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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8권, 고종 35년 12월 10일 양력 1번째기사 1898년 대한 광무(光武) 2년

이남규가 민회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다

의관(議官) 이남규(李南珪)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백성들이 협회를 설립하고 사안을 거론하는 일은 애초에 벌써 세력을 믿고 임금을 강요하는 혐의가 있는 것인데, 관직에 있는 사람이 어찌 말할 기회가 없을까 근심이 되어 도리어 백성들에게 달라붙는 것입니까?

옛날에 벼슬하는 사람들은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전하였는데, 오늘날 벼슬하는 사람들은 장차 백성들의 힘을 끼고 임금에게 강요하자는 것입니까? 세상이 변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민회(民會)로 말하면 앞서 이미 7명의 신하를 쫓아냈으며 뒤에 또 5명의 신하를 쫓아냈습니다. 이 열두 신하들의 현우(賢愚)와 사정(邪正)에 대해서는 신이 아는 바 없지만, 그들의 다섯 통의 상소문에서 조목을 들어 아뢴 것에 대해 한번 논의해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이르기를, ‘민의(民議)가 들끓고 공론(公論)이 행해진다면, 규정 이외의 근신(近臣)이 나아갈 수 없을 것이고, 사인(私人)의 벼슬 청탁이 이루어질 수가 없을 것이며, 공공연히 뇌물이 오갈 수 없을 것이고, 외국의 권력을 빙자하는 일이 통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말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관리들과 백성들은 한 패거리가 되었으며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조종하는 권한이 아래에 있고 위에 있지 않습니다. 저 무리들이 떠받드는 자를 대신의 반열에 둔다면 근신이 위에 나아가지 않고 반드시 아래와 통할 것이며, 사인(私人)들이 위에 청탁하지 않고 반드시 아래에 모여들 것입니다. 뇌물은 관청에 들어가지 않고 반드시 개인집으로 들어갈 것이며, 대외적인 권한이 나라에는 없고 반드시 강한 신하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몇 가지 문제는 모두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 신민(臣民)과 임금과의 관계는 그림자와 형체의 그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의 변고는 본래 용서할 수 없는 신민들의 죄입니다만, 폐하께서 천성적으로 지니시고 있는 도리에 있어서는 또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대저 직임을 맡기고서 성과를 이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본래 훌륭한 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는 큰 권한입니다. 임금이 신하가 할 일을 해서 자질구레해지면 신하들은 해이해지고 일을 잘 하려고 하지 않으며 만사가 어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폐하께서는 매번 이에 대한 경계를 더러 소홀히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령(政令)의 조치와 시행에 있어서는 여론의 기대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민의가 들끓게 되는 것이며 조정의 신하들 또한 백성들의 의견이 그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어질고 착한 사람을 선발해서 직임을 맡기고 그 일에서 성과를 이룩할 것을 요구하되 빨리 성과를 거두도록 채근하지 말고 사소한 문제를 따지지 말며, 신기한 것을 좋아하지 말고 아첨하는 자들을 가까이하지 않음으로써 들떠 있는 풍속을 진정시키고 무너져가는 기강을 진작시키소서.

벼슬아치로서 법을 무릅쓰고 모임을 개최한 자와 백성들로서 무리를 지어 명을 거역한 자는 잡아다 징계하되, 죄가 큰 자는 죽이고 작은 자는 유배함으로써 조정의 체모를 엄숙히 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소서.

또 들으니, 상민(商民)의 패거리들이 수천, 수백 명씩 무리를 이루고는 하는 행동이 매우 해괴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는 이상한 소문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신은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마땅히 농상공부(農商工部)에 명하여 타일러서 물러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바른 논의가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겠다.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 【원본】 42책 38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7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향촌-사회조직(社會組織)

十日。 議官李南珪疏略:

夫民人之設會言事, 固已有要君之嫌, 有官守者, 何患無進言之階, 而乃反倚附於民人耶? 古之仕者, 所以承上令而宣于民也。 今之仕者, 將以挾民力而要其君乎? 世變至此, 寧不心寒? 且以民會言之, 前旣逐七臣矣, 後又逐五臣矣。 此十二人之賢愚邪正, 有非臣所知, 而試以五疏中條陳者論之, 有曰: ‘民議騰而公論行, 則法外近侍, 不得進也, 私人干祿, 不得售也, 公行賄賂, 不得取也, 外權憑藉, 不得行也。’ 此其言似矣。 然今縉紳與民人, 合爲一黨, 予奪操縱之權, 在於下而不在於上。 以渠輩所推奬者, 置諸大臣之列, 則近侍不得進於上, 而必交通於下矣, 私人不得售於上, 而必湊集於下矣, 賄賂不入於官, 而必入於私門矣, 外權不在於國, 而必在於强臣矣。 此數者, 均非上下所宜有也。 嗚呼! 臣民之於君, 猶影之於形。 今日之變, 固臣民罔赦之罪。 然在陛下自有之道, 亦不害爲他山之石。 夫委任責成, 固聖君所以馭天下之大柄也。 君行臣職, 煩瑣細碎, 則臣下懈怠, 不肯任事, 而萬事廢壞。 臣伏覩陛下每於此戒, 或有少忽。 政令施措, 不能無不愜輿望。 此民議所以沸騰, 而朝臣亦不以民議爲不可也。 伏願選擇賢良, 委任責成, 毋責近效, 毋察細故, 毋喜新奇, 毋近諛侫, 以鎭囂俗, 以振頹綱。 縉紳之冒法開會者, 民人之聚黨抗命者, 緝戢懲討之, 大則誅殛, 少則流放, 以肅朝體, 以靖民志焉。 又聞商民輩, 千百爲群, 擧措駭異, 聽聞騷訛。 臣未知其意之何居, 而宜令商部諭使退歸也。

批曰: "讜論至此, 可見忠愛。 當留念矣。"


  • 【원본】 42책 38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7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향촌-사회조직(社會組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