與各國有損。" 法相魯愛曰: "邦國互交逃, 休戚相關, 安危可共。 無此, 罪惡肆行, 無所止底。" 西曆一千八百七十二年, 法國驅逐日國脫逃之逆民。 我國賊泳孝、吉濬、羲淵、斗璜等數十名, 犯謀弑凶殺之律, 而交還之證案在此。 干預內政條曰: "官民之謀害他國, 滋生事端者, 其國不得推諉, 矧可袒護之耶? 將罪犯交與被害之國, 自行懲治。" 又曰: "彼國將罪犯, 按照地方律文懲治, 此國尙以爲輕, 則令其本國自任之可也。" 日本賊梧樓柳之助、原務本守次郞等四十餘名, 卽干預滋端者。 而交出之規例如彼, 我今據理而聲明, 則日本亦無以阻擋者。 以其有沙婆眞報告及廣島裁判記中, 情跡之綻露, 昭不可誣也。 縱使兩國之賊, 竝皆伏法於我藁街之上, 猶不足以雪萬一之恥。 伏乞聖明廓揮乾斷, 勵精圖治, 任賢使能, 節用愛民, 則富强可立而待。 赫揚威武, 以討殘暴, 搗覆其巢穴, 寢其皮肉, 使漠南無王庭, 然後陛下之功業盛矣, 臣等之志願畢矣。
批曰: "公論自有可採, 令政府稟處。" 特進官閔泳雨、侍從院卿李裕寅、正三品尹履炳等相繼陳疏。 【措辭與李容稙疏略同】 竝賜優批。
- 【원본】 47책 43권 5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0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외교-일본(日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