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선이 흉년 구제 대책을 건의하다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윤용선(尹容善)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삼가 하찮은 견해로 두 가지 조항을 열거하며 또 성학(聖學)에 힘쓰는 데 대하여 첫머리에 놓습니다.
대체로 폐하의 한 마음은 바로 모든 일의 강령(綱領)으로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 백성들의 안위(安危)와 존망(存亡)의 기미가 모두 그에 관련되어 있으니, 어찌 그 바름을 구하는 데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바르게 하자면 글을 읽지 않고서는 그 방도를 터득할 수 없기 때문에 곧바로 이것을 우선으로 삼는 것입니다. 성학에 힘쓰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 폐하가 경서(經書)를 배우는 사람들처럼 밤낮 괴롭게 글 읽기를 그만두지 말라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책이란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서 선차적인 것이고 이치를 밝히는 여러 도구이니, 그것을 상고할 것 같으면 성현(聖賢)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과 이치를 밝혀내는 술책이 모두 그 속에 담겨져 있어 공사(公私), 선악(善惡), 사정(邪正), 시비(是非)가 뒤섞인 마당에서도 마음과 뜻이 현혹되거나 일하는 데에서 전도되지 않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폐하에게 글을 읽도록 청하는 것은 그 속에 푹 잠겨 이러한 일을 잊지 말게 하자는 데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경학(經學)을 환히 통달한 유신(儒臣) 5, 6명을 선택하여 교대로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여 경서나 역사를 가지고 의리(義理)를 논설(論說)하고 고금(古今)을 상고하게 하며, 혹은 치도(治道)를 진술하고 혹은 정체(政體)를 진술하게 하되 문구(文具)만 갖추기를 일삼지 말고 실심(實心)으로 체험하는 것을 요체로 삼는다면, 자연히 성지(聖志)가 크게 밝아지고 천리(天理)가 드러나서 인욕(人欲)이 물러갈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나가면 정사가 어찌 충분한 여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신은 이와 관련해서 또 진달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폐하는 춘추(春秋)가 이미 만년(晩年)이시고 만기(萬機)가 지극히 번잡하건만 신은 오히려 경서를 가까이하여 의리를 강명(講明)하였으면 하는데, 하물며 동궁 전하(東宮殿下)는 춘추가 한창인 데다가 번잡한 사무도 없는 만큼 바로 글을 읽어 궁리(窮理)하여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또 동궁(東宮)의 관리들은 단지 자리나 채우고 배위(陪衛)만 할 것이 아니라 덕성을 기르고 학문으로 인도하여 태자로 하여금 정언(正言)을 듣고 정사(正事)를 보면서 고명하고 정당한 경지에 이르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이제부터 날마다 서연(書筵)을 열고 모든 춘방(春坊)과 계방(桂坊)의 관리들은 반드시 행실이 단정하고 문학이 넉넉한 사람들로 두고 교대로 시강(侍講)하게 함으로써 예학(睿學)을 성취하게 한다면 진실로 국가의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황자(皇子) 영친왕(英親王)은 지금 나이가 5세이지만 모든 점에서 숙성하여 이미 부(府)를 설치하고 관속(官屬)을 둔 만큼 지금이 비록 예(例)를 갖추어 입학할 때는 아니더라도 문자(文字)를 익히게 하고 또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을 가르쳐서 훌륭한 지식과 능력을 배양(培養)하게 한다면 뒷날에 반드시 번병(藩屛)으로서 황실을 돕는 큰 계책을 내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모두 유념하여 채납(採納)하소서.
1. 정력을 기울여 정사를 잘하기에 애씀으로써 내수(內修)의 방도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신이 오늘날의 형세를 생각건대, 안으로는 인심이 흩어져서 굳게 단결할 가망이 없고 밖으로는 강한 이웃 나라가 엿보면서 조종(操縱)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거듭 나타나므로 비록 어리석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위란(危亂)이 들이닥치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정에서만은 갈수록 더욱 안일하게 지내면서 국가의 흥망에 대해서 월(越) 나라 사람이 진(秦) 나라 사람이 수척한 것을 보듯이009) 하고 있습니다. 성상에게 분발하는 뜻이 없다면 또한 어찌 유독 여러 신하들만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게 되겠습니까? 대체로 요즘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나라의 형세가 이렇게 된 까닭을 물으면 반드시 모두 나의 죄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스스로 자기 죄가 아니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설사 유사(有司)에서 법을 갖추어 따져도 역시 크게 죄를 줄 만한 사실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큰 죄가 되는 까닭입니다. 옛날의 신하들은 군자(君子)건 소인(小人)이건 할 것 없이 누구나 반드시 일정한 주견(主見)을 가지고 있어 선한 것은 선한 대로, 악한 것은 악한 대로 모두 귀결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하들은 그렇지 못하여 기력과 정신이 쇠약해져서 선한 것도 없고 악한 것도 없이 그럭저럭 지내고 세파를 따라 오르내리면서 나라의 흥망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고 남들이 욕을 하면 그들을 보고는 또한 미치광이라고 합니다. 좋은 벼슬은 내가 하면 그만이라고 하고 후한 녹봉은 내가 먹으면 그만이라고 하며 불행하게 나라에 어려움이 있으면 피해버리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보고 듣는 것에 익숙하게 되어 모두 다 그런 판입니다. 그 의도는 대체로 장차 허물을 엄하기 그지없는 곳에 돌리려는 것으로서 그 마음에 비록 좋은 말이 있더라도 성상께서 장차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이것은 우리 임금은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다고 하는 것보다도 더 심한 것입니다. 폐하는 위에서 고립되고 국사(國事)는 점점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폐하가 사실 잘 다스리려고 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신하들 중에는 봉행(奉行)하는 자가 없고, 폐하는 사실 간(諫)하는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신하들 중에는 진언(進言)하는 자가 없으며, 폐하는 사실 어진 사람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신하들 중에는 간사한 자가 많습니다. 이것이 어찌 성대한 덕과 지극한 인(仁)을 가진 폐하로서 이러한 위난(危難)에 처한 것이겠습니까? 전에는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편안하고 경내(境內)가 무사하여도 마땅히 밤낮으로 조심하면서도 오히려 잘못이 있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모든 나라들이 눈을 흘겨 말썽이 없으리라고 담보할 수 없건만 백성들을 돌보지 않은 지가 오래됩니다. 게다가 올해의 흉년으로 도적과 유리(流離)의 우환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형세는 서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조정의 조치에는 조금도 변동과 진작(振作)이 없으니, 이것은 나라와 백성을 들어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또 생각하건대, 여러 신하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게 하려면 반드시 성상부터 큰 뜻을 분발하여 밤낮으로 힘쓰면서 모든 정사에 관한 명령을 내리고 조치를 취하는 데에서 털끝만치라도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로운 것은 서슴없이 단칼에 베어 없애고 그것을 아까워하지 말며 폐하도 응당 쇠퇴하는 것을 일으키고 난리를 바로잡을 방도를 스스로 도모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는 사욕을 막고 이치를 지키는 것을 성공(聖功)으로 삼고, 인재를 등용하는 데서는 사정(私情)을 버리고 공정함을 넓혀 벼슬길을 깨끗하게 하며, 정사를 하는 데서는 근본에 힘쓰고 부차적인 것을 버리는 것으로써 선후(先後)의 차이를 살필 것입니다. 재용을 절약하여 국계(國計)를 넉넉히 하고, 수령을 잘 가려서 민생을 보호하며, 염치를 숭상하여 풍속을 면려하고, 사치한 풍습을 억제하고 간쟁(諫諍)의 길을 넓히며, 요행수로 출세하는 문을 막고 남을 해치고 헐뜯는 말을 막아버릴 것입니다. 전대의 흥망 성쇠(興亡盛衰)를 밝은 교훈으로 삼고 인심의 향배(向背)를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 삼아 반드시 자신부터 먼저 선하게 되고 가까이에서부터 반드시 악을 제거하며 하찮은 혜택을 베풀기에 힘쓰지 말고 사소한 일을 직접 처리하지 말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내수의 방도입니다. 내수의 방도를 다하면 백성들이 자연히 가까워지고 백성들이 가까워지면 외적의 침입도 저절로 막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는 유념하여 속히 반성하며 방도를 찾기 바랍니다.
1. 덕혜(德惠)를 베풂으로써 진황(賑荒)의 대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올해 여러 도(道)들의 흉년 상황을 듣건대, 강원도(江原道)와 함경도(咸鏡道) 두 도 외에는 오직 경상도(慶尙道)와 평안도(平安道)가 그리 심하지 않고 전라도(全羅道), 충청도(忠淸道), 경기도(京畿道), 황해도(黃海道)는 모두 적지(赤地)가 되었는데, 경상도와 평안도에서도 심한 곳이 그리 심하지 않은 곳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이것을 놓고 말한다면 전국적으로 흉년이 든 곳이 5분의 3이나 됩니다. 지난해에는 비록 흉년이 들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식량 고생을 하였는데 올해는 큰 흉년까지 겹쳤으니 백성들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뻔하지 않습니까? 마땅히 진휼(賑恤)의 방도를 취하기에 급급해야 하겠지만 국고(國庫)가 텅 비었으므로 믿을 것이란 민간의 곡식뿐입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무역해가는 것이 나라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더 많고 수령과 재신들이 약탈하는 것이 도적의 우환보다 더 심합니다. 향읍(鄕邑)에서 부자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100석(石) 이상 비축한 자는 많지 못하니, 백성들의 생업이 요즘처럼 영락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비록 진휼하려고 하더라도 나라 안에 곡식이 없으니 가루 없이 떡을 만들려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재용은 전적으로 부세(賦稅)에 의거하고 있는 만큼 지금처럼 허다한 재결(災結)에 고스란히 〖면제해〗주도록 할 수는 없는 형편이며, 따라서 거의 죽어가는 백성들을 다그쳐 아무런 근거 없는 조세를 징수하는 일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저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앉아 보면서 구원하지 않는 것도 이미 어진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노릇인데, 더구나 살가죽을 벗겨내고 골수를 쳐내는 짓을 덧씌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진황은 오히려 둘째 문제이고, 재결에 조세를 감해 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아아! 신이 일전에 내린 조칙을 보건대, 백성들을 돌보고 불쌍히 여겨 차마 하지 못하는 뜻이 열 줄로 된 은혜로운 말 사이에 넘쳤으니, 참으로 훌륭하였습니다. 누군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춤을 추면서 우러러 찬탄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은 매번 오늘날의 진휼의 방도는 진심(盡心)이라는 두 글자로서 이것이면 백성들을 죽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대체로 곡식이 없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적임자를 얻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좋은 대책이 없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선정(善政)을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입니다. 진실로 선정을 하고 적임자를 얻는다면 반드시 먼저 백성들을 위하여 폐해를 없애어서 쉴 수 있게 한 다음에야 진휼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백성들을 해치는 일로서 없애야 할 것이 두 가지이고, 중지해야 할 것이 한 가지이며, 감해 주어야 할 것이 한 가지이고, 죄를 주어야 할 것이 한 가지이며, 금지해야 할 것이 한 가지입니다.
이른바 없애야 할 것은, 첫째로 명목 없는 잡세(雜稅)입니다. 요즘 성상께서 백성들을 돌보아 각종 잡세를 없애도록 조령을 내렸는데, 신은 그것이 과연 집행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땅히 엄하게 조사하고 신칙하여 혹시라도 그전처럼 그대로 답습하는 자들이 있으면 조령을 어긴 것으로 논할 것입니다. 둘째로는 각도의 시찰관(視察官)과 봉세관(捧稅官)들을 소환(召還)하는 것입니다. 신은 적이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백성들의 어려움과 농사가 흉년든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자(使者)를 나누어 보내어 덕의(德意)를 선포하게 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듣건대, 여러 사람들이 나가서 성의(聖意)를 만 분의 일도 널리 알리지 못하고 도리어 백성들에게 호랑이나 승냥이처럼 되어 백성들이 원수보다 더한 놈들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신은 이 무리들을 법부(法部)로 하여금 나문(拿問)하여 장물(贓物)을 징수하고 율에 따라 감죄(勘罪)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고을의 역둔전(驛屯田)은 공적인 토지에 속하는 만큼 조세를 받아들이는 절차는 군수(郡守)에게 일임(一任)하여야 할 것인데, 저 봉세관은 또한 무엇 하는 사람들입니까? 신이 듣건대, 조세를 받아낼 때에 함부로 징수하여 받아내면서 독촉이 성화같으므로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 사무쳐 거의 난을 일으킬 지경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마땅히 모두 즉시 소환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중지해야 할 것은 금광(金鑛)입니다. 설사 이것이 나라에 큰 이익을 주더라도 이런 흉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곡식 값이 배로 뛰어오르고 또 도적이 흥성하는 것도 모두 이에 기인되는 만큼 우선 중지하고 풍년이 들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이른바 죄를 주어야 할 것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수령과 재신은 으레 모두 백성들을 어육(魚肉)과 같이 여기면서 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긁어내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습니다. 눈과 귀노릇 하는 자들을 널리 박아놓고는 온갖 계책으로 모함하는데, 효성스럽지 못하고 화목하지 못하다거니 간음(姦淫)을 한다거니 혹은 동학(東學)이라거니 하는 통에 소 한 마리나 베 몇 필을 가진 백성들은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죄 없는 사람들이 하늘에 하소연하면서 서로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야 백성들이 어찌 원망하지 않으며 난이 어찌 생기지 않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이제부터 관찰사나 수령으로서 탐욕스럽고 포악하다고 소문난 자들을 하나하나 적발해서 모두 율에 따라 처리할 것입니다.
이른바 금지해야 할 것은 사방의 도적들로서 모두 더없이 두려운 것입니다. 경부(警部)와 한성부(漢城府) 그리고 각도의 관찰사와 군수들로 하여금 법률을 거듭 밝히고 엄히 체포하여 처단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른바 감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흉년든 고을의 재결을 두고 하는 말로서 다 그 실수(實數)를 사핵(査覈)하여 적당히 탕감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이 몇 가지는 모두 백성들의 뼈를 깎는 폐해로서 흉년보다 더 심한 것입니다. 대체로 폐해가 없어지면 이익이 생기고 원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법인데, 일단 이익이 생기고 즐거움이 오면 저절로 죽지 않게 됩니다. 그런 만큼 전곡(錢穀)으로 진휼하는 것은 선정으로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전곡으로 진휼하면 간혹 계속 댈 수 없을 수도 있어서 은혜가 널리 미치지 못하지만, 선정으로 하면 그 은혜를 입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끝없는 덕혜를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은 진심이라는 두 글자를 오늘날 진휼하는 근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시급하고 늦출 수 없는 실정(實政)과 실혜(實惠)에 대해서는 신이 이미 의정부와 각부(各部)의 여러 신하들에게 모두 기한을 정하고 방략을 써서 올리게 하였습니다. 마땅히 회의한 다음 품하여 재결을 받겠으니,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유념하고 속히 처분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이 또한 듣건대, 서북(西北) 양계(兩界)의 백성들 중에 변경을 넘어가 거류(居留)하는 자가 몇 만 호나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따져보면 모두 장리(長吏)가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이산(離散)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모두 우리 선왕(先王)들이 500년 동안 은택을 내려준 사람들이므로 비록 변경 밖에 넘어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모두 고국을 그리면서 조정에서 돌보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강북(江北)의 백성들은 관청을 설치하여 보호해달라는 내용으로 두 번씩이나 의정부에 상소를 올렸는데, 그 뜻이 가상하면서도 측은하였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의 소원대로 관원을 서쪽과 북쪽에 두어 그 백성들을 관리하되 호적(戶籍)에 등록하고 진무(鎭撫)하도록 하였으니, 삼가 바라건대, 가엾게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많지만 그 요체는 인심을 얻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인심을 얻는 요체는 또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만인의 마음을 모두 얻게 되고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만인의 마음을 모두 잃게 되며, 인심을 얻으면 흥하고 인심을 잃으면 망합니다. 이것은 천하 고금의 밝고 밝은 교훈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는 또한 요체가 있는데, 그것은 사사롭다는 한 마디를 버리는 데 불과합니다. 공정하면 모든 선(善)이 다 서게 되고 사사로우면 모든 선이 다 떠나게 되니, 이치는 바로 이러할 뿐입니다.
그리고 신이 듣건대,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는 것을 마음으로 삼고 성인(聖人)은 만물을 이루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신이 늙고 무능하다는 데 대해서는 온 나라가 아는 바이고 폐하께서도 환히 꿰뚫고 있는 일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만물을 낳고 이루는 은혜를 거듭 베풀어 신으로 하여금 무거운 책임을 일찌감치 벗어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생을 마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질고 덕있는 사람을 가려서 제수(除授)하여 국사를 다행하게 만들기를 천만 번 눈물을 흘리며 거듭 바랍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연이어 올린 상소는 구구절절이 모두 옳다. 대개 경(卿)은 주석(柱石)같은 원로(元老)로서 마땅히 이런 때에 이런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간절하고 극진한 말들은 절절한 충성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헤아리면서 충애(忠愛)하는 경의 지극한 심정을 가상하게 생각하고 가슴에 새겨 두겠다. 다만 알기는 어렵지 않지만 시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니, 어찌 상하 간에 서로 힘쓸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날의 황급한 형편에 대해서는 경이 이미 조목별로 자세히 진술했는데, 서로 도와 다스리면서 널리 구제할 방도를 속히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경의 책임인데도 도리어 지나치게 겸손하게 굴면서 곧바로 사임시켜줄 것을 요구하니, 참으로 짐이 짐작도 못한 일이다. 경은 모름지기 더욱더 분발해서 날마다 도울 것을 생각하여 실속 있는 계책에 힘쓰도록 하라. 이것이 내가 크게 바라는 바이다."
하였다.
- 【원본】 45책 41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26면
- 【분류】교통-육운(陸運) / 호구-호적(戶籍)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농업-농작(農作) / 구휼(救恤) / 재정-잡세(雜稅) / 교통-육운(陸運) / 농업-전제(田制) / 광업-광산(鑛山) / 사상-동학(東學) / 사법-치안(治安)
- [註 009]월(越) 나라 사람이 진(秦) 나라 사람이 수척한 것을 보듯이 : 월나라 사람이 진나라 사람이 살이 찌든 수척하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무관심을 비유한 말.
議政府議政尹容善疏略:
謹以芻蕘之見, 列爲兩條, 又冠之以勉聖學。 蓋陛下一心, 卽萬事之綱領, 而宗社、生民安危、存亡之機, 無不係焉, 可不勉勉求其正哉? 欲正其心, 則非讀書, 無以得其術, 故輒以是爲先焉。 其曰勉聖學者, 豈欲陛下晝夜攻苦, 不輟讀書, 如經生學子之爲哉? 特以書者, 治心之前茅而明理之諸具也。 有以考之, 則聖賢治心之方、明理之術, 皆在其中, 而公私、善惡、邪正、是非之際, 庶不使心志昏惑、事爲顚倒矣。 故臣之請陛下讀書者, 不過欲涵游其中, 使勿忘此事而已。 選擇儒臣之有經學通明者五六人, 更日入侍經筵, 或經或史, 使之論說義理, 考據古今, 或陳治道, 或陳政體, 勿以應文備具爲事, 務以實心體驗爲要, 則自然聖志大明, 天理呈露, 而人欲退去矣。 由是而推之, 政事, 豈不沛然有餘裕哉? 臣因此而又有所仰達者焉。 今陛下, 春秋已晩, 萬機至煩, 臣猶欲親近經書, 講明義理。 況東宮殿下, 春秋鼎盛, 又無事務之煩劇, 正宜讀書窮理, 以習治國之術。 東宮之官, 非直以備員陪衛而已, 欲其薰陶德性, 輔導學問, 使太子聞正言、見正事而造乎高明正大之域也。 伏乞自今爲始, 日開書筵, 凡春桂坊官, 皆必以行己端潔文學有餘者, 使之更番侍講, 以爲成就睿學之地, 則誠國家之萬幸也。 皇子英親王, 年今五歲, 凡百夙就, 旣設府而置官屬矣, 則今雖非備例入學之時, 亦使之習熟文字, 又誨之以嘉言善行, 以培養其良知良能, 異日必能藩屛皇室, 夾贊洪猷。 伏乞陛下竝留神而採納焉。 一, 請勵精圖治, 以盡內修之方。 臣竊惟今日之勢, 內則人心渙散而無固結之望, 外則强隣窺伺而有操縱之權, 天災時變, 層生疊見, 雖愚夫愚婦, 皆知危亂之必至。 而惟朝廷之上, 恬嬉日甚, 視國家興亡, 不趐如越人之視秦瘠。 然自上若無奮發之志, 則亦獨何以使群臣率職哉? 夫聚今日朝廷諸臣而問國勢, 如此之故, 皆必曰非我罪也。 不惟自以爲非其罪也, 雖有司具法而覈之, 亦無大加罪之實矣, 此乃所以爲大罪也。 古之爲臣者, 無論君子與小人, 皆必有一定主見, 善則善、惡則惡, 皆有所歸。 今之爲臣者, 則不然, 委靡頹惰, 無善無惡, 因循姑息, 逐波上下, 國之興亡, 吾何關焉? 人之笑罵, 彼且狂矣。 好官, 吾爲之而已, 厚祿, 吾食之而已, 不幸國有難焉, 則避之而已, 習熟見聞, 滔滔皆然。 其意蓋將歸咎於莫嚴之地, 而其心曰雖有善言, 上將不聽, 是又甚於謂吾君不能者, 陛下則孤立於上矣, 國事則馴至於今矣。 是則陛下, 實未嘗不欲治, 而諸臣無奉行者; 陛下實未嘗不容諫, 而諸臣無進言者; 陛下實未嘗不好賢, 而諸臣多柔侫者也。 豈有如陛下之盛德至仁, 而危難如此哉? 向使歲豐民安, 境內無事, 固當夙夜兢兢, 猶恐有失。 況今萬國睢盱, 不保其無釁隙, 而民之不懷, 厥惟久矣。 加之以今年之大無, 盜賊流離之患, 已不勝其狼藉, 土崩瓦解之勢, 可立而待也。 如此而朝廷之擧措, 少無變動振作焉, 則是擧民國而棄之也。 故臣又謂欲使群臣率職, 必先自上奮發大志, 早夜孜孜, 凡政令施措之間, 一毫爲民國害者, 一刀割斷, 不惜去之, 陛下亦宜自謀, 所以興衰撥亂之方。 治心則以遏欲、存理爲聖功, 用人則以祛私、恢公、淸仕路, 政事則以務本、抑末、審先後。 節財用以裕國計, 擇守令以保民生, 尙廉恥以勵風俗, 抑奢侈之習, 廣諫諍之路, 杜僥倖之門, 塞讒賊之口。 以前代興廢爲明鑑, 以人心向背爲可畏, 爲善必自躬始, 去惡必自邇始, 勿勤小惠, 勿親小事。 此則所謂內修之道也, 內修之道盡, 則百姓自然親矣, 百姓親, 則外侮自然禦矣。 伏乞陛下留神而亟圖反求焉。 一, 請施德惠, 以盡賑荒之策。 竊聞今年諸路歉形, 江原、咸鏡二路外, 惟慶尙、平安爲未甚, 全羅、忠淸、京畿、黃海則擧皆赤地, 而慶尙、平安之已甚, 又多於其未甚。 據此言之, 全國遭歉, 爲五之三矣。 上年雖曰未歉而猶有艱食之歎, 加之以今年之大無, 則民命之不支, 不已灼然乎? 第當汲汲爲賑恤之方, 而國庫空虛, 所恃者, 民間之穀而已。 然外人之貿取, 多於國人之食, 守宰之攘奪, 甚於盜賊之患。 鄕邑之間, 號稱富者, 有過百石之儲者不多, 民業之凋殘, 蓋莫近若耳, 然則雖欲賑恤, 國中無穀, 殆同無麪之不托矣。 且國家財用, 專資賦稅, 則如今許多災結, 勢無以盡數許給, 又不免督迫將死之民, 徵以白地之稅矣。 夫坐觀民之死亡而不救, 已非仁人之所忍, 況加之以剝膚椎髓耶? 然則賑荒猶在第二, 而蠲災爲先務矣。 嗚呼! 臣伏見日前詔勅下者, 其眷眷斯民惻怛不忍之意, 溢於十行恩言之中, 猗歟盛哉! 其孰不感泣鼓舞, 欽仰讚歎哉? 臣每以爲今日賑恤之方, 惟盡心二字, 可以令民無死。 蓋不患無穀, 而患不得其人; 不患無善策, 而患朝廷之無善政。 苟有善政, 且得其人, 則必先爲民除害, 使得休息然後, 可以言賑恤。 凡今害民之事, 當罷者二, 當停者一, 當蠲者一, 當罪者一, 當禁者一。 所謂當罷者, 一曰, 無名雜稅。 邇來聖上, 屢軫民恤, 詔罷各項雜稅, 臣未知其果能行否耶。 當嚴査申飭, 或有如前踵行者, 以違詔論。 二曰, 召還各道視察及捧稅等官。 臣竊料陛下念生民之艱, 憫年事之歉, 分遣使者, 行布德意。 然臣聞諸人之出, 不能對揚聖意之萬一, 而反爲豺虎於民, 民視之甚於仇讎。 臣以爲此輩, 宜令法部, 拿問徵贓, 依律勘罪。 至於各邑驛屯所係公土, 則捧稅之節, 當一任郡守, 而彼捧稅官, 又何爲者耶? 臣聞其捧賭之際, 橫徵濫捧, 督如星火, 民烈漲天, 幾至爲亂。 此當竝卽召還者也。 所謂當停者, 金鑛, 雖是國之大利, 當此凶年, 群聚之處, 穀價倍騰, 且盜賊之興, 皆由是出, 當姑停止, 以待豐年。 所謂當罪者, 今之爲守宰者, 例皆視民如魚肉, 不剝皮而刮其骨則不休。 廣設耳目, 百計構誣, 或以不孝不睦, 或以奸淫, 或以東學, 凡民之有農牛一隻, 織布數疋者, 莫能脫其綱, 無辜籲天, 相爲敵讎。 如此而民安得不怨, 亂安得不生? 臣願自今觀察、守令之以貪虐聞者, 一一摘發, 竝依律從事。 所謂當禁者, 四方賊騷, 俱極悚然。 乞令警部、漢城府及各道觀察、郡守, 申明法律, 嚴加捕戢。 所謂當蠲者, 歉邑災結, 皆査覈實數, 量宜蕩蠲。 凡此數者, 皆民切骨之害而甚於凶年者也。 夫害去則利生, 怨已則樂生, 旣利旣樂, 自能不死。 然則以錢穀賑恤, 不如以善政。 賑恤以錢穀, 則或有所不繼, 而爲恩不博, 以善政則無人不被其恩, 而德惠施於無窮矣。 此臣所以謂盡心二字, 爲今日賑恤之本者也。 至於實政實惠之可急不可緩者, 臣已令政府各部諸臣, 皆使方略, 刻日書進矣。 從當會議, 上稟取裁, 伏乞陛下留神而亟下處分焉。 臣又聞西北兩界之民, 越邊居留者, 爲幾萬戶, 苟原其故, 皆由長吏貪暴, 使民離散也。 然彼皆我先王五百年恩澤中物也, 雖越在邊外, 亦皆懷思故國, 冀得朝廷之撫顧。 至於江北民, 則以設官保護之意, 再訴政府, 其意可嘉, 亦可哀也。 幸依其願, 設置官員于西北, 以管理其民, 使之編籍鎭撫, 伏乞矜念焉。 蓋治國之道多端, 而其要不過乎得人心, 得人心之要, 又不過乎正君心而已。 君心正, 則萬人之心皆得, 君心不正, 則萬人之心皆失。 得人心則興, 失人心則廢, 此天下古今昭昭之鑑也。 然正心又有要焉, 不過去一私字, 公則萬善俱立, 私則萬善俱去, 如斯而已。 且臣聞天地以生物爲心, 聖人以成物爲德。 臣之耄荒無能之狀, 乃通國之所知而陛下之所洞燭者也。 伏乞陛下重垂生成之恩, 使臣得以早釋重負, 安意就盡。 更願擇授賢德, 以幸國事, 千萬泣祝。
批曰: "聯編累牘, 節節皆是。 夫以卿柱石元老, 宜有此言於此時。 而剴切深摯, 諒出於斷斷衷款, 嘉卿忠愛, 眷眷服膺。 第知之非艱, 行之爲艱, 玆豈非上下交勉者歟? 目下遑汲之形, 卿旣條陳綜詳, 相助爲理, 亟求匡濟。 是卿今日之責, 而乃反過自謙牧, 便欲釋負, 良非朕之所意料也。 卿須益加淬礪, 思日贊襄, 務實猷爲。 是所厚望。"
- 【원본】 45책 41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26면
- 【분류】교통-육운(陸運) / 호구-호적(戶籍) / 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농업-농작(農作) / 구휼(救恤) / 재정-잡세(雜稅) / 교통-육운(陸運) / 농업-전제(田制) / 광업-광산(鑛山) / 사상-동학(東學)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