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39권, 고종 36년 12월 3일 양력 1/2 기사 / 1899년 대한 광무(光武) 3년
의정과 대신 이하를 인견하다
국역
의정(議政)과 대신 이하를 인견(引見)하였다. 【의정(議政) 윤용선(尹容善), 궁내부대신 임시서리학부대신(宮內府大臣臨時署理學部大臣) 이건하(李乾夏), 참정(參政) 이호준(李鎬俊), 찬정(贊政) 민종묵(閔種默)·이윤용(李允用)·이하영(李夏榮),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 이종건(李鍾健), 법부 대신(法部大臣) 권재형(權在衡), 군부 대신(軍部大臣) 윤웅렬(尹雄烈), 규장각 학사(奎章閣學士) 민영소(閔泳韶), 직학사(直學士) 김영적(金永迪), 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 김학진(金鶴鎭), 장례원 경(掌禮院卿) 서상우(徐相雨), 겸장례(兼掌禮) 이희익(李憙翼)이다.】
상이 이르기를,
"짐(朕)이 천지와 조종(祖宗)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지 이제 3년이 된다. 그런데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고 선대를 추존(追尊)하는 일을 아직까지도 시행하지 못하였다. 짐이 일찍이 역대의 전례(典禮)를 상고하건대 주(周) 나라에서는 후직(后稷)을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고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을 추존하여 왕으로 높였으며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이후로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까지 추숭(追崇)하였다.
그런 만큼 이런 규례를 참고하여 앞으로 태조 대왕(太祖大王)을 추존하여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고 장종 대왕(莊宗大王), 정종 대왕(正宗大王), 순조 대왕(純祖大王), 익종 대왕(翼宗大王)을 추존하는 규례를 시행하려 하는데 전례가 매우 중대하므로 경들에게 알게 하고자 해서 소견(召見)한 것이다."
하니, 윤용선(尹容善)이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칙교(勅敎)를 들으니, 이는 진실로 더없이 중대한 전례인데, 신은 본래 예학(禮學)에 어두워서 아뢸 만한 말씀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태조 때에는 등극(登極)한 후 추숭(追崇)하는 예는 3년을 넘기지 않고 올렸지만 그 때에도 즉시 시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3년까지 이른 것은 틀림없이 더없이 공경스럽고 신중히 한 데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유년(1897) 이후로 고례(古禮)를 널리 상고해오다가 3년에 이른 오늘에야 비로소 거행하게 되었으니, 제신(諸臣)은 각각 의견을 진달하도록 하라."
하니, 이호준(李鎬俊) 등이 모두 다시 아뢸 것이 없다고 아뢰었다. 상이 이르기를,
"역대의 전례를 상고하건대 동지(冬至)의 큰 제사 때에 원구단(圜丘壇)에서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는 고례(古例)가 이미 있으니, 추존하는 의식을 동지 전인 이번 20일에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이번 4일에 선희궁(宣禧宮)에 시책문(諡冊文)과 인장(印章)을 올리는 제사를 직접 지내는 것으로 마련하였는데, 지금 날씨가 좋지 못하고 아침저녁에는 더욱 추운 만큼 이런 때에 수고롭게 거동하는 것은 큰 성인(聖人)이 몸을 돌보는 방도가 아닐 듯 합니다. 바라건대 내리신 명을 거두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이 이렇게 간절하게 말하는 이상 비록 인정과 예절로 보아 섭섭하지만 마지못해 따르겠다."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충숙공(忠肅公) 이경직(李耕稙)은 연전에 이미 증직(贈職)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그때 총리대신(總理大臣)이 있어서 단지 품계(品階)만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議政)이 상설(常設)되었으니 의정을 증직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추증하여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비록 전식(典式)에 실려 있는 것이지만 갑오년(1894) 이후로 적체해 두고 허락하지 않은 것은 짐이 오늘의 대전례(大典禮)을 기다리려고 한 것이다. 궁내부(宮內府)에서 별도로 한계를 정하여 하나의 규식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하니, 윤용선이 아뢰기를,
"성상의 칙교가 이와 같으니 이제부터 신들은 저 세상에서도 은혜를 입어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다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한계를 새로 어떻게 정할지는 모르겠으나 바라는 대로 의정부(議政府)와 각부(各部)의 벼슬을 품계에 따라 추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 【원본】 43책 39권 86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2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원문
三日。 引見議政大臣以下 【議政尹容善、宮內府大臣臨時署理學部大臣李乾夏、參政李鎬俊、贊政閔種默·李允用·李夏榮、農商工部大臣李鍾健、法部大臣權在衡、軍部大臣尹雄烈、奎章閣學士閔泳韶、直學士金永迪、弘文館學士金鶴鎭、掌禮院卿徐相雨、兼掌禮李憙翼】 。 上曰: "朕賴天地祖宗之騭佑, 登大位于玆三載矣。 郊祀配天, 先世追尊, 尙今未遑。 而朕嘗考歷代典禮, 周以后稷配天, 追王太王、王季、文王, 唐、宋以來, 追隆至于禰、祖、曾、高, 則參互是禮, 將行太祖大王追尊配天之禮, 莊宗大王、正宗大王、純祖大王、翼宗大王追尊之制, 而典禮至重且大, 欲使卿等知之。 故召見矣。" 容善曰: "伏聆聖敎, 此誠莫重莫大之典禮也。 臣素昧禮學, 無辭可達矣。" 上曰: "太祖朝登極後, 追崇之禮, 雖不踰三年, 其時亦不趁卽爲之。 而至于三年者, 必由於莫敬莫愼故也。 自丁酉以來, 博考古禮, 于今三載, 而今始爲之也。 諸臣各陳意見可也。" 鎬俊等皆以無容更奏爲奏。 上曰: "考之歷代典禮, 則以冬至大祀日, 陞配圜丘, 已有古例。 追尊之儀, 以今二十日冬至前擧行可也。" 容善曰: "今初四日宣禧宮上諡冊印祭, 以親行磨鍊, 而見今日氣不調, 晨夕尤寒, 此時勞動恐非大聖人節宣保嗇之方。 乞寢成命焉。" 上曰: "卿言旣如是懇摯, 情禮雖缺然, 當勉從矣。" 容善曰: "忠肅公臣李耕稙, 年前已蒙贈職之命, 而伊時有總理大臣只贈品階矣。 今焉大匡議政常設, 則以議政贈職爲宜矣。" 允之。 仍敎曰: "追榮雖典式所在, 甲午以後積滯而不許者, 朕意欲待今日大典禮也。 自宮內府, 另定防限, 作一規則可也。" 容善曰: "聖敎如此, 自今臣等, 恩及泉壤, 幽明俱爲榮感矣。 未知防限新定之如何, 而從其所願, 政府與各部之職, 隨階贈之, 似好矣。"
- 【원본】 43책 39권 86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2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고종 36년 (1899) 12월 3일
고종실록39권, 고종 36년 12월 3일 양력 1/2 기사 / 1899년 대한 광무(光武) 3년
의정과 대신 이하를 인견하다
국역
의정(議政)과 대신 이하를 인견(引見)하였다. 【의정(議政) 윤용선(尹容善), 궁내부대신 임시서리학부대신(宮內府大臣臨時署理學部大臣) 이건하(李乾夏), 참정(參政) 이호준(李鎬俊), 찬정(贊政) 민종묵(閔種默)·이윤용(李允用)·이하영(李夏榮),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 이종건(李鍾健), 법부 대신(法部大臣) 권재형(權在衡), 군부 대신(軍部大臣) 윤웅렬(尹雄烈), 규장각 학사(奎章閣學士) 민영소(閔泳韶), 직학사(直學士) 김영적(金永迪), 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 김학진(金鶴鎭), 장례원 경(掌禮院卿) 서상우(徐相雨), 겸장례(兼掌禮) 이희익(李憙翼)이다.】
상이 이르기를,
"짐(朕)이 천지와 조종(祖宗)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지 이제 3년이 된다. 그런데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고 선대를 추존(追尊)하는 일을 아직까지도 시행하지 못하였다. 짐이 일찍이 역대의 전례(典禮)를 상고하건대 주(周) 나라에서는 후직(后稷)을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고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을 추존하여 왕으로 높였으며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이후로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까지 추숭(追崇)하였다.
그런 만큼 이런 규례를 참고하여 앞으로 태조 대왕(太祖大王)을 추존하여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고 장종 대왕(莊宗大王), 정종 대왕(正宗大王), 순조 대왕(純祖大王), 익종 대왕(翼宗大王)을 추존하는 규례를 시행하려 하는데 전례가 매우 중대하므로 경들에게 알게 하고자 해서 소견(召見)한 것이다."
하니, 윤용선(尹容善)이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칙교(勅敎)를 들으니, 이는 진실로 더없이 중대한 전례인데, 신은 본래 예학(禮學)에 어두워서 아뢸 만한 말씀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태조 때에는 등극(登極)한 후 추숭(追崇)하는 예는 3년을 넘기지 않고 올렸지만 그 때에도 즉시 시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3년까지 이른 것은 틀림없이 더없이 공경스럽고 신중히 한 데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유년(1897) 이후로 고례(古禮)를 널리 상고해오다가 3년에 이른 오늘에야 비로소 거행하게 되었으니, 제신(諸臣)은 각각 의견을 진달하도록 하라."
하니, 이호준(李鎬俊) 등이 모두 다시 아뢸 것이 없다고 아뢰었다. 상이 이르기를,
"역대의 전례를 상고하건대 동지(冬至)의 큰 제사 때에 원구단(圜丘壇)에서 하늘에 함께 제사지내는 고례(古例)가 이미 있으니, 추존하는 의식을 동지 전인 이번 20일에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이번 4일에 선희궁(宣禧宮)에 시책문(諡冊文)과 인장(印章)을 올리는 제사를 직접 지내는 것으로 마련하였는데, 지금 날씨가 좋지 못하고 아침저녁에는 더욱 추운 만큼 이런 때에 수고롭게 거동하는 것은 큰 성인(聖人)이 몸을 돌보는 방도가 아닐 듯 합니다. 바라건대 내리신 명을 거두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이 이렇게 간절하게 말하는 이상 비록 인정과 예절로 보아 섭섭하지만 마지못해 따르겠다."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충숙공(忠肅公) 이경직(李耕稙)은 연전에 이미 증직(贈職)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그때 총리대신(總理大臣)이 있어서 단지 품계(品階)만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議政)이 상설(常設)되었으니 의정을 증직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추증하여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비록 전식(典式)에 실려 있는 것이지만 갑오년(1894) 이후로 적체해 두고 허락하지 않은 것은 짐이 오늘의 대전례(大典禮)을 기다리려고 한 것이다. 궁내부(宮內府)에서 별도로 한계를 정하여 하나의 규식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하니, 윤용선이 아뢰기를,
"성상의 칙교가 이와 같으니 이제부터 신들은 저 세상에서도 은혜를 입어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다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한계를 새로 어떻게 정할지는 모르겠으나 바라는 대로 의정부(議政府)와 각부(各部)의 벼슬을 품계에 따라 추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 【원본】 43책 39권 86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2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원문
三日。 引見議政大臣以下 【議政尹容善、宮內府大臣臨時署理學部大臣李乾夏、參政李鎬俊、贊政閔種默·李允用·李夏榮、農商工部大臣李鍾健、法部大臣權在衡、軍部大臣尹雄烈、奎章閣學士閔泳韶、直學士金永迪、弘文館學士金鶴鎭、掌禮院卿徐相雨、兼掌禮李憙翼】 。 上曰: "朕賴天地祖宗之騭佑, 登大位于玆三載矣。 郊祀配天, 先世追尊, 尙今未遑。 而朕嘗考歷代典禮, 周以后稷配天, 追王太王、王季、文王, 唐、宋以來, 追隆至于禰、祖、曾、高, 則參互是禮, 將行太祖大王追尊配天之禮, 莊宗大王、正宗大王、純祖大王、翼宗大王追尊之制, 而典禮至重且大, 欲使卿等知之。 故召見矣。" 容善曰: "伏聆聖敎, 此誠莫重莫大之典禮也。 臣素昧禮學, 無辭可達矣。" 上曰: "太祖朝登極後, 追崇之禮, 雖不踰三年, 其時亦不趁卽爲之。 而至于三年者, 必由於莫敬莫愼故也。 自丁酉以來, 博考古禮, 于今三載, 而今始爲之也。 諸臣各陳意見可也。" 鎬俊等皆以無容更奏爲奏。 上曰: "考之歷代典禮, 則以冬至大祀日, 陞配圜丘, 已有古例。 追尊之儀, 以今二十日冬至前擧行可也。" 容善曰: "今初四日宣禧宮上諡冊印祭, 以親行磨鍊, 而見今日氣不調, 晨夕尤寒, 此時勞動恐非大聖人節宣保嗇之方。 乞寢成命焉。" 上曰: "卿言旣如是懇摯, 情禮雖缺然, 當勉從矣。" 容善曰: "忠肅公臣李耕稙, 年前已蒙贈職之命, 而伊時有總理大臣只贈品階矣。 今焉大匡議政常設, 則以議政贈職爲宜矣。" 允之。 仍敎曰: "追榮雖典式所在, 甲午以後積滯而不許者, 朕意欲待今日大典禮也。 自宮內府, 另定防限, 作一規則可也。" 容善曰: "聖敎如此, 自今臣等, 恩及泉壤, 幽明俱爲榮感矣。 未知防限新定之如何, 而從其所願, 政府與各部之職, 隨階贈之, 似好矣。"
- 【원본】 43책 39권 86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2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원본
고종 36년 (1899)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