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등 716명이 황제로 칭할 것을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리다
치사(致仕)한 봉조하(奉朝賀) 김재현(金在顯) 등 관원 716명이 올린 연명 상소(聯名上疏)의 대략에,
"신 등이 생각하건대, ‘우리 폐하(陛下)께서는 뛰어난 성인의 자질과 중흥(中興)의 운수를 타고 왕위에 오른 이후 34년 동안 총명한 지혜로 정사에 임하였고 신무(神武)를 발휘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밤낮으로 정력을 기울여 나랏일이 잘되게 하려고 애썼으며 변란을 평정하는 데 있어서는 형벌을 쓰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 크나큰 공렬은 천고(千古)에 으뜸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주권을 잡고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여 드디어 연호(年號)를 세우고 조칙(詔勅)을 시행하며 모든 제도가 눈부시게 바뀌었으니 이는 참으로 천명(天命)이나 인심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어찌 지혜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주(周) 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오히려 새롭다.’는 것이니 아! 거룩하고 훌륭합니다.
그런데 미처 하지 못한 것으로는 오직 황제의 큰 칭호를 정하지 못한 일입니다. 신들이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로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은 ‘황(皇)’이라고 불렀고 요(堯)나 순(舜)은 ‘제(帝)’라고 불렀으며 하우(夏禹)나 성탕(成湯), 주 문왕(周文王)이나 무왕(武王)은 ‘왕(王)’이라고 불렀습니다. 역대의 변천은 비록 다르지만 가장 높인 것은 한결같았습니다. 진(秦) 나라와 한(漢) 나라 이후로 ‘황’과 ‘제’를 합쳐 ‘황제(皇帝)’로 불렀으며 ‘왕’의 지위는 드디어 오작(五爵)의 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구라파의 각 나라는 우리와 문화나 제도가 같지 않지만 ‘황’과 ‘왕’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로마가 처음으로 황제의 칭호를 썼는데 게르만이 로마의 계통을 이어 그 칭호를 답습하여 썼고 오스트리아〔奧國〕는 로마의 옛 땅에 들기 때문에 역시 황제라고 불렀습니다. 독일〔德國〕은 게르만의 계통을 이었으므로 극존의 칭호를 받았으며 러시아〔俄國〕, 터키〔土耳其〕는 모두 자주의 나라이므로 다 가장 높은 칭호를 썼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역 경계가 중국과 잇닿아 있고 나라가 나누어지고 통합된 것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세 나라는 각각 그 땅의 주인으로 다같이 왕의 칭호가 있었으며 심지어 송양(松讓), 가야(伽倻), 예맥(濊貊), 여진(女眞), 탐라(耽羅) 등의 작은 나라들도 각기 왕으로 불렀습니다. 고려 때 통합하여 다만 묘호(廟號)만 썼으며 본조(本朝)에서는 옛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은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이후 그 나라들이 멀리서 존호(尊號)를 견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폐하(陛下)께서는 성덕(聖德)이 날로 새로워져 문교(文敎)가 멀리 미치고 머나먼 외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어 만국(萬國)과 같은 반열에 놓이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옛 칭호를 그대로 쓰고 있으니 실로 천심(天心)을 받들고 백성들의 표준이 되는 도리가 아닙니다.
적이 살펴보건대, 구라파와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다 평등하게 왕래하고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는데 아시아의 풍속은 그렇지 않으므로 그 칭호를 보고 혹 불평등하게 대우한다면 교류함에 있어서 지장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밤낮으로 분개하는 것입니다.
이제 빨리 황제의 칭호를 올려 여러 나라에 공포한다면 시기하고 의심하는 것이 날로 없어지고 우의(友誼)가 더욱 돈독해져 앞으로 길이 천하 만대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강토는 한 나라와 당(唐) 나라의 옛 땅에 붙어있고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은 다 송 나라나 명(明) 나라의 옛 제도를 따르고 있으니, 그 계통을 잇고 그 칭호를 그대로 쓴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다같이 로마의 계통을 이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립과 자주는 이미 여러 나라가 공인하였으니 당당한 존호(尊號)에 거하는 것은 응당 실행해야 할 큰 법도인데 폐하께서는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는 것입니까?
신 등이 《공법(公法)》을 가져다 상고하여 보니, 거기에 쓰여 있기를, ‘나라의 임금이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가져야만 칭제(稱帝)하는 나라들과 평등하게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는데 신들은 이 말이 황제를 칭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갑오 경장(甲午更張) 이후로 독립하였다는 명분은 있으나 자주(自主)의 실체는 없으며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으니 백성들의 의혹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을 위한 계책으로는 마땅히 위의를 바로세우고 존호를 높임으로써 백성들 마음이 추향(趨向)하는 방향이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또 그 공법의 주석(註釋)에 ‘러시아의 임금이 칭호를 고쳐 황제로 하였는데 각 나라들에서 좋아하지 않다가 20년을 지나서야 인정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이에서 보건대 우리가 우리나라의 일을 행하고 우리가 우리나라의 예(禮)를 쓰는 것은 우리 스스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을 빨리 받는가 늦게 받는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논의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왕」이나 「군(君)」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 임금의 칭호이며 「황제」라는 것은 여러 나라를 통틀어 관할하는 임금의 칭호이므로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들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통합하지 못하였다면 황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을 통합하여 영토는 사천리를 뻗어있고 인구는 2천만을 밑돌지 않으니 폐하의 신민(臣民)된 사람치고 누군들 우리 폐하가 지존(至尊)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지존의 칭호를 받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옛것을 인용하여 오늘에 증명하고 여정(輿情)을 참작하고 형세를 헤아려 보아도 실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여정(輿情)을 굽어 살피셔서 높은 칭호를 받아들여 만국에 공표하여 천하에 다시 새로운 관계를 세우신다면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위하여 더없이 다행하고 신민에게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짐에게 무슨 일인들 권하지 못하겠는가마는 전연 당치 않는 칭호로 부르자고 말하는 것은 실로 경들에게서 기대하던 바가 아니니, 시국을 바로잡을 계책이나 강구하고 다시는 이에 대하여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원본】 40책 36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면
- 【분류】외교-독일[德]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致仕奉朝賀金在顯等搢紳七百十六人聯名疏, 曰: "伏以臣等欽惟我陛下挺上聖之姿, 撫中興之運。 御極三十有四載, 聰明而有臨, 神武而不殺, 宵旰憂勤, 勵精圖治, 勘定禍亂, 期致刑措。 其弘功盛烈, 卓冠千古。 握自主之權, 定獨立之基, 遂乃建年號而行詔勅, 凡所制作, 煥然改觀。 此誠天命人心之莫之爲而爲者也, 夫豈智力所可容措哉? 是所謂‘周雖舊邦, 其命維新。’ 猗歟! 盛矣。 但所未遑而不擧者, 惟皇帝之大號是已。 臣等請泝其源而歷陳之。 夫羲、農稱皇, 堯、舜稱帝, 禹、湯、文、武, 稱王。 歷代之沿革, 雖不同, 其爲至尊, 則一也。 秦、漢以降, 合皇與帝, 而以皇帝稱之。 王位則遂列於五爵之上矣。 歐西各國, 文軌不同, 亦有皇王之別, 羅馬始用皇帝之號。 日耳曼接羅馬之統, 而襲其位號。 奧地利, 以其與於羅馬古地也, 故亦稱皇帝。 德國承日耳曼之統, 而膺其尊號。 俄羅斯、土耳其, 皆自主之國也。 故俱用至尊之號。 我邦地界, 毗連中土, 分合無定。 然新羅、高句麗、百濟三國, 各主其地, 均有王號。 至若松讓、伽倻、穢貊、女眞、耽羅等滕小之國, 亦各稱王。 麗朝統合, 只用廟號, 本朝受禪, 舊貫斯仍。 寔由唐、宋以下遙相控制故也。 惟我陛下聖德日新, 文敎遠被, 梯航交聘, 萬國同列, 而猶復襲用舊號, 則實非所以對揚天心、標準斯民之道也。 竊觀歐美諸國, 率皆平行往來, 無分軒輊。 而亞俗不然, 視其位號, 偶或不等, 則在交際, 不免有所妨礙。 此誠忠臣義士夙宵憤慨者也。 今若早進大號, 聲明萬國, 則猜嫌日銷, 友誼益敦, 其將永有辭於天下萬世矣。 我邦疆土, 係是漢、唐古地, 衣冠文物, 悉遵宋、明遺制, 接其統, 而襲其號, 無所不可。 正如德、奧之均接羅馬之統也。 獨立、自主, 旣經萬國公認, 居正履尊, 寔係應行大典, 陛下何憚而不爲乎? 臣等取考其公法書, 有曰: ‘國主非必有帝號, 方與稱帝之國平行。’ 臣等以爲此說非曰不可。 而在我邦則不然, 何也? 甲午更張之後, 有獨立之名而無自主之實, 國是靡定, 民疑莫銷, 爲今之計, 亶宜正威儀尊瞻視, 使民心有所趨向也。 又其公法疏註曰: ‘俄君改稱皇帝, 各國不悅, 越二十餘年, 方認之。’臣等以爲觀於此則我行我事我用我禮, 均可自由行之。 若乃公認之遲速, 不必先事料度。 且論者曰: ‘王者、君者, 有一國之稱, 而皇帝者, 統轄衆邦之稱。 不有拓土廣民統合各邦, 則不當稱之’云。 然我邦統合三韓, 陸地疆土, 延互四千里, 人口不下二千萬, 在今日爲陛下臣民者, 孰不望我陛下處至尊之位而膺至尊之號哉? 援古證今, 酌情度勢, 寔所不容不行之者也。 伏願陛下俯循輿情, 誕受鴻號, 聲照萬國, 與天下更始。 則宗社幸甚, 臣民幸甚。" 批曰: "今此艱虞之會, 所可勉朕者, 固何限? 而乃以萬萬不當之稱爲言者, 實非所佇於卿等也。 究所以矯時之策, 勿復以此爲煩。"
- 【원본】 40책 36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면
- 【분류】외교-독일[德]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