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고종실록 42권, 고종 39년 5월 6일 양력 2번째기사 1902년 대한 광무(光武) 6년

평양에 행궁을 두고 서경으로 부르도록 하다

조령을 내리기를,

"평양(平壤)기자(箕子)가 정한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옛 도읍으로서 예법과 문명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비록 사람의 일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고장의 신령스러움도 것도 역시 논할 수 있다. 주(周) 나라에는 동경(東京)과 서경(西京)이 있었고 명(明) 나라에는 남경(南京)과 북경(北京)이 있었으며 요즘에 이르러서는 외국의 경우에도 역시 두 개의 수도를 세우고 있다. 그리고 고려 때의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특별히 평양서경을 두고 송경(松京)과 함께 두 수도로 삼았는데 이것은 모두 나라를 공고히 만들어 반석같이 크게 다지려는 것이다.

짐은 벌써부터 이에 대하여 생각해 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마침 중신(重臣)이 상소를 올려 논하였으니, 이제 평양에다 행궁(行宮)을 두고 서경이라고 부름으로써 나라의 천만년 공고한 울타리로 삼겠다. 더구나 이것은 그 곳 백성들이 모두 바라고 기꺼이 호응하는 데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것은 매우 중대한 공사이니 의정부(議政府)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해당 도신(道臣)과 자세히 의논해서 들이게 하라."

하였다.


  • 【원본】 46책 4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50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종사(宗社)

詔曰: "平壤箕聖千年之故都也, 禮義文明, 玆焉肇創。 是雖出於人事, 而其地靈亦可以論矣。 有東、西京, 有南、北京。 至若近日, 外國亦建兩京。 且考勝國之史, 特置西京平壤松京爲兩京。 皆所以鞏固邦國, 期於磐泰者也。 朕嘗念此者久矣, 適有重臣之疏論。 肆將於平壤置行宮, 稱曰西京, 以爲國家萬年鞏固之衛。 況其該地人民之所咸願樂趨者乎? 此是莫重莫大之役也, 令政府諸臣與該道臣, 爛商會議以入。"


  • 【원본】 46책 4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50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