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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20일 양력 8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유인석이 변명하는 상소를 올리다

신하 유인석(柳麟錫)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큰 의리를 제창하다가 낭패를 당하고 제 나라의 땅을 떠나서 움츠리고 틀어 앉아 있으니 지은 죄가 그지없어서 몸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명(使命)을 받은 두 신하가 먼 이역 땅의 신을 찾아와서 폐하의 윤음(綸音)을 신에게 보여 주었는데 채 다 읽지도 못하고 황송하고 감격함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윤음에 이르기를, ‘강한 이웃 나라가 틈을 노리고 역신(逆臣)이 왕권을 넘겨다보는 등 나라의 변란이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치욕은 씻을 수 없어 밤낮으로 이를 갈면서 한탄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신은 슬프고 원통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과 간이 다 썩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윤음을 읽어보니 신의 적개심과 충성심을 알아주고 아울러 죽은 여러 신하들을 가엾게 여겨 주었으며 부모의 나라를 버릴 수 없다는 것과 폐하(陛下)를 도와주기를 깊이 바라는 점이 있었습니다. 신의 이전의 죄를 용서하여 주면서 신이 나라로 돌아올 것을 재촉하시고 신에게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면서 이와 같이 신을 용서하여 주시니, 한 마디의 말로 폐하 앞에 자초지종의 사정 이야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적을 쳐서 복수하고 존화 양이(尊華攘夷)하는 것은 《춘추(春秋)》의 첫째가는 큰 의리입니다.

아, 나라의 오늘날 변란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역적의 변이 어느 나라엔들 없었겠습니까마는 외국 오랑캐들의 참혹한 짓을 초래하기를 오늘날처럼 한 자가 있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만고에 없는 큰 변고입니다.

신은 슬프고 원통하여 초야에서 학업을 닦는 선비들이나 시골의 사족(士族)들과 함께 역적을 치고 흉악한 오랑캐를 쳐서 기어코 나라의 원수를 갚고 반드시 중국의 맥을 보존하여 《춘추》의 큰 의리에 맞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관찰사(觀察使)나 군수(郡守)는 역적 박영효(朴泳孝)나 역적 유길준(兪吉濬)의 무리에서 나온 자들로서 저들의 앞잡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수령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곧 역적의 패거리들입니다. 역적을 죽이자면 먼저 패거리를 다스려야 하는 의리를 생각하여 혐의쩍게 여기지 않고 죽였습니다.

백성들의 재물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으로 나라를 위해 원수를 갚는 데 썼으니 무슨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이미 아까울 것이 없다면 그것을 취하는 것도 역시 혐의쩍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기뻐하면서 취하였겠습니까? 실로 사정이 급박하여 할 수 없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명령을 내려 군사들이 동원되게 한 것으로 말한다면 폐하(陛下)가 당하고 있는 처지에서 폐하의 마음을 헤아려 보건대 반드시 이런 명령이 없었을 것이지만 흉악하고 간사한 자들이 억지로 주장하여 마지못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감히 명령을 거역한 것은 물론 불행한 일이지만 그 사이에 한스러운 것이 없지 않습니다.

오직 군사들의 습격을 받아 죽어 넘어지거나 위급해지는 바람에 역적들이 거리낌 없이 날뛰는 것을 방임해 두었으며 흉악한 오랑캐들이 더 한층 창궐하게 되어 우리 폐하와 황태자(皇太子)가 지극히 원통해하는데도 그 마음을 풀어드리지 못하였으니, 신의 죄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보니, 폐하의 은덕에 감격하여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산골짜기로 쏟아지는 물이나 활줄을 떠난 화살과도 같지만 신이 모친상을 당한 채로 국난에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큰 의리를 이룩하지 못하였으니 종신토록 원통한 일이 되었습니다. 신은 충성과 효성에 있어서 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서 무슨 낯으로 들고 사람들을 볼 것이며 어떻게 대궐에 나아가 성상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명령을 받고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서 순식간에 국경에 들어서기는 하였으나 감히 한 발자국도 다시 나가지 못하겠으니 신의 사정이 이에 이른 것은 역시 슬픈 일입니다. 이에 초산(楚山) 근처에서 엎드려 대죄(待罪)하고 있으니 폐하의 명령에 태만한 죄를 빨리 해당 법조문에 의해 처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네가 능히 뉘우치고 자수한 것은 가상히 여길만한 일이다. 너의 죄를 특별히 용서하여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개척하라."

하였다.


  • 【원본】 40책 36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2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死罪臣柳麟錫疏略: "臣擧義狼狽, 出疆窮蹙, 負罪罔極, 措身無所。 不意, 使命二臣, 追臣萬里異域, 示臣十行恩綸。 未及奉讀, 驚悚惶感。 有曰‘强隣乘釁, 逆臣竊命, 國變罔極, 羞辱莫雪, 夙夜切齒之恨。’ 臣不覺哀冤痛泣, 心肝盡腐。 讀至許臣敵愾素忠, 而竝哀憐其死亡諸臣, 謂父母之邦不可棄, 袞職之補深有望焉。 赦臣前愆, 促臣還國, 知臣無他, 寬臣如此, 不得不一言始終情事於聖慈之前。 討逆復讐, 尊華攘夷, 《春秋》第一大義。 而嗚呼! 國家今日之變, 尙忍言哉? 亂賊之變, 何國無之, 而孰有致之外夷慘酷, 如今之爲者乎? 一言蔽之曰, 萬古所無之大變也。 臣悲憤痛冤, 與巖穴修奏之士、卿邦簪纓之族, 討亂賊伐凶夷, 期以必報國讐。 必保華脈, 竊自附於《春秋》大義。 而其所謂觀察、郡守, 以其逆逆孝逆吉輩所出, 爲彼爪牙使令, 豈可以長吏言之? 卽所謂亂賊之黨與。 誅亂賊, 先治黨與之義, 不以爲嫌而誅之。 其於民財, 以其爲國報讐, 有何可惜其助之也? 旣無可惜, 則其取之也, 亦無可嫌。 然是豈樂取? 實由迫不得已也。 至若宣諭之下, 師旅之至, 以聖上所遭之地, 度聖上所存之心, 必無是命, 不過爲凶邪抑勒不獲自已也。 故敢有違忤, 是蓋不幸之事, 而不能無恨於其間矣。 惟見襲於兵丁死亡顚沛, 任亂賊之橫恣, 滋凶夷之猖獗, 莫紓我君父太子至痛在心者, 則臣罪極矣。 今此召還之命, 感戴聖德, 趨造之心, 有若赴壑之水、離弦之箭。 而臣以母喪而赴國難, 不能成大義, 而作終身之慟。 臣忠孝大罪人, 何以擧顔見人, 其何以近光天門乎? 聞命, 不能暫留一刻, 入疆, 不敢更進一步。 臣之情事至此, 亦慼矣。 于玆楚山境上, 蹲伏而待罪, 伏乞負犯逋慢之罪亟施以律焉。" 批曰: "爾之能改悔自首者, 極爲嘉尙。 特赦爾罪, 以開自新之路。"


  • 【원본】 40책 36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2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